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64화 (64/100)

# 64

시현은 돌멩이로 변해버린 자간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61위계 주제에 자만하면 안 되지.”

시현의 배리어는 자간의 연금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고차원의 스킬이었다.

SSS급을 뛰어넘는, 말 그대로 앱솔루트 배리어.

61위계 악마군 따위에게 당할 시현이 아닌 것이다.

-크으으으······.

그 광경에 자간의 추종자들은 주인 잃은 개 마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저 시현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뒷걸음질 칠 뿐, 이렇다 할 계획도 없어보였다.

놈들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연금술의 대제를 연금술로 박살내버리다니!

이건 클라스가 다르구나! 라는 것을······.

하지만 시현은 자간의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였다.

순수 무력만 놓고 봤을 때는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권능으로 봤을 때는 충분히 박수쳐줄만했다.

그만큼 ‘연금술’이라는 건 실로 대단한 능력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기력의 소모가 엄청나네.’

아무리 그래도 61위계는 61위계인 건가?

61위계의 자간을 돌멩이로 변하게 만드니 엄청난 기력이 소모된 것이다.

‘그럼 복원도?’

시현이 돌멩이를 향해 내뱉었다.

“복원.”

스으으으······

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돌멩이를 감싸고 있던 기력의 일부가 시현에게 돌아오더니 포켓으로 들어가 환원되었다.

동시에 보잘 것 없던 돌멩이는 거구의 자간으로 되돌아갔다.

-그아아아아아아아!

그는 화염과도 같은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노성을 터뜨렸다.

-자, 자간님. 일단 퇴각하시는 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사령관님께 보고부터 하시는 것이!

부하들이 말려야하는 난처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자간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되레 격분했다.

-닥치거라! 본좌가 상대를 얕봐서 그러한 것이니라!

무려 스무 개의 군단을 지휘 통솔하는 제 1군단장 자간.

상부의 명령에 따라 인간들을 멸하기 위해 지구에 내려왔던 그다.

저 밑의 피라미들이 아닌 자신의 정예부대를 이끌고서 말이다.

그런데 겨우 인간 따위에게 당했다고?

‘믿을 수 없다!’

여기서 뒷걸음질 칠 수 없었다.

그것도 적을 코앞에 두고서 말이다.

-우오오오오오!

진홍의 화염이 자간의 주위에 치솟는다.

모래와 상성관계인 화(火) 속성의 스킬.

그럼에도 공사판의 흙바닥을 모조리 달궈버리고 여기저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자간이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자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참새건 구름이건, 하늘에 떠있는 것은 모조리 붉게 달아올랐다.

노을이 아닌 연금술에 의한 변화였다.

붉게 달아오른 만물은 피를 머금은 새빨간 화염으로 변이하여 하늘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생지옥.

‘미친놈이 뭘 하려고.’

그 몹쓸 광경에 시현의 이마에 깊은 골 몇 개가 그어졌다.

이제야 기껏 공사를 시작했는데 다시 난장판으로 만들어놔?

열이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이런 염병.”

시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

어차피 공사현장은 붕괴되었고, 여기서 더 망해봤자 그게 그거였다.

걱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시현은 마치 스포츠경기를 관전하듯 자간의 실력을 감상했다.

‘오히려 잘됐지, 뭐.’

애초에 자간을 끌어들인 이유는 ‘양구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였다.

즉, 상황이 극적으로 이뤄져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터.

초장부터 적을 쉽게 죽이면 재미없다.

양구의 주민들이 가슴이 벌렁벌렁해질 때까지를 기다렸다가 짠! 하고 정의의 사도마냥 나타나면 효과가 두 배일 것이다.

이른바, 극적효과!

그런 시현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듯 자간은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사아아아아-!

하늘에 붉은 구체가 모여들었다.

일몰은 이미 끝났지만 해가 새로 떠오르는 듯한 진풍경이었다.

-그허허허! 이것이 바로 피의 저주이니라!

유치하게 짝이 없는 스킬 명을 외치면서 기력을 다하는 자간이었다.

놈은 만물의 에너지를 화 속성의 에너지로 변화시켰다.

주위에는 첩첩산중의 배리어가 놈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의 졸개들, 즉 악마군 정예병들의 솜씨였다.

오로지 자간의 일격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처한 상황도 모른 채.

시현은 슬슬 각을 재기 시작했다.

양구군의 주민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데려올 타이밍을 엿봤다.

‘이쯤이면 됐겠지.’

붉은빛의 거대한 구체가 하늘을 뒤덮었다.

이 정도면 양구의 주민들은 충분히 보고도 남았으리라.

시현은 핸드폰을 들어 류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명표 대통령한테 전화해서 군인 통제 부탁하세요. 아, 공무원들도요.”

.

.

.

“마, 망했어······.”

시현의 예상대로 양구군의 주민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마치 운석이 허공에 부유한 채 멈춰있는 듯했다.

“엉엉! 어떻게!”

양구읍의 주민들은 구청의 대피소에 모였다.

시민들은 절망에 겨운 얼굴로 순서에 따라 지하로 대피하였다.

대피소라 해봤자, 방사능 차폐방벽으로 이뤄진 공간이 전부였지만······.

하지만 그마저도 수용공간에 제한이 있었기에 모두가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우, 우린 다 끝이라고!”

“엉엉!”

아직까지 민간피해는 전혀 없었지만, 하늘에 떠있는 붉은색의 구체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개중엔 군청에서 대기 중이던 기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인파속에 끼어들어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감한 기자들이라고는 해도, 죽음이 두렵기는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군인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양구.

비록 최전방에 위치한 도시지만 수만 군인들의 주둔지였기에 던전과 몬스터들로부터는 안전한 지역이었다.

던전이 발생하면 군인들이 바로 출동해서 도와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군인들은커녕 그 어디에서도 디지털패턴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단체로 휴가라도 나갔나?! 뭐하는 거야, 군바리 새끼들!”

“거! 방금 소식이 들어왔는데, 군력으로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서 따로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따로 준비? 무슨 준비! 지금 다 죽게 생겼구만!”

“수, 수준급 헌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미친!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사상초유의 사태.

양구군의 주민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북한과 인접해있는 지역이었지만, 살아생전 목숨을 위협받은 적은 없었으니까.

“그럼 헌터들은? 헌터들은 왜 안 와?!”

“올 리가 있겠습니까.”

붐비는 인파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나 차분하게 입을 연 남자.

선글라스로 사악한 눈웃음을 감추고 있는 류건이었다.

“많은 분들께서 양구의 헌터기지건설을 반대했는데. 헌터들이 퍽이나 좋다고 도우러 오겠습니다.”

“그, 그게 무슨······!”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자리움의 헌터기지건설을 반대하던 이들.

그들은 류건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고, 공무원. 국가직 헌터들은 올 거 아니요!”

“오겠죠. 느릿느릿하게. 개죽음 당하기 싫으니까.”

“허어······.”

어떠한 헌터가 스스로 자원해서 양구에 지원을 오겠는가?

최소 A급의 수준급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조국의 평화보다 개인의 목숨을 경원시하는 이는 거의 없으니까.

“아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민들은 절감했다.

그제야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멍청한 짓을 했다는 것을.

“망했어, 망했다고!”

“이게 다 그 염병할 시민단체 때문에 그래!”

“맞아! 우리는 선동당한 거야! 그뿐이라고!”

사람들은 면죄부를 얻기 위해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류건은 그 모습이 역겹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됐다.

‘사람이란 게 원래 그런 생물이니까.’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다 우리 업보지... 잘못을 인정하게나.... 우리가 틀렸어...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아무리 봐도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다.

상황이 얼마나 안 좋으면 군인들까지 도와주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만.. 포기합세...”

하지만 바로 그때.

두구두구두구-!

저 멀리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군인들.

마침내 군 헬기가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찍을 카메라를 들고서.

시현과 자간이 있는 현지리움의 건설현장으로 떠났다.

그리고,

띠잉-

미리 준비한 것처럼 군청 중앙에 빔이 쏘아지더니 홀로그램 스크린이 생성되었다.

시현과 자간의 모습을 중계하고 있는 생방송이었다.

.

.

.

생중계가 시작되었다.

1킬로 근방의 하늘에서는 군 헬기들이 날아올라 시현과 자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어 생방송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아아아아······

끊임없이 커져가던 붉은 구체는 성장을 멈췄다.

홍염 같은 것이 번개스파크를 터트리면서 주위를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시현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큭큭큭. 날 여기까지 내버려둔 걸 후회할 것이다!

아까 있었던 일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는지 자간은 떵떵거리며 시현을 얕잡아봤다.

-네놈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뭐?”

-네놈은 나의 필살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

“불 따위는 꺼버리면 그만인데.”

-어림없는 소리. 큭큭큭.

자간은 모종의 계획이라도 있는 것인지 연신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기합을 내질렀다.

-으어어어어어어어!

순간, 엄청난 기운을 머금은 구체가 시현에게로 날아갔다.

헌데 붉은빛이 아닌 칠흑같이 어두운 흑색의 구체였다.

화염이 아닌 어둠의 속성!

즉, 연금술사답게 공격직전에 속성을 변환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면 됐겠지.’

시현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코앞으로 들이닥친 자간의 일격은 생각도 않은 채, 그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리변경.”

-크응?

그 순간, 시현과 자간과 위치가 뒤바뀌었고.

콰아아아아-!

구체에 당한 것은 시현이 아닌 자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국에 방송되었다.

.

.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최고 위험지역이었던 양구는 다시 안전해졌다.

모두 시현의 활약 덕분이었다.

활약이라 해봐야 자리 바꾼 것밖에는 없었지만.

아무튼 자간도 처리했고, 밑의 졸개들도 시현이 알아서 다 정리했다.

죽이지는 않았다.

앞으로 두고두고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뭘. 여기저기 전화 돌리느라 류건 씨가 더 고생했죠.”

현자리움 의장과 대표.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참혹한 공사현장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일을 끝냈으니 칭찬받으러 가야죠.”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역시나 양구군청 앞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울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실시간으로 방송된 시현의 활약을 본 뒤였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살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였다.

딸칵-

때마침 차에서 시현이 내리자, 그 모습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귀국하는 듯한 광경.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하다!

“바, 박시현 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생명의 은인.... 감사합니다!”

전날 시현을 삿대질하던 모습과는 전혀 판이한 태도였다.

“저희가 찬성하겠습니다! 양구군의 이름을 걸고! 헌터기지건설을 허가하겠습니다!”

“허가! 허가!”

“시민단체랑 환경단체는 걱정 마세요! 시민들이 반대하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직접 겪고 나서야 헌터기지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민들은 시현을 영웅으로 대접했다.

그 말에 시현도 방긋 웃었다.

이대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주민들의 생각이었을 뿐, 시현의 생각은 달랐다.

시현은 웃음기를 쫙 뺀 뒤 정색하며 말했다.

“아뇨.”

의외의 대답.

시현의 이어 뱉은 말은 양구 주민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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