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40화 (40/215)

뒷뜰의 비밀상점

“…진짜네.”

그는 집 뒤뜰에서 비밀상점을 찾을 수 있었다.

뒤뜰로 나가자 비밀상점을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아마도 뒤뜰의 땅 속에 시작의 섬에서 봤던 비석이 묻혀 있는 것 같았다.

“왜 우리 집에 이런 게….”

십년을 넘게 살아온 그의 집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이아가 짧은 날개를 파닥파닥 거렸다.

“시작의 섬에 몰래 현무의 정수를 숨겨놓을 정도면 자기 집 마당에 비밀상점 하나 정도 만들어 놓는 건 간단하지 않았을까?”

타르칸은 대꾸 없이 뒤뜰의 땅에 손을 대었다.

“상점창.”

동시에 그의 눈앞에 거대한 격자모양의 창이 나타났다.

시작의 섬에서 본 것과는 달리 수많은 아이템들이 나타나 있다.

가이아의 말대로 그 중에는 금화도 있었다.

가격은 금화 하나에 2000 디멘션 코인.

그는 어머니가 따로 일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집에 돈이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타르칸은 디멘션코인의 가치를 가늠해 보았다.

‘1골드의 가치는 대략 100실버. 디멘션코인 20개당 은화 하나 정도 인가.’

레어등급의 무기를 판매하면 10DC 가량을 얻을 수 있다.

몬스터만 부지런히 사냥해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어? 뭐야. 그럼 이 언월도에 10골드를 썼다는 말이잖아!!”

10골드면 작은 집과 토지를 살 수 있는 돈이다.

타르칸은 그의 언월도 블루드래곤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언월도를 쥔 그의 손이 파들파들 떨린다.

“후우. 괜찮아. 다시 벌면 돼. 다시….”

그때 집 밖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거기 누구요? 혹시 타르칸이냐?”

익숙한 목소리다.

분명 마을의 이장이자 보누아의 아버지인 코슨의 것이다.

‘아직 추적대가 도착하지 않았나 보군. 추적대가 마을에 도착했으면 코슨 아저씨 혼자 왔을 리가 없어.’

타르칸은 태연한 얼굴로 집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이장님.”

“오! 타르칸.”

타르칸을 확인한 코슨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언제 왔니? 이장님이라니 하하. 그냥 코슨 아저씨라 불러라. 삼촌이라고 불러도 좋고. 하하하.”

코슨이 따듯하게 환대했다.

타르칸의 눈이 반짝였다.

언제나 자신을 동네 공노비처럼 대해왔던 코슨이다.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미친거 아니야?’

“소식은 들었다. 프롬 숲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클라프 영지에 줄이 닿아 있는 코슨은 마을의 그 누구보다 정보가 빨랐다.

‘내가 기사학교로 가게 되었다고 알고 있나 보군. 하지만 내가 탈영한 사실 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타르칸이 짐짓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네. 끔찍했죠.”

“그런데 보누아는 다음 주나 되어야 마을로 온다고 하던데….”

“아. 저는 조금 먼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수도의 기사학교로 가게 되어서 말이죠.”

타르칸은 일부러 수도라는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코슨의 반응을 살폈다.

“와! 그렇구나. 기사학교! 자랑스럽다 우리 타르칸! 우리 마을에서 기사가 나오다니. 이건 큰 경사야.”

코슨은 미처 몰랐다는 듯 놀라는 척했다.

“이장님. 아니 코슨 삼촌. 그래서 말인데요….”

타르칸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수도로 가게 되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많아서요….”

“…음.”

타르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촉이 온 코슨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삼촌이 금전적으로 조금 지원을 해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크흠. 큼.”

“아시죠? 늦게 마나를 깨친 사람은 보통 그 자질이 뛰어나다고들 하잖아요. 하하하.”

타르칸은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하며 웃었다.

“뭐 혹시 제가 기사가 된 뒤에 삼촌의 이 은혜를 잊기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대놓고 강탈당하게 생긴 코슨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그. 래. 우리 타르칸이 쓸 돈은 하나도 아깝지가 않지. 크흠.”

“감사합니다! 삼촌.”

***

다그닥 다그닥

“삼촌은 얼어 죽을.”

코슨에게 뜯어낸 말 위에서 타르칸이 상쾌하게 웃었다.

“캬하. 바람 시원하니 좋다.”

다그닥 다그닥.

[반복된 행동으로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초급기마술을 획득하였습니다.]

“오호라! 스킬까지.”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사기꾼.”

안장위에 공간이 없어 타르칸의 품에 안겨있는 가이아가 퉁명스레 물었다.

타르칸의 사기행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칼날 산맥.”

“산으로 간다고? 그럼 이 말은?”

“말은 어차피 버려야 해.”

어차피 그는 말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몸에 피로는 쌓이겠지만 그에겐 아직 회복포션이 남아 있으니 문제없다.

“말은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한 용도야. 콜로보아 마을에서 말을 얻었다는 것을 안다면 평로를 우선적으로 수색할 테니까. 일부러 정보를 흘린 거란 거지.”

“흐음. 근데 왜 하필 칼날산맥이야?”

“칼날산맥을 경계로 아스너 제국과 샤르크의 경계가 나뉘니까.”

“그 말은….”

“나는 산맥을 넘어 샤르크로 갈거야.”

“샤르크?”

가이아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서버와 분리되면서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가이아에게 샤르크라는 지명은 생소한 것이었다.

“있어. 샤르크라고. 사막 위에 건설된 용병국가가.”

“사막이라면… 아! 고비 사막을 말하는 거구나. 하긴 지금쯤이면 엄청 커졌겠구나.”

“고비?”

어디선가 들어본 지명이다.

기억을 더듬던 타르칸은 과거에 읽었던 고대문명과 지형에 대한 서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아마 맞을 거야. 하지만 그건 옛지명이고 요즘에는 누구나 샤르크라고 불러.”

타르칸은 말을 타고 반나절 정도를 더 간 뒤에 말위에서 풀쩍 뛰어 내렸다.

“여기부터는 뛰어가자.”

타르칸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말을 쳐다보며 웃었다.

추적대가 말을 따라 잡을 쯤이면 그는 이미 샤르크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가이아가 타르칸의 등 뒤에 매달렸다.

혹시라도 흔적이 남지 않도록 그는 말에서 내린 곳에서 조금 멀어진 뒤에야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꽉 잡아라!”

“으아아아악!! 좀 천천히 가!!”

***

의외로 가이아는 매우 유용했다.

“그쪽 방향에는 4등급 게이트가 있어.”

“오케이!”

가이아의 말에 타르칸이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가이아는 비밀상점뿐만 아니라 몬스터게이트의 위치 역시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게이트를 느낄 수 없는 타르칸에게는 매우 유용한 능력이다.

가이아 덕분에 필요 없는 몬스터와의 전투를 피할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방향 앞에 3등급 몬스터 게이트가 있어. 게이트를 피해 가려면 많이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래?”

“음… 3등급이라면 그냥 돌파하자.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래. 이 느낌이라면 아마 코카투스인 것 같다. 그리고… 응?”

타르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가이아가 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게이트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왜 그래?”

“코카투스 사이로 인간들이 있는 거 같은데?”

“사냥 중인 건가?”

만약 기사나 용병이라면 귀찮아질 수 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가이아가 자신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글쎄… 위치로만 보면 인간들 쪽이 수세인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일단 가서 상황을 보자.”

얼마 후.

그들이 발견한 것은 코카투스 무리에 둘러싸인 사람들이었다.

무장의 상태를 보니 용병인 것 같았다.

상황이 좋지 않아 보인다.

20명가량 되어 보이는 사람들은 한 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가이아의 말대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을 당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퀘에에엑.”

코카투스가 위협적으로 괴성을 질렀다.

코카투스는 닭의 머리에 공룡 랩터의 몸을 가진 몬스터다.

성인 남성 정도의 키로 공룡치고는 작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 그리고 위력적인 각력을 가지고 있어 상대하기 쉽지 않은 3단계 몬스터다.

코카투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100은 훌쩍 넘어보였다.

“어떻게 할래?”

“음….”

타르칸은 잠시 고민했다.

지금 그는 탈영병 신분이다.

칼날산맥은 엄연히 제국의 영토에 속하는 바.

이곳에서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다.

“저 사람들이 나를 본다면 내가 샤르크로 넘어 갔다는 사실이 발각될 거야.”

“그럼? 그냥 가? 저 사람들 다 죽을텐데?”

가이아의 반문에 타르칸이 잠시 고민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타르칸은 자신이 그대로 저들을 두고 떠났다면, 무조건 후회를 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의 정수에 융합한 현무는 협의가 강한 환수.

협의심이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오지랖이 넓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타르칸이 가만히 그의 목걸이를 감아쥐었다.

콰드드득.

작은 묵빛의 해골에서 검은 뼈가 솟구치며 순식간에 전신을 감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가 입고 있던 기름먹인 훈련병의 갑옷은 자동으로 인벤토리로 들어갔다.

“정체만 안 들키면 되는 거잖아?”

공중으로 뛰어오른 타르칸이 코카투스 무리 중앙에 내려 꽂혔다.

마치 거인이 던지 검은 유성이 지면에 충돌한 것 마냥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쾅!

코카투스들이 갑작스러운 난입에 당황하는 찰나, 그의 푸른 언월도가 크게 원을 그렸다.

부우우웅.

공기가 갈라지며 원월도의 푸른 날이 짜릿하게 공명했다.

코카투스의 붉은 피가 더운 김을 뿜으며 허공을 수놓는다.

“퀘에에에엑!!”

피 냄새에 코카투스들이 흥분하며 달려들었다.

언월도가 크게 회전하며 다시 한 번 푸른 달을 그렸다.

달려오던 코카투스의 머리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초록색 몸뚱이가 뒤늦게 허물어져 내렸다.

이 몇 번의 살육은 그의 정수게이지를 빠르게 채웠다.

“정수 사출.”

그의 몸 주위로 푸르스름한 파장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그웨에엑!”

푸른 파장에 닿은 코카투스들이 괴로워하며 몸을 떤다.

본능적인 반응이지만 명백한 실수다.

움직임이 굳은 놈들은 언월도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내친김에 검은 송곳니까지 뽑아낸 검은 해골 기사가 코카투스 무리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

“여기부터 무게가 줄었다. 말에서 내린 것 같은데?”

젠슨이 땅에 남은 말발굽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했다.

에드가가 지도를 펼쳐 이 일대의 지형을 확인했다.

“이 방향이라면… 칼날산맥으로 갔나 본데? 새끼… 머리 쓰네.”

교란작전은 허무하게 들통났다.

타르칸도 설마 수습기사가 동원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기사는 고도로 훈련받은 천재들이다.

고작 탈영병 하나를 추적하기에는 지나치게 고급인력이란 소리다.

하지만 젠슨과 에드가는 스스로 타르칸 추적에 자원했고 자신의 위신을 위해 타르칸이 필요했던 클라프의 영주는 두 말 없이 그들의 추적을 허락했다.

“기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생겼는데 대체 왜?”

“글쎄… 그건 직접 물어봐야겠지.”

젠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쿤타는 뭔가 아는 눈치 아니었냐?”

“말을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알게 뭐야 그런 음침한 인간의 생각 따위.”

신관이라는 직책 때문에 항상 공대를 하긴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사실 쿤타는 가능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인간이었다.

“국경을 넘기 전에 서두르자.”

“그래. 이 자식! 잡히면 반 죽여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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