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62화 (62/100)

# 62

“어쩔 수 없죠, 뭐. 이게 민심이라면.”

뭐든 마음먹는 대로 할 수 있다면 그건 대한민국이 아니다.

물론 무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일차원적인 존재로 전락하지만···

여긴 민주주의국가!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하려면 절대왕정국가를 세우든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또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싶다면, 남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한다.

류건이 보기에는 답답한 선택이었지만 그저 성향차이일 뿐.

시현은 발걸음을 물렀다.

“보는 제가 다 화가 나는군요.”

“그렇다고 죽일 순 없잖아요? 내가 싸이코는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만······.”

시현 역시 양구군 주민들이 괘씸했다.

하지만 설령 양구가 아닌 다른 도시였어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님비현상(Nimby)이라고 그랬던가?

내 짚 앞에 혐오시설을 생기지 못하게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막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지니까.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 현상이자,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계에선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분명 각 시위연대에서 구청에 끊임없이 민원을 넣고 시위를 반복할 테니까.

“이대로 가다간 분명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그 정도인가요? 참 열정적인 시민들이네요.”

“하··· 시현 씨는 집짓느라 관심이 없으셨겠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핫 이슈입니다. 청원 및 서명운동이 끊이질 않고 있어요.”

“호오. 대단한 결단력인데요?”

현자리움의 편을 드는 것은 현직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헌터기지가 건설되면 그만큼 헌터들의 복지가 늘어나는 셈이니까.

“시현 씨. 이거 쉽게 볼 상황이 아닙니다. 소송이 이뤄지면 꽤 골치 아파질 거예요. 대표는 여기저기 출두해야 하거든요.”

“그건 좀······. 그럼 대표직을 누가 좀 맡아줘야겠는데.”

스윽.

시현이 안전벨트를 매면서 류건을 빤히 쳐다본다.

뭔가를 바라고 있는 눈빛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자 류건이 큼큼 목을 가다듬는다.

시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그가 아니었으니까.

“이번 주에 퇴사하실 거라면서요? 헌터중앙기구.”

헌터중앙기구에서 맡았던 일을 이제야 다 끝낸 류건은 이번 주에 사직서를 낼 요량이었다.

“류건 씨, 백수될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사양 말고 대표직 가져가세요. 현자리움 대표이사.”

시현이 악마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미 시현을 평생 주인으로 섬기기로 한 류건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회사가 안정화 될 때까지만 부탁드립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건 류건 씨 밖에 없으니.”

“하지만 제가 전문경영인도 아니고···.”

“전 아진물산 경영진들 있잖아요? 그중에 괜찮은 사람들 골라서 컨트롤 타워를 꾸리세요.”

현재 시현의 현지리움은 리모델링 중에 있었다.

아진의 족속들을 뿌리에서부터 걷어내는 중, 싹수가 보이는 것들은 현자리움에 남겨둘 생각이었다.

“그럼 제가 대표가 되는 겁니까? 시현 씨는요?”

“저는 뭐 의장이나···.”

류건을 현자리움의 대표직에 앉힌다.

그리고 시현은 의장직을 맡는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현자리움의 주인은 시현이니까.

이건 그저 검찰 및 경찰 출두를 피하기 위한 묘책인 것이다.

‘귀찮아.’

할 것도 많은데 그런 곳에 소환되면서까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다.

어차피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이길 텐데.

뭣 하러 그런 짓거리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소송은 분명 이길 겁니다. 법적으로 잘못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다만······”

“민심이 문제죠?”

그러나 민심은 이길 수 없다.

불과 몇 달 전 용인 시를 구했던 조국의 영웅이 희대의 쓰레기로 전락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른바 냄비현상.

너무나도 빨리 식어버렸다.

‘그럼 다시 불을 지펴야지.’

그럴싸한 계획이 있는 것인지 시현이 도끼눈을 뜨며 물었다.

“아까 하셨던 말.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몬스터습공이 또 시작될 거.”

“아, 글쎄요. 더 깊숙이 알아봐야겠지만 한 99%는 될 겁니다.”

“으음···. 그럼 일단 공사현장으로 가주세요.”

공사현장으로 가는 길에도 시위 중인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접근금지지역 밖에서 피켓을 들고 설쳐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현은 눈살을 좁히며 저도 모르게 턱을 괬다.

‘습공이 일어났으면.’

만약 양구군에 몬스터들이 습공해온다면!

그런 무서운 생각이 시현의 뇌리에 스쳤다.

사실 그것보다 더 훌륭한 작전은 없을 것이다.

굳이 힘들이지 않고도 절로 몬스터들이 찾아와준다면 시현이 다시금 영웅으로 부상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국 팔도 중에 강원도, 그 중에서도 강원도 양구군에 습공이 들어 닥친다는 건···.

‘일단 알아나 보자.’

이번에 일어날 몬스터습공이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끼익!

류건의 승용차가 접근금지구역을 넘어 허허벌판인 공사판에 도착했다.

쿠엔틴을 비롯한 디자인 팀은 숙소로 돌아간 뒤였다.

현장에 있는 건 시현과 류건 뿐이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뇨, 뭘···. 그보다, 공사는 어떡하실 겁니까?”

“일단 멈추고 문제부터 해결해야죠.”

“그럼···”

“혼자 있고 싶네요. 조용히 할 일이 있어서.”

“음···. 알겠습니다.”

눈치 백단의 류건은 조용히 차를 끌고 나갔다.

이로써 자리에 홀로 남게 된 시현은 손을 뻗어 아공간을 소환했다.

그리고 말했다.

“천우현, 나와.”

쉐르르르륵!

드럼세탁기 돌아가듯 암흑이 일렁거리며 회전하더니 그 안에서 천우현이 튀어나왔다.

“웨에에엑!”

간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온 천우현은 침과 위액 따위를 쏟아내며 악을 내질렀다.

“아, 아아악-!”

그는 곳곳에 파여져 있는 땅을 보자 두려움에 사무친 기색을 내비쳤다.

‘설마··· 이제 주, 죽는 건가?’

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것도 잠시 그의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아! 드디어 죽을 수 있는 건가!’

방금과는 정반대의 생각.

천우현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시현이 자신을 생매장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신을 이런 곳에서 꺼낼 리 없으니까!

‘여기 완전 생매장 당하기 딱이잖아? 날씨도 죽기 딱 좋은 날이고. 으, 으흐흐!’

혹시라도 시현의 마음이 바뀔까봐 그는 입 밖으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시현이 자신을 죽여줄 때까지 두려움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긴장 풀어. 안 죽여.”

퍽!

퍼억!

시현은 천우현을 발로 차버렸다.

생매장은커녕 그는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일 뿐.

맞아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인간샌드백이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는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없지 않은가?

“10년 전 내가 어떤 공포를 느꼈는지 이제 좀 느껴져?”

“어, 어··· 어어! 너무 많이 느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아니, 넌 아직도 못 느꼈어.”

“흐, 흐이익······.”

까앙! 까앙!

퍼벅! 퍼버벅!

천우현은 무자비하게 얻어터져 얼굴이 보름달마냥 부어올랐다.

온몸을 배배꼬면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입에서는 각혈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현은 자신이 뭔가 사이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진짜 사이코가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나을 테니까.

“이제 한 0.1% 갚았다.”

“이런 씨... 씨발새끼......”

“닥치고 들어가. 아, 그전에 한 대만 더 맞자.”

퍼억!

안면에 주먹을 강하게 한 방 퍼부었다.

코뼈와 잇몸이 무저져내리고 치아가 우수수 털려나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 죽기 직전이었지만,

“완치.”

솨아아아아-

샌드백 복원완료.

손때 하나 묻지 않은 꽃미남으로 돌아간 천우현이었다.

“잘생겼네. 배우해도 되겠어.”

“아아아아아아! 씨이이이발!”

시현은 천우현을 치료마법으로 완치시켜준 뒤 아공간 안으로 집어넣었다.

물론 사지를 꽁꽁 묶은 뒤에.

거기에 더해 먹지 않고 싸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버프까지 걸어주었다.

다음에 꺼냈을 때 죽어있으면 곤란하니까.

‘후.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군.’

스스로 생각해도 미친놈이 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 화병 나서 안 되겠다.

시현은 다시금 아공간을 열었다.

이제는 본 게임.

안에서 꺼낸 것은 무려 네 달 전에 포획했던 앤트고일이었다.

“505위계. 그동안 잘 지냈나?”

-취이이이이이익! 당장 풀어라! 죽여버리겠노라!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잠잠해질 때까지 몇 대 주먹을 퍼부어주었다.

뼈가 시리도록 세게 때려주자 그제야 좀 잠잠해졌다.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무려 505위계의 악마 몬스터 앤트고일이었지만 시현의 언령에 꼼짝없이 당해버렸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알고 있는 사실을 술술 불어야했다.

“다음 습공은 언제냐.”

-흐··· 흐으··· 준비가 되면 바로 하겠지.

“패턴이 있다고 들었는데?”

-패턴··· 우리는 그저 준비가 끝나는 대로 공격한다. 우리는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다만 소환에너지를 모으는데 시간이 필요할 뿐.

“음. 그렇단 말이지.”

얻은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언제든 몬스터습공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알아냈다.

시현은 그 외에도 다른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몬스터들의 고향, 이계에 대해서.

그리고 놈들의 목적에 대해서.

등등 생각나는 대로 전부다.

.

.

.

“그러니까 네놈들은 지금 엔델 족이랑 전쟁 중인데. 그 과정에서 인간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거군.”

-그러하다···.

그 이상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듯했다.

그저 레비아탄 정도 되는 사령관 급의 몬스터가 싸우라고 하면 싸우는 것뿐.

하지만 여기서 더 물어보지 않아도 대충 알만한 얘기였다.

영토와 보물을 약탈하기 위한 뻔하디 뻔한 스토리 말이다.

딱!

시현이 경쾌하게 핑거스냅을 쳤다.

지금 인류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얼추 그러졌다.

그러니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졌다는 말이 적격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인간을 이용하려는 이유는?”

-흐으... 인간은 좋은 미래의 자원이니까. 엄청난 개체 수. 무한히 발전 가능한 두뇌. 생체에너지를 이용한 영양공급. 이유야 많다.

“그럼 공격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이유는?”

몬스터의 최초 습공이 있은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에 따라 인류는 점점 강해졌고 지구에 출몰하는 몬스터들도 점차 강력해졌다.

시현은 거기서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애시당초 인류를 정복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강력한 몬스터를 지구에 보내면 되었을 것이 아닌가?

복잡한 이유가 있나 싶었으나 진짜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엔델 놈들과 전쟁 중이니까. 그저 여유가 남는 대로 지구를 점령해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지.

“문제?”

-엔델 놈들이 인간들에게 권능을 하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방해하기 위해서.

“아아, 오케이.”

‘정리 끝.’

아까까지만 해도 헌터기지건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헌터기지건설과 종족간의 전쟁.

어차피 동일한 연장선에 있는 문제이기는 했다.

헌터기지건설이 물거품이 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을 테니까.

최소한 시현은 그렇게 믿었다.

자신의 계획이 인류를 놈들에게서 막아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해야 한다.’

시위를 하던 서명을 하던 청원을 하던, 일단 강행하고 본다.

‘밀어버리자.’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끝까지 갈 것이리라.

그렇게 다짐하며 공사를 재개하려던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개벽.

하늘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더니 거친 강풍을 동반하는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그러자 앤트고일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오오오! 가, 강림하셨다! 그분께서!

녀석은 당장 엎드려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 모습에 시현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짜 시작됐구나. 습공.’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전보다 더 흉악한 기운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느닷없이 진동하는 핸드폰에 류건의 번호가 찍혔다.

“예, 류건 씨.”

-보셨죠? 지금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양구도 있습니까?”

은근히 기대하며 물었지만 류건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뇨. 한국엔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 대신 좀 가까운 곳이 있긴 한데···

“어디죠?”

-금강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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