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유가油價는 세계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대개 세계유가가 상승하면 경기침체로 인해 유류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유가가 하락한다.
그러다가 또 경기가 회복되면 유가는 다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반복되는 것이 국제유가다.
그렇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각 산유국의 생산량이나 원유정책 및 전략에 따라서도 등락이 좌우된다.
여하튼 유가의 추이를 본다면 석유의 중요성이 대두된 이후, 배럴당 100달러 선을 훌쩍 넘기고 어느새 150달러를 넘겨버렸다.
OPEC석유수출국의 감산으로 120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던 형국이었으나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이란, 이라크, 카타르 등이 순차적으로 탈퇴함에 따라 서로의 목을 조르는 석유전쟁이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 석유파동이 시작된 것이다.
배럴당 150달러!
9년 전과 비교해서 무려 2배.
아무리 물가가 많이 오르고 화폐가치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석유’가 필요한 시민들은 등골이 휠 수밖에 없었다.
OPEC은 사실상 해체된 수준이었고 OPEC에서 미리 정해놓은 가격 범위나 등락제한제도는 무 쓸모였다.
매 1초, 국가 간의, 그리고 대륙별 연합간의 유가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2027년 국제유가를 뒤흔들 중대 변수가 나타났다.
현자리움.
이미 미국, 캐나다, 멕시코, 터키 등과 수출계약을 맺은 상태였고 아시아에도 조만간 대규모 원유시장을 열어젖힐 전망이었다.
그에 따라 이 시각 신 석유연맹(NAOP) 중동기구에서는 발 빠른 대처를 위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주요 산유국 회의를 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쾅!
아랍에미리트 NAOP 사무총장이 격분하며 외쳤다.
그는 UAE의 대통령이자 석유대란을 일으킨 주요인물 할리파였다.
“한국에서 어떻게 석유가 나온다는 말이요? 북한이 아니라 한국에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한국의 원유 4천만 배럴.
출처는 분명치 않았지만 순도 100% 원유인 것은 확실했다.
“더 웃긴 건 석유를 시추하고 수출까지 모든 과정을 민간업체 ‘현자리움’이 담당한다고 합니다.”
“국영정유사가 아니란 말이군요.”
“예.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건 석유가 오롯히 사유재산이라는 겁니다.”
“뭐, 뭐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지난 십여 년간 조금씩 빼돌리며 모아왔던 원유를 수출하는 게 아닐까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합니까? 만약 그게 사재기였다면, 누가 미쳤다고 사재기 제품을 그 가격에 팔겠소?”
현자리움에서 책정한 유가는 배럴당 130달러.
두바이유, 서부텍사스 중질유, 브렌트유 등 통상적인 국제유가보다 무려 최대 20달러나 낮은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광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최소한 생산 동결이라도 해야 할 텐데.”
“생산이라니, 그런 말씀 마시오. 한국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를 압박하기 위해, 뒤에 미국을 숨긴 채 유가를 낮추려는 의도겠죠.”
당연한 이치로, 세계 원유 시장은 초과공급이 된다면 유가가 폭락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볼 국가는 단연 ‘석유 수입국 1위’ 미국이었다.
“일단 두고 보죠.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한 것도 아니고. 무슨 수를 부리는 거겠지.”
“그럽시다. 한두 번 속습니까? 흔들리지 맙시다. 어차피 오래 버티는 건 우리 중동이니까.”
“맞아요, 맞아. 아마 수십 억 톤 정도 모아두고서 간을 보는 거겠지.”
“일단 가보는데 까지 가보자고. 누가 이기나.”
어쩔 수 없는 일.
하락하는 국제유가에 따라 값을 내려야했다.
피 말리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 쪽이 포기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전쟁이.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시현에게는, 원유가 무제한으로 나오는 미라클 레이크가 있다는 사실을.
.
.
.
“의장님. 터졌습니다! 터졌어요!”
류건이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하나였다.
대한민국이 <일산 석유 수출량 순위>에서 러시아와 사우디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기 때문.
그것도 압도적인 1위!
“총 4000만 배럴 모두 수출했습니다.”
배럴당 150달러짜리였던 중동의 석유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중동 놈들은 하루만 안 팔아도 경제가 마비될 텐데. 참 대단한 놈들이네요.”
국제유가를 떨어트릴 생각이었던 시현의 계획은 확실히 통했다.
뒤늦게 중동에서 경쟁에 따라붙었지만 헛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해보자 이거죠. 아마 내일이면 제대로 싸움을 걸어올 겁니다. 생산량을 배로 늘려서라도 점유율을 되찾아오겠죠.”
“그럼 우리 쪽도 대비를 해야겠군요.”
괜찮다.
시현에게는 경제무역팀이 있었다.
더군다나 현재 대한그룹과 정부의 든든한 지원까지 받고 있는 상태.
그야말로 현자리움은 국내최고의 보물이니까, 이 정도 지원은 당연한 것이었다.
원유를 수출만 한 것이 아니라 국내에도 싼 값에 팔았기 때문이다.
국내석유수요인 200-400만 배럴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다.
대신, 그만큼 미라클 레이크의 관리자 자간이 고생을 해야했지만.
‘녀석이 좋아하는 돼지농장이라도 차려야겠네. 하도 많이 처먹으니까.’
물론 배가 고프지 않도록 버프를 걸어줄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 더 열심히 일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 매출이 얼마나 됩니까?”
“아, 여, 여깄습니다.”
류간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횡설수설 대더니 이내 떨리는 손으로 매출보고서를 찾아 건네주었다.
---------------------------
엑슨모빌 4,222k bbl 548,877,160$
셸 링엄 6,510k bbl 833,280,000$
페트롤캐나다 7,505k bbl 960,640,000$
.
.
.
합계 40,053k bbl 5,166,837,000$
---------------------------
“51억 달러···. 많네요.”
“···의장님 생각도 저랑 같으시군요.”
원유수출로만 하루에 5조.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 전 세계 석유시장의 50%를 점유하는 금액이었다.
“상여금 1억 씩 돌리세요.”
“예··· 꼭 그러겠습니다.”
내일부터 ‘현자리움’은 신의 직장이라는 소문이 돌 전망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원유값이 대폭 하락할 겁니다.”
“그러겠죠. 그럼 우리야 더 좋은 거고요.”
세계경기가 살아날 것이며 원유 수요는 점진적으로 늘어날 터.
경제발전뿐만 아니라 기술력 역시 가속화될 것이다.
“우리 원유는 무한이니까요. 계속 팔면 됩니다.”
“그럼 중동은 얼마 못가 자멸하겠죠.”
그 이후 한국을 기준으로 제 2의 OPEC을 설립하면 된다.
그럼 다시 국제유가가 안정화시킬 수 있다.
배부른 중동 놈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휘갈기는 격이었다.
“정제시설 설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죠?”
“대한칼텍스와 대한건설이 협력 중이니 빠른 시일 내에 완공될 겁니다. 세계 최대의 규모로요.”
“그럼 일단 그때까지는 대한칼텍스에 정유 맡기도록 하고... 그럼 다 됐나.”
원유뿐 아니라 석유제품도 같이 만들어 팔면 경쟁력에서 우위를 앞설 수 있으며 더 많은 경제적효과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거, 외화가 너무 많은데요?”
“후후. 아직도 멀었는데요, 뭘.”
외화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실업률이 낮아진다.
임금은 오르고 가계소득이 늘어나며 시중에 돈이 많아지게 된다.
경제연구소가 보고한 미래예측보고서의 내용대로 모든 것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
.
.
한 달이 흘렀을 땐 국제유가가 바닥을 쳤다.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급락하더니 그제야 중동의 NAOP가 백기를 들었다.
경제가 파탄 나는데 두 손 두 발 안 들고 배길 수가 없던 것이다.
대표로 할리파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상황까지 일어났다.
시현이 따로 가서 시킨 것도 아니건만 그는 자발적으로 국영방송에 출현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과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모든 것을 시현에게 빼앗겨버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죽는 것보다 그게 더 두려웠다.
“죄송합니다. 저희 NAOP는 오늘부로 해체할 것이며,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여 미래에너지 개발에 힘쓸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NOPEC에 가입하여 세계경제재균형 작업에 이바지할 것을 약속합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제2의 OPEC, 이 이미 설립되었다.
“그리고 또.....”
할리파의 사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8년, S급 헌터시험 주관을 맡았던 우리 아랍에미리트는······”
그렇게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해 서슴없이 털어놓은 할리파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세계에 걷잡을 수 없는 논란을 야기했다.
.
.
.
아랍에미리트는 S급 헌터시험 주관 자격을 박탈당했고, 지난 8년 간 부정부패와 연루되었던 사람들의 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험에서 이득을 챙겼던 헌터들에게도 심판이 떨어졌다.
국제 헌터법에 의거하여 등급이 한 단계 강등조치 당하였다.
개중에는 이미 사망한 최민호도 섞여있었다.
그리고,
“우어어어어어어어!”
아부다비의 왕자, 만수르도 예외는 아니었다.
“죽여,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린다고!”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여태까지 쌓아온 명예는 물론 S급 ‘수석’의 타이틀까지.
거기에 A급 헌터로 강등 당했으며 향후 3년 간 S급 시험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국제재판소에서 망신을 당한 뒤로도, ‘비리헌터’ 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
결국 그는 이성을 잃고 마약과 술에 절어 지내다가 두 달도 안 돼 죽은 채로 발견되고 말았다.
할리파 대통령의 서른두 번째 아들, 만수르의 최후였다.
일각에서는 할리파가 직접 가문의 수치인 만수르를 숙청하였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지만···
늘 그렇듯 진실은 알기 힘든 법이었다.
엄청난 정보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고서는.
.
.
.
맥주향이 풍기는 시현의 집무실.
조각미남풍의 서양인 남자가 들어왔다.
“아이고, 빨리 오셨네요.”
현자리움에 관한 질의응답을 진행하며 술먹방을 하고 있던 시현은 방송용 핸드폰을 잠시 가슴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러자 서양인 남자가 인사를 건네오며 바로 본론을 꺼냈다.
“할리파가 숙청을 지시한 게 맞다고 하네요.”
“허허. 결국 자신의 아들을 죽인 건가요.”
“그렇다고 하네요. 뭐, 알아보니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더군요.”
자신의 친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다니, 섬뜩하리만치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충분히 신뢰할 만한 정보였다.
그는 ‘정보’의 권능을 가진 남자였으니까.
그 이름하야 제이슨.
러시아 헌터중앙기구를 때려 치고 한국으로 온 류건의 동료였다.
국적은 미국으로, 세계에서 가장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이들 중 하나였다.
‘정보의 권능 같은 것도 있었구나. 어떻게 쓰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그렇게 생각한 시현에게, 제이슨이 마저 말했다.
“그런데요, 보스. 제가 회사에서 나올 때, 얻은 정보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게 몇 가지 있어요.”
“정보? 뭐죠?”
“흐음. ROS에 관한 거라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운데···.”
“ROS?”
잠깐. 언젠간 들어본 적이 있었다.
ROS라는 것, 단순히 알파벳을 나열한 게 아니라···
“러시아 최대 마피아 조직?”
“맞습니다. ROS와 연루된 기밀 중에 보스에 관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헌터중앙기구 ‘세계본부’에서 발췌한 사실이죠.
아랍을 뛰어넘었더니 이번엔 러시아 마피아가 시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 헌터중앙기구까지 연루되어있다면···
‘단순한 기밀이 아닌 듯한데.’
“뭐에 관한 거죠?”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제가 찾은 정보에는 ‘파멸’과 ‘전쟁’이라는 키워드가 들어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