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23화 (23/215)

정기점검 (2)

체격이 건장한 늙은 대장장이가 무력하게 서있다.

“대장간1 NPC. 트렌.”

드디어 나의 차례다.

트렌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 이상한 섬에 오고 나서부터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 몸이 저절로 굳어버린다.

마을 밖으로 도망가는데 성공한 NPC들이 한명도 없는 이유다.

‘그놈만 빼고 말이지.’

트렌은 자신도 모르게 며칠 전 알게 된 이상한 녀석을 떠올렸다.

아직도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NPC 같기도 하고 이계의 놈들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처음 녀석과 나누었던 고향 아스너에 대한 대화는 꽤나 즐거웠었다는 것이다.

“업무 수행능력 매우우수. 근무시간 준수 매우우수. 플레이어와의 교류 매우불량. 불만 접수 현황 1037건. 총합 평가 C. 벌점 30점 부여. 총 벌점 110점. 교체대상 NPC.”

트렌이 쓰게 웃었다.

“크큭. 그래 장비 수리가 단 몇 초 만에 끝나길 바라는 놈들인데… 어떻게 불만이 없었겠어? 미친놈들.”

트렌의 변명 아닌 변명에도 피델은 아무런 대답 없이 망가진 검을 들어 올릴 뿐이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 섬뜩하다.

‘이 질긴 목숨도 여기까지인가.’

트렌이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 것도 두렵지만 그 괴물에게 먹힐 것이 더 두렵다.

그놈에게 먹힌 영혼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그렇게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애써 받아들이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콰앙!

예상치 못했던 굉음이 들려왔다.

트렌이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늙은 대장장이의 주름진 눈이 떨려왔다.

곤충을 닮은 검은 갑옷.

그 녀석이다.

녀석의 공격에 당한 것인지 피델은 부서져 있었다.

다치거나 죽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부서져 있었다.

엉망으로 찢겨나간 피델의 몸체에서 쏟아져 나온 톱니바퀴들이 땅에 어지러이 굴러다닌다.

스파크가 튀는 피델을 걷어차며 녀석이 다가왔다.

“트렌 아저씨! 괜찮아요?”

트렌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도망쳐!!”

그 순간 광장을 밝히던 커다란 모닥불이 꺼졌다.

땅이 울린다.

놈이 온다.

그 괴물이.

“도망쳐. 타르칸!!”

-그오오오오오

광장 한가운데 밤보다 검은 어두움이 솟구쳐 올랐다.

***

“미스터 세혁!! 미스터 세혁!!”

이 목소리는 그 콧수염 아저씨다.

자신의 상사가 하필이면 자신과 같은 성인 바람에 미스터이가 아니라 미스터 세혁으로 불리는 디멘션 온라인 서버 담당자 이세혁이 얼굴을 구겼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또 저런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정기점검이 끝나고 다시 서버가 열릴 시간인데 또 무슨 일일까?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저 콧수염 아저씨는 그동안 다채로운 질문들로 이세혁을 귀찮게 해오고 있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기밀입니다.’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밖에 없는 이세혁으로서는 꽤나 성가신 아저씨였다.

역시나 콧수염 아저씨가 숨을 헐떡이며 이세혁의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미스터 세혁!!”

“… 또 무엇이 궁금하신지 모르겠지만 기밀입니다.”

“아니….”

말도 듣지 않고 대답하는 자신을 보고 순간 멍해졌던 콧수염이 정신을 차리곤 다급하게 외쳤다.

“미스터 세혁! 서버가 터졌다네!”

“뭐라고요?”

늘 기계적인 대답으로 사람들과 벽을 쌓던 이세혁이 처음으로 당황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

“뭐 서버가 터져? 그게 불가능한 일이란 건 너도 잘 알잖아?”

이세혁의 사무실뒤의 비밀 공간.

이세혁은 본사에 긴급보고 중이다.

“정확히는 7번 시작의 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피델이 또 고장났나?”

“아뇨. 뭐 고장이라면 고장인데. 누군가에게 부서졌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7번 시작의 섬 관리자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뭐?!!”

영상속의 남자가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거 죽을 수 있는 놈이었어??”

“그런가 보네요.”

서버관리자와 게임디렉터의 간의 대화라기엔 매우 한심한 수준이다.

잠시 후 디렉터가 낮은 목소리로 은밀하게 말했다.

“피델이 부서진 이유가 관리자가 죽은 것과 연관되어 있겠지?”

“그럴 가능성이 크죠. 애초에 피델은 관리자가 날뛰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거였으니까요.”

“윗대가리들 생각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대체 왜 그런 괴물을….”

디멘션 소프트의 이사이자 디멘션 온라인의 디렉터인 김무열이 침음을 내뱉었다.

“일단 피델이 왜 부서졌는지부터 보자고. 영상 확보했지?”

“네. 파손된 부분이 있어서 조금 전 복구 했습니다. 바로 영상 띄우겠습니다.”

이세혁이 버튼을 조작하자 화면위에 노이즈가 잔뜩 낀 화면이 출력되었다.

피델에게 장착된 카메라가 촬영한 것이다.

피델이 마을의 NPC들을 일렬로 세우고 점수를 매기는 장면이 보인다.

“애초에 저 점수 평가 말이야. 굳이 저렇게 해야 하나? 아니 애초에 NPC를 평가할 필요가 있는 건가? 그냥 말 잘 듣게 프로그래밍하면 되는 거 아냐?”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래. 네가 뭘 알겠냐. 나도 모르는데.”

둘은 말없이 노이즈가 낀 화면을 쳐다보았다.

점수가 낮은 NPC를 죽이는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찌푸려졌다.

“야 이런 부분 그냥 넘기고 부서지는 곳에서 시작하자. 뭔 그래픽이 저렇게 사실적이냐.”

이세혁이 군말 없이 버튼을 조작했다.

피델이 부서지는 장면.

그리고 흐릿한 화면 위에는 곤충을 연상시키는 검은 갑옷에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닮은 무기를 휘두르는 괴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뭐야 저건?”

괴인에 의해 부서지는 피델.

그리고 뒤이어 바닥에서 나타나는 7번 관리자.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눈부신 빛과 함께 피델이 녹화한 장면은 끝이 났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김무열 디렉터가 말했다.

“GM들 소집해.”

***

다음 날.

이세혁의 사무실에 설치된 화상회의를 위한 모니터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GM들하고 회의는 잘 끝나셨어요?”

“그런 음흉한 놈들하고 회의는 무슨….”

디멘션 온라인 서버담당자 이세혁의 물음에 게임디렉터 김무열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대답했다.

GM (Game master)

게임안에서 생기는 여러 불가피한 상황을 관리하는 운영자의 캐릭터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처리하기 때문에 GM은 게임 안에서 만큼은 권능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

권능에 가까운 힘을 가진 것은 디멘션 온라인의 GM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디멘션 온라인의 GM들은 운영자가 아니다.

“왜요? 뭔 일 있었어요?”

“아 말도 마. 그놈들 또 회의에 그 이상한 동물 가면을 쓰고 나왔다니깐!! 하아. 그럴 거면 화상회의는 왜 하는 거야 대체. 어차피 얼굴 안 볼 거면 그냥 전화나 문자로 해도 되잖아?”

“뭐… 저한테 이야기 하셔도….”

게임의 제작자나 하다못해 게임회사의 직원이 GM역을 수행하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디멘션 온라인의 GM들은 그 정체가 철저히 감추어져 있었다.

이것 역시도 ‘윗분’들의 지시사항.

항상 기묘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 그들의 맨 얼굴은 게임디렉터인 김무열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러다가 경쟁회사 사람이 ‘나 GM이요’ 하고 잠입해서 게임 개판치면 어쩌려고 그러지 대체??”

“음. 저희가 경쟁회사라는 게 있었나요?”

“말이 그렇다는 거 아냐. 말이!”

이세혁의 반문에 김무열이 버럭했다.

GM이라는 놈들을 만난 날은 언제나 이렇다.

그놈들은 언제나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긁었다.

“흠흠. 네. 그래서 회의결과. 아니, GM들이 어떻게 하겠답니까?”

“일단 7번 시작의 섬은 잠정폐쇄야. 7번섬에서 플레이하던 유저들은 8번섬으로 이동될 거야.”

“이야. 8번은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바글바글 대던 곳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뭐 섬 사이즈가 그만큼 크니까. 다른 곳 보다야 여유가 좀 있지.”

“… 그럼 7번섬에 있던 몬스터들은요?”

“그대로 놔두면 나중에 처치 곤란해질 거라고 자기들이 다 없애버리겠다던데?”

확실히 무리를 짖고 사는 몬스터를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그 버그 플레이어는요?”

“그놈이 문제야.”

김무열이 한숨을 쉬었다.

버그플레이어가 그것도 서버가 닫혀있을 때 나타났다는 것은 절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현상이다.

“일단 GM들이 캐릭터 삭제하는 걸로 했어. 추적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근데 단순히 플레이어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런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할 필요가 있는 건가?’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대가로 무엇에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을 계약했지만, 인간인 이상 끊임없이 궁금증이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이세혁의 의문을 눈치 챘는지 김무열이 자신 없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위치 데이터가 없어.”

“그 말은?”

“애초에 위치 데이터를 저장해놓지를 않는 건지 확인을 할 수 없도록 블록을 걸어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째서요?”

“아!! 그걸 낸들 어떻게 알아!!”

김무열이 다시 한번 버럭 짜증을 내었다.

자기도 이 상황이, 이 게임이 말도 안되게 비상식적이라는 건 안다.

그렇다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직장을 포기할 수는 없는일 아닌가.

“그냥 대충 넘어가자. 대충. 응?”

동병상련이랄까.

언제나 기밀이라는 말로 모든 질문들을 넘겨야 하는 이세혁 역시 김무열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네 알죠.”

“그래 고맙다.”

“아. 디렉터님.”

“왜?”

“그 7번 섬 말이에요.”

“응.”

“몬스터들을 다 박멸한다고 쳐도, 거기에 남은 NPC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음. 글쎄. 같이 삭제하지 않을까?”

“그렇겠죠? 이제는 필요가 없으니.”

김무열이 화면 안에서 길게 기지개를 폈다.

“그래. 뭐 그런 사소한 거야. GM 애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만 퇴근이나 하자.”

***

“끄응.”

타르칸이 힘겹게 눈을 떳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 보인다.

비명을 지르는 온 몸을 추스르며 차분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조금씩 기억들이 떠오른다.

피델을 부수고 놈의 부서진 잔해 사이에서 검은 형상이 피어올랐던 것 까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흐물거리는 검은 형상이 모습을 갖추려는 찰나 어디선가 두 눈이 멀 것만 같은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고 그는 그 빛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그 빛은 무엇이었을까?

가이아의 상태 메시지가 조용하다.

정황상 가이아가 무언가를 한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타르칸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지금 자신 있는 곳은 시작의 마을에 있는 집들 중 한 곳인 것 같다.

‘얼마나 잔거지?’

정기점검이라는 것이 끝난 것인가?

[전직을 완료하였습니다. 스타팅포인트를 선택해주세요.]

발 언저리에 다시 나타난 저 시스템 메시지를 보면 정기점검이 끝난 건 맞는 거 같은데.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을 잃는 일이 많냐.’

타르칸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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