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44화 (44/215)

쉬엔 (1)

“기사님. 이쪽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서투르지만 성실하게 길을 안내했다.

비밀통로는 마을의 우물로 이어지는 좁은 자연 동굴이었다.

그들은 길을 안내하는 과정에 종종 길을 헤매기도 했는데, 그 만큼 자주 사용하지 않던 길이라는 반증이었다.

“곧 해가 지겠군. 여기서 밤이 되기까지 기다린다.”

우물에 도착한 에드가가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물은 바닥에는 지하수가 고이고 중간지점에는 그들이 이용한 좁은 동굴이 맞닿아 있는 형태였다.

이 특이한 형태 덕분에 우물의 물은 언제나 일정한 높이를 유지했으리라.

“저 기사님. 그 젠슨이라는 기사님은 안 오시는 겁니까?”

“…그렇겠지.”

기사가 한 명만 온 것이 아무래도 불안한 모양이다.

“그 녀석은 그 녀석 나름대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거기에 대고 이렇다 저렇다 말 할 순 없는 거다.”

“네.”

에드가의 차가운 대답에 마을의 청년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른 마을 주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기사님. 그런데 밤에 올라가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어둠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야간이 적기다. 보초를 제외하곤 모두 잠들었을 거다.”

“그것이… 이계의 인간들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이들은 몇 달간 노예 생활을 하면서 플레이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때문에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계의 인간들이 가장 많은 시간입니다.”

옆에 있던 마을의 청년들이 말을 거들었다.

“맞습니다. 이계의 인간을 공격하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바로 아침입니다. 그때가 이계의 인간이 가장 적은 시간이거든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계의 인간들이 가장 적은 시간대는 이른 아침이었다.

“흐음… 그래 좋다.”

적어도 이계의 인간들에 대해서는 이 마을의 주민들이 에드가 본인 보다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에드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을에서 수탉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살육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는 알림이다.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은 여기에 기다리고 있어. 나는 누구를 지키면서 싸우는 방법은 모르니까.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은 방해만 될 뿐이다.”

그 말만을 남기고 에드가가 우물 위로 올라갔다.

우물 안에 숨어 있을 거라면 애초에 여기까지 따라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마을 주민들이 굳은 얼굴로 에드가를 따라 올라갔다.

아직 미처 해가 뜨지 않은 시간

마을의 외각에 위치한 덕분에 우물 주위는 한산 했다.

“이계의 놈들은 어디에 있지?”

“마을의 입구와 저기 보이는 건물에 모여 있을 겁니다. 사실 지금 시간이면 보통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마을의 주민이 말한 건물의 입구 주변에 빈 술병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주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너희 목숨은 스스로 지켜라.”

“네!!”

에드가가 주점을 향해 뛰어갔다.

그는 이미 리더로 보이는 큰 도끼를 든 여성 플레이어와 만난 적이 있다.

변수는 있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그녀와 동등 혹은 이하의 수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고작 그 정도 수준이라면 저 주점안에 플레이어가 몇 명이 있든지 에드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누님. 그럼 저는 이만 로그아웃 해보겠습니다.”

“그래.”

길드원들이 하나둘 로그아웃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녀라도 현생을 위해 잠을 자야겠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길드원 전부가 그녀와 같이 게임이 생활의 전부인 겜창인생은 아닌 것이다.

새벽 3시가 넘어가자 남아 있는 길드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안 올 모양인가? NPC놈들은 이 시간이면 잠을 자고 있을 테니….’

쉬엔은 내심 허탈했다.

기껏 길드에 지원을 요청했건만 이렇게 쉽게 포기 할 줄이야.

‘뭐 오늘이 아니라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방비를 잘해 두는 게 맞아. NPC가 아니라 다른 길드에서 쳐들어올지도 모르고 말이지.’

길드원에게 사냥을 금지시킨 것도 모자라 바쁜 길드의 사람을 불러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게 마을을 빼앗기는 것 보다는 낫다.

한번 빼앗긴 마을을 되찾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인원이 필요할 것이니까.

조금만 있으면 길드에서 사람을 충원해 줄 것이고 그럼 다시 돌아가면서 사냥을 할 수 있다.

‘좀 출출한데?’

그녀는 삼합길드가 제공한 포도당 주사가 내장된 캡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녀의 육중한 현실의 육체는 포도당 주사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

‘포도당 주사만 맞으면 건강을 해치니까.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해야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로그아웃하면 햄버거나 기름진 고기들로 배를 채울 그녀였다.

‘잠깐 로그아웃하고 올까?’

쉬엔이 로그아웃을 고민하던 그때였다.

콰앙.

주점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소란이 일었다.

“뭐야? 문 살살 열라고 내가 말했지!!”

그녀의 살벌한 말에 대답한 것은 길드원이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냐? 악마같은 년아. 내가 왔다.”

주점의 입구.

피를 흘리는 길드원의 시체위에서 금발의 정예 NPC가 살벌하게 웃고 있었다.

***

“으아아!! 씨발.”

캡슐에서 빠져 나온 쉬엔이 소리 질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몸의 곳곳에 붙어 있는 살덩이들이 흉측하게 출렁였다.

“그 괴물 새끼.”

그녀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그 금발의 NPC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졌다.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를 자르며 올라오는 그 놈의 검은 그녀를 강제종료 하도록 만들었다.

“으아아악!! 입구에 있던 놈들은 뭐하고 있는거야!!”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쉬엔이 씩씩 거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길드에 전해야해.”

이 새벽부터 전화를 한다고 난리를 피울 것이 눈에 선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문제를 더 키워서는 안된다.

쉬엔이 황급히 전화기를 붙잡았다.

“네. 네. 아 정말 감사합니다.”

길드원들이 이미 출발했고 곧바로 다른 길드원까지 추가로 투입하겠다는 말에 쉬엔은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기존에 요청했던 30명에 추가로 20명. 그리고 그 한명 한명이 모두 길드의 최정예. 과분한 도움을 받았군. 흐흐.”

***

에드가와 마을의 주민들이 우물에서 올라오기 조금 전의 시간.

타르칸은 잠행을 발동한 상태로 칼날둥지마을에 들어와 있었다.

“에드가는 플레이어라는 존재에 대해 잘 몰라. 절대로 그 녀석 혼자서 이 마을을 탈환할 수 없을 거다.”

타르칸의 중얼거림에 가이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 지금 급하다고 하지 않았어? 너 저 견습기사에게 들키면 위험한 상황 아니냐구?”

“위험하긴 하지. 들키면 에드가를 내 손으로 죽여야 하니까.”

“허세는….”

가이아가 피식 웃었다.

“애초에 왜 이 마을에 들어온 거야? 마을을 탈환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샤르크로 가면 되는 것 아냐?”

타르칸은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 스스로도 지금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나를 사용한 뒤로, 정확하게는 현무의 정수를 흡수한 뒤로 타르칸은 무언가 근본적인 부분에서 변화해 버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해야 할 일?”

“이계의 인간들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을 한방 먹이는 것.”

그때, 에드가와 마을의 주민들이 우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타르칸이 움직였다.

우선 입구를 막고 있는 플레이어를 제거하는 것이 먼저였다.

[플레이어를 살해 하였습니다.]

보초를 서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처리하는 것은 간단했다.

멍하니 앉아 잡담이나 하고 있는 놈들에게는 스킬을 사용하기도 아까울 정도였다.

입구를 경비하던 플레이어들을 모두 죽인 타르칸이 가이아에게 물었다.

“혹시 이 마을에 부활 포인트가 있어?”

눈을 감고 잠시 정신을 집중하던 가이아가 한 건물을 향해 날개를 뻗었다.

“저기. 저 건물 안에 있는 것 같아.”

마을 회관으로 사용되던 것인지 칼날둥지마을에서 가장 큰 크기의 건물이었다.

타르칸은 지체하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역시.”

[이동형 부활 포인트]

타르칸은 마을 회관의 바닥에 그려진 커다란 마법진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플레이어들이 로그인 할 때는 로그아웃을 한 장소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로그아웃을 할 장소를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반면 죽었다 다시 살아났을 때는 죽은 장소가 아닌 죽은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에서 부활하게 된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이 [이동형 부활 포인트]는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아이템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마을을 거점으로 삼았다고 했을 때부터 이걸 마을 안에 설치 해 놓았을 줄 알았지.”

자신들의 마을 안에서 부활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부활 포인트는 공간이동의 거점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도 중요했다.

“이걸 부숴야 후환이 줄어들지.”

타르칸이 부활 포인트를 부수기 위해 언월도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 순간, 부활 포인트를 장식하는 마법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응?”

보랏빛으로 빛나는 마법진 위에 보라색의 형상이 꿈틀대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라색의 덩어리는 불분명하지만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부활하는 거 맞지?”

“이 반응은 부활이 아니라 워프다.”

“부활이나 워프나 똑같지 뭐.”

가이아 대답에 타르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는 보라색의 덩어리의 목으로 추정되는 부위를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어차피 죽일 거니까.”

아직 형태가 완전하지 않은 보라색 덩어리가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린다.

[플레이어를 살해 하였습니다.]

[대상과의 레벨차이가 큽니다.]

[칭호 불굴의 투사의 효과로 디멘션 코인을 획득합니다.]

“플레이어를 죽여도 디멘션코인을 얻는구나.”

“하하하. 뭐래니.”

가이아가 그를 비웃었다.

펭귄의 모습인 가이아가 짧은 다리로 건방지게 짝다리 짚고 서있는 폼이 퍽 우스웠다.

“뭐 그러면 경험치도 얻겠네?”

가이아가 짧은 날개를 좌우로 파닥파닥 흔들었다.

“디멘션온라인은 말이지. PK를 금지하진 않지만 PK로 어떠한 이득도 볼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구.”

“하지만 방금 전 시스템 메시지는 분명히….”

그때 바닥에 설치된 마법진이 다시 빛을 내뿜으며 보랏빛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형상의 윤곽을 보니 이번에는 여성 플레이어인 것 같다.

[플레이어를 살해 하였습니다.]

[대상과의 레벨차이가 큽니다.]

[칭호 불굴의 투사의 효과로 디멘션 코인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가이아. 레벨도 오르는데?”

“…?!”

가이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 주제에 표정이 다양하단 말이야.’

“아. 아니 그럴 리가….”

“뭐 나는 이계의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것 아닐까?”

당황하는 가이아에게 타르칸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는 가이아와 대화하는 와중에도 워프중인 플레이어의 가슴에 언월도를 성실하게 박아 넣고 있었다.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이 한 명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지 플레이어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워프해오고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계의 인간들이 타르칸에게 죽임을 당하기 위해 차례대로 줄서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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