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위리놈이 강림하던 그날은 인류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날임에 부정할 수 없었다.
종말이 한걸음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는 부활교의 예언이 전국적으로 전파된 것만 봐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전 인류는 죽음을 예감하여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다.
그 짧았던 하루, 생필품 사재기를 비롯하여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다음날도 여전했다.
곧 국가간의 핵전쟁이 일어날 거란 말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리고 또 다음날 역시 매한가지.
불안감은 장작 위의 불길처럼 좀처럼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흘렀다.
피해자들의 상처는 국가적 차원의 보상과 현자리움의 지원으로 점점 아물어갔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서서히 종식되어갔다.
그러나 길거리엔 여전히 종말이 다가온다는 부활교의 전도활동이 유행처럼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해남 땅 끝 마을, 한국에서 가장 조용하다고 알려진 산속 깊은 곳 어딘가.
시현은 자신의 호화별장 겸 개인 단련실에서 며칠 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청와대 지하벙커 부럽지 않을 수준의 드넓은 지하벙커에서 일주일째 꼼짝을 않고 있었다.
마치 폐관수련을 하는 것처럼.
스응-
시현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서자 거실 안쪽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만났다.
“드디어··· 나오셨군요.”
류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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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 직접 타온 차를 마시며 류건이 물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조심스러운 질문이니만큼 목소리도 작았다.
그래서인지, 시현은 못 들었다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되물었다.
“회사엔 별 일 없죠?”
사실 지하에서 지내며 각종 뉴스를 모조리 챙겨봤던 시현이다.
즉,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말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그걸 눈치 챈 류건은 자신의 질문을 뚝 자르고 대답했다.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전 그저 의장님이 걱정돼서···.”
“알아, 압니다.”
지난 일주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시현이었다.
설령 류건이 물을지언정 말해줄 수 없었다.
해서 류건은 그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잘 지내신 거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물음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만에 봤으니까, 안부를 묻는 건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럼요.”
끄덕, 시현은 흔쾌히 대답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낯빛은 어둑했으며 눈두덩은 축 처진 것이 어딘가 많이 아파보였다.
“의장님, 다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겠죠. 주가도 뚝뚝 떨어지고.”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 날 이후 시현은 여기에 틀어박힌 채 단 한 번도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회사야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내실은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죽은 헌터들의 장례식조차 함께 치르지 않은 시현이었기에 각종 루머가 생겨나기에 충분했다.
“의장님이 죽은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젠 괜찮아요. 며칠이면 여기서 나갈 테니까. 오늘 기자나 한 명 들여보내세요. 인터뷰 찍어 보낼 테니.”
“예··· 그런데 무슨 작업을 하고 계신 겁니까?”
시현은 대답대신 다른 부탁을 했다.
“SSS팀은 잠시 뒤로 미루죠. 그리고 개성의 기력발전기, 제가 연락하면 바로 좀 이쪽으로 쏴주세요.”
“···보물을 사용할 일이 있으신 겁니까?”
“일단 그렇게 해주세요.”
시현은 여전히 대답을 일체 회피했다.
그러자 류건은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며 다른 것을 물었다.
“지원 씨가 많이 걱정합니다. 그리고··· 좀처럼 진정을 못하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요. 다른 이의 권능이 자신에게로 옮겨졌으니.”
그날, 최희는 죽기 직전 헌신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선(善)이라는 권능을 지원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게 바로 ‘헌신 중 하나의 능력’이었다.
“잘 챙겨주세요. 곧 간다고 전해주고.”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시현 역시 남을 챙길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성녀고 뭐고, 지금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건지도 모르겠고.
일단 자신이 우선이었다.
“아, 그리고 그때 말했던 기술자 좀 불러주세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왜, 헌터중앙기구 세계본부에서 일한다던 기술자 있잖아요. 소환석을 따라만들 수 있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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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하게 소환석을 만들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술자!
그의 능력은 ‘구현’이었다.
“혹시 이것도 아예 똑같은 걸로 구현할 수 있겠습니까?”
시현이 열쇠와 구슬을 내밀자 기술자는 고개를 절래 저었다.
“이것들에 담긴 기가 너무 큽니다···.”
하기사, 시현 또한 불가능한데 이 자라고 가능할리 없었다.
“다만 일주일간 심혈을 기울인다면 똑같은 모조품으로는 구현할 수 있습니다. 대신 실속은 하나도 없지요.”
“음··· 상관없습니다. 대신 누가 보기에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구현 부탁드립니다.”
왜였을까?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일까?
시현은 그에게 일거리를 맡기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자신은 또 묵묵히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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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를 돌려보낸 시현은 지하 4층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다.
헌터중앙기구 S팀 중력단련실처럼 사방이 확 트인 단련실이었다.
비록 중력제어장치는 없었지만 시현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자명했다.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난동을 피워도 밖으로 소리하나 새어나가지 않기 때문에.
피와 땀으로 얼룩져도 자동으로 청소가 되기 때문에.
여기가 바로 지난 일주일간 시현의 피와 땀이 얽힌 곳이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일주일 전, 지독하고도 처절했던 전투 이후 포켓이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망가졌다고 해야 하나?
포켓에 기력이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튼, 자연적인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포켓에 뭉친 검은 기운을 토해내야 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어느덧 일주일 째,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던 거다.
‘이제야 기력이 느껴지네.’
만약 포켓이 고장 난 상태로 밖을 돌아다녔다면 누군가는 필히 시현의 몸 상태를 눈치 챘을 터.
그러느라 집 밖으로 못 나갔던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다 괜찮아졌다.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언령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었다.
다만 포켓의 기능이 쇠퇴했으면 어쩌나, 걱정이 있다면 그뿐이었다.
본디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은가?
예컨대, 자동차의 엔진도 노후되면 바꿔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하지만,
‘포켓을 기증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불가능하겠지.
반대로, 새 몸으로 태어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왕이면 인간의 몸을 뛰어넘는, 몬스터나 엔델 족의 육체로서!
지난 일주일, 이곳에 갇혀 골똘히 생각하여 얻은 아이디어였다.
‘그럼 지금부터 할 일.’
정리해보자면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인간의 탈을 벗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몸을 얻는다.
그리고 둘째, 포켓봉쇄에 대한 대비로 영구적 육체훈련으로 새로운 몸을 강화시킨다.
현재 시현은 이 두 가지의 벽을 뛰어넘어야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현에겐 언령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능력이 있었다.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어주는!
‘충분히 가능해.’
두 번째는 육체의 열쇠가 있는 시현으로선 누워서 떡 먹기였다.
더구나 이미 류건에게 기력을 쏴줄 것을 요청한 상태였기에 언제든지 바로 실행할 수 있었다.
첫 번째가 관건일 뿐.
‘바로 시작하자.’
후우-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시현은 옷을 주섬주섬 벗은 뒤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았다.
“고통완화. 고통면역. 심장보호. 뇌보호······”
등등 안전에 대비하여 각종 버프를 몸에 두른 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내뱉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육체로의 진화. 환골탈태換骨奪胎.”
좌아아아아아악!
전신에 불안감이 도사린다.
중력이 어깨를 짓누르듯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동시에 몸에 난 털들이 치솟았다.
서서히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뭐지?
분명 온갖 면역버프를 둘렀는데 어째서 고통이 찾아온 것인가?
“크윽!”
아프다. 또 괴롭다.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데 마치 몸뚱이가 날아다니면서 벽에 박치기를 하고있는 것 같았다.
두피를 가시로 쿡쿡 찌르는 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참아야한다!
이게 바로 앞에 놓여있는 벽을 허물 수 있는 힘!
그 힘을 얻는 과정이었으니까.
버텨내야만 했다.
“쿨럭······!”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오고 몸 구석구석 깊은 상처가 났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다.
좌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가축을 도살하듯 가죽이 저절로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뼈가 울긋불긋 튀어나와 피부를 뚫었다.
신체가 괴기하게 비틀어지면서 육신의 고통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각종 면역 버프를 했음에도 이정도인데, 만약 아무 것도 안 했다면 이미 쇼크사로 죽었을 터.
역시 환골탈태는 우습게 볼 것이 아닌가?
애시당초 환골탈태라 함은, 용모가 환하게 트이고 아름다워져 전혀 딴사람처럼 되는 것을 뜻하는 단어.
하지만 시현이 뱉은 언령은 단순히 환골탈태를 뛰어넘어 ‘인간을 뛰어넘는’ 육체를 얻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그렇다면 과연, 새 육신을 얻게 된다면 포켓에도 변화가 생길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 ‘10만 SP’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100만? 1000만?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시현은 일부러 긍정적인 생각만 했다.
그래야 이 고통을 참을 수 있을 테니까.
띠이이이이이-
이윽고 이명이 들리더니 마치 어디선가 강풍이 불어오듯 추위가 더해지고 몸을 짓누르는 압력 또한 늘어났다.
정신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지 오래.
버텨내야한다는 무의식만이 육체에 존재하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내야 하는 것인가?
좌아아아아아악!
젠장!
아직도 피부가 다 벗겨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포켓은 터져버릴 듯 온몸을 불덩이로 만들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죽는가?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끝내는 전신의 감각이 마비되기까지 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찾아왔다.
-후회되는가?
자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이젠 하다하다 환청까지 들리다니, 하지만 후회는 안 된다.
어차피 언젠가는 넘어서야할 산이 아니었던가?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을 뿐.
참는다.
견뎌낸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
.
.
“하아··· 하아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처하나 없는 깨끗한 몸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다 끝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중요한 건 성공의 여부니까.
시현은 심호흡을 하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신체 변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뭐랄까, 싱싱하다고 해야 하나?
“아···.”
그렇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육신.
직감이 들었다.
‘확실해.’
당장 시험해보고 싶었던 시현은 당장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우오오오오!”
포켓에 내장된 기력을 끌어 모아 체내에 순환하였다.
‘확실히 달라.’
다만 포켓의 기력총량은 못 봐줄 수준이었다.
당연했다.
환골탈태로 인해 포켓 또한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된 것이니까.
처음부터 다시 포켓을 확장해야했다.
‘금방이다.’
일전의 최대치였던 10만SP까지는 금방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왜냐?
개성특급시의 발전기에서 기력을 받으면 되니까.
그 막대한 기력을 이용해 거침없이 ‘포켓 확장’의 언령을 뱉기만 하면 되니까.
기력만 계속 주어진다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끝낼 수도 있는 작업이었다.
과연 10만을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가 관건이지만.
아무튼 간에, 중요한 것은 시간이 엄청 단축될 것이란 사실.
게임으로 따진다면 일종의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일단 그 전에.’
두 번째 계획실행이 우선이었다.
후우- 시현은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으니, 아공간에서 환하게 빛나는 세 개의 열쇠를 몽땅 꺼냈다.
하나는 권능의 열쇠, 중간 것은 육체의 열쇠, 다른 하나는······
‘위리놈을 잡고 얻었던 열쇠.’
과연 무슨 효과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용하기에 앞서 먼저 육체의 열쇠부터 사용한다.
새로운 육체를 얻었으니 강력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스윽.
마지막으로 구슬까지 꺼내자 단련장이 밝게 빛났다.
그렇게 시작된 2차전.
시현은 바로 육체의 열쇠를 구슬에 꽂아 돌렸다.
본격 강인한 육체의 탄생이 도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