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중동의 대부호하면 떠오르는 대명사가 있다.
만수르.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아들.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할리파 알 나하얀.
그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왕족으로 태어난 젊은 왕자였다.
고귀한 혈통답게 어렸을 적부터 못해본 것 하나 없었고, 성인이 되었을 때엔 이미 세계적인 거부(巨富)였다.
오죽하면 세계 스포츠 클럽들을 하나씩 수집하는 취미가 있을까.
이미 소유하고 있는 스포츠 구단만 스무 개가 넘었다.
그리고 여기서 신기한 점 하나.
그는 사업가가 아닌 전문헌터라는 것이다.
돈 많은 거부나 재벌들은 ‘심심해서’ 혹은 ‘재미로’ 헌터자격증을 딴다.
몬스터 헌팅은 스트레스 풀기에 적격이니까.
옛날로 따지면 부자들이 트로피 헌팅에 참가하여 돈을 지불하고 야생동물들을 사냥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헌터자격증은 유흥을 위한 수단일 뿐.
오일리치들에게 있어서 헌터란 딱 그런 존재였다.
헌터를 돈으로 고용하면 고용했지, 그들이 굳이 헌터가 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수르는 달랐다.
그는 천성 헌터였다.
어렸을 적 그가 헌터가 된다고 했을 때, 왕가에서는 극히 반대했으나 결국에는 만수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만수르에겐 뛰어난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 뛰어난 재능을 낭비할 수 없었다.
단순히 ‘뛰어나기만’하면 모르겠는데, 일단 그 전에 권능부터가 희귀했다.
뿐만 아니라 성향도 헌터체질!
그는 아부다비 왕족을 대표하는 마스코트이자, 중동의 떠오르는 별 그 자체였다.
“나이지리아의 펠릭스랑 같은 경운가?”
“아뇨. 훨씬 앞서죠. 일단 권능부터가 희귀하니까요.”
“무슨 권능인데?”
시현이 묻자 보검이 슬쩍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고개를 슥 숙이고는 슬쩍 귓가에 속삭였다.
“기밀이에요, 형님.”
“······.”
“···하하하!”
“죽는다.”
“···죄송해요. 제 비밀이면 말하겠는데 이건 회사에서 알게 된 사실이라서······.”
보검의 얼굴에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이 매달려있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말할 수 없었다.
헌터중앙기구의 규율에 위반되는 것이었으니까.
한편 지원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그게 낫네. 회사에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지.”
“네?”
“입 가벼울 줄 알았는데, 다시 봤어.”
어엿한 한 회사의 수장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신기하게도 시현은 보검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넘어와.”
파주시의 현자리움이 뼈대를 갖추고 헌터기지를 세울 때면 헌터들이 필요할 테니까.
시현의 계획에 강보검 같은 헌터가 동참한다면 상당히 든든할 것이다.
보검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근접딜러니까.
시현의 갑작스런 제안에 보검은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렸다.
“예, 예···?”
“우리 회사로 넘어오면 전폭지원해준다고.”
꿀꺽.
보검은 침을 삼키며 시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시현이 대단한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패기로 헌터중앙기구의 S팀 멤버를 스카우트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류건까지 그만 둬서 난리도 아닌 판국에!
“아무튼 저 만수르란 남자가 그렇게나 대단하다는 거지?”
“그럼요···. 말씀하신 나이지리아의 펠릭스보다 한 수 위죠.”
등급으로 따지면 펠릭스가 더 높지만 등급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할 뿐.
진짜배기는 실력이다.
“형님, 중동이 왜 아시아에서 S급 헌터가 가장 많은 줄 아십니까?”
“중국이 아니라? 것도 아랍이 젤 많아?”
중동의 인구수를 다 합쳐도 중국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S급 헌터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지역이 중동이라는 건 필경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돈?”
“그렇죠! 오일 머니!”
석유 얘기가 나오자 흥분하는 보검을 뒤로, 이번엔 지원이 대답했다.
그녀 또한 만수르에 대해 기본적인 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강해지는 게 헌터니까요. 없어서 못산다는 속성석을 그 만수르라는 사람이 애달프게 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여태껏 다섯 개밖에 발견되지 않은 속성석을 구한다는 건 그만큼 돈이 많다는다는 얘기.
“일각에서는, 순수 실력으로 따졌을 때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얘기도 있어요. 2년 전인가? 혼자 10성 던전을 클리어 했을 정도니까요.”
즉, ‘돈’이 만수르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준 셈.
“예나 지금이나, 최고는 역시 오일머니라 이건가.”
10년 전, 많은 전문가들은 최소한 2030년까지는 석유생산이 석유수요를 충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자율자동차와 전기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특급변수가 있었다.
바로 몬스터의 출현.
그리고 던전의 생성.
거기에 새로운 에너지 개발까지.
소위 5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그것들!
현대식 무기, 최첨단기술, 헌터전용슈트 등을 개발함에 있어서 ‘석유’가 시너지효과를 유발시켰다.
그에 따라 세계석유수요량은 당연히 사상최고로 치솟았고, 국제유가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석유봉쇄정책을 실행한다?
인도적 차원으로 봤을 때 깡패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게 다 저기 만수르, 저쪽 집안이 벌인 짓이에요.”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원의 말대로 아부다비 왕가가 그 쓰레기 같은 짓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혹시 내가 99점 받았던 것도?’
보일 듯 말듯, 음지에 가려져있는 흑막이 어둠 밖으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어째선지 지금 이 시험, 보검이 말했던 것처럼 온갖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흑막이.
“수석으로 통과하면 뭐 특별히 좋은 게 있나?”
“그럼요, 형님. 좋은 점이 어디 한 둘이겠어요? 일단 명예가 주어지잖아요.”
명예.
만수르를 수석으로 만들어야하는 명분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짐짓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듯 시현은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다가 문득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수르 무함마드 알 막툼’이 두툼한 입술을 내민 채 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선전포고라도 한다는 듯이.
.
.
.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의 왕궁.
아부다비의 국왕이자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인 할리파는 이른 아침부터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었다.
정치에 관해서가 아닌 자신의 아들인 ‘만수르’ 때문이었다.
“공동 1등이라니, 그게 말이나 가당키나 해!”
할리파 대통령은 정말 황제인 마냥 옥좌에 앉은 채 노발대발했다.
어제 두바이에서 있었던 S급 헌터 시험의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그를 면전에서 독대하고 있는 부통령 무함마드는 난감한 얼굴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무함마드는 죽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사과했다.
여기서 웃긴 점은 무함마드 또한 ‘국왕’이라는 것.
그렇다.
할리파가 아부다비의 국왕이라면 무함마드는 두바이의 국왕이었다.
그럼에도 무함마드가 아무 말도 못하고 쥐죽은 듯 있는 이유는 자명했다.
할리파 대통령의 힘이 너무 강하니까!
아랍에미리트 연합(UAE) 출범 이후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국왕이, 부통령은 두바이 국왕이 각각 나눠 맡는 방식으로 권력을 나눠왔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석유 매장량의 97%, 가스 매장량의 90% 이상을 보유했기 때문에.
지금껏 세계 굴지의 천연자원 생산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부다비 덕분이었다.
두바이가 아무리 관광도시로서 명성이 자자하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즉, 할리파 대통령은 불소무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점수가 어떻게 99점에서 100점으로 오르나?”
“그것이··· 일단 기계의 오류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아직은 밝혀진 게 없는···”
“이런!”
계획대로였으면, ‘만수르 할리파 알 나하얀’의 유일한 경쟁자인 ‘박시현’에게 99점이 채점되었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99점으로 산출되었으나, 보고에 따르면 갑자기 100점으로 점수가 올랐다고 했다.
“미친놈들!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내 아들하나 수석으로 만드는 게 그렇게나 어렵나? 여태까지는 잘만 해왔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한 지역의 국왕을 불러다놓고 하는 얘기가 고작 ‘부정청탁’이라니, 영락없는 코미디였다.
하지만 할리파 대통령이 이토록 안달이 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아들이 일등을 하지 못하는 건 두 번째 문제야. 하지만.”
“하지만···?”
할리파 대통령이 상체를 슥 숙이더니 검지를 들어 치켜세운다.
“첫 번째 문제는, 내 아들이 수석을 하지 못했을 시 잃게 되는 명예! 동시에 동반되는 경제적 불이익! 그게 중요한 거란 말이야! 내가 NAOP(신 석유연맹)에서 얼마나 큰 소리를 쳤는지 알기나 하나?”
만수르가 수석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자존심이 센 할리파는 여타 아랍국가의 대통령들과 자그마한 내기를 걸었다.
뿐만 아니라 공동 1등조차도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할리파였기에 지금 이 상황은 충분히 분개할만했다.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전에도 보고 드렸듯 이번 시험엔 박시현이라는 자가···”
“그래서.”
“나이지리아에서 엄청난 활약을···”
“겨우?”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한국에서도 불가사의한 몬스터를 잡았다고···”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 불가사의한 몬스터가 얼마나 강한데?”
“그건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 말에 할리파는 콧방귀를 꼈다.
“이의제기를 할 거면 하라고 해! 증거 따윈 없으니까. 아무리 힘이 강해도 뭘 하겠나? 전쟁을 일으키겠어, 아니면 폭력시위를 하겠어? 그럴만한 무력이 있다면 이미 세계를 재패했겠지.”
“음···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헌터가 강해봤자 중동의 왕족들 앞에서 뭘 할 수 있겠는가?
무려 미국도 함부로 못 건드는 게 할리파 국왕인데!
“알겠습니다. 아직 2차, 3차 시험이 남아있으니 너무 염려는 마시죠.”
“그래,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라고.”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썩 나가지, 뭐해?”
“···예, 각하.”
무함마드 부통령은 왕궁을 터벅터벅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그런 걸로 내기를 해? 참나. 저딴 놈이 대통령이라니···.’
무함마드 자신도 군주제의 수혜자였지만 할리파를 보고 있으면 절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런 수준의 사내가 한 왕족을, 나라를 대표하는 수장이라니.
국민들이 알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올 수준이었다.
이래서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선거를 하는 것인가? 심지어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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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이끌기에 나만큼 적합한 이는 또 없을 듯하군.”
제 33팀, 10명의 팀원이 함께 모인 자리.
팀 리더를 선출해야하는 상황에서 만수르가 자신감 넘치는 투로 자신을 어필했다.
하기사, 평생을 남한테 진적도, 기죽은 적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왔는데 이 자리가 뭐라고 위축 들겠는가?
다만 바로 맞은편에 서있는 남자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박시현.
만수르 역시 시현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왕족의 체면과 품위라는 것도 유지해야하니까.
만수르는 자신의 화려한 경력 및 소개를 끝마친 뒤 시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동의하나?”
그러나 시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하지.”
둘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둘 중 그 누구도 쉽사리 양보할 것 같지 않자, 시현이 먼저 강수를 두었다.
리더는 가산점이 부여될 만큼 중요한 자리였기에.
“이거면 포기하려나.”
“이건.... 맙소사!”
“현재 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원한다면 팔아주지.”
시현이 꺼낸 무언가.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그것’이 만수르의 눈을 번뜩이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만수르는 왕족의 체면까지 버려가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이리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