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98화 (98/100)

# 98

류건의 목소리를 추적해 도착한 곳은 시현의 삶이 제대로 시작되었던 지점, 파주시 현자리움 타운이었다.

전장에 바로 합류한 시현은 곧장 류건의 보고를 받았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초월적인 존재’가 나타나 10분 만에 유럽을 박살냈고, 그 다음은 30분 만에 미국을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초월적 존재라는 건 사탄을 뜻하는 거겠지.’

과연 벨제뷔트의 말처럼 사탄은 초월적인 존재인 것인가?

지금껏 보았던 신화급의 몬스터들이나 위리놈이 보인 파괴력과는 수준이 달랐다.

근 2시간 만에 그 많은 곳을 박살내다니.

‘타이밍이 하필···. 젠장할.’

어째서 지금 강림한 것인가?

어쩌면 시현이 더 강해지기 전에 강림을 서두른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여기가 끝이라는 거다.’

파주 현자리움 타운.

시작과 끝을 봐야하는 장소였다.

“그럼 개성의 기력발전소는요?”

“모두 박살났습니다. 방금 얻은 정보만 해도 인구의 60%가 넘게 희생당했으니···.”

“60%라······.”

찰나, 그런 말을 무덤덤하게 말하는 류건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헌터들은요?”

“그나마 살아남은 헌터들이 죄다 한국으로 대피하는 중이라 많이 살아남았습니다. 대략 2-3천만 정도 될 겁니다.”

전 인류가 힘을 합쳐 모였다는 것, 그나마 희소식이었다.

“혹시 놈과 대화가 있었습니까? 목적이라던지···”

“그것도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무작정 파괴만 하고 다니니··· 마치 경기장에 나서기 전 권투선수처럼 몸을 푸는 것 같더군요.”

하긴,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시현의 목숨과 보물을 노리고 왔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내가 가야하는 건 매한가지군.’

“놈의 현재 방향은요?”

“점점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놈만 있는 게 아닙니다. 최소 수만 마리의 하수인들을 대동하고 있는 것 같던데···.”

하수인들이 함께 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다.

여태까지 줄곧 그래왔으니까.

그나마 놈들이 이렇게 직접 와주다니,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이었다

직접 찾아 나설 필요는 없으니까.

“헌데···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별장에도 안 계시던데.”

“할 일을 하고 왔죠.”

시현은 구체적으로 말할 의향이 없다는 듯 대답하지 않고 본사를 나섰다.

침울해 보이는 헌터들이 방벽을 쌓듯 타운을 보호하고 있었다.

보호라기보다는 몸을 숨기는 것이 맞겠으나, 아무튼 이 모두가 마지막까지 함께할 사람이었다.

동시에 시현이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인류이기도 했다.

여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공격은 성공했다. 이제 방어만 하면···.’

그때였다.

“오빠!”

저 멀리서 시현을 알아보고 달려오는 지원이었다.

무작정 펜스를 뛰어넘어 오더니 시현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그러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흐윽···. 오빠···.”

“지원아.”

한시가 바빴기에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줄 시간은 없었다.

“선(善)이라는 권능. 어때? 몸에 좀 익혔어?”

오랜만에 재회하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라니.

보통의 연인사이였다면 진저리가 날 수도 있었지만 지원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몸에 안 익혀도··· 다 받아들여졌어요···.”

헌신.

비단 권능을 넘겨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권능의 이해도를 완전히 전이해주기 때문에 따로 익힐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 잘 됐다. 그 힘으로 놈들을 모조리 끝장내. 놈들에겐 네 능력이 제대로 먹히니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 말뿐이에요···?”

뭔가 다른 말을 기대했다는 듯 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대충 상황을 눈치 챈 시현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구우우우우-

재회한지 이제 겨우 1분.

더 이상 여유부릴 시간은 없었다.

시현은 미처 끝맺지 못한 대화를 뒤로 전장에 나섰다.

.

.

.

저걸 뭐라고 형언해야할까?

머리엔 두 개의 뿔, 여덟 개의 날개.

검은 흉상에 주변에 모든 것들을 불태워버리는 오오라.

시현의 눈앞에 악마의 형상이 있었다.

“스캔.”

······.

압도적인 위압에 어리짐작은 했지만 아예 스캔이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다.

녀석의 강함도 강함이었지만, 그 전에 일단 시현의 기력이 놈에게 닿지를 않았다.

자연적으로 거부당한 느낌이랄까.

‘정말 신적인 존재인가···.’

그럼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 신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시현인데.

이 정도 차이라면 놈의 적수가 될 리 만무했다.

-사아아아......

지구를 통째로 잡아먹을 만치 거대한 녀석이 시현에게 시선을 던졌다.

사탄.

육안으로 보이는 육체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영혼 따위가 전방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실로 모순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악의 근원에게 저런 황금빛이라니.

복부에 무언가가 박혀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게 뭐지?’

설마 보물?

그 편이 가장 가까웠다.

사실 아무렴 상관없지만.

저것이 무엇인들 지금에 와서 변하는 건 없었다.

놈이 얼마나 강하든 어차피 끝을 보고자 이곳에 온 것이고, 시현의 목적은 놈을 끝장내는 것이니까.

스윽-

시현이 놈에게로 도약하고자 준비를 다졌다.

-소오오오오······

그 와중에도 놈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실체라기보다는 마치 기계 같았다.

혹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강림을 서두른 탓에 완전한 육체를 구현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것이리라.

파앙!

놈의 형상을 향해 짓쳐든 시현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있는 힘을 끌어 모아 놈에게로 일격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언령을,

“포켓 봉인.”

먼저 놈의 포켓을 봉인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터.

과감한 시도는 성공으로 돌아갔다.

진정한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한 수가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던가?

시현이 한 발 빨랐으며 놈의 포켓을 봉인 할 수 있었···

‘아니···.’

틀렸다.

생각의 오류.

놈에게는 육체가 없는데 어찌 포켓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럼 어떻게···’

번쩍!

그 순간, 형상의 한 가운데에서 한 차례 섬광을 일어났고, 그곳으로부터 이미 거대한 양의 기력이 쏟아져 나왔다.

간발의 차로 시현은 언령을 미처 끝맺지 못하고 결국,

“!”

몸이 멈춰버렸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포켓이 봉인되고 모든 사고가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놈이 사악한 목소리를 냈다.

-지옥으로 떨어져라.

슥.

마치 언령이 발동되듯 시현에게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지우개로 지워지는 것처럼 손발을 시작으로 온몸이 사라져갔다.

시현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힘의 차이인가?

아니면 신과 피조물의 사이의 놓인 거대한 벽?

시현에게 뼛속까지 불타오르는 지독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바로 죽음.

인류의 영웅 시현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

.

.

현세에 미련이 남은 영혼은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망령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고 하던데.

어째선지 시현은 망령이 되기는커녕 오롯이 영혼이 되어 어딘가를 떠돌아다녔다.

그저 한 자락의 전류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그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뿐이었다.

‘다 끝난 건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는 사후세계?

지옥? 천국? 어디로 떨어지려나.

지금쯤 지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지고 있던 보물들은? 그건 사탄이 다 챙겼겠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무한히 반복하던 어느 순간이었다.

누구로부턴가 생각 속에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깨어나거라.

-······?

위화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시지.

죽어서 그런가?

충분히 놀랄 법도 했지만 시현은 차분하게 생각으로 물었다.

-여기는 어딥니까.

-무슨 연유에서 나의 존재를 묻지 않는 것이냐?

-그야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 밖에 없으니까요.

신. 절대자. 창조주.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 존재가 틀림없었다.

인간을 만들어 지구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몬스터와 엔델 족 그 외에 수많은 생명체를 만들어 현세를 어지럽힌 장본인.

그가 분명했다.

-나에게 회의감을 느끼는 것이냐.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가 무슨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당신을 만나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좋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겠다. 먼저, 너희들은 내가 만든 피조물이다.

그런데, 라며 어조를 걱정스러운 투로 바꾸며 메시지를 이었다.

-네가 알고 있는 ‘몬스터’라는 종족이 있었지. 아주 오래 전에 정성을 다해 창조한 피조물인데, 그중 사탄이라는 존재가 결국 일을 내고 말았어.

-일이라는 건···

-녀석이 내가 퍼트린 보물을 모두 모으게 된 것이야.

-······.

아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보물이라면··· 구슬과 열쇠···? 그건 몬스터들의 보물이 아니었습니까?

-아니, 애당초 내가 만든 피조물 중에 하나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자 여러 차원에 퍼트린.

-아... 그런데요?

-헌데 사탄이라는 녀석은 절대자의 영역인 나에게 도전하고자 오랜 세월을 보물에 목숨을 걸었어. 그 결과 아주 훌륭한 능력을 얻게 되었지.

-권능···?

-그래. 녀석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는 권능을 지녔지.

시현이 언령이라면, 사탄은 그보다 한 수 위.

기력이 받쳐주는 한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최고의 권능이었다.

-하지만 놈에게는 육체가 없었는데··· 어떻게 능력을···

-아직 네가 찾지 못한 보물이 있다.

-아···.

굳이 듣지 않아도 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사탄의 형상에서 빛나고 있던 황금빛의 그것.

막대한 양의 기력이 도사리고 있던 그것!

-무한대에 가까운 막대한 양의 기력을 항시 가지게 해주는 보물, 보주라 불리는 그것.

-기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보물이군요.

-동시에 절대자의 흉내를 낼 수 있는 보물이기도 하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기력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건, 적합한 권능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거니까.

지구를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든 건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혹시··· 인간에게 권능을 준 것도···?

-나일지어다.

-미친. 그럴 바엔 차라리 놈들을 없애줬으면 될 거 아닙니까!

-인간, 몬스터. 그게 무엇이든 나는 나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다. 권능을 하사한 것은 차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안이었을 뿐.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즉, 신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생전 네가 겪은 일이지.

-아아······ 헌데 왜 나에게 이런 걸 다 알려주는 거죠? 나에게 바라는 게 있습니까?

-바라다니. 너는 죽은 영혼. 나에게는 죽은 영혼의 미련을 달래줄 의무가 있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있다면, 너는 사후세계가 아닌 구천을 떠돌게 될 지어다.

이로써 신이 해야 할 일은 끝났다.

그리고 이제, 망령이 되어 구천을 떠돌지, 모든 미련을 내려놓고 사후세계로 떠날지는 시현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아아아···

하지만 그 누가 이 문제를 쉽사리 결정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허했다.

과연 뭐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정녕 살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그래. 원래라면 불가不可하지. 전 차원의 모든 영혼이 지금 너와 똑같은 결정을 하고 있는데 어찌 너에게만 기회를 줄 수 있겠는가? 죽음 앞에서는 만물이 평등할지어니, 누구라고 다를 것은 없다.

단 한 번의 기회만 더 주어진다면 이길 자신이 있는데.

신은 잔혹하리만치 단호했다.

더 이상 희망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그때.

-하지만 충분한 대가가 치러진다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방금은 불가하다고···

-세상만사에는 ‘예외’라는 게 존재하는 법.

실제로 입은 없었지만 시현은 거친 호흡을 내뿜는 것처럼 다급하게 말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죠?

-그것은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을 받아야하는 것일 뿐.

-선택······?

-그리고 지금 넌 선택을 받았다. ‘헌신’의 선택을.

잠깐, 헌신이라면···.

부우우우우우웅-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시현은 돌아갔다.

지구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