해변의 여인
우로보로스는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있는 거대한 뱀형 몬스터다.
우로보로스가 타고 나는 화기는 그 기세가 너무 맹렬해 심지어 자기 자신을 태워 버릴 정도다.
“결국 자기 안에 타오르는 불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일삼기 일쑤인 아주, 아주 위험한 몬스터야.”
“그것도 그 몬스터 사전인가 뭔가 하는 거기에 나오는 내용이야?”
“그렇지.”
타르칸은 몬스터사전을 근거로 세상이 조작되어있다고 주장한 쿤타를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 몬스터사전이란거 다음에 한번 봐야겠는데… 어째서 서버는 몬스터 데이터를 이정도로 자세하게 NPC들에게 공개한 거지?”
타르칸은 평소 같았다면 몬스터사전은 서버란 녀석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 항변했겠지만 이번에는 그저 침묵했다.
저 아래 호수에서 노니는 거대한 붉은 뱀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사냥했다고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몬스터사전과 이 세상이 조작되었다는 쿤타의 말이 다시 한 번 연상되었다.
“어떻게 우로보로스가 이런 곳 까지 온 건진 모르겠지만… 주변 봉우리에서 눈이 녹은 물이 끊임없이 공급되니 저 녀석에게는 최고의 서식처를 찾은 셈이네.”
그때 타르칸의 품에 안겨있던 가이아가 갑자기 오른쪽 날개를 치켜들었다.
“잠깐만.”
“가이아. 왜 그래?”
“뭔가가 우릴 노리고 있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져.”
“뭐!?”
타르칸이 화들짝 놀라며 호수 안을 거닐고 있는 우로보로스의 기색을 살폈다.
“아니. 저 우로보로스는 아니야. 우리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가이아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떨어졌다.
쾅-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성인 남성보다 거대한 바위였다.
“위다!”
급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대한 새들이 타르칸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5등급 게이트의 몬스터, 로크의 떼였다.
-삐휘이이이익
날카로운 로크의 울음소리와 함께 다시 바위가 타르칸에게 떨어져 내렸다.
상대가 하늘을 날고 있어서야 상대할 방법이 없다.
타르칸은 급히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젠장. 아래에는 우로보로스. 하늘에는 로크때라니….”
쾅. 쾅.
전력으로 도망치는 타르칸의 곁으로 연신 바위가 떨어져 내린다.
땅에 부딪치는 기세가 검은 껍질로 방어 하더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다행인 점은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탓에 명중률은 형편없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 쫒아올 생각이지?”
어느덧 우로보로스의 호수에서 상당히 먼 곳까지 도망쳤지만 아직도 로그떼는 여전히 그를 쫒고 있다.
거기다 두텁게 쌓인 만년설이 그의 발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잠행!”
[전투 중에는 해당 스킬의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공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상황 역시 전투 중이라고 여겨지는 모양이다.
“어이 가이아. 어떻게 좀 해봐.”
이 순간에도 타르칸의 몸 만한 바위들이 연신 떨어져 내리고 있다.
타르칸이 그의 품에 안겨있는 가이아의 등을 툭툭쳤다.
가이아가 잠시 정신을 집중하는가 싶더니 짧은 날개를 들어 한쪽 방향을 가르켰다.
“저쪽. 저 방향으로 가면 숨을 장소가 있을 거야.”
가이아가 가르킨 방향으로 가자 크레바스를 연상시키는 얼음 협곡들 사이로 작은 자연 동굴들이 여럿 생성된 지형이 나타났다.
타르칸은 그 동굴 중 하나에 몸을 던져 넣었다.
-삐이이이익
하늘에서 울리는 로크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가라앉고 나서야 타르칸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역시 아직 혼자 다니는 건 무리인가.”
사실 그는 얼마동안 사람들이 사는 곳을 완전히 떠나 혼자 떠돌아다닐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비상 식량’이라는 식품부터 각종 도구들 까지.
거의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전리품 상자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야생은 두려운 곳이며 그는 아직 다른 인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르칸의 품속에서 가이아가 쫄래쫄래 기어나왔다.
“너와 나의 목표를 위해서는 일단 네가 좀 강해져야 해.”
타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그지만 아직 이 세상에는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한 놈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방법은?”
“정수약탈자가 정수를 흡수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겠어? 문제는 어떤 놈을 흡수 할 것이냐지.”
“현무 같은 것을 흡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사방신을? 물론 현무 백호 주작 청룡을 모두 흡수한다면야 엄청나긴 하겠지. 정수들 간의 균형도 완벽할 테고 말이지.”
가이아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너의 힘으로는 사방신의 진체를 보기도 힘들 거다. 지금까지 살아 있을지도 불확실 하고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뭐지?”
잠시 뜸을 들이던 가이아가 고개를 저었다.
“음… 아냐.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야. 어쨌든 다른 사방신을 흡수하겠다는 생각은 버려.”
“하지만 나는 이미 현무의 정수를 얻었는데? 이건 현무가 아직 실존한다는 증거 아니야?”
‘바로 그게 이상하다는 거다 이 멍청아!’
가이아는 속이 답답해졌다.
타르칸은 무려 현무의 정수가 일개 섬의 비밀상점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인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너의 어머니의 진의가 의심된다고 말 할 수도 없고…’
“아~ 거참! 그렇다면 그냥 그런 줄 알아. 내가 더 좋은 정수들을 잔뜩 알고 있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흠….”
타르칸은 아무래도 미심쩍은 눈치다.
하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그는 일단 어떤 정수를 흡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고민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이아. 이 정수의 원형이란 거 얻는 조건이 뭐야? 그냥 확률인가?”
“뭐? 너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그의 질문에 가이아는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가이아는 당연히 타르칸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가이아는 곧바로 타르칸에게 정수의 원형을 얻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열쇠는 의외로 단순했다.
바로 시스템.
디멘션온라인의 시스템에 강하게 연관되어 있을수록 정수의 획득 확률이 높아진다.
“말하자면 그림자 호랑이는 퀘스트. 살아있는 뼈는 던전과 연관되어 있었잖아? 그런 식으로 디멘션온라인의 콘텐츠… 뭐? 콘텐츠가 뭐냐고? 아 뭐 그런 게 있어. 그냥 쉽게 시스템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해. 하여간 그렇게 디멘션온라인의 콘텐츠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을수록 각종 희귀 아이템의 획득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지. 정수의 원형 역시 마찬가지고.”
가이아는 단숨에 말을 쏟아 낸 뒤 허리에 날개를 척 올렸다.
“어때? 알아들었어?”
“뭐 대충은.”
결국 정수라는 것은 시스템이 던져주는 것이라는 소리였다.
던전은 발견하기도 어렵고 발견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던전에 갈 생각이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은 적당한 퀘스트를 받는 것이었다.
“결국 적당한 퀘스트를 찾아 내야하는 거구나.”
그런 타르칸을 가이아가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퀘스트를 왜 찾아? 네가 NPC잖아. 퀘스트를 만들면 되지.”
타르칸은 순간 머리가 띵 했다.
“뭐? 그러니까 내가 나에게 퀘스트를 생성해 주라는 거야? 그게 가능해?”
“해보면 알겠지? 안되면 마는 거고.”
타르칸은 반신반의 하는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퀘스트 생성의 조건은 세 가지.
보상과 클리어 기준 그리고 퀘스트에 관한 정확한 정보.
“칼날산맥의 봉우리에 서식하는 아이스 오우거를 사냥하면 아이스 오우거의 정수를 준다.”
퀘스트에 관한 정보가 생성자와 수락자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 정보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
때문에 정말 자신에게 스스로 퀘스트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정도 만으로도 충분하다.
[퀘스트 생성에 실패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아이템을 보상으로 설정할 수 없습니다.]
“좋아 그럼… 칼날산맥의 봉우리에 서식하는 아이스 오우거 10마리 사냥. 보상은 아이스 오우거 한 마리당 회복물약 하나.”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칼날산맥의 얼음 오우거
- 보상 : 회복 물약 x 10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됐다!”
***
서해의 한 해변.
촤아아악.
쓰사아아아아.
파도가 밀려든다.
모래를 쓸어내리며 물러간다.
촤아아악.
쓰사아아아아.
풍경이 빼어나지도 교통이 편리하지도 않은 외지의 겨울 바다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쓸쓸한 해변을 걷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어떤 사연이 있음이 틀림없다.
“에라이.”
하동연이 자신의 앞에 늘어져 있는 이름 모를 해초를 걷어찼다.
“아 씨. 바다가 보이는 저택이라며.”
집은 나쁘지 않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긴 보인다.
하지만 그가 거금을 주고 바닷가의 저택을 구입한 것은 이런 적막한 바다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비키니는! 쭉쭉빵빵은!!!”
남자는 직접 확인도 하지 않고 계약서에 서명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하동연.
디멘션온라인 아이디 제이가.
그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레전드 클레스 소유자다.
“하오… 걍 이거 냅두고 딴 거 살까?”
그는 비교적 후발 주자였지만 고작 몇 달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가진 레전드 클래스 ‘몬스터 라이더’가 가진 능력은 경이적인 것이었다.
현재 그의 레벨은 86.
명실상부 디멘션온라인의 최강자다.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의 최강자, 그리고 유일한 레전드 클래스.
자연히 그의 개인 영상 채널의 구독자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이다.
사실 그의 수익원은 방송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메루시카에서 의뢰가 있었지… 부동산 보러 다닐 시간이 없네 시간이.”
디멘션온라인은 한낱 게임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고액의 개인의뢰가 많았다.
그가 수면위로 떠오른 뒤부터 지금까지 암살이나 길드전, 퀘스트 해결 등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제시하는 의뢰인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날이 갈수록 그의 부와 명예는 높아지고, 확고해지고 있다.
“그럼 뭐하냐… 아직 솔로인데.”
부와 명예는 얻었지만 그것뿐이다.
하동연은 돈을 쓸 시간도 없을뿐더러 돈을 쓸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해변의 저택을 구매한 것이다.
왜 영화에 보면 나오는 장면들 있지 않는가.
개인 요트, 바다가 보이는 저택, 화려한 파티, 필연같은 운명적 만남.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흐. 흐헤헤헤.”
하동연이 적막한 해변을 걸으며 히죽거렸다.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있던 그의 발에 뭔가 물컹한 것이 밟혔다.
그는 깜짝 놀라 흠칫 물러섰다.
“뭐야. 해파린가?”
가만히 보니 해초더미 사이 뭔가 하얀 것이 보인다.
무언가가 모래 사이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그는 조심스레 해초를 걷어내었다.
“히이익!!”
검은 해초 아래에 있던 것.
그것은 모래에 반쯤 파묻힌 한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