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박시현 씨 아닙니까···?”
“이런대서 다 뵙네요. 거의 일 년 만이죠?”
정확히 열한 달 전, 강원도 M던전에서 탈출했던 시현이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던 남자.
공기업 팀장 어윤성이었다.
둘은 악수를 나누며 갑작스러운 재회를 맞이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예예. 저야 뭐, 시현 씨 덕분에 너무나도 잘 지냈죠. 그런데... 오우, 이럴 수가···.”
어윤성은 아직도 이 현실이 안 믿기는지 연신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뉴스도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하. 칭찬인가요?”
“칭찬이죠, 그럼. 그리고 실물이 훨씬 나으신데요.”
어윤성은 진지한 얼굴로 낯부끄러울 법한 칭찬을 해댔다.
임플란트를 어디서 해야 하는지 물어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불과 1년 만에 새사람이 된 시현을 면전에 두고 있으니 감격이 더했던 것이다.
둘은 이륙하기 전까지 이런 저런 만담을 나눴다.
“그때 주신 건 잘 썼습니다.”
“아!”
김은혜한테 주려고 했던 1억!
어윤성은 그 돈을 시현한테 줬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덕분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으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해 시현은 어윤성에게 있어서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땐 고마웠습니다, 팀장님.”
“무슨 말씀을요. 저야말로 감사드리죠. 시현 씨 덕분에 이제 팀장이 아니거든요.”
“그럼···?”
“과장에서 승진했지요.”
어윤성이 허리를 숙여 시현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부장입니다. 그것도 본부장이요. 하하!”
“······오우.”
단지 시현의 입김만으로 이 되었다니.
그것도 불과 1년 만에 승진을 두 번이나 했다고?
시현으로서도 믿기지 않았다.
“하하. 사실은 말이죠. 시현 씨 덕분에 차장으로 특진한 뒤 바로 대형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죠.”
“아, 거기서 큰 활약을 하신 겁니까?”
“그렇죠.”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그만한 활약을 했으니 1년 사이에 두 번이나 특진할 수 있던 것이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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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헌터협회
던전관리대책본부 / 부장
어 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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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을 보고 있으니 시현은 뭔가 신기하기도, 뿌듯하기도 했다.
“던전관리대책본부··· 그런데 여긴 뭐 하는 뎁니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궁금했다.
저런 부서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어윤성이 곧장 설명해주었다.
“말 그대로 던전을 관리하고 대책을 세우는 부서인데, 하던 일이 잘돼서 요샌 해외에서도 작업합니다.”
“아, 그럼 두바이에 가시는 것도?”
“예, 협력요청이 들어와서요. 부르즈 할리파 던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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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에 입국한 시현은 두바이에 예약해둔 호텔로 직행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곧장 인터넷 뉴스를 확인했다.
키워드는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던전.
검색하자마자 당일 올라온 기사가 좌르륵 검색되었다.
<미지의 던전 분야 정보력 세계1위, ‘한국헌터협회 던전관리대책본부팀’ 당일 두바이에 도착>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던전, 과연 9년 만에 뚜껑 열리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던전은 이미 정보협력 끝나. 올해 안으로 결계해제작업 돌입예정>
<정보를 꽁꽁 싸매던 한국이 이제야 정보협력을 시작한 이유는?>
<모든 것은 이명표 대통령의 지략?>
<정보협력을 통해 한국이 얻은 이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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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있었네.’
M던전이 위치한 7개국은 텍사스협약에 의거해 M던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야하지만 그동안 한국은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그러다 갑자기 미국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까지 한국과 정보를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윤성 부장이 말했던 대형 프로젝트랑 관련이 있나?’
짐작컨대, 어 부장이 주도한 대형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정보를 알아낸 모양이다.
가령 M던전의 결계를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뿌듯하네.’
지금까지 시현이 이명표한테 알려줬던 정보가 큰 도움을 줬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도움을 받겠는데?’
S급 헌터시험이 끝난 뒤 부르즈 할리파 M던전을 격파할 예정이었으니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즉, 자업자득인 셈.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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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시험 당일.
시험장소 해안가에 도착한 시현은 김지원과 강보검을 만났다.
“오셨어요, 우리 형님!”
닭살 돋게 친한 척을 하는 보검이 달려와 시현의 앞에 서더니 느닷없이 허리를 숙였다.
“어서 이 불쌍한 중생들을 구원해주십쇼! 올해는 꼭 붙고 싶습니다! 제발 같은 팀이 되게 해주소서!”
미워할 수 없는 놈이었다.
“일어나, 자식아.”
장난기 가득한 보검을 툭툭 치고 있는데, 어느 틈에 김지원이 달려와 쑥스러운 얼굴로 인사했다.
강보검을 의식하고 있는 것인지, 둘만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지, 그럼.”
“헤헤···. 아침식사는 하셨어요, 오빠?”
“아니, 오늘 밤에 근사한 거 먹으려고 비워놨어. 그러니까 얼른 시험 치러 가자고.”
두바이는 한 여름인 한국과 마찬가지로 심히 더웠다.
그래서인지 해안가는 상반신을 훤히 드러낸 관광객들로 붐볐다.
더구나 S급 헌터시험을 응시하러 온 헌터들까지 껴있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헌터들은 모두 해변가를 따라 두바이 항구로 이동했다.
시현의 일행도 마찬가지.
항구에는 저마다 특색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각국에서 잘나간다는 A급 헌터들이 모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여기서 뭘 기다리라는 거지? 배 타고 어디 섬으로 가나?”
“헐... 형님 어디서 시험 보는지 모르세요? 아니, 안 찾아보셨어요?”
“응. 안 찾아봤는데.”
장소가 어디든 어차피 가서 시험만 보면 붙을 테니까.
근거가 넘쳐나는 자신감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정말 섬이라도 가는 거야?”
“섬이긴 섬이죠.”
“섬이면 섬이지, 그럼 뭐가 또 있어?”
“오빠.”
“응?
“해양도시 가보셨어요?”
‘······해양도시?’
빠아아아앙!
오전 10시가 되자 약속시간에 딱 맞춰 크루즈선이 선착장에 정박했다.
지원이 크루즈선을 가리켰다.
“저거 타고 해양도시로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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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던전에서 나온 뒤, 비약적인 과학발전에 몇 번 놀란 적이 있었다.
기(氣)를 이용한 현대식무기라던가, 홀로그램을 이용한 각종 기기라던가.
하지만 지금 눈앞에 놓인 것은 그 무엇과도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해양도시.
어느 정도는 수면 위에 떠있고, 나머지는 수면 아래에 잠겨있는 구조였다.
마치 육지위의 도시를 떼어다가 페르시아 만에 옮긴 듯한 모양새.
‘뉴스 좀 봐야겠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르니 원···.’
왠지 혼자서 늙어가는 듯한 슬픈 생각이 들었다.
M던전에 갇히기 전인 2018년에도 해양도시를 건설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그게 현실로 다가오니 참 신기했다.
‘이제 좀 문명인이 됐나싶었는데 아직도 한참 멀었네.’
그로부터 30분여.
인간은 참 대단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두바이 해양도시 DMC(Dubai Maritime City)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비행기가 탑승게이트에 탑승교를 연결하는 것처럼, 크루즈선이 해양도시의 통로와 연결되더니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쿠아리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해양도시도 괜찮네.’
시현은 이미 머릿속에 한반도의 삼해(三海)를 그리고 있었다.
과연 어느 쪽에 해양도시를 건설해야 좋을지···.
갑자기 피어난 야망이었다.
“그런데 무슨 시험이길래 해양도시에서 보는 거야? 신청서에도 안 나와 있던데.”
“후훗. 오빠, 여기 바다 밑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뭐가 있는데?”
“세계 10대 미궁 중 한 곳, DSP가 있어요.”
DSP(Deep Sea Prison).
심해감옥이라는 뜻.
지원의 설명대로 세계 10대 미궁 중 한 곳으로, 문자 그대로 심해 속의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미로형태의 던전이었다.
DMC해양도시와 인공적으로 연결돼있는 던전이기도 했다.
“들어본 거는 같은데, 거기가 왜? 혹시 시험장소?”
“네. 제가 매번 좌절해야했던 최종시험장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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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응시자 집합장소는 해상(海上)에 위치한 DMC헌터기지였다.
시험응시는 이미 이뤄진 상태였기에, 번호표 발부부터 시작해서 시험일정 설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만 응시자가 워낙 많다보니 주최 측에서도 통제가 좀 어려워보였다.
“니 짜오 션머 밍쯔?”
“워 짜오 신 짜오!”
“오, 쉬마?”
아시아, 오세아니아인만 모였다보니 응시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단연 중국으로, 1874명의 중국인이 응시한 상태였다.
그래서인가?
‘중국인들은 강산이 변해도 여전하구나.’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시현이 느껴온 바로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목청이 컸다. 그리고 말이 많다.
지금 다시 보니 확실했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합격정원은 정해져있으니 붙기가 힘들지.’
거기에 인도, 아랍인들까지 있으니 아시아시험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그래봤자 시현에겐 다 아가들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다만 DSP, 심해감옥은 좀 기대됐다.
‘찾아보니까 아직 미궁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던데.’
아직 인간의 발이 닫지 않은 곳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진귀한 보물이 발견되니까.
권능의 열쇠와 구슬도 우연찮게 얻지 않았던가?
시현은 지구엔 아직도 엔델 족의 보물이 많이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특히나 열쇠.
‘열쇠의 종류엔 권능의 열쇠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으니까. 한 번 찾아보지 뭐.’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무렵, 주최 측의 공지 전달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주위의 중국인들은 입에 모터를 달았는지 말을 멈출 기색이 없었다.
시현은 왠지 자신을 두고서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듣고자하면 중국어쯤은 쉽게 직청직해(直聽直解)할 수 있는 시현이었지만 더 머리 아플까봐 그냥 귀를 닫고 있었다.
헌데 옆에서 숙덕거리던 중국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가 영어로 말했다.
“알 유 시현 팍?”
혹시나 하는 물음에, 시현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고개를 숙였다.
시현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을 본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꽥꽥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악!”
“오, 오, 오 마이 가앗!!”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악수를 건네 오기 시작했다.
“와우! 나이스 투 미츄!”
그들은 짧은 영어를 해가며 시현과 악수를 나눈 뒤 방금 왔던 대로 또 우르르 떠났다.
‘몰려다니는 것까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과연 이기적인 성향도 그대로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2일차에 팀 미션이 있다는데, 이기적인 중국인들과 한 팀이 되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 같아서······.
걱정이 있다면 그것뿐이었다.
삐이- 삐이-
그때였다.
공지전달이 있은 후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방송이 울렸다.
-부여받은 번호대로 각 대기실로 이동해 대기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시현이 부여받은 번호는 771번.
1-1000번까지 모여 있는 대기실로 이동했다.
시험장이 이렇게나 넓은데도 응시자가 워낙 많다보니 기다리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또 기다리니 어느새 시현의 차례가 다가왔다.
1일차의 첫 번째 시험은 역시나 체력테스트.
각 기계의 측정은 아시아 S급 헌터를 기준으로 1-100점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목표는 수석이지.’
모든 부문에서 만점을 받을 생각으로, 시현은 첫 번째 근력측정시험에서 온몸에 힘을 실어 묵직하게 팔을 내뻗었다.
“100점짜리 주먹으로.”
파앙!
대기실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의 골을 뒤흔들 정도의 타격음이 타격대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누가 보나 100점짜리 파괴력이었다.
이 정도면 최소 SS급 헌터 이상의 주먹이었으니까.
그리고 채점결과 역시······
“음?”
띠딕-
[99]
놀랍게도 100점이 아닌, 1점 모자란 99점이었다.
분명 언령과 함께 100점짜리 주먹을 뻗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