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67화 (67/100)

# 67

<제 9회 아시아 S급 헌터자격시험 참가신청서>

참가자격 : 각국의 A급 헌터 라이센스 보유

시험날짜 : 06/11/2027 ~ 06/14/2027

시험장소 :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지원이 건넨 서류에 명시된 내용이었다.

“이걸 나보고 신청하라고?”

“네. 오빠 필요하실 것 같아서 신청서 배부받자마자 들고 온 거예요!”

나이지리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D급이었던 시현이었으나 전 대통령의 호의덕분에 A급까지 단번에 승격했었다.

국가에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었다.

S급부터는 대륙별 국제규정에 따라야하기 때문에 줄 수가 없었다.

“흥미롭긴 한데··· S급부터는 대륙별로 시험을 치르는 건가?”

“맞아요!”

월드컵 지역별 예선이랑 같았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이런 식으로.

“음··· 고맙긴 한데. 내가 굳이 헌터 등급을 올려야할 이유가 있을까.”

“그럼요. 오빠 하는 모든 일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예요.”

D급과 A급이 받는 대우가 차원이 다른 것처럼, A급과 S급 역시 격이 다르다.

모르긴 몰라도, A급은 돈과 인맥만 있어도 국내에서 받을 수 있으니까.

미천한 실력으로 단기간에 A급을 달성했던 천우현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면에 S급은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국제공인라이센스나 마찬가지인 셈.

비리가 없다고는 말 못하나 국내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런데 혜택이 그렇게나 많아?”

“그럼요. 제 입으로 말하기 아플 정도로 혜택이 많죠.”

아시아헌터협약에 따라, 각국을 방문할 시 갖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오빠야 물론 지금도 충분히 차고 넘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미래의 가족들에게도 보장될 테니까요.”

“미래의 가족?”

“아, 그니까··· 그 아들, 딸한테요···. 하하.”

괜스레 두 볼을 붉힌 지원은 아이스박스에 담아온 물을 꺼내 들이켰다.

그 모습에 시현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며 머릿속으로 고민했다.

‘S급 헌터라···.’

안 그래도 A급은 너무 낮은 수준이긴 했다.

그렇다고 S급이 적당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백지장도 만들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지원의 말대로 따는 게 나을 듯했다.

세상만사 무엇이든 무력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면 헌터등급은 큰 도움이 될 테니까.

‘3일이면 얼마 안 되니까. 가는 김에 일도 처리하지 뭐.’

해야 할 공사가 많지만 그거야 잠시 뒤로 미루면 그만이다.

게다가 원래 두바이에 볼 일이 있었기에, 시현은 시험을 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가만 보니 중동엔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네.’

사람이 맨날 일만 하면서 살 순 없지 않은가?

이왕 가는 김에 스카이다이빙도 해보고, 서핑도 좀 즐기고.

어렸을 적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해안가에서 여유로운 라이프를 즐기는 늘씬하고 건장한 젊은 남녀들을!

‘그런 것도 젊을 때 즐겨야지.’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냥. 이왕 가는 김에 시험 끝나고 여행 좀 하다올까 해서.”

“우와··· 나는 시험 본 다음날 바로 귀국해야하는데···.”

“응? 너도 가니?”

“그럼요!”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지원은 여전히 A급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왜 아직도···”

“하하······.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요.”

“그럴 리가.”

시현은 지원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녀의 재능이면 충분히 S급을 통과하고도 남았으니까.

빈말로 하는 게 아니라, 나이지리아에서 보았던 영국의 S급 서포터보다도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너 A급 언제 땄다고 했더라?”

“5년 전이요.”

“그럼 그 말은 즉···”

“하하···. S급 시험만 올해로 5번째 도전이네요...”

1년에 한 번 있는 S급 시험.

믿기지 않게도 지원은 지금까지 네 번 연속 시험에 낙방한 것이다.

“실력 말고 운도 필요한가?”

“음···. 팀 미션 같은 게 있긴 해서 운이 반영되기는 해요. 다만 매년 응시정원은 많아지는데 합격자 수는 항상 같으니까, 그게 좀 어렵죠.”

그 말은 즉, 그 해에 능력 좋은 헌터가 몰리면 그만큼 합격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런데 뭐···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보검이도 작년에 A급으로 특진하자마자 시험 쳤는데 낙방했구요.”

과연 국제공인시험은 다른 것인가?

그 사실을 듣고 나니 시현의 마음속에 꺼졌던 흥미가 다시 불어났다.

“이번엔 꼭 붙을 수 있을 거야.”

“하하. 그랬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날엔 같이 여행도 가고···.”

속마음을 말해버린 지원은 눈을 좌우로 막 굴리더니 한차례 뜸을 들이고는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오빠는 끝나고 어디로 여행 가게요?”

“글쎄. 일단 두바이몰이랑 부르즈 할리파 타워는 보고 와야지.”

“네? 부르즈 할리파요?!”

지원이 시현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뒷목을 긁적이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오빠. 거기 없어졌잖아요.”

“없어져? 어디로?”

두바이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부르즈 할리파가 사라졌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시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지원이 마저 설명을 덧붙였다.

“거기에 M던전 발생했잖아요!”

.

.

.

그날 밤.

시현은 파주 시내 고급식당에서 귀빈대접을 받으며 지원과 만찬을 즐겼다.

만찬 후엔 시현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한 차례 휴식을 가졌다.

지원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고, 시현도 곧장 다시 건설현장으로 복귀했다.

쿠엔틴에게 귀에 박히도록 들은 설명을 토대로 새벽공사를 시작했다.

부지전체에 장막을 둘러놨기에 소음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일은 없었다.

또한 상공이나 외부에서 시현의 건설현장을 볼 수도 없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시현은 홀로 묵묵히 자재를 옮겨 날랐다.

아득한 밤처럼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아랍에미리트에 M던전이 하나 발생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에 발생했던 사실은 알지 못했다.

‘차라리 잘됐네.’

안 그래도 준비되는 대로 ‘M던전 클리어 순회공연’을 돌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험 친 뒤 바로 가서 처리하면 될 듯했다.

‘첫 타석은 두바이가 되겠군.’

세계 7대 M던전 중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그곳에도 분명 신화 급의 몬스터가 잠들어있을 터.

이미 동면기를 마치고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깨어난다면 놈의 선택지는 두 가지.

인간을 공격하거나 자신의 고향으로 차원이동 해 본대에 합류하거나.

‘어느 쪽이든,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엔델 족과 몬스터의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지구도 안전해질 수 없다.

따라서 방어와 동시에 선공을 가해야한다.

물론 M던전의 결계를 깨부술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아무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구의 자리를 잡은 암세포 같은 M던전을 모조리 처리해야 할 것이다.

.

.

.

시간은 흘러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작년 이맘때쯤 M던전에서 탈출했던 시현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날이기도 했다.

유월 중순.

지난 1년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나하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들.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현자리움 타운 건설이었다.

헌터기지, 연구소, 기력발전소 등 시현의 계획에 필요한 시설들이 모두 갖춰진 복합 센터!

공사 시작한지 보름정도 흐르니 얼추 모습을 갖췄다.

겉보기엔 언뜻 조그마한 외계도시를 짓는 것 같기도 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더 실감할 수 있었다.

북쪽엔 황량하기 짝이 없는 DMZ(비무장지대)가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북서쪽 평양의 전경과 너무도 극적으로 차이 났다.

그야말로 엄청난 빈부격차.

미국과 아프리카 오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당연하지. 세계최고로 높은 빌딩을 짓는 중이니까.’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는 게 문제였지만......

최고로 좋은 자재로 건물을 지으니 공사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었다.

‘이거 다 공사하려면 번개속성석을 팔아야하나.’

나이지리아에서 레오닉 디아블을 잡고 얻었던 돌.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니 부르는 게 값일 터.

‘내가 쓰고는 싶은데···.’

워낙 희소하다보니 팔기에는 확실히 아까웠다.

속성을 대폭 강화시켜주는 돌이니만큼 분명 효과가 있을 테니까.

‘방법을 찾아보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스르르르-

포켓에서 청명한 기운이 쏟아져 나와 머리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일순, 해답이 될 만한 방안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돈 복사?’

언령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매우 단순하지만 단기적으로 보았을 땐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굳이 돈 복사가 아니더라도 된다.

골드바라든가 보석이라든가,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기력이 받쳐주는 한에서 무엇이든 가능할 터였다.

그러나 지폐엔 일련번호가 있으니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다이아몬드나 금?’

잠깐 고뇌하길 잠깐, 시현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처음에야 좋지만 계속 무한히 복제하다보면 희소성이 하락할 테니까.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값어치가 폭락할 것이 분명하다.

수요가 항상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럼 번개속성석은 어떠한가?

그건 일전에 이미 복사해봤지만 불가능으로 판명된 바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토록 대단한 물건을 복제할 수 있는 기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력이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으로선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복제하고 또 창조해도 희소성이 떨어지지 않을 무언가.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소비가 이뤄지는 무언가!

수요가 하락할리 없는 무언가!

이를 테면······

툭.

“어?”

고민하며 돌아다니던 중 발치에 무언가가 걸렸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아까 지원이 챙겨온 물통이었다.

‘물?’

번뜩!

기막힌 생각이 시현의 뇌리를 강타했다.

지원이 가져온 물통에서 우연히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역시 지원이가 성녀인가? 이럴 때 보면 언령보다 백 번 낮네.’

성녀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충분히 시도해봄직한 방법인 건 확실했다.

무언가 결심한 듯 시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휘저었다.

그러자 시커멓고 흉측한 쇠뿔이 달린 머리통이 튀어나왔다.

-케에에엑!

며칠 전 생포했던 자간이었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

.

.

아시아 S급 헌터시험이 있기 이틀 전.

시현은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쿠엔틴이었다.

-봉쥬르, 마스터. 부탁하신 도면 만들었어요. 인공호수 크기는 마스터가 말한 대로 설계했구요.

기막힌 아이디어를 찾아냈던 시현은 쿠엔틴에게 설계 도안을 수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마르지 않는 우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수고했어요. 난 한 일주일간 자리비울 예정이니 그놈들이랑 잘 일하고 계시고요.”

-근데 이 몬스터들.... 정말 믿어도 되는 겁니까?

“걱정 마세요. 인간을 공격하거나 도망치면 바로 즉사하게 되는 저주를 걸어두었으니.”

그렇다.

현재 파주의 공사현장에는 61위계 자간과 505위계 앤트고일을 비롯해, 수많은 몬스터들이 막노동 중이었다.

전설의 흑마법사도 울고 갈 수준의 저주에 걸린 채.

시현은 편안한 마음으로 퍼스트 클래스 석에 올랐다.

지원과 보검은 헌터중앙기구에서 지원해주는 전용기를 타고 미리 떠난 뒤였다.

‘나도 김포에 개인격납고 하나 둬야겠네.’

급한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공식적인 일정이 있을 땐 타국에 텔레포트로 무단 입국할 수는 없으니까.

현재 계획 중인 사업으로 떼돈을 벌면 전용기라도 하나 장만해야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광대가 씰룩 올라갔는데, 그렇게 반달이 된 시현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짐과 옷가지를 승무원에게 부탁하고 있는 저 남자.

반가운 얼굴이었다.

시현이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으니 그도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현이 선글라스를 벗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 어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