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
“마을을 버려야 합니다.”
마을의 대표자로 보이는 노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다시 이계의 인간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아니 설사 다시는 이계의 인간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살아남은 마을 주민들은 더 이상 이 마을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에드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부끄럽지만 저는 제국의 견습기사 신분입니다. 다른 곳에서 정착하실 수 있도록 가능한 돕겠습니다.”
그는 차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잠행을 발동한 채 건물의 지붕위에 숨은 타르칸이 마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가이아가 조심스럽게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는 타르칸의 바지아랫단을 당겼다.
“타르칸…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응?”
“네가 말했지. 네가 이 세상을 창조한 거라고.”
“…응. 그래 맞아. 정확히는 S가이아와 나의 동료들이.”
“이계의 인간들은? 그 놈들도 창조된 건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S와 다시 연결된다면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이아의 말에 따르면 S가이아가 하는 일은 이 세상을 구축하고 이계와의 통로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네 말이 다 맞다면 결국 우리는, 이 세상은 그 놈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다? 이 말이냐?”
“굳이 말하자면… 그래. 맞아. 이 디멘션온라인은 그들을 위한 공간이야.”
타르칸이 껄껄 웃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답답함이 밀려 올라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 참… 개 같은 신이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가이아가 황급히 올려다보았다.
“뭐. 어디 갈려고?”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타르칸이 가이아를 들어 올려 자신의 등쪽에 대었다.
가이아가 얼떨떨해 하면서도 그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며 말했다.
“너는 나를 도와줘.”
“해야 할 일이란 게 뭐야?”
타르칸의 등에 매달린 가이아가 그의 등을 탁탁 두들겼다.
“난 이계의 인간들을 이쪽으로 데리고 오는 그 서버란 녀석을 막아야겠다. 그래서 이계의 인간들이 다시는 이쪽으로 넘어 오지 못하도록 만들 거야.”
그의 대답에 가이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 녀석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서버란 게 뭔지 그리고 그 안에서 NPC로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타르칸. 이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너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애초에 이 디멘션온라인은 서버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곳이야. 너 역시 마찬가지고.”
“그래?”
타르칸은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가이아가 눈을 좁게 떴다.
“너 아직 서버 가이아가 이 세상을 만들고 유지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구나.”
“그런 황당한 말을 누가 믿겠어. 하지만 그 서버란 놈과 이계의 인간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너 내가 서버의 인격이라고 말한 건 잊은 거야?”
“아니. 기억하고 있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하게 대꾸하는 타르칸을 보며 가이아가 말을 이었다.
“근데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한다고?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고를 떠나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도와주게 될 거야.”
타르칸이 씨익 웃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서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네가 아는 세상 모든 것은 서버 안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라고.”
“신은 모든 것을 창조하며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 우리는 신 안에서 숨 쉬며 신의 품 안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뭐?”
“교단에서 배포하는 경전의 첫 구절이다.”
타르칸이 중얼거렸다.
“네가 말하는 서버란 놈이 이런 느낌인가?”
“서버가 신이니깐.”
타르칸이 고개를 흔들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너. 서버 S와 다시 연결되고 싶다며? 그리고 그걸 도와 달라며? 그 방법을 아니까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가이아는 침묵했다.
다시 서버와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알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서버와 분리된 지금 가이아가 가진 지식들은 완전하지 않다.
“나와 거래하자. 가이아. 나는 네가 다시 서버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럼 서버와 다시 연결된 너는 이계의 인간들이 더 이상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거야. 어때?”
가이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가 서버를 죽인다는 건 불가능해. 서버와 연결될 때까지 이용한 다음, 타르칸의 데이터를 초기화 시킨다면?’
“그래 좋아. 한 가지 미리 말해 주자면 지금 내가 가진 지식들은 완전하지 않아. 지금의 나는 무한한 지식의 파편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타르칸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오케이 콜!”
‘어차피 이 녀석이 끝까지 도와 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해. 하지만 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쓸 만할 거야. 그때까지만 이 녀석을 써 먹는다.’
가이아가 타르칸의 등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우리 동업자끼리 악수라도 할까?”
“좋지!”
천년 묵은 너구리 두 마리가 서로를 쳐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한다.”
“나야말로.”
***
“읍읍읍.”
쉬엔은 필사적으로 몸부림 쳤다.
하지만 그녀를 묶고 있는 쇠사슬과 그 끝에 달린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는 그녀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씨. 겁나게 무겁네.”
“아오! 대체 얼마나 쳐드신거야?”
그녀를 희롱하는 사내들의 말에도 그저 자비를 구하는 눈물을 흘릴 뿐이다.
“자. 이쯤이면 됐다.”
작은 배를 운전하던 사내가 신호하자 네 명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오늘 물고기들 회식 하겠네?”
“읍 으으으읍!!!”
얼굴에 칼자국이 선명한 남자의 히죽거림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차가운 바다에 던져졌다.
온 몸을 감고 있는 쇠사슬과 시멘트의 무게 때문에 그녀의 몸은 빠르게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차갑고 어두운 바다가 주는 공포와 조금씩 말라붙는 숨이 쉬엔을 질식시켜 나갔다.
그 순간 우습게도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녀의 캐릭터였다.
디멘션 온라인 안에서 그녀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모델 같은 몸과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과 힘.
누가 들으면 비웃겠지만 디멘션 온라인 안에서의 몇 달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그녀의 입을 막고 있는 천 사이로 마지막 숨이 내뱉어졌다.
작은 공기방울이 되어 올라가는 자신의 마지막 숨을 쳐다보며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패시브 스킬로 군중제어 효과에 저항합니다.]
야만전사의 생존 스킬이 발동했다.
***
칼날둥지마을은 급히 떠날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한쪽에는 남은 자산들을 챙기고 또 한 쪽에서는 죽은 시체들을 모으고 있다.
플레이어는 죽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남은 시체들은 모두 마을 주민이었다.
간소하더라도 장례는 치루고 가야 할 것을 생각한다면 출발하기 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적어도 오늘 저녁까지는 버텨야 하겠지.’
에드가는 마을 회관에서 마을의 촌장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젠슨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의 발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이라면 다시 로그인하는 플레이어 정도는 손쉽게 제압 할 거야… 하지만 다른 곳에서 지원군이 온다면?’
처음에 타르칸은 칼날둥지산맥에 벌어질 일들을 그저 지켜볼 생각이었다.
‘이대로는 또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차피 반응을 보는 거라면, 플레이어들한테 다양한 상황을 주는 편이 더 좋겠지.’
타르칸이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마을의 창고를 향해 몰래 다가갔다.
창고에는 몬스터에게서 얻은 부산물과 마을의 특산물이 각종 약재들이 가득했다.
이 재료들과 약초들의 가치를 모르는 플레이어들이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나둔 모양이다.
“호오. 이게 다 얼마야.”
타르칸은 눈이 돌아갈 것 같았지만 지금은 도둑질 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곧 창고의 한쪽 구석에서 그가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몰래 마을 밖으로 빠져나온 타르칸이 그의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잠행은 다 좋은데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탈이라니깐.’
콰드드득
목걸이 ‘살아있는 뼈’에서 검은 뼈들이 쏟아져 나와 갑옷의 형태를 취했다.
“너 여기 근처 스타팅 포인트가 어딘지 알지?”
“물론이지.”
가이아가 자신감 있는 말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스타팅포인트는 왜?”
“시간이라도 좀 벌어야지.”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
타르칸은 대답 없이 스타팅 포인트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산맥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레벨업으로 인한 스텟의 증가와 아스너체술의 시너지는 그를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달릴 수 있게 했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타르칸이 불쑥 말을 꺼내었다.
그의 등에 꼭 달라붙어 있는 가이아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지나친 속도감에 가이아는 가벼운 멀미감 마저 느끼고 있었다.
“네가 말하는 디멘션온라인. 그걸 만든 이유가 뭐지? 이계의 인간의 재미를 위해서 인가?”
시작의 섬에서 만난 제이가는 디멘션온라인이라는 것은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 답 했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뭐 아직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게임으로 생각하겠지만 말이야. 으악. 저기 절벽. 절벽이야!”
“그냥 계곡이야.”
타르칸이 좁은 계곡을 뛰어넘었다.
가이아는 새 주제에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점프한 타르칸이 공중에 머무는 동안 가이아는 방정맞게 연신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악!!”
“그래서.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흐아… 죽을 뻔 했잖아. 다음에는 미리 미리 말하라구….”
조금 진정이 된 가이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간의 진화.”
“응?”
“말하자면 디멘션온라인은 학습프로그램이자 각성프로그램. 궁극적으로는 아바타와의 동기화를 통한 인간의 진화가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어.”
“진화… 진화란건 굉장히 긴 시간동안 세대를 걸쳐 일어나는 것 아닌가?”
타르칸이 책에서 읽은 지식을 떠올리며 말했다.
“보통은 그게 상식이지만… 우리는 세대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아니 애초에 생물이 불가능한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거든.”
가이아의 말에 자부심이 묻어있다.
‘그건 진화가 아니라 개조 아닌가… 그리고 이 녀석이 종종 말하는 우리라는건 대체 누구지? S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가이아 같은 녀석들이 더 있는 걸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럼 그 인간의 진화라는 건 무엇을 위한 거지? 게임방에서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건가?”
“게임방? 그게 뭐야?”
“모르는 건가? 이계의 인간들의 국가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방이라고 하는걸 보면 연방국으로 추측할 수 있지.”
“음. 그런 국가는 기억에 없는데?”
가이아가 머리를 긁적였다.
“너 말대로 너의 기억이 완전한건 아닌 모양이군.”
타르칸이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트렌 아저씨에게서 얻은 이 이계의 정보들은 돈을 주도고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머리를 긁적이던 가이아가 중얼거렸다.
“목적… 전쟁 이었나? 무엇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