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52화 (52/215)

우로보로스

타르칸의 웃는 모습에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던 가이아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신나게 날개를 흔들어 대었다.

“아! 산을 올라오던 중에 그 놈을 봤어.”

“그 놈?”

“내가 아직 S와 연결되어 있을 때 네가 만났던 그 하얀 원숭이 가면 말이야.”

“뭐!?”

잊을 리가 없는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린 타르칸이 휘둥그레 눈을 뜨고 가이아를 바라봤다.

“그때 너의 데이터 로그를 읽으려던 그 놈. 기억하지?”

“GM이라던?”

타르칸이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가이아가 피식 웃었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런 녀석이 GM일 리가 없잖아. 우리가 만든 GM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고.”

확실한 것은 가이아는 GM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대체 GM이란게 뭐야?”

“네가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신의 대리인? 천사? 뭐 그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거야.”

“서버란 것이 신이고 GM이 천사라고? 그런 놈이?”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가면이나 쓰고 다니는 녀석은 GM이 아니라고. GM은 말이지… GM의 진짜 정체는 말이지….”

가이아는 뭔가 대단한 말을 꺼내기라도 할듯 잔뜩 입을 오므리며 다음 말을 준비했다.

자연히 타르칸의 궁금증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응.”

당차게 말하던 가이아의 말문이 막혔다.

“그러니까… 음… GM은….”

기억이 지워진 부분인 모양이다.

가이아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타르칸이 가이아의 머리를 손바닥을 턱 올렸다.

“뭐 됐어. 그 놈의 정체 같은거야 내가 더 강해진 뒤에 천천히 알아내도 늦지 않아. 그때 GM인지 뭔지의 진짜 정체도 같이 알아보자고.”

“으…으응.”

“그런데 그 놈이 여기는 왜 온 거지?”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뭘 찾고 있는 모양이던데?”

“전에는 프롬숲에 있더니… 숲에서 뭘 잃어버린 걸까?”

GM들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타르칸은 그저 그렇게 추측할 뿐이었다.

더 이상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이내 고개를 저은 타르칸이 일어나 몸을 털었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샤르크로 넘어 가자고. 눈은 이제 질린다. 질려.”

현재 그들의 위치는 칼날산맥의 수많은 봉우리 중 한 곳이다.

샤르크와 아스너제국은 칼날산맥을 국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대로 산을 타고 반대로 넘어가기만 하면 곧바로 샤르크의 땅에 닿을 수 있었다.

“샤르크로 가기 전에… 가이아. 혹시 이 근방에서 가장 강한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가능은 하지만 찾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왜?”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는 그가 가진 정수약탈자의 능력에 대해서, 무엇보다 몬스터에게서 정수를 얻는 방법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가이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참. 레벨 40 넘겼어. 방금 전에 직업 공통 스킬도 선택했고.”

“그래? 광포한 재생 골랐겠지? 만약에 아니면 넌 진짜 멍청한 거야.”

타르칸의 직업 정수약탈자는 드루이드 계열로 분류가 될 뿐, 일반적인 드루이드 계열 직업들과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레벨 40때 받을 수 있는 직업스킬 중에 그나마 쓸 만한 것은 광포한 재생 하나 뿐이다.

“아니.”

타르칸이 모닥불을 끄며 짧게 대답했다.

너무나도 단호하게 부정하는 타르칸의 말에 순간 당황한 가이아가 다시 되물었다.

“뭐? 그럼 뿌리 묶기?”

“아니 야수교감.”

“아! 이 바보야. 야수교감은 소환 드루이드를 위한 스킬이야! 선택하기 전에 스킬 설명을 읽었어야지잇!”

야수교감은 쉽게 말하면 소환된 야수가 더 정확히 드루이드의 명령을 이해하도록 돕는 스킬이다.

그 외의 부가효과로 야수 1개체에 한정해 플레이어는 야수의 스텟을 일부분 공유 받고, 야수는 플레이어의 스킬 하나를 사용 할 수 있다.

“소환수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스킬이라고!”

가이아가 분통을 터트리며 절벽 아래로 내려왔다.

가이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타르칸은 충분히 강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저런 멍청한 선택을 하다니!

그런 가이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르칸은 피식 웃었다.

“내가 소환수는 없지만 야수는 하나 가지고 있거든.”

“뭔 소리야 니가 무슨….”

차갑게 일갈하려던 가이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혹시…’

가이아의 머릿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간다.

시스템은 타르칸과 동행하고 있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판단할까?

타르칸이 환하게 웃었다.

“잘 부탁한다. 야.수.”

“… X발”

앙증맞은 펭귄의 입에서 나올 리가 없는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

가이아의 말대로 이 넓은 산맥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를 찾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가이아의 탐색 범위에도 한계가 있는데다가 거리가 멀어질수록 정확한 파악이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이쪽 방향 맞아?”

“그래. 맞아. 대체 몇 번을 묻는 거야.”

“가도 가도 안 나오니 그러지.”

보통 가이아의 탐색능력의 인지범위는 대략 반경 5km 정도이며 반경 1km 이내에서는 꽤나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니 지금처럼 주구장창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경우는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아직 거리가 멀어. 하지만 그럼에도 느껴질 정도로 강한 놈이야….”

탐색범위 밖에 있지만 워낙 기운이 강해 느껴진다는 뜻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가이아의 말에 타르칸이 움찔거렸다.

“내가 사냥할 수 있는 놈이긴 해?”

가이아는 뜸도 들이지 않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무리지… 적어도 8단계 이상인 것 같은데?”

타르칸이 절로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8단계 게이트의 몬스터라면 이 일대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애초에 7단계 게이트 몬스터 이상부터는 더 이상 개인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만약 8단계 게이트의 몬스터가 작정하고 덤벼든다면 아스너 제국은 제국의 존망을 걱정해야만 할 것이다.

“뭐? 8단계? 그런 괴물이 왜 여기에 있어?”

“필드 보스겠지 뭐.”

타르칸은 한가롭게 하품하며 그가 이해하지 못할 단어를 내뱉는 가이아를 쏘아보았다.

“너 날 죽일 셈이었어? 왜 그런 놈이 있는 곳으로 날 데려가려는 거야?”

“뭐래. 네가 이 근방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를 찾아 달라며!”

“야 그건 어느 정도의… 에휴. 됐다 됐어. 가자. 바로 샤르크로 넘어 가는 게 좋겠어.”

8단계 게이트 몬스터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더 이상 칼날 산맥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타르칸의 말에 가이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왜? 여기까지 와 놓고 왜 돌아가?”

“그럼 내가 친히 몬스터 밥이라도 되리?”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넌 궁금하지 않아? 저놈이 어떤 몬스터인지 말이야.”

“아니. 전혀. 데스나이트의 칼에 썰려 죽든 바포메트의 저주에 불타 죽든 죽는 건 매 한가지니까. 안 궁금해. 절대로!”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죽을지가 궁금해서 사지로 기어들어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생각해봐 타르칸. 너 말고 다른 NPC들… 그러니까 주민들은 몬스터게이트와 몬스터를 느낄 수 있잖아? 뭐 물론 나에 비교한다면 우스운 수준이긴 하지만 어쨌건 그 사람들도 이 산맥 어딘가에 저 괴물이 있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을 거란 말이지.”

그리고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은 제국이 마탑에 의뢰해서 제작한다는 몬스터 지도에도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제국이 군대나 수색대를 보내지 않고 있다는 건 저 몬스터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반증 아닐까? 즉 예전부터 사람들이 알고 있던 놈이란 소리지.”

“음….”

일리가 있는 말이다.

본래 7단계 몬스터 게이트만 나타나도 그 일대는 난리가 나는 게 정상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미 놈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아무런 수단을 찾지 않고 있는 거잖아? 그 말은 곧 무지막지하게 강하긴 하지만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뜻 아닐까?”

“위험하지 않은 몬스터 같은 건 세상에 없어. 아무런 수단을 찾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찾을 수가 없는 것 같은데. 처리 방법이 전무하니까.”

“뭐 그런걸 수도 있고.”

“하지만 만약에 저 녀석이 새롭게 게이트에서 넘어온 것이 아니라 너 말대로 이곳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거라면 짐작이 가는 건 있어.”

지주 현상.

한 종류의 몬스터가 일정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 프롬숲의 고블린 군락이나 설산의 아이스 오우거들은 그런 지주 몬스터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지능이 높고 집단을 이루는 몬스터들이 지주가 되지만 가끔은 지나치게 강한 단일 개체가 다른 몬스터 종들 위에 군림하는 경우가 있지.”

몬스터게이트는 어디에든 생기고 일정 범위 내에서 이동한다.

그리고 그 몬스터게이트에서 소환되는 몬스터들은 완전히 랜덤이다.

사막위에 수중몬스터가 소환되어 집단 폐사 한다던가 열대지역에 예티가 소환되어 열병으로 고생한다던가 하는 사례는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때문에 게이트에서 소환된 몬스터가 자신에게 알맞은 환경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종종 뜬금없이 강한 몬스터가 출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이동 중에 다른 몬스터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소수의 강한 몬스터들은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내는데 성공하곤 한다.

특이한 것은 이 경우, 몬스터의 흉폭성이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내 생각엔 저 앞에 있다는 그 8단계 게이트의 몬스터 역시 그렇게 다른 곳에서 이동한 뒤 여기에 정착한 녀석인 것 같아. 그래서 잠잠한 거지.”

타르칸의 장황한 말에 가이아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자신이 아는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려드는 것은 타르칸에게 새로운 버릇이었다.

과거에 쌓아두었던 지식에 현무의 정수에서 얻은 자신감이 더해진 결과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필드 보스라는 거잖아. 그 지주가 된 강한 단일 개체. 그게 바로 필드보스야.”

“크흠.”

“아는 척 쩐다. 진짜.”

“크흐흠….”

“몬스터의 종류가 뭔지 정도만 알아보고 가자구. 혹시 또 알아? 저 앞에 있는 놈이 나중에 네가 흡수할 정수의 주인일지.”

가이아의 말에 타르칸은 그저 작게 코웃음치고 말았다.

황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의 종류만이라도 알아보자는 가이아의 말에는 동의했다.

“뭐 좋아. 잠행 스킬도 있으니 괜찮겠지… 무슨 몬스터인지만 알아보자고….”

가이아가 말하는 방향으로 더 다가갈수록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타르칸 역시도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가이아. 왠지 좀 따듯해지지 않았어?”

“응 확실히 아까보다 덜 추운데?”

그들이 느낀 것이 착각이 아니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텁게 쌓여있던 눈의 두께가 줄어들더니 급기야 봉우리의 정상에 다다라서는 눈에 쌓여있지 않은 맨땅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높은 봉우리를 올라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은 절대 아니다.

“근처에 분화구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화산이라면 주변 지형에도 화산의 흔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칼날 산맥의 어디에도 활화산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몬스터 때문이겠지?”

타르칸이 머릿속으로 화기를 다루는 8단계 게이트의 몬스터들을 빠르게 연상했다.

열기를 뿜으면서도 눈에 띄지 않고, 호전적이지 않은 몬스터.

딱히 짚이는 녀석이 없다.

이윽고 타르칸과 가이아는 봉우리의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봉우리의 반대편의 분지에 위치한 호수와 거대한 폭포를 볼 수 있었다.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 호수는 연신 더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런 호수의 열기는 근처 높은 봉우리의 눈을 녹여 거대한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온도가 따듯해서인지 호수 주변에는 이 고도에서는 살 수 없는 식물들이 무성히 자생하고 있다.

“그렇군.”

봉우리 아래로 보이는 호수 속에서 거니는 거대한 붉은 뱀을 발견한 타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로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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