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의 요람
“젠슨. 영주에게 보고는 다 한 거야?”
신전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에드가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젠슨에게 반갑게 말을 건네었다.
젠슨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드가의 침실 옆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팔은?”
에드가가 씨익 웃으며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비록 창백하고 형편없이 말라 있지만 온전히 기능한다.
신관의 기적으로 새로운 팔을 얻게 된 것이다.
젠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 너무 늦지는 않았었나 보네.”
“그래. 이렇게 형편없는 모양새이긴 하지만 말이야. 뭐 몇 달 집중적으로 단련하면 금방 꽤 쓸 만해질 거야.”
에드가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가볍게 말하며 웃었다.
젠슨은 피식 웃는가 싶더니 다시 표정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에드가?”
“영주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일이라면 일이겠지….”
젠슨이 눈을 지그시 감고는 잠시 침묵했다.
감정을 제어 하기 힘들 때 나오는 그의 오래된 버릇이다.
이윽고 젠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몬스터게이트에 관한 사항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때문에 게이트의 등급이 순식간에 변하는 이변현상이 보고되면 왕국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게이트 이상현상에 더 이상 개입도 언급도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어. 사실상 없던 일로 하라는 말이지.”
“뭐?!”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젠슨은 클라프 영주와 함께 수정구를 통해 곧바로 수도로 연락했다.
그리고는 수도로부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대답을 듣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교단측의 입김이 들어간 것 같다.”
“교단에서? 교단이 몬스터 게이트에 대해 뭘 안다고?”
“글쎄….”
“하.”
에드가의 어이없다는 한숨에 젠슨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계시가… 있었다나봐.”
“계시?”
“그래. 교주가 몇 달 전 이방인이 그랑대륙으로 찾아 올 것이라는 계시를 내렸다고 하더군. 그리고 게이트의 이상현상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데?”
“이방인이라면….”
“그래. 우리가 숲에서 만났던 그런 기묘한 사람들이 그랑대륙의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어.”
***
은은한 노란빛을 뿌리는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곳은 거대한 종유석 동굴이었다.
[던전 '뼈의 요람'에 입장하였습니다.]
[던전의 최초 발견자입니다. 전리품상자 드랍 확률이 두 배 상승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동에 무작위로 뿌리를 내린 종유석들이 미로를 만들고 있다.
그가 입장한 노란 게이트를 제외한다면 어디에도 발광체는 없었지만 기묘하게도 동굴 자체에서 빛이라도 나는 듯 어둠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는 일은 없었다.
[던전 내에서 사망시 7일간의 사망 페널티 후 던전 밖에서 부활합니다.]
[던전내에서는 전리품 상자 개봉이 제한됩니다.]
타르칸의 귓가로 던전에 대한 정보가 들려왔다.
이 던전이라는 것은 시작의 섬처럼 이계의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장소인 것 같다.
[가이아가 당신의 섣부른 판단을 질책합니다.]
[가이아가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재수 없게 왜 이래?'
그는 자신을 겁주는 가이아의 메시지에 투털거리며 한 발짝 나섰다.
그러자.
-우우우우우
“히이이익.”
어딘가 소름끼치는 울림이 들려온다.
“… 어째 좀 으스스한데….”
그의 예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동굴의 여기저기에서 마른 나무토막들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나무토막이 아니다.
땅에서 솟아오른 하얀 뼈들이 서로 맞물리며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스켈레톤인가?”
스켈레톤은 가진바 능력에 비해 매우 보기 드문 몬스터였다.
상위 게이트의 고위급 언데드들만이 스켈레톤과 좀비를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몬스터게이트에서 스켈레톤이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
타르칸은 차분하게 스켈레톤이 모습을 갖추기를 기다렸다.
스켈레톤은 굳이 따지자면 3단계 게이트 정도의 몬스터로 개체의 전투력은 고블린과 오크 사이 정도다.
지금의 그에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상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완성되어 가는 스켈레톤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사람?”
분명 인간의 뼈가 아닌 것들이 모여 마치 인간의 골격과 같은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스켈레톤의 외형은 본신의 골격 모양을 따라가는 것 아니었어?”
[가이아가 당신의 좁은 식견을 비웃습니다.]
“흥. 생긴거야 어쨌든 부수면 그만이지.”
여기라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조심할 필요도 없다.
“마나의 본질. 그리고 검은 송곳니.”
타르칸은 제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두 손가락을 앞으로 까닥 거렸다.
그의 등줄기에서 뻗어나간 불투명한 검은 촉수가 형체를 이룬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깨끗하게 반으로 갈랐다.
검은 송곳니에 의해 꿰뚫린 두개골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스켈레톤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두개골 안에 위치한 마력의 핵이 부서진 탓이다.
“간단하네.”
그의 주위에 나타난 스켈레톤을 모두 처리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일단 훈련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몰라. 이제 슬슬 신전에서 사람들이 되 돌아 올테고… 동굴탐험은 천천히 하도록 하자.’
던전의 입구를 통해 던전을 빠져나온 타르칸은 회색의 돌을 조심스럽게 원래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혹여 누군가에게 발각 될 것을 염려하여 잠행까지 발동 시킨 상태다.
숙소로 돌아오는 타르칸의 표정이 밝다.
'던전이란 거 꽤나 쏠쏠하구만.'
일반 필드의 몬스터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경험치가 높았다.
거기다가 전리품 상자들까지.
기본적으로 던전 안에서는 아이템 드랍률이 더 높은 것으로 보였다.
최초 발견 보상인 전리품 상자 드랍률 두배를 감안하더라도 많은 숫자의 전리품 상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훈련소는 아직 적막에 싸여 있다.
아무래도 훈련병들은 내일 훈련소로 복귀할 모양이다.
방으로 돌아온 타르칸은 괜히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서둘러 인벤토리를 열었다.
8개의 상자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흐흐흐 아이고 이게 왠 횡재야.”
짧은 시간에 엄청난 수확을 얻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무기 하나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월도 땅강아지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1이라도 데미지가 높은 무기를 사용하고 싶은 것은 모든 플레이어의 본능이다.
“가즈아!!!”
타르칸의 손짓을 따라 8개의 은빛 상자가 눈부신 빛을 뿜으며 개봉되었다.
[회복물약 x 3]
[14 DC]
[회복물약 x 5]
[비상식량(에너지바) x 1box]
[천리통 x 1]
[녹슨 철검 x 1]
[회복물약 x 2]
[따듯한 모포 x 1]
“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회복물약이나 비상식량은 이미 인벤토리에 넘치도록 쌓여있기 때문에 지금은 별로 필요가 없다.
그나마 확률이 낮은 천리통이 나온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뭐 일회성이 아닌 아이템이 두 개나 나오기도 했으니.”
[따듯한 모포]
= 정체불명의 재질로 만들어진 녹색 모포. 카드게임을 하면 좋을 것 같은 느낌.
[낡은 철검](불량)
-공격력 : 1
-공격 시 10% 확률로 부서짐.
= 간신히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다.
“….”
참고로 불량은 노멀 등급 이하의 아이템에 붙는 등급이다.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거나 아이템 자체에 하자가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쓰레기라는 뜻이다.
[가이아가 철검은 박물관에 기증하라고 놀립니다.]
“에이. 이제 시작인데 뭐 어때? 하하.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앞으로 전리품 상자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뭐. 하하하.”
***
그날 이후 타르칸은 틈 만나면 던전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게이트를 닮은 던전의 입구는 몬스터 게이트처럼 일정 시간이 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듯 했다.
그리고 모든 던전에는 던전의 보스가 있는데, 그 보스를 처치하면 해당 던전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사실 타르칸은 이 ‘뼈의 요람’의 던전의 보스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렇게 떡하니 있는데 몰라 볼 수가 없지.”
타르칸은 거대한 철문을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거대한 아치형태의 문은 어떤 금속을 사용한 것인지 묵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종유석 동굴의 중앙부에 위치한 이 방은 누가 봐도 나 보스방이요 하는 모양새다.
[가이아가 던전 보스의 위험함에 대해 다시 경고합니다.]
“거참. 되게 겁주네….”
몇 번이나 거듭 나타나는 가이아의 경고 메시지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던전보스를 그냥 놔둘 생각은 없다.
“뭐 지금 당장 갈건 아니야. 일단 다른 스켈레톤들을 좀 사냥하고 나서.”
-그어어어어
때마침 들려오는 스켈레톤의 소리에 타르칸이 반색했다.
그는 양손으로 천천히 월도를 휘두르며 스켈레톤들이 모습을 갖추기를 기다렸다.
타르칸은 검은색 일색의 전쟁개미의 갑옷세트와 왼팔의 팔목에는 장군벌의 껍질 방패, 그리고 오른손에는 두발독사의 독을 인챈트한 월도 땅강아지를 장비하고 있었다.
‘아이템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
[가이아가 나와 봐야 쓰지도 못 할 거라고 지적합니다.]
‘하긴….’
지금이야 던전 안이니 상관없지만 던전 밖에서 사용하기에 타르칸의 장비들은 너무 눈에 띄었다.
곤충의 외골격을 연상시키는 갑옷과 방패는 말할 것도 없고, 월도 역시 두발독사의 독이 인챈트 되어 있어 움직일 때 마다 초록빛 잔상이 남는다.
‘이계의 인간 놈들은 화려한 걸 좋아하냐… 뭐 멋있긴 하지만 실용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말이지….’
[가이아가 움찔 합니다.]
그의 앞을 완전히 인간의 골격의 모습이 된 짐승의 뼈가 막아섰다.
숫자는 3.
스켈레톤이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본소드가 그를 노리고 휘둘러진다.
가볍게 본소드를 튕겨낸 타르칸의 손놀림에 종유석 동굴 안에 초록빛의 섬광이 번쩍였다.
“그어어어어.”
순식간에 몸의 구석구석이 부서진 스켈레톤 3구가 비틀거린다.
마치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는듯한 모습에 타르칸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는 실수로 두개골을 부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재차 월도를 휘둘렀다.
언데드인 스켈레톤은 본래 독이 듣지 않는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시스템으로 적용된 인챈트 효과는 먹히고 있다.
타르칸은 그가 얻은 힘을 더 많은 방향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점차 강해졌다.
그는 스켈레톤을 사냥하며 아이템과 레벨을 올리는 한편, 자신이 얻은 능력들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정수사출.”
푸르스름한 빛의 파장이 종유석 동굴에 퍼져나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스킬 정수사출을 파동의 형태로 사출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빛의 파장에 닿은 스켈레톤의 뼈대가 부르르 떨리며 부서져 내렸다.
파동의 형태는 선으로 사출한 것에 비해 위력은 훨씬 낮지만 적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묶거나 광역범위를 타격하는 효과가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타르칸은 무력화된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월도로 부수며 마무리 했다.
프롬 숲에서 미노타우로스들을 사냥한 것과 던전에서 스켈레톤을 사냥한 경험치로 그의 레벨은 어느새 17이 되었다.
레벨이 오름에 따라 능력치도 함께 상승했지만 사실 그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스텟의 수치가 타르칸의 강함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성장했음을 실감할 만한 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원숭이 가면 자식. GM이라고 했지?’
타르칸은 프롬 숲에서 있었던 짧은 조우를 머릿속에서 되새김질 했다.
하얀 원숭이 가면을 쓰고 있던 괴인과 그때 느꼈던 무력감을…
‘놈은 어머니를… 알고 있었다.’
그는 하얀 원숭이 가면을 쓴 괴인의 말을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녀석을 어머니의 정체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젠장.”
타르칸은 무심결에 검은 송곳니를 발동해 동굴의 벽을 후려쳤다.
두터운 종유석들이 요란하게 무너져 내린다.
‘그 녀석을 다시 만나야해. 다시 만나서 제대로 물어봐야만 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와 쿤타가 말한 이 세계의 비밀, 그리고 나타나는 이계의 인간들.
그 모든 것에 자신의 어머니가 연관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단서는 그 하얀 가면의 괴인이 쥐고 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라도 더 강해져야해. 그 누구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