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86화 (86/100)

# 86

지도를 펼친 류건은 획기적인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북한과 일본의 영토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 가리켰다.

정확히 북한의 ‘개성’과 일본의 ‘히로시마’였다.

“의미심장하군요.”

두 지역은 서로 전혀 연관이 없었지만 시현의 말마따나 의미가 있는 지역이었다.

먼저 개성의 경우, 현자리움 타운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북한의 공업지구였다.

그리고 히로시마는 일제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지역이었고.

“그럼 설마···”

“의장님, 제 생각엔 말입니다. 너무 평화적으로 대하니까 다른 이들이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

아무리 몬스터를 때려잡고 세계의 평화를 지켜주는 영웅이라고 할지언정, 각국의 정치에 관여하는 둥 오지랖은 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시현이다.

어느 나라에서 반한(韓)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당장 위험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북한만 해도 아직까지도 건재하지 않은가?

“그럼 무력행위라도 하라는 건가?”

“짧고 굵게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거죠. 더 나은 평화를 위해서요.”

“더 나은 평화?”

“예. 여론을 보면 국민들도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의장님이 북측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까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북한에 쳐들어가서 김 씨 왕조를 무너트려라 이 말인가? 일본을 겁줄 본보기로?”

“그렇죠.”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국토의 북반부를 강제 점령한 불법 집단이라 규정되어있다.

즉, 불법국가라 이 말이었다.

“좌우, 색깔 막론하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너무 오래 기다렸습니다.”

시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류건의 말대로 언젠가는 힘이 있는 자가 총대를 메고 나서야했다.

다만 그 동안은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을 뿐.

‘별수 없이 피를 묻혀야겠군.’

러시아의 ROS만 봐도 답이 나온다.

세뇌된 극단주의자들에게는 무엇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거듭 깨달았던 시현은 마음을 굳혔다.

물론 시현에게는 북한의 수장을 처단할 개인적인 명분이 없었다.

ROS마냥 자신을 직접 지목해서 죽이겠다고 선전포고한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굳이 명분이 있다고 한다면, 이건 문자 그대로 대의大義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마 쉽게 끝날 듯합니다. 안 그래도 중국과 러시아가 친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북한이 더 버텨봤자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시현은 그저 불붙은 아궁이에 기름을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다녀옵니다.”

“고생하십시오, 의장님. 그리고 올 때 기념품 잊지 마시길···. 하하.”

떠나는 시현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씁쓸해보였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말이다.

.

.

.

평양 호화관저 지하벙커.

김정은은 공식적인 일정 외에 한 달 동안 쭉 이곳에서 지내왔다.

두려웠던 것이다.

러시아의 ROS처럼 자신도 시현에게 당하지는 않을까.

그 무자비함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던 그이니만큼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그는 고독하게 소파에 앉았다.

언제나 그렇듯 탁자 위에는 두 개의 병이 있었는데, 그는 왼쪽의 파란색 소주병을 집었다.

딱! 쪼르르르-

빨간색 소주는 귀빈대접용이었기에 평소 즐기던 파란색 소주를 잔에 따랐다.

그러고는 안주도 없이 마셨다.

이제는 늙었다는 게 새삼 실감났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밤샘 술파티를 벌여 폭음을 하던 그였는데.

또한 예전 같았으면 이미 기쁨조를 대동하여 술시중을 들게 했을 터인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두려움 때문에!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또 죽음!

암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하여 매일 밤을 술로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밤.

그런 그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준 것인지, 지하 관저에 손님이 찾아왔다.

말도 없이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정상인은 아닐 터.

김정은은 축 처진 턱살을 들어 올려 시선을 올렸다.

예상대로 시현이 서있었다.

언젠간 찾아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 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동지···. 앉으시라우.”

예전의 위엄을 잃은 김정은은 이상하리만치 친근하게 시현을 대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보는 것처럼.

딱! 쪼르르르-

김정은은 귀빈대접용 빨간색 소주병을 새로 딴 뒤 새로운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그러고는 시현에게 조심스레 건네주었다.

과연 화합의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화합의 장?

그렇다면 저것은 통일주(統一酒)?

복잡한 뜻이 얽혀있는 소주잔을 든 시현은 그대로 마시는가 싶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깔고 근엄하게 말했다.

“어이.”

“···왜 그러시오?”

“미쳤어?”

촤락!

시현은 소주를 김정은의 얼굴에 그대로 부었다.

“아아악!”

흡사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이 관저에 울려 퍼졌지만, 늘 그렇듯 결계를 둘러놨던 시현이었다.

시현은 황급히 침을 뱉으며 얼굴을 닦고 있는 김정은의 머리를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탁자에 그대로 꽂아버렸다.

콰앙!

“케흐윽......”

“아무리 그래도 수장은 수장이라 이건가? 생각보다 엄청난 놈이구나. 내가 올 거란 걸 대비하고 독을 타놓고 있었다니.”

그렇다.

귀빈대접용이었던 빨간색 소주병에는 먹으면 즉사하는 독이 담겨져 있었다.

시현의 스캔능력이 그걸 증명해주었다.

물론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육체인 시현이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설령 그게 깨끗한 소주였어도 안 먹었을 텐데, 그걸 왜 먹겠나?

그들과 화합을 위해 온 것도 아닌데.

“커흑.... 자비를....”

“역겨운 놈. 닥쳐라.”

시현은 놈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다시 탁자에 내리쳤다.

쾅!

“쿨럭···!!”

“이건 이산가족의 슬픔이요.”

콰앙!

“이건 네 아비의 오만함에 대한 죗값이며.”

“그마아안.......”

콰아아아앙!

“이건 네 할아비의 용서할 수 없는 죗값이다.”

콰앙!

콰앙!

콰아아아앙!

“케르륵..... 커흑...”

피가 줄줄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지만 시현은 개의치 않았다.

외려 폭력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충분히 마인드 컨트롤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짐승한테는 말이 안 통하니까.’

아무리 훈련을 잘 시킨다고 한들, 언제 주인을 물어버릴지 모르는 게 바로 짐승들이다.

그렇기에 지옥을 보여줘야 한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시현의 ‘시’자만 들어도 질질 싸도록.

“짐승같은 놈.”

퍼억! 퍼억! 퍽!

이가 모두 털려나간 것으로 모자라 잇몸까지 뭉개졌다.

“핵을 날릴 테면 날려라. 네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 줄 테니.”

“커허.. 허으으윽....”

됐다. 이정도면 충분한 듯하다.

원채 겁이 많던 놈이라 그런지 몇 대 때리지도 않았건만 이미 실성을 하고 말았다.

“히, 히이이익! 흐이이익!!”

현재 놈이 느끼는 두려움을 측정하자면, 마인드컨트롤을 한 것보다 훨씬 탁월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평생 잊히지 않을, 매 순간 생각날 트라우마임에 틀림없었다.

이제 앞으로는 개처럼 말을 잘 들을 것이다.

“내일 남북정상회담을 열어라. 그리고 내일 평양과 광화문에서 각각 108배를 한 번씩 해라.”

마치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던 인조(仁祖)처럼 김정은은 자신의 앞길을 정해야했다.

명예로운 죽음을 당할 것인지.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목숨을 구걸할 것인지!

“완전치료.”

솨아아아아-

김정은을 완전히 치료해준 시현은 한 마디 더 하고 떠났다.

“그리고 북한 온 기념품으로 개성 좀 빌려가지.”

“······?”

“뭘 놀라고 그래. 그거 원래 우리나라 땅이잖아.”

.

.

.

다음 날 이례적인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긴급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건 예사였고, 김정은이 돌연 평양에서 108배를, 그리고 남한에 내려와 광화문에서 108배를 했다.

독재자가 자신의 잘못과 그릇된 역사를 인정하고, 온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그 장면이 세계각지에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보고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누군가에게 살해협박을 받고 있다는 둥.

앞으로 북한 기득권층에게 암살을 당할 거라는 둥.

갖가지 유언비어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북한돼지가 미쳤다!!!!!!!!!1

-종말이 다가온다아아아아아아아!!!

-이러다가 갑자기 막 핵 날아오고 대포 날아오고 뒤치기 당하는 거 아님.....?

-착한돼지.... 어차피 누가 죽이겠지?

-정권을 무너트리지 않는 이상 북한은 바뀌지 않음ㅇㅇ

-그럼 개성은 어떻게 되는 거냐? 말 많던데 설마 이번에도 현자리움이....?

-주식 사러가자!

-응, 오늘 벌써 상한가야 이미 늦음^^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미 북한 내에서는 점조직 형태로 김정은을 암살할 계획이 진행 중일지도 몰랐다.

이른바 쿠데타!

기득권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애초에 특혜를 주는 건 쉬워도 빼앗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뭐, 그런 건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고.’

나머지 북한 개방이나 이산가족, 통일 등 복잡한 문제는 정치인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시현은 귀국한 기념으로 맥주잔을 들어 류건과 건배했다.

“내가 가져온 기념품은 어떻게 됐대요?”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일주일 내로 허가를 내준다고 하네요.”

북한의 개성특급시에 곧 대규모 기력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기존 현자리움의 발전소와 비교해서 무려 쉰 배가 넘는 크기였다.

명의상으론 국유지지만 이러나저러나 따지고 보면 시현의 땅이었기에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더구나 어차피 개성공단도 폐쇄된 마당에, 발전소가 들어서면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걸로 부지는 해결됐고, 그럼 이제···”

“일본 놈들 반응을 봐야겠지요.”

띠리립-

마침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한 통 왔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한일정상회담도 개최하자는 일본 측의 요청이었다.

다만 한국대표로 대통령뿐 아니라 시현도 참여했으면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

.

.

얼마 후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자리한 이베 총리는 요즘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다 뭐다 국제적으로 신경 쓸 게 넘쳐나는데 독도 문제까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러던 와중 북한의 김정은이 주인에 복종하는 개 마냥 한국에 와서 108배를 하는 미친 사건이 발생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베 총리는 독도 문제에 더한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하여 별 수 없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다케시마를 왜 자꾸 염병할 조센징 놈들이 앗아가려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이걸 그대로 포기하고 한국에 내준다면 정치인 생활은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 이것만은 안 된다! 절대!’

이베 총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시현에게 말할 요량이었다.

다케시마는 아직 건드릴 문제가 아니라고, 최소한 자신의 임기동안은!

그 대신 다른 것들을 내줄 생각이었다.

육참골단이라 하였던가?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작전!

먼저 강하게 선수를 친다면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용인해줄 것이리라.

무력으로 뭘 하려고 했으면 진즉에 했을 테니까.

마침 정상회담이 시작되었고, 형식적인 인사 후 선발언권을 가진 한국 측에서 먼저 발언했다.

발언자는 대통령이 아닌 현자리움의 의장 박시현이었다.

그리고 그 발언은 이베 총리의 예상범주를 넘어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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