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내놓으라니 그게 무슨?”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돈 주고도 못 구하는 번개속성석에 눈이 돌아갔던 것일까?
만수르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더니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번개속성석이든 뭐든, 그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아니, 그딴 건 필요 없어. 그러니 팀 리더는 내가 한다.”
갑자기 벌어진 신경전에 팀원들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둘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팀원은 총 10명으로, 홍콩인, 베트남 각각 둘에 한국인 셋, 아랍인 세 명이었다.
그들 중 아랍인들은 당연히 만수르의 편에 들었다.
“저는 만수르 님을 추천합니다.”
“나도요.”
하지만 한국인 둘, 김지원과 박보검은 시현의 편에 섰다.
“우리 형님이 더 믿음직스러운 것 같은데?”
“제 생각도 그래요. 아니, 확신해요.”
이렇게 된 이상, 남은 홍콩인과 베트남인들의 손에 달렸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웃긴 게, 베트남인 남자 둘은 만수르의 편에, 홍콩인 여자 둘은 시현을 지지했다.
“흐음. 이거 곤란한데. 리더는 정말 중요한 자리라서.”
덩치가 산만한 아랍인 남자가 난감하다는 듯 시현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시험이었다.
리더의 행동으로 인해 합격여부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리더에게 특별점수가 주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팀원이야 괜찮지만, 리더는 실수 하나라도 하면 팀 전체가 탈락하게 된다고···.”
근육질의 남자가 계속해서 시현을 못 믿겠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렸다.
그에 시현이 물었다.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세계에서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돼서 그런 거죠.”
“걱정? 무슨 걱정이요?”
시현을 지지했던 홍콩 여자가 물었다.
근육질의 남자는 매우 안타깝다는 듯 제스쳐를 취했다.
“시험 장소는 아랍에미리트, 우리나라입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이분께서는 두바이 왕조의 왕자님이시죠.”
“그래서요?”
“그래서는. 이곳은 우리의 홈. 지리적으로나 정보적으로나 아는 게 훨씬 많다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왕자님?”
대변인마냥 근육맨이 열과 성의를 다해 나불대자 만수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2차 시험장소가 할리파 모스크인 건 다들 알겠지?”
“그럼요. 그런데요?”
“거기는 내가 밥 먹듯 드나들던 곳이라서, 지리적으로 모르는 게 없지.”
“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홍콩인 여자가 토끼눈을 떴다.
그리고 시선을 시현에게 옮기며 말했다.
“미안해요. 당신도 믿지만 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네요.”
이로써 5:3.
총 다섯 표를 얻은 만수르가 리더가 되었다.
만일 이번 시험을 통과한다면 특별추가점수와 더불어 세 번째 시험에서 이점을 얻게 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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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자들은 초호화 잠수함을 타고 할리파 모스크로 이동했다.
동부의 내륙지방에 있었기에 잠수함으로 이동해야했다.
DMC의 해안가가 잘 발달한 문명의 도시라면, 동부의 내륙지방은 그 반대.
이슬람사원 ‘모스크’가 곳곳에 놓여있는, 고대 관광지의 모습이었다.
“형님. 제가 그랬죠?”
잠수함 내부, 바로 뒷좌석에 앉아있는 보검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운이 좋아야한다고 했잖아요.”
두 번째 시험은 운이 좋아야한다는 것.
박보검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같은 팀원이 누군지,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합격의 당락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엄청난 기적이에요. 우리 셋이 같은 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지원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서 후미에 떡하니 앉아있는 만수르를 가리켰다.
“저 남자가 좀 재수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 누구도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시현에다가 만수르까지 있었으니까.
설마 2차 시험에서 탈락할 일은 전혀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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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잠수함이 도착한 곳은 내륙에 위치한 호수였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험관계자를 따라 5분 정도 이동하니 거대한 사원이 나타났다.
할리파 모스크.
DMC 동부 내륙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가의 신앙을 상징하는 핵심 건물로 간주되는 사원이었다.
또한 사원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이자 아부다비의 국왕 ‘할리파’의 권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사원은 높은 장벽으로 가로막혀있었고, 장벽의 외부는 각종 지형지물이 놓여있는 허허벌판이었다.
마치 S급 헌터 시험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궁전이 따로 없네. 그런데 여기서 뭔 시험을 본다는 거지?”
“쟁탈전이에요.”
“쟁탈전?”
지원의 말이 시현을 놀래게 만들었다.
국내시험에서처럼 팀 단위로 던전을 클리어 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쟁탈전이라니.
“뭘 두고?”
“단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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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측 진행요원의 통제 하에 응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시험에 관해 설명하는 홀로그램을 시청했다.
-이슬람을 힘을 대표하는 금장식의 단검 카타르. 최후의 순간 카타르를 차지하는 팀에게는 최종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카타르의 개수는 총 열다섯 개로, 현재 사원 외부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카타르의 개수는 총 15개.
즉, 180팀 가운데 겨우 15팀.
150명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보물찾기네, 완전.”
팀 대항전으로 시작되는 보물찾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이후엔 쟁탈전이 시작될 것이다.
뺏고 빼앗기는, S급 헌터가 되기 위한 사투가!
-단, 시험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 시험시간은 16시부터 16시 30분까지.
둘, 폭력은 허용되나 살인은 허용되지 않는다. 적의 디바이스를 누름으로써 탈락시킬 수 있다.(기권가능)
셋, 팀 리더가 탈락하면 팀 전체가 탈락한다.
넷, 팀 리더만이 카타르를 소유할 수 있다.(리더전용 디바이스 필요)
넷, 팀원 중 다섯 명이 탈락한다면 팀 전체가 탈락된다.
다섯, 고의로 카타르를 훼손했을 경우 팀 전체가 탈락한다.
등등 열 가지의 규칙.
어째서 팀 리더가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조항이 여럿 있었다.
즉, 팀 리더가 없으면 남의 카타르를 빼앗을 수 없다는 얘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승리 조건은, 최후의 순간인 16시 30분에 카타르를 들고 사원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명이 있은 후 응시자들은 모두 팔목에 착용하는 디바이스를 받았다.
중간에 달려있는 하얀색 버튼을 누르면 기기에서 벨이 울려 탈락을 알리게 된다.
탈락이 된 대상은 군말 없이 시험장 밖으로 나와야하는 것이다.
또한 디바이스를 통해 팀원의 위치를 확인할 수도, 무전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치익.
-다들 내 쪽으로.
마침 만수르의 목소리가 디바이스에서 흘러나왔다.
좌표가 찍힌 쪽으로 가보니, 리더전용 디바이스를 팔뚝에 찬 만수르가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이 모두 모인 후 만수르는 짧고 굵게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별 거 없어. 그냥 나만 따라다니면서 말만 잘 들으면 돼. 다들 알아들었지?”
달랑 그게 끝?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만수르의 태도에 팀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특히 홍콩인들과 베트남인들.
“작전은요? 작전을 세워야할 거 아녜요?”
“작전이라니? 그냥 약탈해오면 될 것을.”
“그, 그래도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그런 계획은 있어야하지 않겠소?”
“아니, 전혀.”
외려 당당한 만수르의 태도에 팀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믿고 가는 수밖에.
‘리더’의 말은 절대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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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준비는 끝났다.
앞으로 5분 뒤인, 16시가 되면 시험이 바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각 팀은 거대한 사원을 빙 두른 채 대기 중이었다.
날씨는 온화했지만 금방이라도 폭풍이 불어 닥칠 것만 같았다.
“이거 왠지 불안한데요.”
시현 옆에 선 보검은 안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연신 왼쪽다리를 떨었다.
“있던 복도 떨어져나가겠다.”
“하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형님. 작년도 팀원 중 한 명이 트롤 짓해서 강제로 탈락 ‘당했’거든요. 그런데 저기 저 만수르 자식, 느낌이 영···”
“싸하네요.”
지원도 보검의 말에 동의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인과 홍콩인들도 감이 좋지 않은 것인지 사뭇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건 아랍인들뿐이었다.
아니, 괜찮은 걸 넘어 여유가 철철 흘러넘쳤다.
“걱정 마. 문제 생기면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오오······ 역시 형님···.”
그나마 시현의 믿음직스러운 말 덕분에 보검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띠익-
그때였다.
-헌터 S급 제 2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16시 경.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사원의 내부를 가득 메웠던 응시자들이 일제히 밖으로 튀어나갔다.
신체능력이 좋은 이들은 10미터가 넘는 담벼락을 뛰어넘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8방향의 외문(外門)으로 뛰어나갔다.
남은 시간은 10분밖에 되지 않았기에 1분 1초가 소중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망부석마냥 꼼짝도 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만수르.
“뭐야, 당신? 안 움직여?”
이제 막 발을 떼려던 보검이 만수르에게 외쳤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할 것만 같은 기분에 차마 카타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 리더 만수르가 움직이지 않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어차피 카타르를 찾아도, 리더전용 디바이스가 없다면 소유권을 가져올 수 없으니까.
헌데 만수르는 이런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방긋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서는 상황을 방관했다.
“아, 아니. 이제 14분밖에 안 남았는데 뭐 하는 거냐고. 미쳤어?”
“이봐요, 만수르 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팀원들이 항의하듯 쏘아댔지만 만수르는 그럴수록 뭐 어쩌라는 식의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즐겼다.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마침내 시현이 나섰다.
“뭐하는 거지?”
“좀 쉬다 가려고 하는데. 뭐가 그리 급한가?”
“시험에서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건가?”
“흐음. 뭐,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
듣고도 믿기 싫은 말!
그 말이 만수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보검이 그에게 달려가 멱살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뭘 하기는. 좀 쉬었다간다고 말 했잖아?”
“이런 미친! 탈락하려고 작정을 했구만!”
“그래요, 당신. 그럴 거면 왜 1차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건데요?”
“만점?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만수르는 정말 모르겠다는 눈으로 대답했다.
진실이 서린 눈이었다.
문득 불길함을 느낀 시현은 만수르를 응시하며 작게 읊조렸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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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무함마드 알 막툼
나이 : 32
성별 : 남
직업 : 기업인
소속 : 두바이 왕가
직급 및 직책 : 국제석유투자회사 부사장 및 두바이 왕자
권능 : 검술
특기 : 플래쉬 댄싱소드
특이사항 1. 아랍에미리트 무함마드 부통령의 아들
특이사항 2. S급 헌터시험 1차에서 94점으로 합격함
특이사항 3. 박시현을 2차 시험에서 떨어트릴 계획을 가지고 있음
성향 : 악날하고 야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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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거. 만점이 아니라 94점이잖아?’
알고 있던 만수르와는 완전히 다른 정보였다.
스캔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는데, 그럼 뭐가 잘못된 것인가?
설마 보검과 지원이 거짓말을?
‘그럴 리가··· 잠깐. 설마.’
시현이 수상함을 느낀 바로 그 순간.
“큭큭, 크하하하!”
만수르는 뭐가 그렇게 웃긴 것인지 느닷없이 대소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아랍인 두 남자도 마찬가지.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를 바라보며 낄낄대며 웃어댔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먼저 가봐야겠네.”
“······?”
“집에 바쁜 일이 생겨서. 그럼 이만.”
만수르는 팔찌에 두른 디바이스의 버튼을 눌러 기권 탈락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팀 전체가 동시 탈락되었다.
시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