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경호, 경호!!”
애타게 부르는 할리파 대통령이었지만 외부의 경호원들은 부름에 답하는 것 대신 정신을 놓고 있었다.
시현이 관저 외부에 ‘마인드 슬리핑(Mind sleeping)’ 따위의 스킬을 살충제 뿌리듯 발동해놨기 때문이다.
“으, 으으, 나한테 원하는 게 뭐요!”
설마 고작 돈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을 리 없겠지?
시현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는 할리파였다.
자신은 대부호이기 전에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이었으니까.
시현이 외교정책에 관한 문제 때문에 찾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암살을 위해서.
‘역시 석유 때문에···?!’
“내,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겠소!”
더 이상 위엄 있는 국왕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목숨을 구걸하는 여느 인질과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를 위협하는 대신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게 됐어요.”
“······뭐, 뭣이?”
“내가 찾아뵙고 싶다고 정식으로 요청하면 절대 안 받아줄 것 같아서.”
할리파를 죽이러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외교관을 비틀어 정의의 사도가 되러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할리파는 어엿한 대통령이자 국왕이 아니던가?
독재를 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을 못 살게 군것도 아니고.
죽일 명분이나 이유는 없었다.
그럼 왜?
“당신 아들 말이요.”
“아들···?”
그 말에 정색한 할리파는 머릿속에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포토 슬라이드마냥, 마흔 명이나 되는 아들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스쳐지나갔다.
그러던 중.
“마, 만수르!”
“그렇지. 만수르가 나한테 저지른 잘못이 좀 있더군요.”
불만이 무엇인지 깨달은 할리파는 속으로 시현을 욕했다.
‘겨우 수석 못했다고 나한테 와서 찡얼대는 거였어? 이런 쪼잔한 놈 같으니라고···’
“허억!”
슥.
속으로 중얼대던 할리파에게, 시현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할리파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
쾅!
“으히익!”
무함마드 부통령에게 으르렁대던 위엄 있는 면모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호랑이 앞에 선 도사견이나 다름없었다.
“워, 원하시면 바로 수석으로 만들어드리겠···!”
“어떻게 결과를 번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그건 두바이 소관이니······”
“그럼 여태까지 그런 짓을 잘도 해왔다는 거군요. 아랍을 아시아의 최고로 만들기 위해?”
꿀꺽, 할리파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널리 울려 퍼진다.
“세계정복이라도 하려고 하셨나?”
“그건..... 그저 부탁이 들어와서...”
쉽게 말해 학연, 지연, 혈연들의 부탁이었다.
“허.”
시현은 아시아국제시험 또한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찼다.
그 동안 지원이 계속 떨어졌던 이유도 바로 그것일 터다.
“하, 한국인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소, 사실이오! 그러니까···”
의외로 술술 불어대는 할리파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궁리만 해댔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그럼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사과하십쇼.”
“···사과?!”
“세상에 당당히 밝히고 책임을 지란 말이요.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아무 일이라면······”
“유혈사태.”
“어, 어억···!”
시현은 짧게 말한 뒤 사라졌다.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할리파였지만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으아아아아아아-! 이런 개 같은!”
분을 터트리는 아우성과 함께 왕궁전체에 발동되었던 정신지배가 사라졌다.
그제야 경호원을 비롯한 비서실장이 정신을 차리고 관저 안으로 들어왔다.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허, 허억! 각하!”
노랗게 젖은 대통령의 바짓가랑이를 바라본 경호원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야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모든 이의 뇌리에 같은 생각이 스쳤다.
‘치, 치매가 오셨어······!’
.
.
.
“두바이는 참 잘 만든 관광도시란 말이지.”
“저도 동감이요, 형님. 특히 저 타워.”
“저걸 오빠가 구해냈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까....”
S급 헌터가 된 세 사람.
시현, 보검, 지원은 호텔에서 빌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부르즈 할리파.
이용수의 대한물산이 건설한 건축물로, 지상 163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이었다.
하지만 9년 전, M던전이 발생하면서 부르즈 할리파를 포함한 두바이 중심지가 모두 결계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 M던전에 갇혔던 시현이 결계를 깨고 나왔던 탓에 M던전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 결과, 두바이의 상징이었던 부르즈 할리파가 두바이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보니 좋네요. 국민들은 얼마나 좋아할까?”
“지금 당장 축제분위기라잖아.”
“하하! 국민들이 오빠가 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요?”
“음. 새로운 타이틀을 얻게되지 않을까?”
“무슨?”
“아랍에미리트의 영웅!”
보검은 대리만족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자기혼자 낄낄대다가 시현에게 물었다.
“형님, 근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뭘?”
“M던전, 내가 허물었다! 이렇게요. 혹시 방송 울렁증 있으신가?!”
“글쎄. 그걸 꼭 말해야하나? 뭐 바라고 한 건 아니니까.”
말하든 안하든 상관없었다.
아니, 솔직히 시현으로서도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게 더 이득이었다.
다만 그런 걸 굳이 자기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면 모양 빠지니까.
‘어차피 언젠간 다 알게 될 텐데, 뭐.’
허물어진 M던전의 내부를 조사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시현이 부수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뭐,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이미 육체의 열쇠까지 얻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두 사람은 오늘 밤에 간다고?”
“네. 오빠는 더 머물다가 가신다고 했죠?”
“응. 여행 좀 하다가.”
여행도 다니고 해변에서 서핑도 하고.
스노쿨링도 하고. 피로도 풀 겸 마사지도 받고!
M던전에 갇혀있었을 때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두바이에 왔으면 꼭 해봐야할 게 하나 있다.
“나 점심에 스카이다이빙 예약하러 갈 건데. 너희도 갈래?”
“오, 좋은데요? 공항가기 전에 하면 되겠네!”
물개박수까지 치며 극적으로 찬성하는 보검과는 반대로 지원은 잔뜩 겁먹은 모습이었다.
“왜, 무서워?”
“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너 헌터 맞지?”
‘몬스터랑 싸울 때 혹시 청심환이라도 먹는 건가. 던전에선 날아다니는 애가.’
운전도 못하고 고소공포증까지 있다니.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럼 나랑 보검이만 갖다올게. 어디 여행이라도 좀 하고 있어.”
“아뇨! 저도 갈게요!”
“구경?”
“아뇨! 같이 할게요. 스카이 다이빙.”
“고소공포증 있다며?”
“버프 걸면 되요!”
“아, 청심환이 아니라 버프였어?”
“네?”
시현은 한쪽 볼을 씰룩이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아냐, 어서 가자. 오늘 날이 날이라 사람 많을 수도 있어.”
.
.
.
스카이다이빙 센터에서 교육을 마친 세 사람은 2시간 만에 상공으로 오를 수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했지만 S급 헌터 자격증이 있었기에 전용코스에서 즐길 수 있던 것이다.
일반코스가 상공 4km에서 낙하한다면, 스페셜전용코스는 상공 15km에서 낙하한다.
말 그대로 S급 헌터를 위한 안성맞춤 코스.
일반인으로서는 목숨 걸고 음속을 버텨야하는 높이지만, 고 등급 헌터들에게는 여흥을 즐길 수 있는 오락에 불과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낙하가 시작되었다.
전문요원이 등에 찰싹 달라붙어있었기에 걱정할 건 그닥 없었다.
보검이 발을 내밀어 스타트를 끊었다.
“우어어어어어어!”
그에 이어 시현과 지원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시현은 뒤에 있는 안전요원에게 귀띔해줬다.
“혼자 내려가세요. 전 같이 갈 사람이 있어서. 걱정 마세요.”
“예, 예? 자, 잠깐. 어디, 어디가아아아아!”
철컥.
전문요원을 안심시킨 시현은 안전장치를 풀었다.
몸에 슈트를 착용한 뒤 15km 상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
휘이이이이익!
마치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
이보다 더 짜릿한 감각이 또 있을까?
시현은 음속으로 낙하중인 지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전문요원에게 안심하라고 말해준 뒤 지원을 바라보았다.
“시, 시현 오빠아아?!”
“가자. 안전장치 해제.”
뚝-
“꺄아아아아아아악!”
시현은 지원을 납치해가 같이 낙하했다.
과연 익스트림 스포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랑은 더더욱 뜨거워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
.
.
3일 뒤 시현의 귀국 날.
인터넷이고 TV뉴스고 온갖 매스컴은 두바이에 관한 기사를 퍼부어냈다.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미지의 던전. 내부 조사해보니 DMC중심지와 연결돼있는 게이트 있어 충격······>
<과연 공간이동의 시대 열리나? 전 세계적으로 관심 쏟아져······>
<게이트/미래과학 관련주 폭등.... 개미들 “미리 샀어야 하는데 아깝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현이 예상했던 뉴스가 각종 포털사이트 메인에 실렸다.
<부르즈 할리파 던전의 붕괴, 내부조사 결과 ‘박시현’과 관련?>
<사실인지 확인여부 중.... S급 헌터시험 합격 후 오늘 귀국.....>
공항은 이미 기자들로 붐벼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부르즈 할리파 던전의 붕괴에 연관이 있다는 조사발표가 나왔는데, 그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무엇을 위해 UAE의 던전을 부순 겁니까? 현자리움과 관련이 있습니까?”
“무슨 이익을 위해서······”
좀비 떼 마냥 달려드는 기자들은 깡그리 무시한 채 공항 출구로 나선 시현은 끝에 가서 한 마디만 해주었다.
“선의였습니다.”
촤라라라라락!
“오오오!”
“선의라 하심은···?”
“선의가 선의지. 뭐겠어요?”
거기까지.
시현은 누가 봐도 멋있어보이게 말한 뒤 미리 준비된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1분도 채 되지 않아 속보가 쏟아졌다.
<아랍에미리트의 영웅? 현지인들 반응 보니, 벌써 팬클럽까지 생겨.....>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의 학교를 졸업한 국민의 영웅, 박시현. 누가 뭐래도 토종 한국인!>
<나날이 발전하는 대한민국! 그 가운데, ‘국민’ 박시현이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시현의 얼굴을 보고자 대기 중이었던 일반인 팬들이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오빠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악!”
“허엉! 날 가져요!”
거의 다 여성 팬이라 그런지 시현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그러자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사뭇 부럽다는 듯 말했다.
“좋으시겠습니다.”
“류건 씨는 주목받는 거 싫어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하하. 그래도 저건 좀 부럽네요. 여성 팬이라니···.”
류건이 리무진 내부 칵테일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꺼내 따라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의장님.”
“수고는 뭘. 아참,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뭡니까?”
“출장기념품.”
“이건······”
면세점에서 뭘 사왔겠거니 싶었는데 제대로 잘못 짚었다.
“자라잖아요?”
“네. 보시는 대로.”
황금빛을 발하는 순금 자라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라는 왜···”
“장수하시라고요.”
“아, 하하··· 그럼 왜 이렇게 큰 놈을 사오셨습니까? 이런 건 한 돈짜리로 충분한데.”
아무리 못해도 300돈은 될 듯했다.
“오래만 살면 뭐합니까. 크게 묵직하게 살아야죠.”
한 번 뿐인 인생··· 별 거 있나?
“하하하! 그렇게 좋은 뜻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둘은 칵테일 잔을 부딪침으로써 출장복귀를 자축했다.
그런데 그때, 분위기를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이명표 대통령이었고, 다급한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