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마을 (3)
“정문을 닫아라! 마을 개발은 당분간 중단이다.”
다시 로그인한 쉬엔이 칼날둥지마을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선망의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길드원들.
자신의 호통소리에 두려워 벌벌 떠는 NPC들.
그들을 보는 쉬엔의 가슴에 은밀한 만족감이 밀려든다.
“지금 칼날산맥에 정예 NPC 두 명이 배회하고 있다. 길드에 지원 요청을 해놨으니 조금만 버티면 된다.”
마을의 건축을 총 담당하는 예의 그 길드원이 쉬엔에게 다가왔다.
“정예 NPC라구요? 그 놈들이 지금 이 마을로 오고 있습니까?”
쉬엔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불확실하다. 하지만 신중을 기해서 나쁠 것이 없다. 무엇보다 이 일대에 마을이라고는 여기 하나뿐이니까. 일단 공사는 중단하고 전투를 준비 하도록.”
“하지만 고작 NPC 두 명에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길드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론을 제시했다.
그녀는 길드원에게 NPC를 만난 상황을 설명하고 그 정예 NPC들이 얼마나 강하고 위험한지를 알려줄 수 도 있다.
일격으로 탱커의 생존기를 빼버렸다고.
자신의 돌진기가 캔슬되는 그 짧은 순간 4명의 파티원을 도륙해 버린 놈이라고.
하지만 쉬엔은 그렇게 설명하는 대신 그저 길드원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
그녀에게 이 길드원은 그녀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이지 설득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길드원이 찔끔해 하는 것이 느껴진다.
“죄송합니다. 누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쉬엔은 비굴한 표정으로 변명하는 길드원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며 외쳤다.
“길드의 지원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마을정문을 닫고 싸울 준비를 해라!!”
“네!!”
모든 길드원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대답 소리는 쉬엔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이거야.’
디멘션온라인 안에서 그녀는 카리스마 있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디멘션온라인 안에서 그녀는 아래 사람을 다룰 줄 알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리스크를 관리한다.
‘바로 이거라고.’
***
젠슨과 에드가는 칼날둥지마을로 향했다.
젠슨과 에드가는 타르칸을 추적하기 전에 적어도 마을을 되찾는 것은 도와주자는 것에 합의했다.
젠슨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손 쉽게 마을을 되찾을 수 있을 거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마을을 되찾는 것이라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 다음 바로 타르칸을 추적하자.
이것이 젠슨의 생각이었다.
이계의 인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순진한 발상이었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은 불안감에 물들어 있었으나 그럼에도 두 명의 기사를 따라 오고 있었다.
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시골 사람다운 반응이다.
이야기 속에서 기사들은 언제나 정의의 화신이자 무적의 철인처럼 등장하니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칼날둥지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칼날둥지마을은 몬스터의 출몰이 잦은 칼날산맥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몬스터를 막기 위한 시설은 웬만한 규모의 성 이상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뭐야.”
몬스터를 방비하기 위한 시설은 여전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화된 모습이다.
“저거 아까 그 녀석 맞지?”
마을의 출입구는 굳게 닫혀있고 칼날산맥에 자생하는 굵은 통나무를 엮어 만든 목조 방벽 위에는 이계의 인간들이 활을 장비한 상태로 줄지어 서있다.
그 정중앙에 쉬엔이 있었다.
그녀는 줄행랑을 치던 전과는 달리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공성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들의 의문은 쉬엔의 길드원이 마을의 주민을 끌고 방벽위로 나타나는 것으로 풀렸다.
쉬엔이 외쳤다.
“여기는 우리 삼합길드가 점령한 마을이다!”
쉬엔은 길드원이 끌고 온 마을주민을 거칠게 잡아 끌었다.
그녀의 우악스러운 손아래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파가 파들파들 떨었다.
“혹여나 침입을 시도한다면….”
쉬엔이 말을 하는 동시에 거대한 도끼로 노파의 등을 찍었다.
“무슨!”
젠슨과 에드가가 경악했다.
그녀의 손에서 떨던 노파가 짧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노쇠한 몸으로 버틸 수 없는 충격이다.
쉬엔이 던진 노파의 시체가 목조 방벽 아래로 초라하게 떨어져 내렸다.
“마을로 침입을 시도한다면 마을 NPC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쉬엔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길드인 삼합길드는 NPC를 다루기 위해 NPC의 성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부분에서 현대인과 비슷했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몬스터를 죽이거나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에는 비교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반면 살인에는 현대인 이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길드에서는 어디에서나 몬스터가 출몰한다는 게임의 설정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협력이 강요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와 사고방식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NPC들은 그리 드물지 않다.
반면 NPC들은 자신이 살기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어 했다.
‘크크 이렇게 하면 제아무리 강한 NPC라고 하더라도 순순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지. 아무리 못해도 길드의 사람이 오기까지 시간을 벌 수는 있을 거다.'
어차피 방금 전 죽인 NPC는 어차피 마을 건설에도 이용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NPC였다.
‘식비도 줄었으니 일석이조랄까….’
게임 내에서 무언가를 먹을 필요가 없는 플레이어와는 다르게 NPC들은 반드시 식사를 해야한다.
쉬엔이 NPC를 내려다보며 여유있게 웃었다.
반면 두 명의 견습기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인질을 잡고 협상하는 몬스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질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를 정도다.
그들에게 강요된 이 선택지는 난생 처음으로 겪어 보는 것이다.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는 상황이다.
“다가오면 사람을 죽이겠다고? 저 녀석들은 악마인거냐….”
“말했잖아. 사람 같이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얼이 빠진 듯 중얼거리는 젠슨의 말을 에드가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다 죽여버려야지.”
“그럼 우리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죽게 될 거야.”
“아니지. 젠슨. 우리 때문이 아니라 저 녀석들 때문이야. 마을 사람들을 저렇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것 아니야?”
젠슨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방벽위에서 쉬엔이 다시 외쳤다.
“아직까지 마을로 오는 것을 시도하는 건가?”
그녀가 손짓하자 길드원이 다른 마을 주민을 끌고 왔다.
에드가가 말했다.
“젠장. 일단 이 자리에서 빠진다. 지금 여기 있어봐야 결론도 나지 않아.”
그들은 황급히 물러섰다.
쉬엔이 다시 한 번 그녀의 도끼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멈추어 섰다.
“탈영병을 찾는 것을 우선으로 하자.”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젠슨이 말했다.
오는 동안 그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다.
“뭐? 미쳤어?”
당연히 에드가는 크게 반발했다.
“그럼 저 악마같은 새끼들한테 마을사람들이 잡혀있도록 내버려 두자고?”
“내버려 두는 게 아니야. 신중을 기하자는 거다.”
에드가가 급하게 입을 열려다 닫았다.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은 것이다.
“에드가. 그럼 반대로 묻자. 그럼 너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마을로 들어가서 저 이계의 인간들을 다 죽인다? 가능은 하겠지.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죽게 될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목숨을 니가 책임이라도 질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뭐?”
“…무엇보다. 이계의 인간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교단과 제국의 뜻이다.”
젠슨에게는 제국의 명령이 우선이었다.
“지금 우리 임무는 탈영병을 추적하는 거야. 그리고 한동안은 이계의 인간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는 것이 제국의 명령이야.”
젠슨의 마지막 말끝에는 조금의 부끄러움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시민을 지켜야 한다는 기사의 사명과 제국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기사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던 젠슨이 내린 결론이었다.
“아니 그건… 으아아아!!”
에드가가 분노로 입을 열려다 가까스로 닫았다.
그들은 제국에 목숨을 바친 몸.
제국이 교단의 뜻을 따르는 이상 그도 교단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에드가가 포악스럽게 땅을 찼다.
그 모습들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타르칸이 가이아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너무 곧은 나무는 부러지는 법이지.”
가이아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타르칸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타르칸이 나무 위에서 슬그머니 몸을 뺐다.
‘나는 이쯤에서 빠져야 겠군.’
그때 젠슨과 에드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을의 청년이 다급하게 말했다.
“제가 마을의 우물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면 나무 방벽을 넘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사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이 저 마을에 남아 있습니다!”
목소리가 간절하다.
“가자.”
에드가가 짧게 대답하고는 일어섰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에드가가 칼날둥지마을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형편없이 마른 팔위에 상처들이 선명하다.
대부분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들이다.
이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마을을 빠져나왔을 것이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겠지.’
정말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거라면 이렇게 자신들을 따라 마을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드가가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계 놈들을 다 몰아낼꺼니까. 다시 살아나도 상관없다. 다시 죽이면 되니까. 죽을 때까지 죽이면 된다.”
그런 에드가의 말을 몰래 듣고 있는 타르칸이 속으로 생각했다.
‘죽일 때까지 죽인다는 건 뭔 소리야. 멍청한 건지 무식한 건지….’
물론 거듭해서 죽음을 반복하면 정신이 무너질 수는 있다.
하지만 타르칸은 이계의 인간들의 죽음이 실제로는 그들의 세계로 잠시 돌아가는 것뿐임을 알고 있다.
고통 역시도 현저히 낮게 느끼는 그들이다.
잠깐 고통을 느꼈다가 그들의 세계에서 일주일 동안 호의호식하고 돌아와서 다시 죽는다?
짜증은 나겠지만 그것만으로 정신이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고문 등의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심어주기도 힘들다.
그들에게는 ‘강제종료’라는 자살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함부로 건드리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려줘야겠지.’
젠슨이 몇 명의 마을사람들과 이동하려는 에드가를 다급히 불렀다.
“잠깐. 에드가. 지금.”
“야.”
에드가가 젠슨의 말을 끊었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너부터 죽여 버릴거야.”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보고를 하든 말든 알아서 해. 도와주지 않을 거면 지금은 그냥 닥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