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양구군청.
헬기를 타고 가보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던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붉은 옷에 파란 머리띠.
녹색조끼를 입은 채 군청 앞에서 목 놓아 소리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뉴스에서 자주 보던 광경이 시현을 덮친 것이다.
시위.
현자리움의 헌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첫째.
국책사업인줄 알았는데, 현자리움이 시공부터 관리까지 도맡아서 한다고 하니 찬반여론이 붉어지다가 시위대가 거리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명표 대통령은 공약대로 추진을 했을 뿐이지만 시민들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다.
단순 정치색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거리며 건물이며 곳곳에 걸린 현수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헌터기지 건설 결사반대! 차라리 당장에 도움 되는 군사시설을 확장하라!>
군사시설확장?
언제는 평화를 헤치는 일이라며 반대했던 게 양구군 주민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책사업에서 민간사업으로 바뀐 이유 해명하라!>
<학연·혈연·지연을 이용한 관행적인 수주로비 루머, 당장 해명하라!>
‘뭘 해명해. 나한테 학연, 혈연, 지연이 어디 있다고.’
<국유지는 국가만의 것이 아니다! 양구군 시민들의 땅이기도 하다! 즉각 철회하라!>
<기업선택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라!>
<대통령 공약이면 다냐! 우리도 주권을 가진 국민이다! 헌터기지 당장 철거하라!>
‘자기들이 뽑아놓고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군.’
이명표의 득표율이 70%가 넘었다.
국민의 70%가 헌터기지 건설에 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위대가 같잖은 말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아진물산을 무상양도 받은 현자리움의 박시현을 고발한다! 힘만 세면 장땡이냐! 증여세특혜내역 당당히 밝혀라!>
‘다 냈는데, 뭘.’
A급 헌터 및 국가명예헌터 특혜부터 기업승계특혜까지.
쿠폰 쓰듯 알뜰하게 다 받아서 10원도 빠짐없이 냈다.
탈세에 관해서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고라니들이 아파요! 고라니를 지켜주세요!>
<환경훼손, 당장 배상하라!>
뭔가 개발할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환경문제.
‘확 다 멸종시켜 버릴까보다.’
정말로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시현은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
“···일단 참으시죠. 그래도 죄 없는 고라니들에게 화풀이 할 순 없지 않습니까?”
류건의 말이 맞다.
무력으로 때려잡아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깡패가 되려고 지금까지 이런 고생을 해온 게 아니니까.
시현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다시 살폈다.
시위대는 여전히 피켓을 휘두르며 평화시위 중이었다.
경찰이 막고는 있었지만 양측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언제라도 사고가 터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무시하고 계속 강행하시죠. 환경영향평가나 기타 모든 행정절차법적으로 잘못된 건 전혀 없으니까요.”
“흐음.”
애당초 이 사달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건물 지으시는 속도 보니까 금세 끝날 것 같던데. 후딱 끝내버리시죠?”
“흐음. 아뇨. 일단 좀 봅시다. 대화라도 해봐야죠.”
강직한 류건과는 달리 시현에겐 부드러움이 있었다.
이대로 밀고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좌우간 시민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화재가 더 커지기 전에 초기 진압하는 게 나을 것이다.
시현이 생각하는 헌터기지, ‘현자리움 타운’이 완공되더라도 시민들의 시위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대개 이런 경우 건설업체에서는 용역 및 각종 술수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용역을 쓰나? ······싶겠지만 사실상 그들을 말로 달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매로 달래는 게 그나마 효과적이다.
하지만 시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현재 전국적으로 관심이 쏠린 마당에 써먹을 수 있는 방법도 아니었다.
시위가 벌어진지 이제 겨우 하루.
다들 오늘만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인지 인터넷기사 및 뉴스가 하루 종일 쏟아져 나왔다.
너나 할 것 없이 시현을 마구 물어뜯고 있었다.
시현을 잡는데 혈안이 된 피라냐 마냥!
불과 두 달 사이에 조국의 영웅에서 쓰레기로 전락한 시현인 것이다.
하긴, 원래 이런 게 더 맛있는 법이다.
기사에 붙일 수 있는 핫 키워드들이 넘쳐나니까.
나이지리아의 영웅!
연예인 뺨치는 대스타!
슈퍼히어로!
조국의 영웅!
수많은 이명을 달고 다녔던 박시현의 각종 비리!
정상에서 벼랑까지 추락?
얼마나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가?
파장은 멈출 줄을 모르고 점점 커져갔다.
“해명하라!
“즉각 철수하라!”
“환경파괴범! 당장 아웃!”
“엉엉! 고라니들을 살려주세요! 고라니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답답했다.
불도저마냥 그냥 확 밀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시현은 인내심을 가지고 화를 다스렸다.
“후···.”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킨 뒤 류건에게 말했다.
“일단 좀 내려가서 얘기라도 해보죠.”
대화라도 해보고자 육지로 내려갔다.
그때까지도 시위대의 목소리는 좀처럼 줄어들질 않았다.
타앗!
군청옥상에 착지한 시현과 류건은 밑으로 내려가 군청 관계자와 인사를 나눴다.
“방범복은 필요 없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길만 열어주세요.”
“그래도 입으시는 게 나을 텐데···.”
“괜찮아요.”
관계자는 내심 불안한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흠··· 알겠습니다. 가시죠.”
군청 문이 열리고, 의경들이 밖으로 나가 바리게이트를 쳤다.
그 주위는 시민들과 기자들로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안으로 쳐들어올 기세였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류건이 먼저 나섰다.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오니 놀란 것이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자리움···”
현자리움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휘익!
저만치서 달걀 한 알이 날아왔다.
방범복을 입으라고 권유했던 게 아마 이 때문일 터.
타앗-
류건은 달걀을 낚아챈 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크흠-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대화를 하러 온 것이지,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하지만 류건의 말은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버렸다.
“우우우우우우!”
“대표! 대표 나오라 그래!”
“고라니를 살려주세요! 고라니가 죽어가요! 엉엉!”
누구도 류건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딱 봐도 보통 시민단체가 아닌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무식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 시현은 새삼 놀랐다.
대체 지난 9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변한 것인지···.
결국 시현이 나섰다.
자기소개를 하고, 건축 사업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현자리움 타운이 완공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겁니다.”
“지역경제? 개뿔이!”
“들어보세요, 어르신. 헌터기지가 완공되면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겁니다. 양구군의 주민들을 우대해서 뽑을 거고요.”
“지럴! 염병!”
혹시 현자리움의 경쟁사에게서 돈이라도 받은 걸까?
단체로 약이라도 한 사발 들이켠 것처럼 극성이었다.
어디서 교육이라도 받고 온 것처럼···.
개중 좀 점잖아 보이는 장년배의 남성이 시현의 앞에 섰다.
시민단체의 대표인 듯했다.
“양구군 시민단체 대표 김만석이라고 합니다. 대표대 대표로, 대표님께 뭐 하나만 묻고 싶군요.”
“말씀하세요.”
“왜 하필 우리 양구입니까? 개발제한지역이라고 할 땐 언제고, 만만한 게 우리 양구인가 보죠?”
그나마 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직 모르지.
진짜 정상인인지 아닌지.
몇 마디 나눠보면 알게 될 것이다.
시현이 신사적으로 대답했다.
“제가 알기론 정책이 그렇게 결정 났습니다. 양구군이랑 파주시, 이렇게요.”
“정책이고 뭐고. 우린 이명표 안 뽑았고, 헌터기지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군인들이 몇 만 명이나 있는데 뭘 또 짓는다는 겁니까?”
그 동안 양구는 세 개의 육군 사단이 방위해왔다.
기(氣)를 이용한 현대 및 미래지향적 무기와, 권능을 가진 장병들과 간부들.
던전이 발생하거나 사건이 터지면 그 즉시 출동해 양구 시민들을 수고해왔다.
어떻게 보면 실력 있는 헌터들이 밀집해있는 서울보다도 안전한 곳이었다.
때문에 양구군 주민들은 자연스레 안전불감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거? 별 거 없습니다. 그냥 좀 평화롭게 지내고 싶을 뿐이라고요.”
“아니, 헌터기지가 들어서는 게 평화로운 거 아닙니까?”
“그게 말입니까, 막걸립니까? 헌터기지 같은 거 지으면 맨날 훈련이다 뭐다 하면서 소음 일으키고, 뉴스 보면 가끔씩 사고로 민간피해도 발생하던데. 그걸 왜 굳이 우리 지역에 짓는 거냐고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있다는데.
지금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꼴이었다.
그 얘기를 바로 앞에서 듣고 있자니 시현은 열불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물론 논리적인 측면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감정적인, 어린아이의 땡깡에 지나지 않았다.
“아 몰라, 그런 거 모르니까. 그냥 나가라고!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 철수하라!”
“우우우우우우!”
보다 못한 류건이 나섰다.
“그러다 후회하실 겁니다. 몬스터습공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서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몬스터습공이 또 일어날 거란 보장이 있어요? 괜히 지었다가 안 일어나면 어쩔 겁니까?”
“곧 일어납니다.”
“뭐, 뭐요···?”
류건의 확고한 대답에 사람들은 놀랐지만 이내 피식 비웃었다.
“웃기고 있네. 당신이 뭔데요? 그걸 우리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이 사람들이 참···.”
“류건 씨.”
“예.”
시현이 류건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그만 가죠. 더 이상 얘기할 가치도 없는 것 같으니. 배도 고프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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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위현장을 뒤로 시현과 류건은 차에 올라 읍내로 들어갔다.
류건이 마땅히 먹을 만한 식당을 찾던 중 입을 뗐다.
“이성적인 건 알고 있었는데, 참을성까지 뛰어난 줄은 몰랐습니다.”
“뭐, 세상 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니까. 최대한 배려하면서 살아야죠.”
말은 그렇게 한 시현이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말 한 마디면 모조리 입 다물게 할 수 있는데.’
해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양구군의 시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중이었으니까.
“정 안되면 양구는 포기해야죠.”
“음···. 괜찮으시겠습니까? 안색이 되게 안 좋으신데···.”
“뭐, 토악질이 나긴 합니다만. 이게 사람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 안 되면 외국으로 뜨면 되고.”
진심 반 농담 반 섞여있는 말이었다.
“아, 그런데 아까 그 말 사실이에요? 곧 몬스터습공이 일어날 거란 말.”
“아, 안 그래도 보고 드리려 했는데, 시위 때문에 좀 늦었네요. 아무튼, 이거 미국에서 나온 공신력 있는 정보입니다. 지난 네 달간, 게이트연구와 몬스터고문을 끊임없이 한 결과 놈들의 패턴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게 언제랍니까? 규모나 위치는요?”
질문에 류건이 고개를 절래 저었다.
“안타깝지만 거기까진 아직 인가봅니다. 다만, 이계 쪽에서 측정되는 특수에너지의 양이 3개월 전보다 더 많이 모였다고 해요. 사실 이미 습격 올 때가 지났다는 뜻이죠.”
“음···. 신기하군요. 이계 쪽의 특수에너지까지 측정할 수 있다니. 미국의 기술력이 그렇게나 좋습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미국이니까. 다만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
역시 미국의 기술력인가!
하루빨리 미국과 연구교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놈들의 땅으로 역공을 갈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근처 식당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미안합니다. 나가주세요.”
“예?”
“나가달라고요. 그쪽한테 안 팔아요.”
선동과 거짓부렁으로 얼룩진 양구군.
이게 양구군의 현재 민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