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83화 (83/100)

# 83

시현은 시원하게 할 말을 내뱉었다.

“LA? 그쪽이 오라 가라 하면 내가 그래야합니까?”-아니, 그게··· 상황이 또 상황이니만큼 평화를 위해서라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요? 잘못을 끝까지 인정 안 한다면 이쪽도 할 말 없습니다.”

뚝.

전화를 끊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진 듯 시현은 와인잔을 홀짝 마셨다.

그래도 성이 안 차는지 맥주 캔을 가져와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 속이 다 뻥 뚫리는 기분이군.”

세계본부 측에선, 이러한 시현의 행동이 유치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짓을 먼저 시작한 건 시현이 아니라 그쪽이었다.

“현재 민간인피해는요?”

“없다고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아직 헌터들이 애를 쓰며 막고 있는 것 같군요.”

시현의 눈에도 선히 보였다.

TV속, LA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 가운데, 눈에 확 띠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저기 저, 동양인 여자는 누굽니까?”

“아, 초이. 초이라고 부르더군요. 한국인입니다.”

“초이?”

“예. 기력의 기재라고도 불리는, 한국에서 나온 최고의 서포터죠. 한국 이름은 최희입니다.”

그녀에 대해 알고 싶었던 시현은 눈에 힘을 실어 그녀를 응시했다.

방대한 양의 기력이 쏟아져나가 LA로 퍼져나갔다.

스캔이 작동되었고, 시현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정말 한국인이잖아.’

이름은 최희.

나이는 스물아홉.

한국 유일의 SS급 헌터이자 소속은 세계최고의 헌터조직인 고스헌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다름아닌 권능.

그녀의 권능을 확인한 시현은 생각이 굳은 바람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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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 : 선(善)

특기 : 축복/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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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저런 권능은 처음보기도 했거니와 혹시 그녀가 ‘성녀’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지원이 성녀인줄 알았는데 말이다.

“혹시 선(善)이라는 권능 아세요?”

“선?”

팔짱을 낀 채 하염없이 TV만 바라보던 류건은 고개를 갸웃 비틀었다.

“아뇨.”

“흐음··· 모르신다니.”

‘류건이 모를 정도면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권능일 수도 있겠는데.’

세상에서 류건이 모르는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게 뭡니까?”

“글쎄요. 한 번 확인해봐야죠.”

시현은 방금 소환했던 스캔 창을 마저 읽어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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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 1.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수녀원에서 자람

특이사항 2. 야망이 있어 고스헌트에 들어감

특이사항 3. 세계최고의 서포터 중 하나

성향 1 : 얼음장보다 더 차갑고 까칠한 성격

성향 2 : 자본주의적 성향

성향 3 : 충성심이 꽤 깊음

성향 3 : 연애에 관심 없음

성향 4 : 도박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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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진짜 성녀인가? 그런데 도박을 좋아해? 성녀가 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재밌는 친구였다.

수녀원에서 자랐고, 권능이 ‘선’인데 자본주의적 성향에 도박을 좋아하다니.

“영입해야겠군.”

“초이 말입니까? 흐음-.”

“왜? 안 될 것 있나요?”

“그게 아니라, 과연 고스헌트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고 올는지 의문이 드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땐 현자리움이 훨씬 거대했지만 ‘고스헌트’는 헌터로서 최고의 명성을 지닐 수 있는 조직이었으니까.

“하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신기하게도 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여자다.

시현으로선 자신이 있었다.

마침 전화가 재차 울렸다.

이번에도 세계본부 의장단이었다.

쩔쩔매는 목소리로, 연신 사과를 거듭하면서 시현에게 부탁했다.

“뭐 좀 깨달으셨나요?”

-지금 무슴 말씀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그러지 않으셨소? 막강한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글쎄요. 이익에 눈이 멀어 이 사달을 일으킨 그대들을 구하는 것도 과연 제 책임인가요?”

애당초 사람 목숨가지고 거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그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을 뿐이다.

어디 그 멍청함을 뼛속까지 느껴보라고.

지금은 편 가르고 싸울 때가 아닌, 세계가 하나로 힘을 합쳐 적들과 맞서 싸울 때라는 것을.

“이봐요, 잘 들어요. M던전을 클리어 하는 게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시현은 잘 알고 있었다.

바포메트가 대 군단을 소환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불 보듯 뻔했다.

필경 쑥대밭이 될 것이다.

“다 필요 없으니 약속 하나만 합시다. 그럼 도와줄 테니.”

-무, 무슨···

“앞으로 군말 없이 나에게 전폭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하아··· 알겠소, 내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미국이? 아니, 전 세계가 멸망할 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세계본부로서는 일단 시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오만한 결정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했다.

“그럼 지금 바로 갈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시죠.”

-어, 얼마나 걸리십니까?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세한 얘기는 뒤에 하죠.”

뚝.

전화를 끊은 시현은 남은 맥주를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이제 뭐가 좀 시작되는 느낌이네요.”

.

.

.

산양머리의 괴물.

몬스터 9위계, 바포메트.

놈은 이제 막 군단소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

한 개의 사령부, 약 70만 대군을 소환시킬 게이트를 여는 것은 그만큼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 사이, LA의 헌터들은 잡 몬스터들과 고군분투 하여 싸웠다.

하지만 말이 잡 몬스터지, 대다수가 에픽 및 유니크 등급의 몬스터였다.

특히 바포메트는 가히 재앙이었다.

죄다 헌터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지만 바포메트와 같은 괴물은 처음이었다.

괜히 신화급이 아닌 것이다.

전설급과 얼마나 차이나겠는가 싶었지만 거의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까 큰 소리를 떵떵 치던 SS급 헌터 고든과 메간은 자신에 차있던 모습은 어디가고 헌팅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자신들의 오만함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초이! 기력 최대로 늘려줘!”

“오케이!”

초이, 즉 최희가 베이지 빛의 완드를 휘둘렀다.

고든과 메간의 기력이 최대치로 상승했다.

과연 기력의 기재답게 팀 전체를 서포팅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이걸로는 부족해.’

아무리 서포트가 안간힘을 써도 팀의 화력이 부족하다.

공격수에게 킬패스를 쭉쭉 미뤄주는데, 정작 골이 안 들어가는 상황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바포메트는 점점 더 힘을 모아가고, 그 중심으로 시커먼 마법진이 형성되고 있었다.

‘소환술!’

손이 남는 최희가 소환술을 억제하고자 봉을 뻗었다.

그러던 그때.

스윽.

“그건 나한테 맡기시고.”

그녀 바로 앞에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슈트도 뭣도 착용하지 않은, 마치 술자리에서 오기라도 했다는 듯 술 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설마 지원자가 도착한 것인가?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슥.

남자가 등을 돌리자 최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다, 당신···”

“드디어 만났네, 성녀?”

“어, 어어···?”

당황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최희에게 시현이 말을 이었다.

“기력의 기재라던데. 어디, 한 번 해줘볼래요?”

꿀꺽.

최희는 사뭇 긴장하면서도 시현의 팔을 붙잡았다.

뭐가 어찌되었든 일단 이 상황은 수습해야하니까.

서로 돕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한 최희의 손에서 미묘한 기운이 쏟아져나갔다.

시현의 전신에 들어가 휘젓고 다녔다.

신성한 성수에 청량한 사이다를 탄 듯한 감각이 혈류를 타고 흘렀다.

‘오호···. 이게 축복인가.’

선(善)의 권능.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포켓과 기력이 강해졌다.

아니, 강해졌다기보다는 속성이 선하게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이런 방법도 있었군.’

다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이게 과연 무슨 힘을 가져다줄지.

우지끈-

시현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세상에 저보다 더한 악마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사악하게 생긴 산양머리 몬스터가 있었다.

‘9위계. 사탄 휘하의 사령관이군.’

사탄이 도대체 누군지 어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사탄이라는 놈이 마지막 보스가 될 듯싶지만.

“축복 고마워요. 그리고 조만간 또 뵙죠.”

“네? 갑자기 무슨 데이트 신청도 아니고, 그게 무슨 헛소리···”

과연 스캔했던 대로 까칠하고 도도한 말투에 목소리였다.

또 보자는 말에 그녀는 이마에 주름을 그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뵙게 될 겁니다.”

푸슛!

그 말을 끝으로 시현은 하늘 위로 도약했다.

.

.

.

-크으······.

한참 소환술을 부리던 바포메트는 갑작스레 나타난 시현을 보자 눈을 찡그렸다.

-웬 놈이냐.

“널 죽일 놈이다.”

정적이 흘렀다.

살인마는 살인마를 알아보고,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잖은가?

같은 맥락으로, 눈치 빠른 바포메트 역시 시현의 강함을 알아보았다.

역시 지혜를 상징하는 대 사령관답게 다른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의 무력만을 믿고 힘을 쓰는 부류와는 스타일이 전혀 다른 것이다.

때문에, 바포메트는 서둘렀다.

-㏜㏍ßIJŊđþłɪʀɥʧðɮʙʖʘʢʠʑʐʓʩʬʭʦfflù!

드응-

역시나 시커먼 구멍이 사방에서 소환되었고 그 사이로 몬스터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나타났다.

-궤에에에에엑!

-쿠에에에엑!

시간이 부족해 모든 부하들을 불러내지는 못했으나 이 정도면 지구를 쓸어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바포메트는 시현과 일대일로 겨룰 요량이었다.

나머지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맡기고, 인간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시현은 자신이 처리하는 것이다.

-쓸어버려라.

과아아아아아아아!

재앙!

몬스터들이 빠른 속도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 어떠한 놈도 채 100미터를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는 즉시 처형당했으므로.

“소멸.”

촤르르르륵!

우박이 떨어지듯, 무수하게 조각난 뼛조각과 살점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삭제.”

컴퓨터로 따지면 딜리트(Delete).

파일에 딜리트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전방의 몬스터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 수가 가히 수만.

언령의 범위가 그 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최희의 축복덕분일까?

“제거.”

시현은 마치 신세계를 본 듯 새로 얻은 힘에 흥분하여 몬스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기 시작했다.

“살육. 도륙. 도살. 폭발.”

푸슉! 카응!

카아아앙!

촤라라라락!!

언령의 범위가 어찌나 넓은 것인지 후미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한 방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살.”

푸슈슈슛-

춰르르르르륵!

- ······.

무자비한 광경에 바포메트는 사고가 멈췄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 못했다.

힘겹게 소환한 부하들이 모두 허무하게 죽어버려 충격을 먹은 것일까?

아니었다.

그건 충격이 아닌, 괜히 움직였다가 자신까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오호?”

놀란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히 최희가 세계 제일의 서포터, 기력의 기재라고 불리는 게 아닌 모양.

그만큼 뛰어난 축복의 효과였다.

시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선’이라는 권능의 축복은 특히 악마류 몬스터에게 잘 먹힌다는 것을.

“그럼 어디, 제대로 날 뛰어보자.”

남은 적은 단 한 마리, 바포메트 밖에 남지 않았지만.

더욱이 바포메트는 사시나무마냥 바들바들 떠느라 화끈한 싸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이만 죽어라.”

“일천 배(倍).”

우지끈!

절반의 기력이 육체를 휘감아 정확히 1000배를 강화시켰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심신에서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

마무리는 화끈하게 장식하고 싶었던 시현은 두 주먹을 말아 쥐어 한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입을 연다.

“후-.”

지금까지 숨겨왔던 최강의 살인비기를, 진심을 다해 내뱉었다.

“진 심 펀 치.”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세계의 평화와 단합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일격이 놈에게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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