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2화 (12/215)

가이아

“하이고 오래도 걸렸네.”

타르칸이 큰 나무위에서 기대어 앉아 개미굴로 다가가는 3명의 플레이어를 내려다보았다.

개미굴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릴 수 있었다.

서쪽 숲에서 타르칸이 발견한 개미굴은 이제껏 그가 본 것 중에 최대 규모였다.

수는 적게 잡아도 수십 만 마리 이상.

장군벌 외의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결과다.

아무리 개체의 전투력이 낮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천수만 마리가 모여 있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지금 저 개미굴로 들어가는 것은 명백한 자살행위.

하지만 괜찮다.

지금 타르칸에게는 그를 대신해서 죽어줄 사람이 있으니까.

그것도 3명이나.

가시개미에게 장군벌은 다른 먹이들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개미들은 위대한 승리의 전리품인 3마리의 장군벌(장명석과 2인)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굴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공포에 절여진 표정으로 아직 마비되지 않은 눈동자만을 뒤룩뒤룩 굴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죽어도 7일이 자나면 다시 살아나는 인간들 아닌가.

산채로 몸의 끝 부분부터 조금씩 먹혀 들어가는 공포도 타르칸이 알바가 아니다.

이계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로그아웃’이라는 온건한 방법 이외에 좀 더 강제적인 귀환방법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강제종료라고 부르던가?’

강제종료의 페널티는 죽었을 때와 같은 7일간 접속불가.

타르칸이 보기에는 가볍기 그지없는 대가다.

가시개미의 마비액에 온몸이 마비되어 눈알만을 굴리던 장명석이 나무위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타르칸을 발견했다.

타르칸이 상큼하게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그를 환송했다.

‘그러게 사람을 봐가며 건드려야지.’

장명석의 눈동자에 분노가 이는 것을 확인한 타르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랑대륙에 가기 전에 한 번 더 죽이고 가야겠다. 일정이 맞으려나 모르겠네.’

이계의 인간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순간이었다.

***

개미굴 입구가 여느 때와는 달리 한산해졌다.

분명 지금쯤 개미굴의 깊은 곳에서 장군벌의 페로몬을 가득 풍기는 먹이를 둘러싸고 승리를 자축하고 있으리라.

굴속에 숨은 개미들을 박멸하기 위해 그랑대륙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타르칸이 준비해둔 자루를 꺼내었다.

그 자루에 들어 있는 것은 바로 칸타르의 뿌리.

칸타르는 늪지에 서식하는 식물이다.

그랑대륙의 사람들은 두통이 있을 때 말린 칸타르의 뿌리를 복용하곤 했다.

칸타르의 뿌리에 피를 맑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장기복용은 금기시 되는데, 칸타르 뿌리를 과다복용하면 피가 응고되지 않아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 칸타르 뿌리의 다른 특징은 바로 불에 탈 때 엄청난 양의 연기를 낸다는 것과 그 연기가 공기보다 무겁다는 것.

그는 칸타르 뿌리가 든 커다란 자루에 불을 붙여 개미굴 깊숙한 곳으로 던져 넣었다.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났을 쯤, 엄청난 기세로 시스템 알림이 들려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직을 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한계 레벨은 5입니다. 레벨업이 취소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직을 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한계 레벨은 5입니다. 레벨업이 취소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직을 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한계 레벨은 5입니다. 레벨업이 취소됩니다.]

…………

쉴 새 없이 울리는 시스템 알림에 귀가 가려울 정도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직을 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한계 레벨은 5입니다. 레벨업이 취소됩니다.]

[시스템이 당신에게 크게 감탄합니다!!]

‘이 시스템이라는 건 맨날 감탄만 하네.’

타르칸은 몰랐다.

전 세계 50만 명이 넘는 플레이어중 이 시스템이 감탄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은 아직 채 10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더군다나 지금은 '크게'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조건을 만족하는 업적이 너무 많습니다.]

[시스템이 당신에게 줄 보상을 고심합니다.]

‘보상?’

타르칸은 [시스템이 당신에게 줄 보상을 고심합니다]라는 알림에서 묘한 이질감을 받았다.

‘보상이라….’

그는 단지 몬스터를 사냥했을 뿐이다.

그것도 그랑대륙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

대체 무엇에 대한 누구의 보상이란 말인가.

[시스템이 보상의 방향을 결정하였습니다.]

[칭호. ‘시스템의 주목을 받는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제 시스템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이어서 들려온 시스템 알림에 타르칸이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가이아가 당신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

그때,

왜에에에엥-

알레스카에 위치한 디멘션 소프트의 서버관리실에서는 때 아닌 소동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대체?”

서버장치에 공급되는 전력이 일순간 급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서버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

서버관리자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애초에 관리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을 뿐, 사실상 그들이 관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관리라기보다는 서기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뭐야?”

콧수염을 기른 중년남성이 인상을 쓴 채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나 기행을 일삼는 디멘션 소프트이지만 디멘션 온라인은 그 정도가 심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이 장소만 하더라도 그렇다.

콧수염의 중년이 가이아라는 이름이 붙은 거대한 검은 기계를 쳐다보았다.

‘고작 게임의 서버를 관리하기 위해 이곳 알레스카에 이정도의 대규모 설비를 투자하다니.’

아무리 발매 3개월 만에 세계를 석권한 게임이라 할지라도 너무 과하다.

“보고는?”

“실시간으로 송부중입니다. 곧 그가 내려 올 것입니다.”

“끙.”

직원의 보고를 받는 콧수염의 중년이 머리를 감싸고 앓는 소리를 냈다.

디멘션 소프트 본사에서 발령받았다는 그 검은 머리의 남자는 이 대형설비만큼이나 베일에 싸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이 있다는 나라 출신답게 디멘션 온라인 서버 총담당자가 금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보고는 받으셨겠지만 갑자기 전력소모량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그래서요?”

“…예? 그와 더불어 설비내부 온도도 급상승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서버 담당자가 말을 잘랐다.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세요.”

“네? 하지만.”

서버담당자는 자기가 할 말은 끝났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복잡한 눈빛으로 거대한 검은 설비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온 서버 담당자 이세혁이 자리에 앉아 방금 도착한 메일을 확인했다.

띠링-

며칠 후에 있을 디멘션 온라인의 패치에 대한 내용이다.

디멘션 온라인 패치 예고

- 정기 점검 진행.

- 유저 로그아웃 방식 변경.

- 몬스터를 동시에 같은 방법으로 대량학살시 획득 경험치 조정, 아이템 드랍률 조정

허락을 구하는 메일이 아니다.

일방적인 통보.

발신자는 가이아.

서버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슈퍼컴퓨터다.

‘인공지능이나 컴퓨터라는 단어가 적절한 것이지는 모르겠지만.’

특이점. (singularity)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

가이아는 유일하게 그 특이점을 넘어선 무언가.

특이점을 도달한 순간 가이아는 단순히 컴퓨터, 인공지능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는,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니 특이점에 도달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지. 가이아는 처음부터 특이점을 초월한 상태였으니까.’

이세혁도 가이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확실한 것은 그들은 가이아를 발명하지 않았다는 것.

발견한 것이다.

가이아가, 그들을.

***

지면 아래에서 들려오던 가시개미의 비명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와 더불어 끊임없이 들려오던 레벨업을 했다는 알림과 아직 전직을 하지 않아 레벨업이 취소된다는 알림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주목을 받는 자]

- 시스템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업적 [열정의 불씨]와는 달리 이번에 얻은 칭호라는 것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몰래 이계의 인간들을 탐색할 마음을 품고 있었던 타르칸에게는 없는 것만 못한 칭호였다.

‘찝찝하게 말이야.’

[가이아가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마치 마음을 읽고 대답하는 것 같은 시스템알림에 타르칸은 혀를 끌끌찼다.

이제 가시개미굴 사냥을 마무리 지을 때다.

타르칸이 아스너 제국의 파이크를 집어 들었다.

장명석이 죽으면서 떨어트린 것이다.

하지만 여왕개미를 잡으려면 파이크는 버려야 한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가시개미굴 소탕은 여왕개미를 잡았을 때 진짜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시개미가 우글대던 출입구는 타죽은 수많은 가시개미들의 시체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아직도 개미굴의 입구에서는 공기보다 밀도가 높은 칸타르 뿌리를 태운 연기가 스멀스멀 땅을 기어 나오고 있다.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가시개미들이 저 연기에 질식해 죽었을 것이다.

또한 굴속에 칸타르를 태운 연기가 남아 있는 한 가시개미들이 다시 이 개미굴로 돌아올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전과 같은 대규모의 군사도 없고, 또 몸을 은신할 개미굴도 잃은 가시개미들은 다른 몬스터들에게 손쉬운 사냥감이다.

‘슬슬 나올 때가 되었는데.’

타르칸이 불탄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연기가 흘러나오는 개미굴을 쳐다보았다.

숨어 다니기 역시 발동해 놓은 상태다.

“나 혼자서 잡을 수 있겠지?”

여왕가시개미의 강함은 가시개미군락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100마리 이하의 소규모인 경우에는 오히려 일반적인 가시개미보다도 약하다.

개체수가 약 1만 마리 정도라면 3등급 게이트의 몬스터와 비등한 정도.

그렇다면 이번 개미굴의 여왕은 최소 3등급에서 4등급게이트 몬스터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인 아스너 제국민이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것은 3등급 게이트의 몬스터까지다.

그것도 한 개체가 강한 타입이라면 혼자서는 사냥이 힘들다.

아직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내리지 못한 그는 그가 4등급게이트의 몬스터까지 사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여왕을 기다리는 것은 여왕이 살아있다면 언제든지 이 정도의 개미굴이 다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왕개미를 잡으면 뭘 줄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타르칸이 자신의 왼팔에 장착한 [장군벌의 껍질방패]를 쓰다듬었다.

그의 주무기인 언월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재단된 되어 장착하면 속목 윗부분과 팔꿈치 아랫부분까지를 감싸는 크기로 방패라기보다는 커다란 손목방어구에 가까운 모습.

장군벌의 껍질처럼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강조가 들어간 방패는 타르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왜 이계의 인간들이 재미로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하는지 알 것도 같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굴 입구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깊은 굴의 안쪽에 웅크려 움직이지 않던 여왕이 입구 쪽으로 도망쳐 나오는 중이라는 반증이다.

‘지금 놈은 칸타르에 취한 상태. 한번 상처가 나면 아물지 않는다.’

혈액이 굳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칸타르뿌리에 장시간 노출되었기 때문에, 상처가 아무는데 평소의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타르칸이 훈련병의 파이크를 꽉 쥐었다.

이윽고 개미굴의 입구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끼에에엑.”

그리고 여왕이 등장했다.

예상보다도 더 거대하다.

타르칸보다 족히 두 배는 더 되어 보이는 키.

거대한 집게가 위협적으로 맞물려있다.

‘저 정도 되면 더 이상 가시개미라고 부를 수 없는 거 아닌가?’

그의 눈에 거대한 개미여왕 배쪽에 흰색으로 빛나는 점이 보였다.

그도 알고 있는 개미여왕의 약점이다.

스킬 [약점포착]이 발동된 것이다.

‘배의 산성액 주머니, 머리와 가슴사이 틈, 더듬이 2번째 관절….’

여왕개미 역시 가시개미와 같은 개체로 판단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그가 알고 있는 가시개미여왕의 약점이 모두 빛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새로운 정보를 얻었네. 이건 그 보답이다.’

타르칸이 연기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왕가시개미를 향해 파이크를 힘껏 던졌다.

푸와앗.

허공을 격하고 날아간 파이크가 정확히 여왕가시개미의 배를 뚫고 들어가 산성액 주머니를 터트렸다.

새어나온 산성액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산성에 내성이 없는 다른 기관들을 녹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장 치명적인 무기에 스스로가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끄아아아아- 키에에에에에엑!”

그렇게 여왕가시개미가 바닥을 구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타르칸은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기회는 한번 뿐, 타르칸은 확실하고 완벽한 한 방을 위해 철저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금 시간은 그의 편이니까.

[가이아가 당신의 치사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이 알림 끌 수는 없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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