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3)
오크를 사냥한 4번째 웨이브까지 승승장구하던 타르칸은 (제이가는 빈말로도 승승장구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태였다.)
바로 다음 5번째 웨이브에서 위기를 맞이했다.
원형 경기장의 열린 문으로 5마리의 거대한 거북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포거북…”
대포거북은 지름 4미터 가량 되는 등껍질에 거대한 포신을 달고 있는 몬스터다.
단단한 껍질에서 나오는 견고함과 더불어 거대한 포신에서 발사되는 위협적인 생체포탄을 쏘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
5번째 웨이브에서 리자드맨이 나왔다는 러시아팀과는 달랐다.
사실 일반적인 난이도로 따지자면 대포거북 쪽이 훨씬 낮다.
대포거북이 3단계 게이트의 몬스터인 반면 리자드맨은 하급이긴 해도 4단계 게이트에서 소환되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포거북이 한 개체가 몬스터 게이트에서 소환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까지 반영 된 것인지 대포거북은 고작 5개체뿐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행운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대포거북이 지금 타르칸이 세워놓은 전략을 완전히 카운터 칠 수 있는 몬스터라는 점이다.
[다섯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쿵. 쿵. 쿵.
웨이브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대포거북들이 놈들의 굵은 다리를 지면에 강하게 박아 넣었다.
동시에 위압적인 등껍질에 달린 거대한 포신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기이이이잉
타르칸이 대포거북들을 향해 쇄도하며 다급히 소리쳤다.
“제이가! 절대 도발더미를 사용하지 마!!”
전직 퀘스트를 수행하던 중 사망한 것에는 일주일 접속불가의 패널티가 붙지 않는다.
하지만 죽는 즉시 그걸로 아웃.
더 이상 전직 퀘스트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남은 플레이어들끼리 다음 웨이브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웨이브 시작점에서 대포거북까지의 거리는 약 200m.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 타르칸이 대포거북의 위압적인 등껍질을 강하게 후려쳤다.
콰아아앙
거북의 거대한 몸체가 휘청거리며 포신의 방향이 틀어졌다.
하지만 거북은 한마리가 아니다.
쉐에에에엑-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대포거북의 포탄이 쏘아졌다.
놈의 등껍질과 같은 재질의 딱딱한 포탄이 작은 조각으로 쪼개어지며 허공을 뒤덮었다.
“어, 어…”
팔미마의 등에 묶여있던 제이가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팔미마가 제 아무리 빨라봤자 포탄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이다.
콰가가가각!
포격이 지면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놈들의 포격과 거의 동시에 대포거북 한 마리가 쓰러졌다.
한 마리에 3000포인트.
200포인트씩 주던 오크에 비해 월등히 많은 포인트이지만 오크의 숫자가 백이 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포인트의 총합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이것은 4단계 웨이브보다 오히려 5단계 웨이브의 난이도가 낮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의지가 전직 퀘스트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이아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인합니다.]
[가이아가 자신은 시스템에 간섭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항변합니다.]
‘누가 뭐랬냐.’
기이이이이잉
대포거북은 첫 번째 포격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포격을 준비했다.
이번에도 역시 첫 번째 포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제이가가 그 타겟이다.
대포거북들은 마치 자신들 가까이에서 언월도를 휘두르고 있는 타르칸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대포거북은 공격은 예상보다도 신속했다.
타르칸이 사냥한 거북은 3마리.
남의 두마리의 대포거북이 쏜 포탄이 다시 한 번 원형 경기장의 바닥을 광범위하게 휩쓸었다.
제이가는 남은 포인트를 끌어 모아 각종 방어구에 방어력버프까지 구매했지만 결국 포격을 버티지 못했다.
“거북왕 따위에게.”
[제이가님이 사망하셨습니다.]
[3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쳇!”
타르칸이 마지막 대포거북의 등껍질 아래로 언월도를 찔러 넣으며 혀를 찼다.
[다섯번째 웨이브가 끝났습니다.]
[여섯번째 웨이브를 준비해 주십시오.]
다섯번째 웨이브를 클리어 했다.
다섯번째 웨이브라면 러시아 특수부대로 구성된 파티와 동일한 수준이다.
즉, 이때까지 전직 퀘스트를 수행했던 수십만명의 플레이어 중 가장 높은 기록이다.
하지만 타르칸은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적어도 8단계 웨이브까지는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웨이브가 2단계 게이트.
세 번째와 네 번째 웨이브가 3단계 게이트인것을 보아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웨이브는 4단계 게이트의 몬스터.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웨이브에서는 5단계 게이트의 몬스터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5단계 게이트의 몬스터는 기사급이 나서야 하는 진짜 괴물들.
하지만 타르칸은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20분을 버티는 것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뭐 어디까지나 이동속도나 사거리가 평균적인 몬스터를 염두에 둔 거긴 했지만…’
하지만 그런 타르칸은 예상은 다섯 번째 웨이브에서 3단계 게이트 몬스터인 대포거북이 나타나면서 모두 깨졌다.
‘애초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는 건가.’
[여섯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쿵쿵쿵.
원형경기장의 벽이 열리며 여섯 번째 웨이브 몬스터가 지축을 울리며 걸어 나왔다.
“우오오오오-”
근육질의 거대한 갈색 몸체.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배틀액스.
성난 황소를 닮은 거대한 머리.
5단계 게이트의 몬스터 미노타우로스였다.
원형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한 타르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몬스터의 등장에 규칙이 없을 거라는 그의 의심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구면이지?”
타르칸은 자신을 향해 위협적으로 콧김을 내뿜는 30여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를 바라보며 상점창을 열었다.
30마리의 미노타우로스는 충분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타르칸은 믿는 구석이 남아있다.
48,600 포인트.
1단계부터 차근차근 모아온 포인트들을 사용할 순간이 된 것이다.
비용이 낮은 도발 인형이 보여준 성능을 생각해 본다면, 이 포인트를 이용해 구매 가능한 다른 아이템들 역시 놀라운 성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타르칸은 우선 한 웨이브 동안 효과가 지속되는 필드지속아이템들을 구매했다.
[얼음지대] (1000P)
필드 몬스터 이동속도와 공격속도 감소.
[천둥지대] (1000P)
때때로 몬스터에게 번개가 내려침.
[화염지대] (1000P)
필드 몬스터 지속 데미지.
[가시밭길] (800P)
필드 몬스터 지속 데미지.
필드 몬스터 이동속도 감소.
[피로의 저주] (500P)
필드 몬스터 공격력 감소.
[행운의 여신의 가호] (3000P)
치명타 확률 증가.
치명타에 적중당할 확률 감소.
[성역] (10,000P)
지속적으로 플레이어 체력, 스태미나 회복 (5% / 10초)
[변덕스러운 사신] (15,000P)
몬스터에게 랜덤으로 상태이상 부여.
(서로 다른 상태이상 중복 가능)
(실명, 기절, 중독, 화상, 질병, 석화, 현혹, 즉사.)
필드위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지면이 갈라지며 시뻘건 화염이 이글거렸다.
천장위에 나타난 검은 먹구름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리며 간헐적으로 미노타우로스에게 번개를 내리꽂았다.
“우어어억.”
번개에 맞은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뿐만 아니라 확실히 미노타우로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상상이상으로 확실한 효과에 타르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아쉬운 점이라면 상태이상 즉사나 현혹이 발동된 미노타우로스가 없다는 점 정도.
이어서 착용할 수 있는 모든 장착 아이템들을 장착했다.
그의 쇼핑은 상점창에 있는 모든 버프들까지 구매하고서야 끝이 났다.
[공격력 상승] (분당 100P)
모든 데미지 50% 증가
[방어력 상승] (분당 80P)
입는 피해량 20% 감소
[속도 상승] (분당 150P)
이동속도 30% 증가
공격속도 20% 증가
[여신의 가호] (분당 350P)
일정확률로 적의 공격이 빗나감.
체력회복량 상승
[전신의 가호] (분당 350P)
치명타 확률 30% 증가.
치명타 데미지 50% 증가.
[사신의 가호] (분당 500P)
공격에 적중 당한 적에게 일정확률로 상태이상 부여.
(실명, 기절, 중독, 화상, 질병, 석화, 현혹, 즉사)
버프 종류를 가장 나중에 구매한 이유는 버프는 착용 아이템이나 한 웨이브 동안 지속되는 필드지속 아이템과는 달리 분 단위로 포인트를 소비하기 때문이었다.
타르칸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그는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힘에 잠시 도취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타르칸의 모습을 제이가가 보았다면 분명 ‘초사이어인?!’ 따위의 말을 했으리라.
그는 버프로 강해졌고 미노타우로스는 본신의 힘에 비해 압도적으로 약해졌지만 타르칸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5단계 게이트의 몬스터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은 무거운 것이었다.
타르칸이 윌도를 잡은 손을 풀며 30마리의 미노타우로스들을 향해 걸어갔다.
20분을 도망치며 버티는 방법도 있다.
만약 시간을 끌려고 했다면 몬스터의 이동속도를 낮추고 자신의 이동속도를 높이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작의 섬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미노타우로스와 조우하게 될 확률이 높다.
지금 그에게는 미노타우로스와 싸워보는 실전경험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상태이상 즉사가 발동했습니다.]
“꾸어어억!!”
발등을 찍힌 미노타우로스가 별안간 가슴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상태이상 매혹이 발동했습니다.]
“우억? 음모~♥”
이번에는 타르칸을 공격하던 놈이 다른 미노타우로스에게 배틀액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상태이상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걸렸다.
필드효과 [변덕스러운 사신]과 [사신의 가호]의 중첩 효과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속도가 강화된 그는 느려 질대로 느려진 놈들의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놈들이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고 있는 것은 덤.
‘…포인트 좀 아낄걸 그랬나.’
새삼스럽게 후회가 밀려왔다.
***
타르칸은 마지막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웨이브를 완료했다는 알림이 나타나자마자 전직 퀘스트를 중단시켰다.
다음 웨이브를 통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웨이브에 도전했다가 실패 하더라도 패널티는 없다.
즉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는 것이기에 전직 퀘스트 도중에 스스로 중단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었다.
[다음 웨이브로 진행을 거부하셨습니다. 이 경우 전직 퀘스트는 자동 완료됩니다. 전직 퀘스트를 중단 하시겠습니까?]
“그래.”
하지만 타르칸은 사정이 다르다.
그는 아직 그가 얻은 이계의 인간의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전직 퀘스트에서 죽은 경우에는 완료 즉시 다시 살아나게 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죽은 뒤 7일이면 부활하는 그런 괴물이 아니라고.’
경쾌한 나팔소리와 함께 빛의 장막이 나타났다.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플레이스타일과 전직 퀘스트 결과를 분석하여 플레이어님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을 부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