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시현, 류건, 자간 셋은 호수 정중앙 인공 섬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의장님 말씀은, 이놈의 연금술을 이용해서 인공유전(油田)을 만들겠다는 거군요.”
“빙고. 바로 그거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 또한 가능한데, 과연 석유라고 불가능할까?
무조건 가능했다.
“그럼 연금술은 자간 이 자식 혼자서 하는 겁니까?”
“그래야죠. 연금술을 쓸 수 있는 건 이놈 밖에 없으니까. 이놈이 여기유전의 유일한 직원이죠.”
“아아······.”
‘직원이 아니라 이거 완전 섬노예잖아....’
밖으로 내뱉지 않고 혼자 생각한 류건은 말을 이었다.
“그럼.. 24시간 동안 여기에 가둬놓고 일을 시키시려는 겁니까?”
“글쎄요. 그건 봐서 정해야죠. 이놈이 과연 하루 할당량을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
그나마 자간에게는 다행인 것이, 시현이 그렇게 야박한 고용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크응······?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자간은 그저 지레 겁먹은 채 둘을 번갈아가면서 볼뿐,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시현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나서야 이해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을 석유로 바꾸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게 네가 연금술로 바꿔야하는 물질이다.”
시현은 미리준비해온 기름통을 꺼내 자간에게 보여주었다.
검은 갈색을 띤 천연 그대로의 ‘원유’였다.
“아아··· 정유소에 오일탱크 먼저 최대한 많이 건설하라고 하셨던 이유가 그거였군요.”
“네.”
시현은 연금술을 통해 만들어낸 원유를 세계로 수출할 요량이었다.
즉, 이 인공호수가 유전油田 그 자체인 셈.
원유저장은 현자리움 화학이 맡을 것이고, 유통과 판매 그리고 수출은 용수의 대한물산이 도맡을 것이다.
“맙소사... 말 그대로 기적이네요, 기적.”
땅 파봤자 10원 한 전 안 나오지만 여기 인공 호수는 물만 끌어다 쓰면 무한대로 석유를 뽑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간의 기력이 무한대도 아닌데, 과연 그만큼 많은 양을 얻어낼 수 있겠습니까?”
“한 번 봐야죠. 놈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씨익.
섬뜩한 미소를 흘린 시현은 자간에게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제 한 번 해봐. 물은 원유로 바꾸는 거야.”
명령에 즉각 반응하여 호수에 손을 담근 자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얼마나 하면 되지?
불과 몇 달 전 시현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났던 자간이 맞는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녀석은 순종적이었다.
‘아주 칭찬해.’
분명 ‘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지금껏 자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기특한 듯 녀석을 바라보며 시현은 온화한 투로 말했다.
“네 능력껏 최선을 다해봐.”
-그르.. 그르르...!
자기만 믿으라는 듯 알겠다고 대답한 자간은 자신 있게 능력을 발휘했다.
촤라라라라!
그 순간이었다.
푸르고 맑은 일급수로 가득하던 호수의 표면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물이 원유로 변해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른 것이다.
“됐습니다!”
“그렇지!”
누가 보나 기름이었지만 시현은 확인 차 고개를 숙여 스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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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정제하지 않은 석유이며, 이를 정제하여 휘발유, 경유, 등유 등으로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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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이걸로 시현의 계획은 현실이 되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물 99.28% / 원유 0.72%]
3%도 채 안 바뀌었다는 것.
표면으로 떠오른 두터운 기름 층 아래는 여전히 물이라는 뜻이다.
호수의 상태를 체크한 시현은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자간에게 물었다.
“기력 다 쓴 거냐?”
-그렇다.....
“자식, 어깨 펴라.”
-알았다.....
보란 듯 어깨를 편 자간은 앉아서 명상에 돌입했다.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시현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변한 겁니까?”
“0.72%. 예상은 했지만 한참 모자라네요.”
수치상으로는 고작 0.72%였지만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호수의 담수량만 1500만 톤이었으니까.
부피로 따지면 약 1억 배럴, 150억 리터!
무려 1억 리터를 원유로 바꿨다고 볼 수 있었다.
“이거··· 스케일이 너무 큰데요?”
말이 ‘억’이지 만약 매일 150억 리터의 물이 소모된다면 물 또한 수입해야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공기를 기름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요?”
“효율이 안 좋아요.”
그건 이미 실험해봤다.
“공기를 기름으로 바꾸려면 훨씬 더 많은 기력이 소모되더군요.”
반면 금을 기름으로 바꾸려면 기력이 거의 안 들다시피 했다.
즉, 연금술에 필요한 기력은 제물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흠··· 그럼 이대로 해야 한다는 건데, 자간 이놈이 하루종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명상을 해서 기력을 채우고, 다시 연금술을 부리고, 또 명상을 해서 기력을 채우고.
무한대로 순환하면서 일하는 것이다.
마치 작공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하루에 네 번 반복한다면 400만 배럴 정도 뽑을 수 있겠네요.”
그로인해 발생하는 매출은 한화로 약 6000억.
“하루에 6000억이라··· 전 직원에게 정말 1억씩 돌려도 되겠군요.”
1억 씩 상여금을 내리라던 시현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작 이 정도의 효율을 내는데도 하루에 6000억이라니!
연으로 따져도 200조다.
세계매출 1위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매출이 500조인 걸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그래서 준비한 게 있죠.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생산량이요?”
“자간의 작업을 도와줄 친구들이요.”
시현은 손을 뻗어 동쪽을 가리켰다.
기력발전소가 있는 방향이었다.
“설마······.”
“빙고.”
딱!
당장 일어나서 유레카라도 외칠 듯 잔뜩 흥분한 시현은 핑거스냅을 치면서 말했다.
“기력흡수저장장치, 기력주입관, 기력주입캡슐. 오면서 보셨죠?”
“아아··· 예. 똑똑히 봤습니다.”
그렇다.
복잡하게 늘어선 장치들, 그것들이 모두 자간의 작업을 도와주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 모든 장치를 이용해서 자간의 기력을 끊임없이 채워준다, 이거죠?”
“네. 준비되는 대로 실험해볼 생각이에요.”
쉽게 말해서 수혈을 해주듯, 다만 피가 아닌 기력을 자간에게 주입해주는 것이다.
동쪽의 기력발전소로부터 끊임없이.
“호오- 그럼 끊임없이 연금술을 사용할 수 있겠군요.”
“그렇죠. 이론상으로는.”
과연 얼마나 많은 기력을 끌어당길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
“기(氣)부터 끌어 모아야겠네요.”
“그거라면 문제없는데, 일단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뭡니까?”
낯빛이 진지하게 변색된 시현은 고개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
“여기 호수 이름,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요?”
.
.
.
현자리움에 ‘기력관리본부’를 두어 전국적으로 기(氣)를 끌어 모았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고, 혈액을 구하듯 시세에 따른 제값을 주고 구입했다.
동시에 회사의 규모 역시 점점 커져갔다.
건설에 이어 화학, 상사 등 여러 부문을 신설한 이래로 쭉 몸집을 키워왔다.
다만 무리한 확장으로 영업실적은 계속 마이너스였다.
그래도 시현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동안 인공호수에서 추출한 원유를 비밀리에 정유소에 쌓아왔으니까.
일정량 이상 모이면 한꺼번에 세상에 드러낼 작정이었다.
또한 아직까지는 세계 그 어느 누구도 ‘파주시 인공호수’의 비밀을 파헤치지 못했다.
시현의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었기에.
세계에서 제일가는 보안구역인 셈이었다.
바로 이곳 현자리움 타운 서부지역에 위치한 인공호수.
미라클 레이크(Miracle Lake).
기적이 일어나는 호수라는 뜻에서 시현이 지은 이름이었다.
지금 그곳에선 원유추출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르르르....
-조금만 힘내십쇼, 자간님!
자간이 온몸 곳곳에 기력주입관을 꽂은 채 미라클 레이크의 물을 원유로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앤트고일이 그의 조수로서 대기 중이었다.
밥도 재깍재깍 챙겨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등등 웬만한 심부름은 앤트고일의 몫이었다.
-오늘의 할당량... 얼마나 남은 게냐...
-700만 배럴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그어어어어어어!
자간에게 주어진 하루 할당량은 2000만 배럴.
즉, 하루에 2000만 배럴의 양을 생산해야 쉴 수 있었다.
점차 늘일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일단 2000만 배럴뿐이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이냐?
-자간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돼지입니다!
-오호, 몇 마리나?
-1200마리라고 합니다!
-오오오!
-수고하셨다고 그가 특별히 준비해준 것입니다!
‘그’라는 건 당연히 그들의 고용주 시현이었다.
‘인간미가 있단 말이지.....’
비록 적은 적이었지만 지금은 볼모로 잡혀있는 상황.
지구생활에 적응이라도 한 것인지 자간은 시현에게 일말의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일도 더 열심히 했다.
-자간님.
-왜 그러느냐?
-우린 언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크으응... 나도 모른다... 언젠간 돌아갈 수 있겠지...
-....전쟁은 끝났을까요?
-어림없는 소리! 이제 고작 몇 달 지났거늘. 50년간 지속된 전쟁이 그렇게 쉽게 끝나겠느냐?
-그렇군요....
사악한 엔델 족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도 안 일어났을 텐데, 그렇게 덧붙이며 작업에 집중하는 자간이었다.
뒤에서 보기에는 한없이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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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명표 대통령은 혹여나 일이 수틀어질까 노심초사했다.
기름안정화 공약을 못 지켰기에 지지율은 뚝뚝 떨어져가고 있었고,
앞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이 생겼다.
일전에 시현이 세웠던 그 계획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됐습니다. 다 해결됐어요. 이제 석유를 비싼 값에 수입할 필요 없습니다.”
시현의 자신 있는 말 한 마디!
다음날 세계 매스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렸다.
<한국에서 원유를 수출한다? 이건 무슨 허풍? 혹시 뒤에는 미국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단순 허풍?>
<한국, 배신당한 ‘아랍에미리트’보다 많은 양으로 승부한다.>
<세계유가변동··· 미국의 봉쇄정책 무력화 작전 돌입?>
그로부터 정확히 2주 후, 모든 검증을 마친 한국의 현자리움 석유화학은 세계원유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세계무역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석유의 불모지 한국에서 일산(일일생산량) 2000만 배럴 이상 추정... 역사상 세계최대 규모!>
<단 2주 만에 서방 메이저 업체들과의 원유수출계약 체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밭에서 미역 채취하는 소리였지만 실제로 가능했다.
바로 현자리움에서.
“보세요. 터졌죠? 하하하!”
시현의 집무실.
시현은 핸드폰을 들고서 대소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반대편에 앉아있던 류건은 혀를 내둘렀다.
‘이젠 스트리밍 방송이라니··· 정말 관종이신 건가···?’
그렇다.
시현은 현재 실시간 인터넷방송 중이었다.
몇 달 전, 홍보를 위해 만들어놨던 회사계정으로 가끔씩 방송을 보다가, 이제는 직접 방송까지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꽤 재밌는데요? 사람들이랑 소통도 하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댓글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와 시현님 개짱!!
-그럼
-부와아아아앜ㅋㅋㅋ
그러다가 시현의 눈에 띄는 질문이 하나 올라왔다.
-그럼 NAOP(신 석유연맹) 놈들도 혹시 현라대왕님이 조져주시는 부분입니까?
“아, NAOP요? 그거야 뭐··· 알아서 자멸하지 않을까요?”
-오오오오오오오!
-역시 현라대왕!!!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 생각해둔 게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현의 말마따나,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중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