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하아···.”
‘예외’라는 상황이 시현에게 일어났다.
아까 죽었던 그곳 바닥에 누워있었고, 오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부활.
현세에서 눈을 뜬 시현은 인지부조화에 걸린 듯 머리가 무거웠지만 상황파악이 우선이니만큼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은 죽기 전 그대로였고, 주변에서 일렁거리던 기운은 현자리움 타운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전에 확인부터 먼저···.’
뭐에 쫒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현은 다급하게 무전을 요청했다.
신이 말했던 ‘헌신’이라는 것.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헌신과 관련 있다면 그건 당연히 성녀 지원이리라.
“지원이, 지원이 어디 있습니까?!”
-의, 의장님? 의장님! 이게 어떻게 된··· 분명 아까 두 눈으로 보았는데···
“설명하자면 깁니다. 일단 지원이부터···”
-의장님···. 지원 씨는 방금 전에···.
헌신의 또 다른 능력.
말 그대로 헌신.
자신의 목숨으로 남을 살리는 것.
‘아아···.’
그녀는 목숨을 바침으로써 시현을 살리고 죽었다.
성녀를 놓치지 말라는 예언이 이걸 뜻하는 거였나?
어째서 그녀는 시현을 살린 것일까?
고작 애인사이였을 뿐인데 어째서······.
“크윽.”
시현은 타오르는 가슴을 쥐었다.
만약, 그녀가 정녕 헌신을 해서 자신을 살린 것이라면.
대의를 위해서였든 사랑을 위해서였든, 이유가 어찌되었든 시현이 해야 할 일은 사탄을 끝장내야한다는 것.
그뿐이었다.
-의장님···?
“경과 보고하세요.”
하아- 떨리는 듯한 숨소리가 전해졌지만 이내 차분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민간인 헌터 할 것 없이 모두가 현자리움 타운 지하벙커로 들어온 상황입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요. 사탄은커녕 놈의 하수인도 못 죽인 상태라···
“한 명도 밖으로 못 나가게 하세요. 그곳이 가장 안전할 테니.”
확장공사 이후 무려 3500만평까지 규모를 넓혔던 현자리움 타운의 지하벙커다.
수천만 명이 모두 숨을 수 있을만한 공간인 셈이다.
즉, 최후의 보루.
놈들로부터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럼 놈들은···
“내가 책임지고 끝내겠습니다.”
결연의 찬 의지로 발을 뻗었다.
.
.
.
‘답은 스피드밖에 없다.’
무릇 생명체란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는 존재다.
사탄 또한 마찬가지.
놈이 마음을 먹기 전에 한발 빠르게 움직여야한다.
승부는 아주 짧은 찰나 간에 갈릴 것이다.
다시 말해, 전적으로 시현이 불리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 틈을 노린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얘기.
그러기에 앞서 나지막이 말했다.
“1초 뒤, 기력봉인.”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초 뒤, 무언가를 향해 기력봉인술이 발동될 예정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드-응.
“텔레포트.”
스스슥.
-······!
사탄 앞에 떡하니 나타난 시현의 모습에 사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가 부활’은 그로서도 쉽사리 할 수 없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당황한 아주 잠깐 사이.
0.0000001초라도 좋았다.
그 틈에 놈에게 기력을 제공해주는 ‘보물’을 봉인한다.
물론 언령으로써 해야 하지만 이미 발동을 해놓았다.
1초 전에, 마치 예약전화를 하는 것처럼.
신호가 울린다.
무영창으로.
두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승부를 가른 시간 아주 짧은 찰나.
언령에 따라 놈에게 도사리고 있던 기력이 모두 보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대로 한 번 기력이 돌아가게 되면 시현의 봉인술이 끝날 때까지 결코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지금이 사탄이 기력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놈은 과연 ‘왕’답게 임기응변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썼다.
시현에게 다시금 죽음을 선사할 공격을!
-죽어라.
하지만,
“쿨럭······!”
장기가 터지고, 피와 살이 찢기며 뼈가 산산조각날 정도의 치명상이 시현에게 가해졌지만 즉사시키진 못했다.
기력이 모자란 것이다.
그리고 사용할 수 있는 기력은 거의 다 보물로 돌아가 봉인된 상태!
-그오오오오오오오오오!
아주 간발의 차로, 시현은 목숨을 부지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현의 차례.
“커흑···.”
정신을 부여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완치.”
솨아아아아아아-
몸이 치료되고 있다.
뼈가 다시 구조를 갖추고 그 위에 살이 붙는다.
혈색이 돌고 기력 또한 회복되었다.
됐다.
이로써 사탄은 무기력 상태, 놈에게 권능을 사용할 기력 따윈 없었다.
반면에 시현은 거의 완치된 상태.
하지만 생각했던 대로만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느새 사탄이 하수인들의 기력을 모조리 흡수하여 역습을 가해온 것이다.
시현의 몸이 완치될 동안, 그 일련의 과정이 모두 이뤄졌고 시현은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놈의 습격이 단순한 물리적 공격이었다면 다시 완치하면 그만이겠지만···
-포켓소멸.
사탄은 최선의 수를 썼다.
포켓소멸.
하수인들의 수가 고작 몇 만 마리밖에 되지 않았기에 흡수한 기력으로 할 수 있는 것 중 최선은 바로 시현의 포켓을 소멸하는 것이었다.
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크헉···.”
더 이상 시현에게 포켓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걸로 스코어는 일대일.
둘 모두 사기적인 권능을 내려놓고 육탄전을 벌여야했다.
하지만 시현은 오히려 상관없다는 듯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했다.’
그렇다.
언제라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육체적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던 시현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지만 그건 단순 시현의 착각이었을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온 힘을 끌어 모아 놈의 실체를 향해 권격을 날렸지만 무참히 막히고 말았다.
사탄은 도리어 이 모든 걸 노렸다는 듯 위풍당당한 기세로 역공을 가했다.
풍압.
과으으으으응!
“커흑···.”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일까?
아니면 용기가 너무 가상했던 건가?
하기사, 수십만 년을 강해지기 위해 살았던 사탄이 기력하나 쓰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에게 질 리가 없었다.
그렇게 결국, 엎치락뒤치락했던 전투의 결과는 한쪽으로 다 기운 듯 보였다.
이젠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시현 역시 절망스러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헌신을 해서라도 자기를 살려준 지원을 생각한다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저항하리라!
다시금 결의를 다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동시에 아우성을 터트렸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부모님의 헌신.
다 함께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헌터들, 지원의 헌신 등.
시현에게 헌신한 것은 지원뿐만이 아니었다.
그 모든 염원을 담아 마지막으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는 끝난 줄 알았던 헌신이, 시현의 눈앞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
-저건······.
기력덩어리.
인간들의 기력이 땅바닥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지하였다.
지하벙커로부터 막대한 양의 기력이 끊임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지하라면···.’
치직.
-의장님! 지하에 대피한 모든 헌터들이 기력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아···.’
느껴진다.
놈을 쓰러트려달라는 모두의 염원이, 시현을 향한 헌신이!
됐다. 이걸로 역전.
시현에겐 다시금 언령을 사용할 수 있는 기력이 주어졌다.
하지만 사탄에게는 전혀 없었다.
지구뿐 아니라 헬리움에 존재하는, 전 차원의 존재하는 몬스터는 거진 죽었으니까.
녀석은 문자 그대로 빈껍데기뿐!
“으아아아아아아아-!”
포켓은 봉인됐지만 기력이 있기에 언령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수천만 명의 모든 기력이 시현에게로 모여들었다.
사탄이 앓는 소리를 냈지만 이미 늦었다.
“마무리.”
최후의 일격.
“만술萬術 All Skills.”
인류에게 존재하는 모든 스킬이, 막대한 에너지로 융합되어 뻗어나갔다.
시커먼 하늘을 향해!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아무 것도 남지않은 메마른 땅, 시현은 그곳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사탄이 소멸함과 동시에 현자리움 타운은 붕괴되었다.
물론 시현이 의도했던 대로 지하벙커에 숨어있던 사람들에겐 피해가 가지 않았다.
저벅-
누군가가 시현의 시야에 들어섰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류건이었다.
한 번도 저런 웃음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매우 기쁘다는 듯 싱긋 웃으며 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에 그거, 류건 씨 작품이었죠.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 작품은요, 무슨. 모두가 힘을 합친 것뿐입니다.”
“그럼 이제··· 다 끝난 겁니까···.”
“예. 제 손 잡으시죠.”
조심스레 시현을 부등켜세운 류건은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장님··· 그런데 포켓이···”
파괴되었다.
아니, 소멸됐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리라.
“···이젠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됐네요.”
뭐랄까.
아쉬우면서도 홀가분하달까?
물론 언령의 권능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외부의 기력만 있다면 언제든 사용가능했다.
더욱이 사탄이 남기고간 ‘기력의 보주’만 있어도 환골탈태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새 육신으로 태어나 포켓을 가지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후···.”
안 그래도 사탄의 사체가 있던 자리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현에게 앗아갔던 권능의 열쇠, 육체의 열쇠, 차원의 열쇠부터 기력의 보주 그리고 구슬까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다시 회수하기 위해 시현이 발을 뗀 순간이었다.
스슥-
시키지도 않았건만 어느 틈에 류건이 이미 손에 가득 쥐고 있었다.
“언제···?”
“방금 텔레포트로 다녀왔죠.”
“역시 일처리 하나는 기가 막히네요···. 어···?”
텔레포트로 다녀와?
류건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러고보니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까 분명, 류건이 놈들의 우두머리를 ‘사탄’이라고 직접 지칭했었다.
시현이 사탄이라고 알려준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놈이 사탄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지?
그게 왜 이제 와서 생각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믿고 싶지 않아···.’
설령 그게 사실이더라도 차마 믿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혹하게도 시현의 짐작은 현실로 다가왔다.
푸욱-
이게 어찌된 일인지 류건의 바짓단에서 튀어나온 날카롭고 두터운 꼬리가, 시현의 몸을 쿡 찔렀다.
그리고 사악한 광소가 흘러나왔다.
“흐으으.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비틀어 급소를 피하다니. 이렇게 육체능력이 좋았던가? 이미 지친 상태여서 그대로 죽을 줄 알았는데. 충분히 칭찬해줄만한 육체로군.”
류건의 얼굴이 사악하게 변한다.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뻗어져 나온다.
그와 동시에 온몸이 검붉게 변색되더니 몸집이 거대해졌다.
얼굴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닌, 굳이 말하자면 꽤나 잘생긴 듯한 악마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대강 이해한 시현은 씁쓸한 실소를 터트렸다.
“하-.”
제일 믿었던 그에게 배신당했다는 건,
그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속았다는 건,
말 그대로 비참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어쩐지 2위계가 빈다 했더라니···.’
1위계 사탄. 3위계 벨제뷔트. 4위계 위리놈.
하지만 아직 2위계를 만나지 않았던 시현은, 그 존재를 지금 만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