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88화 (88/100)

# 88

여기 헬리움이라 불리는 이계異界가 있었다.

지구에는 없는 갖가지 천연자원과 각종 보석들, 그리고 웬만한 타 종족보다 수준이 높은 종족으로 이뤄져있는 세계였다.

소위 몬스터라 불리는 그것들.

그 종족의 진짜 이름은 인베르젼(Inversion)이었다.

타 종족들에게는 그 흉포함 때문에 두루 몬스터라 불리는 것일 뿐.

-교오오오오오!

헬리움의 대륙 중앙.

흑탑 꼭대기에 선 몬스터 한 마리가 울부짖었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시커먼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절규하였다.

놈의 몰골은 몬스터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이름 벨제뷔트.

그는 마치 마법진을 그리듯, 매끄러운 잿빛 바닥에 자신의 피로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흑마법의 소환의식과 비스무리했다.

좌르르르륵!

그 부름에 응답하였는지, 하늘에서 붉은 번개가 한 차례 내리쳤다.

-그분이 돌아오신다! 우리를 이끄실 왕께서!

인베르젼, 즉 몬스터들에겐 왕이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몬스터들을 통치하였던 절대유일의 군주.

사탄(שָׂטָן).

옛날 옛적 모종의 이유로 봉인되었던 몬스터들의 수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이 봉인된 후, 몬스터들은 통제력을 잃고 서로의 보물을 탐내다가 결국 동족 전을 벌이게 되었다.

평소 사탄을 시기 질투하던 천의 얼굴 루시퍼(Φωσφόρος)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물을 수호하던 벨제뷔트가 그 보물들을 세계 곳곳에 숨긴 뒤 그 공간들을 전부 지구로 차원이동 시켰다.

그러나 엔델 족과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동족 전쟁은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서로의 힘을 합치기 시작한 것이다.

좌르르륵!

붉은 번개가 재차 내리쳤다.

사탄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사탄이 강림하시기 전에 보물을 모두 회수하라. 전쟁보다 회수가 먼저다. 엔델 족이 앗아가기 전에 어서 되찾아오라. 헬리움은 곧 강림하실 사탄께서 막아주실 것이니!

몬스터들은 방향을 바꿨다.

전쟁은 둘째 치고, 인간들에게서 보물을 먼저 탈환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인간들도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놈들 중 보물의 힘을 얻은 자가 있다. 목숨을 바쳐 그놈의 포켓(pocket)을 제거하여라. 그것만이 승리를 부르는 길이오니!

몬스터들은 전력을 다해야했다.

엔델 족과의 전쟁에서 밀리더라도, 이제는 인간들의 성장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스응-

탑 꼭대기에 선 벨제뷔트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열쇠를 뽑아들었다.

-지구로 가는 차원의 문을 개방하겠노라!

권능, 육체의 열쇠와는 다른 문양을 지닌 열쇠.

오로지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만을 열 수 있게 해주는 차원의 열쇠였다.

벨제뷔트에게 그 열쇠가 있었기에 몬스터들이 지구에 각종 던전이나 게이트를 차원이동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차원의 열쇠를 텅 빈 궤짝에 넣고 돌리자, 그 안에 내재돼있던 힘이 모조리 쏟아져 나와 디멘션 게이트를 소환하였다.

다만 구슬이 없는 반쪽짜리 힘이었기에 게이트의 규모 역시 반쪽짜리였다.

그래도 무시할 게 못되는 수준.

지금까지가 맛보기였다면 이제는 전면전을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종족전을!

병력 또한 이전과 비교해서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인간들에게 파멸을 하사하라. 지구에 존재하는 4대 사령관이 깨어날 것이니, 가서 그들의 날개가 돼주어라!

좌라라라라라라!

몬스터 전군全軍의 3할이 게이트 앞으로 다가섰다.

그 차원의 문은 일반통로,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었다.

-사탄이시여! 힘을 주소서!

좌르르르르륵!

탑에 홀로 남은 벨제뷔트는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실시간으로 군대를 지휘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총독 벨제뷔트의 할 일이었으니까.

앞으로 약 1시간 후, 전군의 3할이 지구로 공격 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대기하라. 모든 힘은 결국 ‘위리놈’에게로 흡수될 것이니, 모든 것은 그의 손에 의해 파멸될 것이리라. 기다려라, 위리놈이여!

-우오오오오오오! 위리놈! 위리놈!

지구 어딘가에서 숨어있는 복병 ‘마신 위리놈’이 전쟁의 열쇠였다.

.

.

.

류건의 충격전인 말이 시현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일지언정 침착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시현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전화기를 부여잡았다.

“그러니까, 일단 남은 M던전 4곳이 동시에 붕괴되었다?”

-그렇습니다···.

폴란드 자코파네의 M던전.

러시아 북부 툰드라 지대의 M던전.

브라질 아마존의 M던전.

중국 하얼빈의 M던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네 군대의 결계가 동시에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던전들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모두 자취를 감쳤다, 이 말입니까?”

-현재 확인된 바로는 그렇습니다···.

잘못한 건 일체 없는 류건이었지만 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보고를 이었다.

-···진짜 문제는 3여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놈들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움직임도 전혀 감지되지를 않고요.

“놈들의 짓이군.”

이유야 뻔했다.

일전에 레비아탄이 그랬던 것처럼, M던전을 탈출한 신화급 몬스터가 결계를 만들어 어딘가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으니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정비를 하려는 거겠지.

“알겠습니다. 헌터들 비상매뉴얼대로 배치시키고 청와대부터 타국까지 모두 전달하세요. 인류의 사활이 달린 문제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위험했다.

신화급이 한 개만 터져도 시현이 없다면 인류는 막을 수 없는데, 네 개가 한꺼번에 터졌으니까.

재앙도 이런 재앙이 또 없었다.

‘문제는 내가 네 군대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 없다는 것.’

어딘가에서는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뜻이었다.

‘일단 위치부터 찾는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시현은 고개를 돌렸다.

심각한 얼굴로 서있는 임장호가 보였다.

“유감입니다. 출근 첫날부터 일하시게 생겼어요.”

“긴급··· 입니까?”

“하아- 예. 인류최대의고비가 될 겁니다. 팀장님은 사내의 신입헌터들을 맡아주세요.”

“아··· 예, 그렇게 하죠.”

임장호는 급박히 밖으로 나가 우왕좌왕대고 있던 새내기 헌터들을 인솔했다.

그 사이 시현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포효했다.

“찾으라!”

.

.

.

준비운동은 끝났다.

M던전에서 깨어난 4마리의 신화급 몬스터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하수인들을 이끌고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기 시작했다.

폴란드, 러시아, 브라질 그리고 중국까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도시가 통째로 풍비박산 나는 것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각국의 헌터들이 기를 쓰며 막아보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신화급 몬스터의 위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힘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불과 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시현밖에 없었다.

그 시각 중국의 하얼빈.

휘이이이이-

끔찍한 참경이 펼쳐져 있었다.

진공청소기마냥 대지 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신화급 몬스터가 하늘에 위엄 있게 떠있었다.

세에레(ʂəəɹœŧɜ).

서큐버스와도 같은 매혹적인 육체를 지닌 몬스터였지만 그 힘은 실로 막강했다.

한 순간에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는 권능의 소유자답게 만물을 자신의 손앞에 모으고 있었다.

“타오파오! 타오파오!!”

중국인들이 아무리 도망쳐봤자 그들은 강압적인 힘에 의해 세에레에게 이끌려갔다.

공중에 떠오른 수십만 명의 중국인들은 살고자 아등바등 댔지만 어차피 세에레의 손바닥 안.

-켈켈켈! 죽어라, 하등한 인간들이여!

세에레가 무고한 시민들을 쥐포마냥 밟아 죽이려던 순간이었다.

“멈춰라.”

드응-!

매우 강력한 언령이 발동되었다.

텔레포트로 하얼빈에 도착한 시현의 솜씨였다.

그는 먹구름으로 자욱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제이동.”

이동의 권능인 세레나를 뛰어넘는 능력!

시현의 연령에 따라 하늘에 떠올랐던 모든 물체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목숨을 구한 시민들은 감사하다고 말할 틈도 없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쳤다.

-네 이놈··· 어찌 인간주제에······!

“그 입.”

-으으읍!

“닫아. 찢어버릴 테니.”

좌아아아악!

-우우웁······!

몬스터 14위계에 빛나는 세레네였지만 역시 시현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남자 여럿 유혹할 듯 도톰하던 세레나의 입술은 잔혹하게 찢어지고 말았다.

선혈로 시뻘겋게 물든 세레나의 입술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대신 하수인들에게 명령해 시현을 공격하게 했다.

그들에게 승산이 있는 작전은 그것밖에 없었다.

시현의 기력을 모조리 소모하게 만드는 것!

“학살하라!”

푸샥!

크앙! 카응!

촤라라라라라-!

화약 터지듯 하늘에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수만 마리의 몸에서 터져 나온 선혈이었다.

그럼에도 놈들의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질 않았다.

‘안되겠군.’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다른 지역을 구해낼 수 없다.

비록 시현과 상관없는 나라들이었지만···

‘구해야 돼.’

가치관에 변화가 생긴 것일까?

시현은 평화의 수호자마냥 인류를 구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인류가 죽어나간다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종족전에서 불리해질 테니까.

그러니 놈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처리하는 게 훨씬 나을 터였다.

“오냐, 다 와라. 한 번에 끝내줄 테니.”

그때였다.

-의장님! 현재 어디십니까?

류건의 무전이었다.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잘 됐다.

“하얼빈입니다. 전 세계에서 지원 올 수 있는 헌터들, 싹다 여기로 보내세요. 당장.”

그렇게 지시를 내린 시현은 아공간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꺼냈다.

-구슬!

-교오오오오오오!

-우리의 보물을 당장 빼앗아 오라!

구슬이었다.

시현은 그것을 미끼삼아, 전 세계에 흩어진 나머지 세 마리의 신화급 몬스터들을 유인할 생각이었다.

솨아아아아-

구슬의 힘을 발산시키자 시현의 예상대로 폴란드, 러시아, 브라질에서 놈들이 순식간에 날아왔다.

시현의 뜻대로 구슬의 에너지에 이끌려서 온 놈들이었다.

악의 근원 바알로크.

늪지의 마수 히드라.

불멸의 사신 리치.

그리고 아까부터 있었던 세레나까지.

이로써 지구에 숨어있던 신화급의 몬스터들은 모두 모인 셈.

당장 추정되는 놈들의 하수인만 해도 50만은 넘었다.

헌데 여기에 만약 군단소환까지 발동된다면?

군단소환은 차원의 열쇠가 없어도 휘하의 부대를 소환할 수 있는 사령관들의 고유기술!

그들의 왕 사탄이 하사한 능력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아무 때나 사용이 가능했다.

이를 테면, 지금 당장.

-가소로운 녀석.

-우리의 진면목은 뭉쳤을 때 비로소 빛나는 법!

-진짜 지옥을 보여주겠노라.

-군단이여! 본좌의 부름에 응답하라!

좌아아아아아아!

도합 250여 개의 군단.

병력수만 해도 얼추 800만 마리.

오랫동안 굶주린 듯 살육을 갈구하는 몬스터들이 드넓은 하얼빈의 상공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앞에는 단 한 사람, 시현만이 대지 위에 서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최소 1시간은 걸리겠군.’

힘들겠지만 기력을 재충전해가면서 언령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터.

다만 조심해야할 것은 리치.

놈은 포켓을 봉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장 까다로운 상대였다.

“포켓봉인 저항버프.”

솨아아아-

이마저도 뚫린다면 답이 없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훨씬 나을 터.

대전大戰에 앞서, 시현은 보유한 기력을 조절하여 버프를 덕지덕지 발동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체강화신공 삼천 배三千 倍.”

우지끈!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로써 1대 800만, 유례없는 종족전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앞으로 40분 뒤, 이계 헬리움에서 본대本隊가 오리란 것을.

제대로 된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을!

그러나,

시현은 그저 눈앞에 놓인 놈들을 차례차례 처단할 뿐이었다.

또한 자신이 있었다.

지난 수 개월간 마냥 놀며 지냈던 게 아니니까.

나름대로의 혹독한 훈련과 기술을 개발하였으니까.

지금껏 선보이지 않았던,

최고의 비기 중 하나를.

“Genocid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