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독도에 그 더러운 발 때세요. 좋은 말로 할 때.”
그 말 직후, 정상회담장은 한동안 고요해졌다.
더러운 발을 떼라니!
일본정상은 시현이 그렇게 강압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단도직입적일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설마 험한 말을 대놓고 할 줄이야.
이건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이베 총리가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뒤 말했다.
“너무 막무가내로 나오시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시현은 지지 않고 외려 반문했다.
“막무가내로 나간 건 당신들이 먼저였죠. 독도는 원래 우리 거였으니까. 그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나오면 나도 똑같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라면···”
“우기기 말입니다. 내가 그냥 일본 가서 점령한 다음에 내 땅이라 우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어디가 좋으려나. 수상관저? 아니면 고궁?”
“자, 잠깐 진정을!”
그럼에도 시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일제가 저지른 만행 또한 낱낱이 밝혀 정식으로 사과해야할 겁니다.”
“끄응···.”
“확실히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알아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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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짧고 간략했던 회담이 끝난 후 각 대표들이 공동기자회견장에 나섰다.
일본대표로서는 당연히 이베 총리가 섰고, 한국대표로는···
“대통령님이 대표 아닙니까. 가서 시원하게 한 말씀 해주시죠.”
시현의 배려로 이명표는 데스크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시현이 기대한 만큼 시원하게 내뱉었다.
“양국 정상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 지역 및 국제 문제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과거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밝히며 국제사회에서 사과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또 독도에 관한 영유권 분쟁에 관해서도 일본정부가 우리 측 요구에 합의하였습니다.”
“합의라면······.”
순간 수많은 카메라 헤드가 우측의 이베 총리를 향해 돌아갔지만 그쪽에선 아무 대답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크음.”
시종일관 진땀을 흘리던 이베 총리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진한 한숨을 내리쉬었다.
그런 뒤 목을 한차례 가다듬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케시마··· 아니, 독도 영유권 분쟁은 잠시 우리 정부가 합의하여···”
찌릿.
‘잠시’란 단어에, 데스크 뒤에 서있던 시현의 눈빛이 이베의 뒤통수를 향해 쏘아졌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건 아니었지만 이베는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말해야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
국력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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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 총리 암살청원사이트까지 생겨 적지않은 충격···]
[이베 총리 사퇴? 정해진 수순··· 확실시···]
“귀국한 뒤 수상관저로 돌아가던 중 일본국민들에게 계란세례를 맞았다고 하네요.”
“오, 계란투척이 우리나라만의 문화는 아니었군요.”
16년간의 길고 길었던 임기는 끝을 보일 듯했다.
“하하. 그쪽은 그쪽 사정이고. 우린 또 일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류건의 말마따나 일본정치인들의 사활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할 일이 태산이었으니까.
“독도해양기지는 미국 보스턴의 최고전문가들을 꾸려 건설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럼 파주시랑 연결할 워프게이트는 어떻게···?”
“그까짓 거 1분이면 뚝딱이죠.”
두바이 M던전의 게이트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던 시현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이미 게이트구현에 성공한 바 있었다.
“그럼 혹시··· 몬스터 놈들의 고향으로 쳐들어갈 수 있는 포탈도 만드실 수 있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그건 안 되더라고요.”
수도 없이 시도해봤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공간이동을 가능케 하는 게이트’ 쯤이야 얼마든지 소환할 수 있었지만 차원이동은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차원의 개념이 뭔지도 모르겠고. 일단 지금으로선 불가능해요.”
“흐음···.”
무슨 연유에선지 류건은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잘 됐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왠지는 모르겠는데, 감이 안 좋습니다. 놈들의 기지로 역습 가는 거 말이죠. 그리고 괜히 갔다가 보물을 빼앗길 수도 있는 거니까···.”
역습을 가서 놈들을 정벌하면 좋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차라리 안 가느니만 못하다는 게 류건의 의견이었다.
“사실 의장님이 걱정돼서 한 말입니다. 지금까지야 물론 잘 해오셨지만···.”
“원정전은 또 모른다, 그 말이군요.”
“예.”
하기사, 아무리 9위계다 10위계다 신화급의 몬스터들을 벌레 잡듯 간단히 잡아버리는 시현이지만 또 몰랐다.
2-9위계가 얼마나 강하든 제일 중요한 건 1위계의 수준일 테니까.
1위계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시현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SSS팀을 양성하는 겁니다.”
SSS팀.
몬스터들에 대항할 ‘희귀하고 강력한’ 권능을 주입시켜 정예군단을 만들어 놈들을 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밑 준비는 거의 끝난 상태였다.
“개성의 발전소단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현지 주민들까지 총동원해서 건설하면 금방 완공될 겁니다.”
“북한 놈들 상시로 경계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물론입니다.”
됐다.
이로써 스케치가 끝났으니 이제 색깔만 칠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다른 열쇠도 찾아야할 텐데.’
그럼 다른 나라의 M던전을 클리어 하는 게 먼저인가?
아니면 10대 미궁?
‘그러고 보니 세계본부 부의장이랑 미궁도 같이 돌기로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류건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대체 해저도시는 왜 만드신 겁니까? 물 부족 때문에 그러시는 건 아닐 텐데.”
하루에 한국에서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물이 약 3000억 배럴이다.
헌데 그 중 하루에 4천만 배럴을 현자리움이 사용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약 0.16%를 사용하는 셈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본다면 극히 미미한 양이었고, 물 부족은 물 수입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문제였다.
그런데 어째서 해저도시를 만들려고 하는 건지, 류건은 궁금했던 것이다.
“못 만들 이유는 없잖아요?”
“예? 아, 하하···. 그렇기야 하죠···.”
맞다. 모든 것에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시현 역시 허우대 멀쩡한 인간이었기에 무언가를 짓고 싶다는 야망 쯤은 있었다.
아니, 세계 그 여느 누구보다도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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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또 수개월이 흘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성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좋았다.
실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현자리움에서 개발한 프로텍터는 대한민국 전체를 지켜주게 되었고, 국민들은 더 이상 던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현자리움의 헌터기지는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 헌터중앙기구 세계본부에서 내놓은 방어배지는 현자리움의 특별마케팅으로 세계 대부분의 헌터들에게 싼값에 팔려나갔다.
1단계부터 8단계 배지까지 다양했기에 부담이 될 것도 없었다.
배지를 달고 있지 않는 헌터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또한 현자리움 헌터기지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팀장님.”
“하하··· 이렇게 또 뵙게 되는군요. 저번에 선물해주신 술은 잘 마셨습니다.”
시현의 밑으로 들어온 임장호였다.
몇 달 전만 해도 시현에게 거리낌 없이 말을 놨던 그이니만큼 어색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손수 영입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니까, 헌터중앙기구의 특수본부를 모방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SSS팀, I팀, A팀 등 뼈대는 그대로 갑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팀의 구성이었다.
정보에 특화되어야하는 I팀은 정보 혹은 스캔 등의 희귀권능을 가지고 있는 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런 건 아주 희귀한 권능인데, 그런 자들이 세계에서 몇이나 된다고. 그게 가능하렵니까?”
말콤, 제이슨 등.
세계를 통틀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권능이었다.
하지만 시현에겐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권능의 열쇠.
그것만 있으면 헌터들에게 권능을 나눠줘 인간병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권능을 각 포지션에 적재적소로 분배하는 게 시현의 계획이었다.
“아, 그리고 팀 매니저나 팀장은 ‘매니저’의 권능을 가진 자만 역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서포터인데요. 허허···.”
“그럼 오늘 바꾸시는 게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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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실험대상은 임장호로 결정되었다.
애당초 그렇게 결정된 사항이었는데, 임장호가 흔쾌히 허락해줬기에 실험이 바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매니저의 권능을 얻게 된다 이거죠?”
“그렇죠. 매니지의 권능이 팀장님의 역할에 가장 도움이 될 테니까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지하 실험실.
시현은 곧장 권능의 열쇠와 구슬을 꺼냈다.
개성의 기력발전소 덕택에 열쇠에 기력이 가득 차있어 당장 사용할 수 있었다.
시현은 열쇠를 구슬에 꽂았다.
그러자,
철커덕!
솨아아아아아-!
황금빛이 터져 나와 사방에 널리 퍼졌다.
-그어어어어....
한차례 진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그때 보았던 그 존재가 나타났다.
이른바 권능의 정령이라는 그것.
-무슨 권능을 얻고 싶은가?
“매니지의 권능을 얻고 싶다.”
-중복은 아니 된다.
“아차차.”
그랬다. 권능의 열쇠로 얻을 수 있는 권능은 중복불가였다.
즉, 세계에 수십만 명이 가지고 있는 흔한 권능이라도 열쇠의 힘으로는 가질 수 없는 법.
‘어? 그럼···.’
이런, 너무 멍청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새로운 권능을 만들면 그만인데···
지금까지 왜 틀에 박힌 생각을 했던 걸까?
그냥 ‘팀장’에게 좋은 권능을 선사해주면 되는 것인데!
“리더의 권능을 얻고 싶다.”
-좋다. 권능의 대상은 누구인가?
“저기 앞에 서있는 남자, 임장호다.”
솨아아아아아-
-너의 희망대로 리더의 권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부여받는 것은 자연의 섭리. 저자의 차례를 기다리거라.
“얼마나 걸리지?”
-현재 18,882,551가지의 권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 대기열이 끝나면 임장호는 세계 최초로 ‘리더’의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과연 그것에 무슨 능력이 깃들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건 팀장에 가장 적합한 권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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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으로 실험을 끝낸 시현은 임장호를 집무실로 불렀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SSS팀을 꾸릴 겁니다. 이미 실험대기 중인 헌터들이 줄서있고요.”
“하지만 방금 열쇠의 기력을 모두 소진하지 않았습니까?”
훽훽, 시현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열쇠의 텅 빈 기력은 개성의 발전소로부터 다시 충전해서 쓰면 되는 것이니까.
“허허··· 이것 참. 앞으로 듣도 보도 못한 권능이 세상에 많이 생겨나겠군요.”
“안 그래도 미리 생각해둔 권능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은혜가 가지고 있던 영(靈)의 권능.
시체나 영혼 따위를 흡수하여 강해질 수도 있고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채취해 다양한 곳에 두루 사용할 수도 있는 능력이다.
특히, 시체나 영혼 따위를 흡수하여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몬스터 사체만 무한히 있다면 무궁무진하게 강해질 수 있다는 거니까.
그것도 그것대로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제대로 한 번 키워보고 싶었다.
다만 중복은 불가하니 조금 다른 권능을 부탁해야겠지만.
“여하튼, SSS팀은 그렇게 운영될 겁니다.”
물론 언령처럼 사기적인 권능은 주지 않겠지만....
아무튼, 이로써 마지막 계획까지 모두 실현되었다.
앞으로 창창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리라.
그런 희망적인 생각이 시현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하지만 평안도 잠시, 금세 파도가 불어 닥쳤다.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역대 최고의 쓰나미가.
따르릉-
-의장님! 류 대푭니다!
“또 무슨 일이라도···”
-폴란드, 러시아, 브라질, 중국. 남은 4대 M던전이······!
“설마.”
“···예, 동시에 터졌다고 합니다···.”
동시에 터져 나온 사천왕.
마침내 이 거대한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