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그르르르르르....
포르네우스.
과연 레비아탄의 남편인가?
일전에 레비아탄이 으르렁대던 목소리와 많이 닮아있었다.
“10년 만에 깨어난 것이냐?”
-무어라!
쿠드드드드-
놈이 20미터는 거뜬히 넘어 보이는 거구를 일으켜 세우면서 윽박질렀다.
지들의 언어로 말하는 시현의 모습에 놀란 것이 첫 번째 이유.
그리고 둘째는,
-어찌 이곳에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겁 대가리를 상실한 게로구나.
바다의 군림하는 황제.
악마군 해군 총독 레비아탄보다도 훨씬 높은 이명.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인 자신을 면전에 두고 전혀 겁먹지 않는다는 것이 극도로 놀라웠다.
-도플갱어인 줄 알았건만. 인간이었다니.
“뭔들.”
-?!
시현이 손에 쥐고 있던 번개속성석이 반응했다.
스르르륵-
품에 안기듯 가슴에 품어졌다.
역시 번개의 속성이라 그런지 이따금씩 따가운 감각이 피부를 자극시켰다.
‘나쁘지 않은데?’
고통을 즐기는 기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마사지를 받는 듯한 느낌을 받은 시현이었다.
번개속성석은 차가운 돌덩이가 되어 식었고 시현의 몸에는 강력한 전류가 흘렀다.
이로써 번개속성이 극한으로 올라간 상태.
시현이 속성석을 사용한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다.
수중에서는 전기가 직방이 아니던가?
제우스! 토르!
번개의 신이 된 것 마냥 전기를 자유자재로 부리기 시작했다.
“번개사슬.”
치직!
치지지지직-!
시현의 손에서 번개사슬이 솟구쳐나가 송사리들을 그물로 낚듯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을 한데 모았다.
그러고는,
“방전.”
파르르르르르!
-케에에에에에에!
바닷물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전해질.
시현의 손에서 뻗어나간 전류가 프로네우스의 하수인들을 감전시켰다.
그러나 프로네우스는 생채기도 입지 않았다.
-인간..... 제법이구로구나.
“또. 또, 그 소리.”
이제는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난다.
진짜 이놈들은 인간을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네놈들에게 인간은 뭐지?”
-인간? 큭큭. 장난감일 뿐이지.
“그래, 네 마누라 곁으로 보내주마.”
-무어라?
“아, 방금 깨어나서 아직 모르는구나. 레비아탄이 내 손에 죽은 걸.”
그 순간,
저저저저저적!
진노한 포르네우스가 힘껏 포효했다.
퍼응-!
파장이 일어나 시현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프로네우스는 그럴 리 없다며 시현의 말을 허세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고는 군단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그긍!
던전의 공간이 매우 넓었기에 소환할 수 있는 병력의 수 역시 엄청났다.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녀석이 소환할 수 있을 만큼 다 소환할 때까지.
시현은 여유롭게 기다려주었다.
마치 주인공이 변신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착한 악당처럼.
어째서일까?
시현으로서도 처음 마주한 괴물이 눈앞에 있는데.
전혀 두렵다거나 불길한 예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지난번, 50%의 힘을 회복한 레비아탄을 사냥하고 난 뒤로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상황을 주시하며 나름의 준비는 잊지 않았다.
적들을 스캔하며 혹여나 스킬을 봉인할 만한 놈들이 있는지 확인했다.
‘저번보다 훨씬 많아.’
저번에 레비아탄이 소환했던 병력이 20만이었던가?
이번엔 족히 100만 마리는 되는 듯하다.
최소 하나의 사령부를 소환한 것이다.
그 말은 즉, 포르네우스 역시 시현의 힘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는 뜻.
사방을 둘러보아도 시커먼 몬스터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이 가는 모든 곳에 더럽고 추잡하게 생긴 것들로 가득했다.
본디 바다에 사는 몬스터들이라 그런지 호흡이나 움직임도 자유로웠다.
반면 시현은 산소통에 의지한 상태.
지킬 것은 등에 매단 산소통과 손에 쥔 육체의 열쇠뿐!
-진격하라.
-쿠어어어어어어!
-기르르르르르륵!
선발대에 선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이 현란한 몸 사위를 펼치며 한꺼번에 달려든다.
제각기 다양한 수 속성의 필살기를 사용하며 휘몰아친다.
바다 전체가 뒤집어질 듯 과격한 움직임이 시현에게 불어 닥쳤다.
하지만 시현은 고요했다.
그가 서있는 지점은 신기할 정도로 평온했다.
전쟁 통 속에 찾아온 잠깐의 평화랄까?
이미 구슬을 꺼내 육체의 열쇠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솨아아아아아-
절대적인 힘에 의해 시공간이 멈췄고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느껴졌다.
-또 뵙네요.
라파엘이었다.
불과 몇 달 만에 그녀와 다시 만난 시현이었지만 인사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다.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
하나라도 더 물어보기 위해선 서둘러야했다.
일단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혹시 사람을 살리는 스킬이 존재하나요?”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부활. 권능 중에 부활기를 쓸 수 있는 권능이 있냐, 이 말이에요.”
시현이 알기로, 현재 존재하는 힐러 중에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SS급이든 SSS급이든, 부활은 마치 금단의 영역인양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물은 것이다.
세상에 그런 스킬이 존재한다면, 언젠가는 시현도 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뇨.
라피엘의 대답은 냉정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아뇨.
“······그럼?”
-저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능을 알지는 못해요.
휴, 다행이다.
최소한 희망은 있는 거니까.
“그럼 그건 누가 알고 있을까요?”
-음. 우리의 왕께서는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왕이라면···?”
-엔델 족의 왕! 세라핌! 모르시나요?
“내가 알 리가 있나요···. 아무튼 어디서 만날 수 있죠?”
-당신은 못 만나요! 인간이니까. 세라핌은 나도 만날 수 없는 분이에요!
‘그런 걸 그렇게 활기차게 말하지 말란 말이다.’
시현은 답답했지만 인내하며 질문을 바꿨다.
“그럼 그걸 알만한 다른 존재는요?”
-음··· 절대자?
“절대자?”
-이 세상을 만드신 고귀한 존재!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단지 우리가 추측하는 것 뿐이라서.
“······.”
보면 볼수록 아는 게 없는 존재다.
시현은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힘이나 달라고 말했다.
-육체의 열쇠. 그대에게 육체의 힘을 드립니다.
솨아아아아아아-!
.
.
.
시공간은 고장 난 시계 고쳐진 듯 다시 규칙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육체의 열쇠의 힘.’
시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근육 하나하나가 타오르는 힘이 느껴졌다.
이제는 단순 권능을 넘어 육체까지도 한계점을 돌파해 최강자가 된 것이다.
혹시라도 언령을 사용하지 못한 상황에 처할 때 많은 도움이 될 터.
그런 육체에 언령까지 깃든다면?
“육체강화 백 배.”
부드드득!
육체가 개조되는 듯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이 터져 나온다.
육체가 강해진 만큼, 증폭에 필요한 기력의 양도 늘어났지만 효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뇌전雷電.”
치르르르!
주먹에 전류가 깃들었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백만 대군과 포르네우스가 동시에 덮쳐드는 그 순간.
내뻗었다.
“전령격電霊擊.”
콰아아아아-!
.
.
.
“푸하-”
M던전에서 빠져나온 시현은 지원을 꺼낸 뒤 출구를 찾아 나갔다.
지상 위로 오르자마자 헬멧을 벗고 숨을 들이켰다.
“형님!”
저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보검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눈을 감은 채 기절해있는 지원을 보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이어 달려온 의료대가 지원의 몸을 터치했다.
“괜찮아요. 자고 있는 거라. 이미 응급처치도 끝냈고.”
인공호흡 등 응급처치는 모두 끝낸 상태였다.
“아아··· 알겠습니다.”
의료대가 돌아가고 나서야 보검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고생하셨어요, 형님!”
“그래, 너도 수고했고. 지금 몇 명이나 빠져나왔어?”
“으음······”
보검의 시선이 위로 향한다.
시험현황을 중계해주는 전광판에 숫자와 이름이 나와있었다.
[17. 박시현]
[18. 김지원]
“합격이네.”
수석은 아니었지만 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얻은 것도 많고, 앞으로 얻게 될 것도 많았으니까.
‘수석 같은 거 마음껏 하라고 하지 뭐.’
분명 만수르 일가 아부다비 왕족에게 부당한 처사를 받은 시현이다.
그러나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자신의 앞길에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니었고, 석유를 가지고 악덕장사를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일단 ‘지금 당장’은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애당초 시현의 목표가 나쁜 놈들에게 벌을 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데, 저편에서 만수르가 다가와 말했다.
“I'm number 1, you are number 17.”
(나는 1등, 너는 17등)
그렇게 말하며 볼을 씰룩거렸다.
너는 안 돼, 별 거 아니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 나라의 왕자가 보이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다.
‘부전자전. 저놈 아버지도 똑같겠지.’
혹시 평소에 시현에게 열등감이라도 가지고 있던 것일까?
만수르의 황당한 행동에 시현은 오히려 자기가 다 민망스러웠다.
해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녀석이 악수를 청해왔다.
“I'm number 1 in asia. And you are 2.”
(나는 아시아에서 1등이다. 그리고 넌 2등이지.)
그럼 그렇지,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가 1등이라고.
지금껏 살면서 1등을 빼앗겨본 적이 없는데, 시현의 혜성 같은 등장으로 위태로움을 느꼈나보다.
놈은 그 말을 뱉고 나서야 얼굴이 좀 편안해보였다.
그러나 시현은 마음을 바꿔먹었다.
‘안 되겠네, 이 사람들.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
.
.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왕궁 관저.
황금소파에 앉은 할리파 대통령은 어제보다 더 분노한 상태였다.
어찌나 화가 난 것인지 고혈압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걸 말이라고 해!”
무함마드 부통령은 연신 용서를 구해야했다.
할리파가 화난 이유는 부르즈 할리파의 M던전 때문이었다.
“문이 안 열렸다고?”
“예···. 아무래도 내부의 문이 열린 것 같군요.”
“미친!”
분개할 만 했다.
기껏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최고의 헌터들을 대기시켰는데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좋은 소식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노여움 푸시지요.”
맞다, 그나마 그것덕분에 할리파의 분노가 이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그의 아들, 만수르의 수석 말이다.
“그래, 그건 수고했어.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크음!”
할리파는 수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부통령 무함마드가 그의 아들까지 이용해서 시현을 떨어트리려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대통령을 마음속으로 욕하던 게 바로 어제인데, 무함마드는 칭찬을 들었다고 그새 기분이 좋아졌다.
최고의 권력자에게 받는 칭찬보다 정신건강에 좋은 건 없으니까.
할리파를 바라보며 어렴풋이 웃고 있는데, 비난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뭐해? 어서 나가서 대책이나 세우지!”
역시 폭군!
오랫동안 봐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남자였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무함마드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할리파는 파이프 담배를 하나 물었다.
스트레스 받는 일 투성이였지만 오늘은 아들 생각만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가짐을 먹으니 담배 맛이 여느 때보다도 달콤했다.
어째선지 누가 마사지해주는 것처럼 몸도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스르륵-
“으, 음? 으헉!”
정말이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주물러주고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
“억! 네, 네놈은.....”
이번 S급 시험에 합격한 남자.
시험이 끝나자마자 텔레포트로 온 박시현이었다.
“이게 무, 무슨......”
할리파가 기겁하며 학을 떼자 시현은 검지를 들어 입술에 댔다.
그리고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조용.”
이른바 참교육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