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제 33팀 리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무함마드 알 막툼이 기권하였습니다.
-제 33팀, 단체 탈락하였습니다.
자동화기계의 중계대로, 제 33팀은 탈락되었다.
팀 리더 만수르가 기권하였기 때문에.
“망했어!”
“젠장······. 저놈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너 이 새끼, 뭐하는 짓거리야!”
사람들이 만수르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으며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댔다.
“이거 안 놔? 집에 가봐야 하는 일이 생겼다니까. 미천한 것들이··· 쯧.”
만수르는 팀원들의 손을 뿌리친 뒤 나머지 아랍인 두 남자와 사원 밖으로 떠났다.
애초에 이럴 계획이었던 것이다.
시현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됐다는 게 문제지.
“흐음.”
‘이해가 안 가는군.’
생각해봤지만 시현으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슨 원한이 있어서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한 것인지.
정말 거대한 흑막이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어차피 시험도 끝났겠다, 저 만수르라는 놈을 납치해서 사실을 알아내야겠지만···.
일단 사원에서 퇴장하는 게 먼저다.
“어쩐지 불길하다 했네요···.”
보검이 한숨을 내쉬며 축 처진 발걸음으로 먼저 사원을 나섰다.
“오빠···. 괜찮아요?”
“어. 가자, 일단.”
그 뒤로 시현과 지원 역시 발길을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제 7팀 리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할리파 알 나하얀’이 카타르를 쟁탈하였습니다.
“······?!”
만수르는 방금 탈락했다.
그런데 제 7팀 리더 만수르가 카타르를 쟁탈했다는 중계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납득하기 힘든 사실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지원이었다.
“오빠! 방금 만수르라고······!”
“나도 들었어.”
시현은 이제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했다.
“우리 팀에 있던 만수르랑 다른 놈이야.”
“···네?”
“동명이인이라 이거지.”
그랬다.
애초에 33팀에 뽑혔던 만수르의 풀네임은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무함마드 알 막툼.
그러나 7팀의 리더 만수르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할리파 알 나하얀.
“···뭔 차이죠?”
“셰이크 만수르까지는 같은데, 뒤가 달라. 쉽게 말해서, 성이랑 아버지 이름이 다른 거지.”
33팀의 만수르는 두바이의 왕자이자 부통령의 아들.
하지만 7팀의 만수르는 아부다비의 왕자이자 대통령의 아들!
애초에 1차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이도 후자였다.
“찾아보니까 생김새도 거의 똑같네. 뭐, 우리가 보기엔 다 거기서 거기니까.”
특히 아랍귀족들은 귀티가 좔좔 흐르고 태가 살아있다.
진한 눈썹에 짙은 쌍꺼풀.
뚜렷한 이목구비에 항상 비슷해 보이는 옷을 입는 UAE의 왕자들이었기에 지원과 보검은 둘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낚...였......다....”
“그러니까... 설마 우리를.. 아니, 오빠를 탈락시키려고 일부러···?”
만수르의 경쟁자를 탈락시키기 위해서 부통령의 아들 만수르가 희생한 것이었다.
“이런 미친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실제상황이었다.
보검이 씩씩대며 소리치자 시현이 만류했다.
“흥분하지 마.”
“형님! 이건 이대로 못 넘어가요! 정식으로 클레임 걸어야한다고요.”
흥분할 만하지.
충분히 붙고도 남을 시험인데, 뻔히 보이는 부정행위 때문에 떨어졌으니까.
여기서 탈락하면 또 1년을 기다려야하니까!
“걱정 마. 내가 해결할 테니까.”
“어떻게요······? 형님 설마 힘으로···”
시현의 무력을 잘 알고 있었던 보검은 설마 만수르를 죽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건 안 돼요, 형님. 상대는 아무리 그래도 두바이의 왕자고, 또 안 그래도 석유파동이다 뭐다 하는데, 여기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보검이 걱정에 찬 눈빛으로 말하자 시현은 손가락을 휘휘 내저었다.
“네 말이 맞다. 지금으로선 무슨 짓을 해도 합격할 수 없어. 이미 탈락한 몸이니까. 하지만.”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하하···. 타임머신이 개발되려면 아마 100년은 더···”
“타임 리버스(Time reverse).”
그 순간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듯 대균열이 공간을 광광 깨부쉈고 시간의 벽을 허물어졌다.
망치로 내리치는 것 마냥 공간이 아스러졌다.
시현의 포켓으로부터 기력이 쏟아져나가 시공간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시간 역행의 주체가 된 시현만이 느낄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이 느낌을!
사아아아아아악!
.
.
.
-헌터 S급 제 2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돌아왔다.
16시 경, 시험이 시작되었던 아까 그 때로.
처억!
시현은 곧장 팀 리더 만수르에게 달려가 멱살을 붙잡았다.
“자, 잠깐. 뭐하는 거야, 지금!”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은 채 그대로 놈의 얼굴을 지면에 처박아버렸다.
“우린 따로 할 말이 있지. 안 그래?”
.
.
.
만수르를 포함한 아랍인 세 남자는 아무도 없는 사원 구석에 끌려가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면담이라는 이름의 체벌, 폭력이었다.
퍽!
퍼억!
오일머니건 왕자건 그딴 건 아무쓸모 없었다.
그냥 복날에 개 패듯 두드려 맞아 온몸이 찌그러질 뿐.
“그,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무사하지 못하는 건 네놈들이겠지.”
퍼억!
우드득! 우득!
“그아아아아아악!”
다시는 손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흠씬 두들겨 팬 뒤 상체의 뼈를 모조리 부러트렸다.
만수르는 그제야 좀 잠잠해졌다.
이제 기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만수르가 시킨 건가?”
“케헥..... 만수르는 난데.....”
“네 말고, 아부다비의 만수르.”
“난 그런 거 몰라.....”
퍼억!
퍽! 퍽퍽!
역시 양아치에겐 매가 약이다.
몇 대 더 밟아주니 지입으로 모든 것을 밝혔다.
지금 이 상황,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화감이 만수르의 대뇌에 퍼진 것이다.
“나는 다 시켜서 한 일이야.... 정말··· 그게 다라고···.”
흑막은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만수르를 처리하면 될 것이다.
일단 그 전에 앞서 시험통과부터 하고.
‘10분 남았군.’
“기력 차지 풀.”
좌아아아아아-
고작 15분을 역행하는 데 거의 모든 기력을 사용했었다.
시간역행은 그 정도로 고차원의 스킬이었던 것이다.
“따라와.”
시현이 만수르를 데리고 팀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카타르를 탈환하려면 리더가 있어야하니까.
그를 낙오시킬 수는 없었다.
“가, 갑자기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작스런 상황전개에 당황한 보검이 황급히 물어왔다.
하지만 시현은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았다.
“이제 가야지. 합격하러.”
동문서답이었지만 그토록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
.
.
-제 33팀 리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무함마드 알 막툼’이 카타르를 쟁탈하였습니다.
제 33팀은 시간에 딱 맞춰서 카타르를 쟁탈해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만수르는 정신을 지배당한 채 강제로 손에 카타르를 들고 있었다.
시현의 작품이었다.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때마침 시험이 종료되었고, 후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팀원들은 시현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런 일이······!”
“저 아랍새끼들! 내가 처음부터 이상하다 했어.”
“흐윽···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현 님!”
홍콩여자들은 얼마나 기뻤는지 시현에게 막무가내로 안겨대기 시작했다.
특유의 부드러운 살결과 물씬 풍기는 선크림 냄새가 시현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것 또한 보상이라면 보상.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자, 잠깐! 잠깐만요!”
지원이 냉큼 달려왔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흐잉...”
정작 시험은 합격했지만 어째선지 슬퍼보이는 지원이었다.
2차 시험은 무사히 끝났고 만수르 역시 풀려났다.
“앞으로 착실하게 살아.”
“.......예, 옙!”
만수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듯 대충 대답했다.
하기사, 왕족인 놈에게는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
만수르의 눈에 두고 보자는 악의가 실려 있었지만, 그러나 저러나 시현은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어떤 방법으로 복수를 해와도, 역으로 보내버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무사히 통과했네. 축하한다.”
시현이 보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보검의 눈동자는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듯 일렁거렸다.
지나치게 감동받은 모양.
“흐윽. 고맙습니다, 형님.”
“오버하지 마, 임마. 아직 마지막 시험 남았으니까.”
마지막 시험.
현재 남은 팀은 겨우 열다섯, 150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중 최후의 20명만이 S급 헌터의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일단 돌아가서 근사하게 저녁이나 먹자.”
“좋죠. 저녁 먹고 마사지나 좀 받을까요, 형님?”
“뭐야?”
보검의 말에 지원이 뾰루퉁해진 입술을 내밀었다.
“그거 내가 해주면 되잖아.”
“마사지를? 누나가?”
“아니 너말고.”
“와~ 왜 나만 빼냐, 이 누나. 둘이 뭐 있는 거 아냐?”
“무슨!”
둘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시현은 우측 구석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만수르.
두바이의 만수르가 아닌 아부다비의 왕자 만수르.
정말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두바이의 만수르보다 좀 더 품위 있으며 키도 조금 더 컸다.
당장 할리우드로 가서 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보란듯 만수르는 코를 찡긋하고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듯이.
부정부패로 물든 만수르와 청렴한 시현의 대결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
.
다음 날.
점심식사 후 최종 시험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DMC의 정중앙.
DMC 센터 지면 아래에 위치한 해저던전이었다.
세게 10대 미궁 중에서도 위명 있는 이곳.
말이 던전이지 사실은 미궁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인간이 점령하지 못한 곳이며, 밝혀지지 않은 비밀장소가 허다했다.
발견되지 않은 몬스터 또한 득실득실 거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곳에서 무슨 시험을 보느냐?
-미궁탈출입니다.
미궁탈출.
던전에서의 생존!
말이야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곳이 바로 미궁이며, 전문 구출대가 들어가도 조난자를 쉽사리 구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매 30분마다 해류가 몰아치면서 던전의 구조가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
단순 신체능력이나, 권능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합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던전에 관한 모든 방면에 완벽해야하며 시시각각 불어 닥치는 변화에 임기응변할 줄 알아야한다.
어지간한 A급 헌터는 뭣도 못해보고 바로 기권해버리는 게 부지기수.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봐야하는 시험이었다.
또한 응시자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있었다.
-시험 방식은 개인 서바이벌입니다.
팀전이 아닌 개인전이라는 것!
더욱이 경쟁자들을 방해할 수도 있다.
다만 살인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즉, 본인의 힘으로 미궁을 헤쳐 나와야 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남의 도움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합격여부가 달린 개인전에서 누가 남을 돕겠는가?
이렇게 해서 미궁을 탈출한 선착순 스무 명까지가 S급 시험을 최종합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물속에서 행해진다.
특수 장비 없이는 숨을 쉴 수 없는 아득한 심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