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PC 라불리었다-8화 (8/215)

시작의 마을

다음 퀘스트인 두발독사 사냥 역시 어렵지 않았다.

독사의 몸통에 붙어 있는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두 다리가 두발독사의 본체인 것을 타르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축하하네. 이렇게 수련하다보면 나의 버프 없이도 두발독사를 잡을 수 있을 걸세. 자 여기 선물일세.”

물론 그들은 버프 따위는 받은 적이 없었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도망친다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버프가 통하는 곳은 이 시작의 섬뿐이야. 섬을 벋어나면 버프가 해제 되니 주의 하게. 젊은 모험가들이여. 허허허”

피델이 수염을 흔들며 호쾌하게 웃었다.

초보자의 신발에 이에 갑옷까지.

피델에게서 회색 가죽 갑옷을 받아든 제이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타르칸을 쳐다보았다.

“너 정체가 뭐냐?”

“정체라니 무슨 소리지?”

속으로 뜨끔했던 타르칸이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게임은 처음 하는 척 하더니. 혹시 부캐야?”

“부캐?”

타르칸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아. 디멘션 온라인에 부케가 없지 참. 주민등록번호 당 캐릭터하나. 그럼 혹시 리세마라중인 금수저?”

“무슨 소리인지.”

“아니면 뭐. 현실에서 무술을 오래 배웠거나….”

비단 디멘션 온라인뿐만 아니라 가상현실 게임들은 현실의 능력이 어느 정도 게임의 캐릭터에도 반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디멘션 온라인은 극도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만큼, 현실의 능력이 게임에 반영되는 것을 방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한데.”

뿔멧돼지나 두발독사는 애초에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들이 아니다.

플레이어들은 피델의 버프를 받고 나서도 한참을 고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몬스터들을 타르칸은 혼자서 단 일격에 사냥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버프도 받지 않은 채로.

제이가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타르칸의 규격을 벗어난 강함은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었다.

‘젠장. 이러다간 유니크 등급은 고사하고 레어 등급의 직업도 못 얻겠는데.’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로열나이트는 그가 한 사람 이상의 파티원을 전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즉 로열나이트로 전직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제이가는 로열나이트 외에 그가 알아봐두었던 다른 직업들의 전직 방법을 떠올리려 끙끙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타르칸이 담담히 말했다.

“보아하니 파티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네.”

타르칸으로서는 제이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뭔가가 뜻대로 안 풀리고 있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타르칸의 말에 제이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것을 동의라고 여긴 타르칸이 먼저 파티 탈퇴를 선언했다.

“파티 탈퇴.”

[파티에서 탈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지체없이 몸을 돌려 NPC 피델을 쳐다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죠?”

“이제 시작의 섬에 있는 시작의 마을로 가야 한다네. 젊은 모험가여. 그곳에서 레벨 5가되면 전직 할 수 있지.”

피델이 자신의 옆에 나있는 오솔길을 가리켰다.

“이 길을 따라가면 된다네. 하지만 시작의 마을에서는 주의 하게. 그곳의 NPC들은 나와는 달리 본인이 NPC라는 자각이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피델이 껄껄껄 웃었다.

어설프게 찌그러진 방패와 날이 서있지 않은 검이 쩔그럭 거린다.

“그럼 이만.”

타르칸은 제이가에게 그 말만을 남기고 황급히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돌아선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실수 했다. 이계의 인간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어.’

뿔멧돼지나 두발독사 모두 2단계 게이트의 몬스터.

마나를 사용하지 못할 때의 그라면 생사를 걸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나를 사용할 줄 안다면 15살의 아이도 2단계 게이트 몬스터 한 마리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다. 물론 일격에 참수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뿔멧돼지와 두발독사 한 마리쯤 잡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무한히 성장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강한 건 아니다. 라는 건가.’

타르칸은 길을 따라 걸으며 그가 얻은 성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성장의 가능성만으로도 무서운 존재들이다.’

그는 어느새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

특정한 성취가 구체적인 보상으로 즉각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약점포착]

가장 효율적인 공격은 상대의 약점을 치는 것.

- 적의 약점을 발견합니다. 레벨에 따라 약점 발견 확률이 상승합니다.

- 한번 포착한 약점은 다른 개체에도 적용됩니다.

사실 큰 쓸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미 대부분의 몬스터의 급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점포착은 타르칸이 뿔멧돼지의 목을 자르는 순간.

[시스템이 당신에게 감탄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얻게 된 스킬이다.

출력된 메시지는 업적 [열정의 불씨]를 얻었을 때와 같다.

[열정의 불씨]의 효과인 물리 공격 시 일정 낮은 확률로 스태미나, 마나, 체력 1% 회복은 사실상 쓸데가 없었다.

발동확률은 1% 미만.

100대를 때리면 한번 발동.

그마저도 스태미나와 마나와 체력이 따로 적용되었다.

한번 발동으로 3가지 수치가 모두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발동확률이 각기 존재했던 것이다.

한번에 3가지가 모두 회복 될 수도 있지만 극히 낮은 확률이었다.

‘뭐… 없는 거 보다야 좋겠지.’

업적은 따로 장착할 필요 없이 획득한 것만으로도 효과가 발동했다.

단기전에서의 효과는 미미할지라도 장기전에선 가뭄의 단비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무기는….’

타르칸이 짙은 갈색의 도신을 지닌 자신의 언월도를 바라보았다.

[언월도 – 땅강아지] (레어)

땅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언월도.

- 공격력 : 13

- 스킬 : 토벽

언월도 땅강아지는 타르칸이 전투의 방에서 얻은 레어등급의 무기다.

공격력은 아스너 제국의 창보다 낮지만 무기 자체에 토벽이라는 스킬이 달려있다.

토벽은 원하는 장소에 1m 정도 높이의 흙벽을 세우는 스킬로 활용방안은 무궁무진했다.

***

타르칸이 자신이 새롭게 얻은 아이템과 스킬들은 살펴보는 동안 그는 어느새 작은 마을 앞에 도착해 있었다.

작고 아담한 마을에 족히 수천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오우….”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과정을 완료하였습니다.]

[시작의 섬의 모든 튜토리얼은 언제든 다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오랜만에 시스템 메시지가 그의 발아래에 나타났다.

[전직이 가능한 레벨은 5 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디멘션 온라인의 세계를 즐겨주십시오.]

[시작의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적게 잡아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마을을 채우고 있었다.

모두 똑같은 회색 옷을 입고 바글거리는 광경은 어딘가 사람을 질겁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이계의 인간들….’

이세계의 인간들의 이마에는 기묘한 문양이 박혀 있다.

이세계의 인간이라는 표식.

그들의 말로는 계정코드라 부르는 것이었다.

타르칸이 이마를 가리기 위해 머리에 둘러쓴 셔츠를 매만졌다.

두발독사를 사냥할 때 놈의 피가 튀어 더러워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다.

이곳은 수많은 이세계의 인간들이 군집해 있는 곳.

절대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 지급받는 회색의 옷에 피델이 준 회색 가죽 갑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몇몇은 기본 복장이 아닌 다른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사냥 도중 운 좋게 장착아이템을 얻은 이들이었다.

곧 레벨 5가 되어 이 시작의 섬을 떠날 사람들이기도 했다.

‘레벨5가 되면 시작의 섬 마지막 퀘스트를 수행하고 본토로 떠난다고 했지? 그랑대륙으로.’

타르칸의 세상은 3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지의 얼어붙은 황무지. 카스카르.

몬스터에게 빼앗긴 땅. 올트리아.

그리고 아직은 인간이 남아 있는 그랑.

타르칸의 고향은 그랑대륙의 강성한 제국인 아스너 제국의 변방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니까 갈 수 있다는 거지? 레벨 5가 되면. 전직이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야.’

사실 그는 귀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는 않다.

그에게 아스너 제국은 카스카르의 얼어붙은 땅만큼이나 차가운 곳이었으니까.

어머니가 화형당할 때에도, 처절했던 그의 소년기 때에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랑대륙이 그가 서 있는 이 이질적인 공간보다는 낫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세계인들은 그에게는 완전히 미지의 존재들이니까.

‘지금 당장 이곳에만 천명이 넘는 이계의 인간들이 있다. 그리고 며칠 후면 이들 모두가 그랑대륙으로 넘어가겠지. 벌써 얼마나 많은 이계인들이 그랑대륙에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인해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타르칸은 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이계의 인간들은 몬스터들을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몬스터를 사냥한다는 것 자체는 나쁠 것이 없는 일이다.

설사 그것이 오로지 재미를 위한 것뿐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한 존재들은 또 아니야. 이 이계의 인간들은 그랑대륙의 인간과 한없이 비슷하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성향 역시도.’

무한하게 성장하며 또 죽일 수 없는 존재들.

그들이 인간에 가깝다는 것은 절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스텟과 스킬… 그리고 레벨이라는 것을 통해 성장 한다라….’

타르칸은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스텟이라는 것의 수치들은 정확한 건가? 애초에 이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까지 믿을 만한 건지도 확실하지 않아.’

그러고 보면 한 인간이 가진 힘을 근력, 민첩, 체력, 마력 이 네 가지 수치만으로 표현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근력만 보아도 단순근력과 근지구력, 근육의 유연성 등 다양한 능력들의 총합이라 보아야 한다.

근력과 민첩, 그리고 체력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더 복잡해진다.

명확한 경계를 세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르칸이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그는 어느새 시작의 마을의 중심가에 도착했다.

마을의 중심에는 마을의 규모에 비해 큰 광장이 있었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회색 갑옷을 입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상점가를 자연스럽게 어슬렁거리고 있다.

건물 안에는 이마에 아무런 표식이 없는 자들, 즉 NPC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피델이 주의하라고 했었지? 자신이 NPC라는 것을 모른다고 했던가?’

NPC들은 모두들 어딘가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항상 껄껄 웃던 피델과는 사뭇 다른 모습.

피델과 제이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설정’ 해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왜 NPC들에게 이런 ‘설정’을 해놓은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기왕이면 피델처럼 웃고 있는 편이 더 보기 좋지 않는가.

“응?”

그러던 중 타르칸은 한 대장간을 보고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깔끔한 대장간이다.

덩치 좋은 대장장이가 연신 풀무질을 하고 있고 대장간의 입구에는 이계의 언어로 [빈 모루 대장간]이라 쓰여진 간판이 걸려있다.

타르칸의 눈의 잡아끈 것은 그 간판위에 그려진 문양이었다.

칼을 물고 있는 독수리.

바로 아스너 제국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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