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잠드는 야밤에만 던전을 출입하고 있다.
부족한 수면은 낮잠으로 보충하는 중이다.
현재 모든 훈련이 중단 된 채 무한정 대기만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생활패턴이다.
던전의 입구로 돌아온 타르칸이 지체없이 노란 게이트에 손을 대었다.
[던전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그래.”
타르칸은 잠행을 발동하고 조심스럽게 막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새벽의 일출이 텅 빈 훈련장을 밝혀 나가고 있다.
***
끼이익
나무로 만들어진 숙소의 문이 마찰음을 내었다.
텅 비어 있어야 할 숙소에는 의외의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누아?”
“어디 갔다 왔냐?”
보누아가 빈 침상위에 삐딱하게 앉은 채 그에게 조소를 보내고 있다.
쾡 하게 내려앉은 눈을 보니 이 여기에서 밤을 새운 모양이다.
“보누아. 너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냐? 너의 방은 여기가 아닐 텐데?”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 밤에 어딜 갔다 온 거냐고.”
보누아가 타르칸을 향해 생쥐를 바라보는 뱀처럼 웃었다.
“너. 오늘 뿐만 아니라 밤마다 사라졌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
타르칸은 침묵했고 그 앞에서 보누아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너 같은 놈이 갑자기 마나를 사용하니 어쩌니 할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밤마다 어디로 가는지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실토하게 될 테니까.”
타르칸은 보누아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언제부터 안 것일까?
훈련병들이 훈련소에 복귀한 지는 꽤 되었지만 그는 다른 훈련병들과 완전히 별개로 행동하고 있다.
같은 훈련소에 있지만 식사시간 정도가 아니면 얼굴을 보기도 힘든 사이인 것이다.
“야 너가 여기에서….”
“말 돌릴 생각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당연히 너 같은 새끼는 마음에 안 들지. 나는 마나를 사용하기 시작한지 10년도 넘었어. 마나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기고만장 하지 말라고!!”
“…그래 이쯤에서 위치를 정리하고 가는 게 더 좋겠지.”
순간 보누아의 시야에서 타르칸이 사라졌다.
그가 타르칸을 다시 발견 했을 때는 이미 그의 손이 자신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타르칸이 보누아의 다리를 걸어 균형을 무너트림과 동시에 멱살을 잡아 당겨 바닥에 내팽겨 쳤다.
보누아가 바닥에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크윽!”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 마.”
타르칸이 쓰러진 보누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자식이.”
보누아가 발끈했지만 차마 덤벼들지는 못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으윽.”
보누아 역시 아스너 체술을 배우고 있다.
마나를 사용한 기간 역시도 압도적으로 길다.
하지만 그 이해의 깊이가 달랐다.
보누아는 지금도 프롬 숲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하던 타르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괴물 자식. 그 힘도 분명 사악한 방법으로 손에 넣은 것이겠지. 넌 마녀의 아.”
보누아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타르칸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아. 미안. 요즘에 개소리를 들으면 주먹이 움직이는 버릇이 생겨버려서 말이야.”
싸움이라고 부르기에는 애초에 그 힘의 격차가 너무 크다.
타르칸이 일방적으로 보누아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보누아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텅빈 훈련장의 건물에 비명소리가 크게 울린다.
때 아닌 소동에 금새 사람들이 몰려왔다.
거기에는 훈련생들과 교관이 없을 동안 임시 관리인이 된 쿤타도 포함되어 있었다.
젠슨과 에드가는 현재 영주성에 거주하고 있다.
프롬 숲에서 있었던 일들을 문서화하고 또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타르칸의 방을 찾은 모든 이들은 피떡이 되어있는 보누아를 보고 경악했다.
“타르칸!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아. 쿤타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겠냐? 뭔 짓이냐고 이게?”
보누아가 쿤타와 훈련생들이 있는 곳을 향해 기다시피 하며 도망갔다.
“으어어 저… 저놈이 저놈이.”
보누아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듣는 쿤타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보누아의 이야기에 몇몇 훈련생들이 동조 했다.
“네 맞아요. 선생님. 요 몇 일 밤만 되면 타르칸이 밤만 되면 사라졌어요.”
“악마에게 죽은 훈련생들의 영혼을 바치는 게 틀림없어요.”
“타국의 첩자일지도 몰라요.”
“사실이냐 타르칸?”
쿤타의 질문에 보누아는 피떡이 된 얼굴로 씨익 웃었다.
반면 타르칸은 태연했다.
“밤에 숙소에 없었다는 걸 물으시는 거면 사실이 맞습니다.”
“밤마다 어디로 갔었지?”
“수련장이요.”
“수련장? 거기는 왜 간 거냐?”
“수련장에 수련하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나요?”
타르칸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어차피 증거는 없다.
이런 유치한 모함에 자신이 놀아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설마 쿤타선생님도 제가 악마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으시는 건 아니시겠죠?”
“장난 하냐? 그런 게 가능했다면 내가 먼저 했겠지.”
하지만 쿤타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제사야 어쨌든 결국 취침시간에 자리를 비웠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다. 훈련생이 되었을 때부터 넌 병사 신분이니까.”
“네. 인정합니다. 그에 따른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네가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수련장으로 갔다는 증거는 있냐?”
“아뇨. 아시다시피 요즘은 수련장이 언제나 비어있어서 말이죠….”
쿤타가 미간을 찌푸렸다.
타르칸의 말대로 지금 훈련생들은 방치되고 있었고 훈련생 중 스스로 단련을 계속하는 것은 타르칸이 유일했다.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어딜 갔던 근무지 이탈죄는 동일하니까. 너의 근무지 이탈 죄와 동기 폭행죄는 교관이 돌아오는 대로 바로 묻도록 하겠다.”
한마디로 자신은 골치 아프니 젠슨과 에드가가 돌아오면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쿤타의 말에 몇몇 훈련생들이 발끈했다.
“아니 선생님. 교관님들이 올 때 까지는요? 그냥 내버려 두실겁니까?”
쿤타가 인상을 쓰며 귀를 후볐다.
억지로 임시 관리인을 떠맡기는 했지만 쿤타에게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 귀찮아. 어차피 며칠 있으면 걔들 돌아오니까. 걔네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아니면 너희들이 알아서 아작 내주던가. 모르는 척 해줄게.”
끼이이익. 쿵.
그 말을 끝으로 쿤타가 숙소를 나가버렸다.
벙 쩌 있는 동기들을 향해 타르칸이 말했다.
“자 어떻게 할래? 모르는 척 해주신 다는데?”
타르칸이 웃으며 손에 묻은 보누아의 피를 털어내었다.
그 모습에 훈련생들이 주춤주춤 뒷걸음 쳤다.
“으으… 으아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훈련생들이 도망쳤다.
그들 모두가 타르칸이 미노타우로스를 어떻게 사냥하는 지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타르칸이 가벼운 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우. 개운하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는 말은 누가 처음 한 걸까?’
자신을 업신여기던 자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은 전혀 허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속으로부터 찌릿한 충족감이 밀려온다.
“그나저나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네.”
이런 소동이 벌어진 이상 전보다 거동이 불편해 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타르칸이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래도 보스는 사냥하고 싶었는데. 보스를 잡으면 좋은 아이템이 나올텐데 말이야….”
그는 보스방으로 향하는 거대한 철문을 떠올렸다.
“아… 어떻게든 잠깐만 들어가면 되는데….”
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
다음날.
“뭐? 외출?”
쿤타가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네.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됩니다.”
새로운 약품을 연구하는 중인지 쿤타의 흰 가운은 알 수 없는 초록색 액체들이 가득 물들어 있다.
쿤타가 얼굴에 뛴 걸쭉한 보라색 액체를 털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야 미쳤냐?”
예상했던 반응이다.
타르칸이 쓰게 웃었다.
“야. 너 요즘 막 나간다?”
“…그런가요?”
“그래. 바로 어제 그 지랄을 떨어놓고는 뭐? 외출?”
쿤타가 가운의 품에서 말린 식물의 잎을 꺼내어 익숙한 손놀림으로 말아 올렸다.
그가 유적지에서 발견한 유물을 토대로 복원한 것으로 과거에 담배라 불리던 것이다.
말린 잎의 첨단에 불을 붙인 쿤타가 그것의 연기를 깊이 빨아 들였다.
“쓰읍. 후우… 죽인다 죽여.”
들리는 바에 의하면 쿤타는 자신이 복원한 담배를 사업화할 생각이었지만 교단이 판매 허가를 내어주지 않아 무산되었다고 한다.
악마의 연기라나 뭐라나…
결국 대중화 되지 못한 채 쿤타와 그의 지인 몇 명만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후우. 이것만은 교단 말이 옳았어. 이건 악마야 악마. 야. 타르칸 넌 절대로 담배 피지 마라.”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타르칸은 속으로 웃었다.
금단 현상에 시달리던 쿤타의 모습을 몇번 본 타르칸은 억지로 시켜도 피울 생각이 없다.
한동안 담배를 즐기던 쿤타가 툭 내뱉듯 말했다.
“사유는?”
“대장간에 가려고 합니다. 저 무기가 아직 없어서요.”
“아. 그랬지 참.”
입에 담배를 꼬나문 쿤타가 볼을 긁적였다.
모든 훈련생들은 훈련기간 동안 자신의 무기를 한 가지씩 만들 수 있다.
일종의 수료 선물인 셈인데 훈련기간 동안 손에 가장 잘 맞는 무기를 하나 선택한 뒤 그것을 자신의 몸에 맞는 크기로 제작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언제나 보급품만을 사용하던 타르칸은 아직 그 권리를 사용하기 전이었고.
“…그게 이유라면 내가 못 가게 할 수는 없겠지. 그건 네 권리니까.”
쿤타가 심드렁하게 대답했고 타르칸은 속으로 환호했다.
그는 제작되는 무기에는 큰 관심이 없다.
지금 그가 가진 월도 땅강아지보다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제작해주는 무기라고 해봐야 중급의 재료를 사용해서 빠른 시간에 찍어내듯 만드는 것이다.
반면 월도 땅강아지는 준수한 공격력에 자신에게 딱 맞는 사이즈인데다 토벽이라는 스킬까지 내장되어 있다.
'그리고 천을 묶는 것만으로 독을 인챈트 할 수도 있고 말이야.'
타르칸이 여러 가지 무기를 이용해 실험해본 결과 천을 이용한 인챈트는 오직 퀘스트 보상 아이템이나 몬스터 드랍템에만 적용되었다.
'즉,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은 일반적인 무기들은 시스템의 적용을 제한적으로 받는다.'
그러니 타르칸이 대장간에서 제작해주는 무기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무기를 주문한다는 건 그저 구실이다.
던전을 클리어 할 시간을 벌기 위한 구실.
대장간에 가서 대충 아무 무기나 주문해 놓고 남는 시간에 잠행을 써서 던전에 들어갈 생각인 것이다.
“언제가게?”
“괜찮다면 지금 가려고 합니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말이죠.”
타르칸이 상큼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이어지는 쿤타의 말에 산산조각 났다.
“그래? 마침 잘 됐네. 그렇지 않아도 나도 시장에 볼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쿤타는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어… 저기. 쿤타 선생님?”
“잠깐 기다려. 금방 준비하고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