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10화 (10/215)

장군벌

시작의 마을 서쪽에 위치한 숲.

타르칸은 새롭게 얻은 투구를 쓰고 있다.

가벼운 가죽에 철판을 덧댄 것이다.

기왕 이마를 가릴 거라면 제대로 가리라며 트렌이 준 선물이다.

그가 동쪽이나 북쪽이 아니라 굳이 서쪽숲으로 온 이유는 이곳이 가장 플레이어들의 인적이 드문 사냥터이기 때문이었다.

타르칸이 싸우는 방식은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이마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정체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

유저들의 대화를 토대로 파악한 이 시작의 섬은 생각보다 더 넒은 곳이었다.

시작의 섬은 2가지 구역으로 구분 지을 수 있었다.

바로 마을과 숲으로.

우선 처음 섬에 와서 본 해안가와 시작의 마을은 섬의 남쪽에 위치한다.

이 남쪽에는 몬스터가 출몰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길도 평탄하고, 나무나 풀들도 잘 정리가 되어 있어 다니기에 쾌적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섬의 남쪽을 제외한 모든 곳은 숲이다.

사람들은 그 숲을 임의대로 서쪽숲, 동쪽숲 북쪽숲으로 불렀지만 사실상 그 곳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숲이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동쪽과 북쪽숲에서 사냥을 했다.

서쪽숲에 이따금 유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가 출몰하기 때문이다.

유저들에게 지호(지랄맞은 호랑이)라고 불리는 그 호랑이는 검은색의 털에 마치 젤리처럼 흐물거리는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검은색에 흐물거리는 몸이라면…’

유저들의 이야기에서 연상되는 몬스터들이 몇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들의 증언(?)을 토대로 예상되는 지호의 정체는 3종.

비스트슬라임과 파도살쾡이 그리고 그림자 호랑이다.

그중 5단계 게이트 몬스터인 그림자 호랑이를 제외한다면 다른 두 종류의 몬스터는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 호랑이가 그림자 호랑이라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타르칸은 그림자 호랑이가 질색하는 칸타르 뿌리를 가루 내어 온몸에 바르는 것으로 나름의 대비를 했다.

***

짙은 갈색의 도신을 가진 언월도-땅강아지가 허공에 휘둘러진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언월도의 움직임에 따라 초록색의 자취가 남았다.

‘사실이었어.’

[언월도 – 땅강아지] (레어)

땅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언월도.

- 공격력 : 13 (+ 2)

- 스킬 : 토벽

- 인챈트 (두발독사의 독) : 낮은 확률로 상태이상 중독 발동

타르칸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의 언월도를 쳐다보았다.

그는 두발독사의 독을 인챈트 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인챈트가 뭔지 알지도 못했다.

단지 머리에 쓰고 있던 천을 언윌도의 자루와 도신사이에 묶었을 뿐이다.

즉, 두발독사의 독이 묻은 천을 무기에 묶은 것 만으로 무기의 속성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아이템에 간섭하는 능력.

‘그리고 퀘스트 생성….’

트렌이 말해준 퀘스트 생성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퀘스트 완료에 따른 보상을 준비해야 한다.

2. 퀘스트 클리어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3. 퀘스트에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퀘스트를 생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1, 2, 3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퀘스트가 생성되고 플레이어가 수행여부를 결정한다.

4.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수락하면 준비된 보상은 미지의 공간으로 사라진다.

5. 퀘스트 클리어 시 보상은 플레이어의 인벤토리로 자동으로 이동된다.

6. 퀘스트 실패 시 보상은 NPC에게로 되돌아 온다.

7. 퀘스트는 동시에 한명에게만 부여할 수 있다.

8. 대상이 길드장이나 파티장일 경우 파티의 장이 길드원이나 파티원과 퀘스트 공유가 가능하다.

타르칸은 아직 그 누구에게도 퀘스트 부여를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는 지금 플레이어를 가장하고 있는 상황.

시스템과 NPC만이 가능한 퀘스트 생성을 할 처지가 안 되는 것이다.

“일단은 레벨 5부터 만들자. 일단 전직인지 뭔지를 끝내 놓고 생각해야겠어.”

현재 그의 레벨은 2.

타르칸은 언월도에 묶은 두발독사의 피로 물든 천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사냥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레벨업이 너무나 더디다.

“꾸어억.”

거대한 개구리가 피거품을 물며 뒤로 넘어진다.

아랫배에 작게 난 상처를 제외한다면 멀쩡한 모습이었지만 거대한 개구리는 어찌된 일인지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개구리의 약점인 아랫배에 숨겨진 심장을 타르칸이 정확히 꿰뚫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안 오르는구나.”

처음 뿔멧돼지를 잡았을 때 레벨업을 했기 때문에 타르칸은 금방이라도 5레벨을 달성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몬스터 사냥을 시작한지 벌써 6시간째, 그는 아직도 2레벨에 경험치도 16%밖에 채우지 못했다.

“한 마리에 0.1% 정도라니.”

디멘션 온라인은 레벨을 올리기가 극악하기로 유명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시작의 섬만은 예외였다.

이 시작의 섬에는 피델의 버프가 있기 때문이다.

버프의 효과는 공격력 4배, 받는 데미지 70% 감소, 경험치 획득량 20배 증가라는 실로 어마어마한 효과.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피델의 버프를 받은 유저가 한 마리당 2%의 경험치를 얻을 때 타르칸은 고작 0.1% 밖에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레벨업이 더딜 수밖에.

“후….”

타르칸이 평평한 바위위에 걸터앉으며 인벤토리에서 초록빛깔의 열매를 꺼냈다.

코코나 열매다.

타르칸의 머리통 보다 더 큰 코코나 열매는 단단한 껍질 안에 달콤한 과즙과 과육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고향에서는 비싼 가격에 몇 번 먹어보지도 못했던 귀한 과일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이 시작의 마을에 있는 숲에는 열매가 열리는 유실수가 유독 많았다.

비단 과일뿐만이 아니라 약초와 독초를 비롯한 희귀한 재료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누가 일부러 심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타르칸은 열매들과 약초들을 보는 족족 즉시 채집하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그의 인벤토리 안은 숲에서 얻은 것들로 가득했다.

타르칸이 달콤 쌉싸름한 코코나 열매의 과육을 씹으며 생각했다.

‘나중에 마을에 가면 트렌 아저씨에게도 몇 개 드려야겠다. 분명히 좋아하시겠지.’

그렇게 짧은 휴식을 즐기던 그 때, 어디선가 묘하게 신경을 긁는 진동음이 들려왔다.

부우우우웅….

타르칸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린아이만한 크기의 거대한 벌이 두 쌍의 날개를 파닥이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노란색의 몸통에는 검은 줄무늬들이 위압적으로 새겨져 있고 두꺼운 외골격은 마치 갑옷을 입은 것 같았다.

여섯 개의 다리마다 자리 잡고 있는 집게들이 위협적으로 번들거리는 그 몬스터를 본 타르칸이 작게 중얼거렸다.

“장군벌….”

죽일수는 있지만 상대하기 껄끄러운 대상은 얼마든지 있다.

장군벌도 그중 하나다.

타르칸이 코코나열매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장군벌이 코코나열매의 냄새를 맡고 찾아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액티브 스킬 숨어다니기를 활성화합니다.]

그는 유일한 액티브스킬인 숨어다니기를 활성화했다.

마나나 스태미나를 소모하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발각될 확률을 대폭 낮추어주었기 때문에 상대하기 싫은 몬스터를 피하는 데에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했다.

단점은 장시간 사용 시 정신력감소 디버프가 생긴다는 것.

정신력은 스텟창에는 나타나지 않는 수치인데, 스태미나 소모량이나 각종 디버프에 대한 저항력에 영향을 주는 스텟이었다.

“브우우우우우웅”

거슬리는 소음과 함께 장군벌이 다가온다.

몬스터게이트는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다수의 약한 몬스터를 소환하는 게이트.

소수의 강한 몬스터를 소환하는 게이트.

게이트의 단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다수의 약한 몬스터들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다수의 약한 몬스터가 무서운 것은 무리를 이루었을 때다.

무리를 이룬 놈들은 분업과 협력의 힘으로 자신보다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들을 노예로 부리곤 한다.

반대로 소수의 강한 몬스터는 말 그대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놈들에게 혼자서 같은 등급의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군벌은 명백하게 후자에 속한 몬스터.

두껍고 질긴 외골격에서 오는 방어력과 그 방어력 만큼이나 엄청난 식욕으로 유명한 몬스터다.

“음?. 잠깐만.”

장군벌의 식탐에 대해 생각하던 타르칸의 걸음이 멈추었다.

“장군벌이 있다면… 그놈들도 있다는 거잖아.”

장군벌의 존재를 확인한 타르칸의 머리가 바삐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르칸의 계획이 급히 수정되었다.

그가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고 장군벌을 사냥할 준비를 시작했다.

“브우우우우웅”

코코나열매의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날아온 장군벌의 집게들이 위협적으로 맞물렸다.

먹음직스러운 열매 앞에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서있는 인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군벌이 인육은 즐기지는 않는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타르칸이 실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언월도를 다잡았다.

처음부터 싸움을 생각했다면 코코나열매를 미끼로 기습을 노려봤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 얼마나 단단하지 한번 볼까?”

어차피 놈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아스너 체술에 실린 보법을 이용하여 달려 나간 그가 그 속도를 살려 언월도를 그대로 장군벌에게 휘둘렀다.

큰 반월을 그리는 언윌도의 궤적을 따라 옅은 초록빛이 일렁였다.

깡-

장군벌의 집게에 부딪친 언월도가 마치 강철을 때린 것 같은 소리와 함께 튕겨져 나왔다.

“큭.”

“부우우우우웅”

장군벌이 두 쌍의 날개를 이용하여 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장군벌의 집게다리가 타르칸으로 노리고 날아든다.

하지만 타르칸은 장군벌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훙-

까앙!

쉴 새 없이 휘둘러지는 언월도가 연신 장군벌의 몸체를 두들겼다.

장군벌은 공중에서 조금 비틀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타격이 없는 모습이다.

‘내가 이래서 이놈하곤 싸우고 싶지 않았다니깐.’

사실 두껍고 단단한 외골격을 가진 장군벌을 상대하기에 언윌도는 적합한 무기가 아니었다.

장군벌을 상대할 때는 외골격을 무시하고 속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둔기를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물론 타르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장군벌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끊임없는 공격으로 놈의 신경을 흩트리는 것이 첫 번째.’

스팟-

어김없이 장군벌의 몸체를 때린 언월도가 뒤돌아가나 싶기가 무섭게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섬전과 같이 장군벌 집게다리 사이를 찔렀다.

촤악!

그렇게 네 개의 날개 중 하나가 찢어지자, 장군벌은 무거운 몸통을 지탱하지 못하고 허공에서 크게 휘청거렸다.

‘날개를 공격해 기동력을 뺏는 것이 두 번째.’

놈이 두 쌍의 날개를 접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뒤쪽의 네 개의 다리로 땅을 짚어 일어서니 타르칸의 허리 정도의 높이다.

놈은 남은 두개의 큰 집게를 타르칸을 향해 치켜들었다.

몬스터의 판단치고는 훌륭한 것이었다.

날개를 접어 껍질 안으로 넣은 이상 타르칸의 언월도가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타르칸이 더 이상 언월도로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인벤토리”

타르칸이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을 꺼내었다.

갈색의 거친 가죽 중앙에는 걸쭉한 하얀기름이 한가득 놓여있다.

뿔멧돼지의 가죽에 싸여있는 것은 바로 끌라파 오일.

식물에서 추출한 인화성 기름이다.

타르칸이 주저하지 않고 뿔멧돼지의 가죽을 장군벌에게 던졌다.

이미 기동력을 잃은 놈은 더 이상 피할 방법이 없었다.

하얀 끌라파 오일이 걸쭉하게 장군벌의 외골격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세 번째 단계지.”

까앙!

언월도-땅강아지와 장군벌의 외골격이 다시 한 번 충돌했다.

단단한 외골격과 언월도 사이에서 발생한 마찰이 인화성인 끌라파오일을 타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화르르륵-!

장군벌의 몸통를 타고 흘러내리던 끌라파오일이 화염에 휩싸였다.

“끼아아아약.”

장군벌이 몸을 뒤틀며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끌라파 오일의 양이 많지는 않았던 만큼 불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하다.

장군벌은 그 만큼이나 열에 약한 몬스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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