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84화 (84/100)

# 84

-여기는 LA, 여기는 LA입니다. 그제까지만 해도 참혹했던 현장이 지금은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모두가 거리로 나와 훼손된 거리를 복구하는데 일조하고, 또 영웅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는 걸 증명하듯, 민간인사상자는 단 한 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시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컸지만 어찌되었든 미국정부의 사전 및 사후 대처가 좋았던 건 사실이다.

-또한 미국은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엊그제인 8월 16일을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특파원의 보도대로, 8월 16일은 영웅의 날로 제정되었다.

‘영웅의 날이라니.’

미국 워싱턴 백악관.

호화 응접실에서 실시간으로 보도를 보고 있던 시현은 팔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영웅의 날, 명칭만 들어서는 상당히 낯간지러울법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잘 들어맞는 기념명은 없을 터였다.

그야말로 영웅들이 미국을 구한 날이었으니까.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중후한 목소리가 시현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국 대통령, 맥도널드였다.

“예, 뭐. 기념일까지 만들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물론 고스헌트 및 헌터중앙기구 미국지사의 헌터들을 기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기념일 제정의 진정한 의의는 따로 있었다.

바로 진정한 영웅 박시현!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한 맥도널드의, 그리고 미국인들의 성의였다.

“허허허! 그렇게까지 좋아해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자, 그럼 이만 회의실로 가시지요.”

.

.

.

백악관 회의실에는 단 세 사람만이 자리했다.

맥도널드 대통령과 시현 그리고 세계본부 부의장 존슨까지.

시현이 요청한 자리였다.

그 이유는 미국과 세계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

사실 상의라기보다는 시현의 일방적인 요구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일단 헌터중앙기구는 일전에 저와 약속한 게 있죠?”

시현의 물음에 부의장 존슨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 말을 이었다.

“헌터중앙기구 내의 모든 정보를 공유바랍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물으시려는 건가요?”

시현이 강하게 나서자 존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안 그래도 이미 구두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무엇이든 다 따르겠다고.

“강탈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성장해 나아가자는 겁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몇 달 간 심경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시현은 예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지금 이 세계에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가령 몬스터들로부터 안전해진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어.’

세상에 몬스터만 있는 것도 아닐 터.

몬스터를 정벌하면 그 다음에 다른 종족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예컨대 시현이 알고 있는 종족만 해도 ‘엔델 족’이 또 있었다.

“더 있습니다. 정보뿐 아니라 헌터들을 독점하는 행위를 관두십쇼. 정식계약 이후 현자리움과 헌터중앙기구는 파트너가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

이 어찌 대놓고 거부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미국 대통령이 함께하는 자리였기에 부의장 존슨은 고개를 끄덕여야했다.

그리고 존슨과 악수를 할 때였다.

“음?”

킁킁, 존슨과 가까이에 있으니 바다내음이 강하게 풍겨왔다.

“아아, 미안합니다. 아덴만에서 일마치고 서둘러 오느라 냄새가 좀 심할 겁니다.”

“아덴만? 거긴 10대 미궁 중 한 곳이 있는 지역 아닙니까?”

저번 DMC 미궁을 클리어한 이래로 세계10대 미궁에 대해서 찾아봤던 시현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미궁탐사작업을 직접 도맡아서요. 허허, 이게 제 일입니다. 언제 한 번 같이 가시지요.”

“오, 좋습니다.”

안 그래도 보물을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잘 됐다.

부의장과 진정 파트너 관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다음날, 공식일정을 마친 시현이 찾아간 곳은 네바다 주의 ‘고스헌트 타운’이었다.

과연 네바다 주의 명소라 불리는 곳답게 외부에서만 봐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더욱이 타운 내부에 들어와서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현자리움 타운은 잽도 안 되네.’

파주시의 현자리움 타운이 무려 1000만 평임에도 불구하고 이곳과 비교하자면 새발의 피였다.

그러나 주눅이 든 것은 정작 시현이 아닌 고스헌트의 수장이었다.

“고든이라 했던가요?”

“예. 맞습니다···.”

넘치던 자신감은 어디가고, 고스헌트의 수장 고든은 기가 다 죽은 채 대답했다.

S급 헌터 시현이었지만 SS급 헌터를 무색케 만들어버린 것이다.

“고스헌트도 우릴 도왔으면 해서요.”

“···어떻게 말입니까?”

“간단해요. 우리랑 같이 일하는 겁니다. 세계최고수준으로 지원을 해드릴 테니.”

시현은 그들이 절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건넸다.

그리도 동시에 질문을 하나 던졌다.

“초이 씨는 어디 갔습니까?”

.

.

.

네바다 주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를 뽑으라고 한다면 모두가 한입 모아 말할 것이다.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사막 위의 신기루!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도시!

세계 결혼식의 도시, 미식의 본고장!

쇼의 도시, 마이스의 도시 등.

수많은 수식어가 라스베이거스를 따라다니지만 단연 그중에서도 이게 제일이 아닐까?

기회의 땅.

시현은 서방 제일의 규모인 벨라리오 카지노에 입장했다.

시현의 행보를 알았더라면 카지노 측에서 눈부신 환대를 해주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거기에 신사적인 턱시도와 페도라까지.

얼핏 보기엔 CIA비밀요원 같기도 한 그런 차림으로 카지노 홀을 돌아다녔다.

“노 몰 벳(No more bet).”

“으아아아아아아!”

여지저기서 환호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이곳은 돈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곤 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개인의 몫이겠지만.

그 한가운데 룰렛테이블에서 인파에 섞인 채 덤덤 히 베팅을 하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눈에 띄는 금발보다는 좀 더 어두운 계열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동양인.

바로 시현이 찾던 그녀!

쫙 달라붙는 블랙진에 턱 벌어진 골반을 보면 분명 최희가 맞았다.

‘검소하네.’

맥시멈 베팅금액인 천만 원어치의 칩을 툭툭 던지는 그녀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그녀라면 VVIP룸에서 놀아야하는 수준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하이 벳(High bet) 구역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까.

“에헤, 레드에 걸어야 되는데.”

블랙에 천만 원을 건 최희에게 시현이 속삭이듯 말했다.

“뭐에요, 당신?”

“레드넘버가 나올 것 같아서 말이죠.”

카지노에서 훈수 두는 거야말로 진상이 없다.

모든 게 ‘확률’에 따른 것인데, 그걸 실력인 냥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인데.”

그러자 정말 은구슬이 레드넘버에 착지했다.

뭐, 여기까지는 기껏 해봐야 47%의 확률이었으니 최희는 시현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현은 훈수를 멈추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의 말대로 이뤄졌다.

그제야 시현에게 뭔가 있다는 듯 눈치 챈 최희가 고개를 휙 돌렸다.

시현 역시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고, 시현의 날카로운 눈매를 확인한 최희는 미간을 좁혔다.

“당신··· 왜 여기에···.”

“왜긴. 도박하러 왔죠.”

.

.

.

이윽고 둘은 VVIP룸 라운지 바에서 흑맥주를 한 잔씩 손에 쥐었다.

시현이 신원을 밝힌 것도 아닌데, 최희를 따라가니 VVIP로케이션에 가뿐히 들어올 수 있었다.

“할 말이 뭐죠?”

차갑게 물어오는 그녀에게 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랑 같이 일 하나 합시다.”

“이렇게 갑자기?”

“지금 정식으로 스카우트 하는 거예요.”

“허-, 예의가 없으시네.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는.”

묵지만 팩트였지만 시현은 당황한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연봉 10조. 어때요?”

“하하. 겨우 연봉 10조로 나를··· 음? 10조?”

그녀는 마치 하이에나의 그것처럼 탐스러운 먹이를 발견한 듯한 눈을 떴다.

“10조? 10조라 했어요? 10 Trillion won? 연봉을?”

“네. 기본급이요.”

이렇게 큰 제안을 건네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시현이 알기로는, 최희가 ‘선’의 권능을 가진 세계유일의 여자였고, 그때 그 콩고의 예언가가 말하길 성녀를 놓치지 말라고 했다.

이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어째선지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다.

“안 가요, 안 가.”

액수가 적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밀당을 하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이봐요, 박시현 씨.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잘 알겠는데요. 저도 꽤나 대단하거든요?”

“저야말로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 요점이 뭡니까.”

“안 간다는 거죠. 내가 아무리 돈을 밝힌다고 해도 기본적은 예의는 있어서. 고스헌트를 배신하고 갈 일은 없어 보이네요.”

과연 충성심이 깊은 것일까?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최희는 애써 관심 없다는 듯 맥주를 목 끝까지 털어 넣은 뒤 말을 이었다.

“따라와요.”

최희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룰렛테이블.

맥시멈은 따로 적혀있지 않았고 베테랑의 여성딜러가 대기하고 있었다.

접대용으로 쓰이는 테이블인 모양이었다.

“도박하러 왔다면서요? 도박이나 하다 가세요.”

느닷없는 말을 뱉는 최희였지만 시현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당신의 전 재산, 36에 걸죠.”

“네?”

여장부처럼 담이 큰 최희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흥분하지 않을 수없는 말이었다.

“당신 돈이 아니라, 내 돈을 쓰겠다고요?”

“당신 돈을 그만큼 더 늘려주겠다는 얘기죠.”

확신에 차있는 목소리에 최희는 오히려 의심을 품었다.

도박은 어차피 확률이 아니던가?

헌데 숫자를 콕 집어준다고?

‘36이 나올 확률은 2.6%인데··· 아, 초능력이 있다고 했던가?’

시현의 권능에 관해 여러 추측이 떠돌고 다녔지만 가장 그럴싸한 추측은 단연 초능력이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본데? 저렇게 자신 있는 거 보면. 흠··· 그렇다면···’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당신이 정말 숫자를 맞춘다면 고려해보는 걸로.”

“뭘 고려해요?”

“내가 당신 회사에 들어가는 쪽으로 긍정적으로 고려해본다고요.”

푸훕, 시현은 살짝 실소를 터트리며 대답했다.

“딴 말 하기 없어요. 아시겠죠?”

“그럼요.”

뭘 믿고 당당한 것인지 그녀는 이내 속내를 드러냈다.

“대신 스킬은 일체 금지에요.”

그렇게 말하고는 아공간에서 무전기처럼 생긴 기계를 하나 꺼냈다.

주로 던전 탐사를 할 때 쓰이는 기력감지기기였다.

즉, 룰렛구슬이 굴러가는 순간에 시현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36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하기 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죠.”

“뭔데요?”

“정말 36이 나오면 약속 지키는 겁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고.”

“그렇다니까, 한두 번 속고 사셨나. 대신 당신도 뭘 걸어야죠?”

역시 철저한 자본주의적 성격.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나는 내 모든 걸 걸죠.”

“모든 거라면?”

“회사. 이거면 되겠죠?”

“······!!”

끄덕.

결국 최희는 수락했고,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 즉석내기가 이뤄졌다.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분명히 말하는데, 은구슬은 36에 떨어질 겁니다. 그래도 내기하시겠어요?”

“그렇다니까요?”

삐-

반복되는 말에 짜증난다는 듯 최희는 기력감지기기를 작동시켰다.

지금부터 기력을 사용하면 감지기에 무조건 걸리게 된다.

“좋아. 이상없군.”

감지되는 기력이 없다는 걸 확인한 최희는 딜러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리고 은구슬은 딜러의 손에서 벗어났다.

타앗!

구르르르르르-

둘의 운명을 가를 구슬이 세차게 굴러갔다.

그럼에도 최희는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고작 2.6% 확률인데. 설마.’

그렇게 확신했다.

초능력이든 언령이든 뭐든 간에 스킬만 안 쓰면 36이 나올 리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언령은 아까 전에 이미 발동되었다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