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59화 (59/100)

# 59

앤트고일은 시현에게 쥐어 터져 온몸이 포박되었다.

“너는 나와 함께 갈 거다.”

-어, 어딜···.

두려움에 벌벌 떠는 앤트고일.

“곧 건설할 계획인 몬스터연구소. 거기가 네 평생의 안식처가 될 거다.”

-거기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갚을 게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안 그래?”

퍽!

놈을 한 대 더 쥐어 팬 뒤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505위계의 최후.

다시 눈을 떴을 땐 실험실에 갇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리라.

“이 정도면 다 끝났나.”

상황은 깔끔히 끝났다.

아공간에 갇혔던 사람들은 모두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와! 슈퍼파워레인져 아저씨!”

“응?”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꼬마애가 와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이러는 걸 보면 예의교육을 잘 받은 모양이다.

딱딱했던 시현의 마음이 살짝 말랑말랑해졌다.

성인들에게 감사인사를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랄까.

요즘 시대에 이런 애는 참 드물기도 했고.

조카가 있으면 이런 기분이려나.

묘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거 받아.”

시현은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주었다.

“으응···? 이거 뭐에요?”

“맛있는 거 사먹어.”

100만 원짜리 수표.

만 원권이나 5만 원권이 없어서 그냥 100만원짜리 수표를 줬다.

그렇다고 카드를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엄마한테 주지 말고 맛있는 까까 사먹어.”

차라라라락!

순간 플래시세례가 터졌다.

방금까지 목숨이 오갔던 위험천만한 상황이 맞던 것인지,

사람들은 죄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119에 신고하는 게 아니었다.

핸드폰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기자들도 섞여있었다.

안전해지자마자 어느새 시현에게로 몰려든 것이다.

“헌터중앙기구 소속 박시현 씨가 맞으십니까?”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사건의 원흉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혹시 이번 아진그룹 자살사건에 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아진물산의 양수자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던데 그에 관해 한 말씀······!”

지금 상황에 관련 없는 질문들까지 쏟아졌다.

큼지막한 카메라를 얼굴에 들이대면서 시현의 길목을 막기까지 했다.

좋게 말하면 용감. 나쁘게 말하면 무대포.

한 마디로, 그들은 무식하리만치 용감했다.

전국의 기자들이 다 모여드려는 건지 그 수가 점점 더 늘어났다.

부상당한 시민들을 밀어재끼고 시현의 정수리라도 찍으려고 오버를 떨었다.

특종, 이건 특종이니까!

‘앞으로 더 귀찮아지겠는데.’

시현은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아무리 언론의 자유가 있다곤 하지만 최소한의 사생활은 보장해줘야지.

스타는 초상권도 없나?

그들은 콧구멍 속의 털 개수까지 찍어갈 기세였다.

답답함을 좀 해소하고 싶었다.

“그만 좀.”

차앙!

호랑이의 저주파처럼 우렁찬 포효!

취재용 카메라들의 렌즈가 우수수 깨부숴졌다.

그제야 기자들이 시현의 몸에서 떨어졌다.

몬스터가 나타난 것처럼 어버버 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시현은 한 마디 덧붙였다.

“배상청구하려면 하세요.”

오싹-

기자들은 등골이 서늘해져서는 눈치를 살피다가 현장을 빠져나갔다.

시민들도 시현에게서 시선을 뗐다.

‘좋았어.’

스스로 생각해도 만족스러운 행동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이제 귀찮게 굴 일은 없을 것이다.

매번 집 나갈 때마다 사인해달라는 일도.

두구두구두구!

상황이 좀 진정되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구조헬기와 공무원 헌터들이 도착했다.

부상자들을 이송하고 상황을 수습했다.

뿐만 아니라 헌터중앙기구의 S팀의 헬기도 근처 헬리포트에 착륙했다.

“시현 씨!”

저만치서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

류건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저야 뭐 항상 같죠.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근무시간도 아니고 S팀이 올 이유는 없어보이는데.”

“긴급재난상황이 발동해서요. 아시잖습니까. 국가와 협력관계인거.”

“긴급재난?”

시현은 어이없다는 듯 비웃음을 터트렸다.

긴급재난상황이라고 하기엔 대처가 너무도 늦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헌터들보다 기자가 더 빨리 오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고, 동해바다는 어떻게 됐답니까? 거기도 위험하대요?”

“그쪽은 잘 해결됐습니다. 독도 쪽에서 몬스터들이 인질극을 벌였는데, 근처 일본해양 관리국에서 체류 중이던 헌터들이 지원 와서 막았다고 하네요.”

“아, 그러니까 일본이 도와줘서 막은 건가요?”

“음··· 아마 독도수호대가 일본과 협공해서 잘 막은 것 같습니다.”

아시아의 평화를 명분으로 사면 바다뿐만 아니라 남중국해에까지 발을 담근 일본.

몬스터습공과 섬들의 안위를 위해 일본해양 관리국에서 여럿 해양기지를 신설해왔다.

그 탓에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이 끊이질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지구의 평화에 이바지한 건 사실이었다.

괜히 헌터강대국이 아닌 것이다.

‘자존심 상하네.’

시현은 내심 불쾌했다.

일본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자국이 무능하고 힘이 없다는 사실에 말이다.

‘취약해도 너무 취약해. 도대체 어째 서지?’

아진과 한성그룹의 기술력만 봐도 상당히 훌륭하지 않은가?

여기에 좋은 시스템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헌터들을 양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인재들을 다 외국에 빼앗겨서 그런 건가?

“다른 나라는요?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소환됐다면서요.”

“아, 예. 약소국의 경우 강대국의 지원으로 꾸역꾸역 막고는 있습니다만 다들 처음 보는 개체들이라 애를 먹고 있답니다.”

악마 류 몬스터.

헌터들에게 있어 신선한 충격이자 새로운 공포였다.

“음, 다행이네요. 그런데 다른 팀원들은요?”

“저기, 마침 오네요.”

S팀 멤버들이 시현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오빠!”

지원이 가장 먼저 달려와 수줍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뒤로 제이가.

“오빠, 안녕하세요.”

그 가운데 시현은 보았다.

지원이 코를 찡그리며 찌릿, 제이를 째려보는 것을.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 미소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몸에 촥 달라붙는 슈트의 지원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스틸컷 같았다.

그리고 그 뒤로 강보검이 따라 붙었다.

“안녕하십니까, 시현 형님!”

“오랜만이다, 강보검이.”

“잘 지내셨습니까!”

몰라보게 의젓해진 강보검.

아니, 가만 보고 있으니 시현에게만 의젓한 것이었다.

“아, 맞다. 너한테 물어볼 게 좀 있었는데.”

“저한테요?”

시현은 삥 뜯는 동네건달처럼 어깨동무를 걸쳤다.

보검을 인적이 드문 으쓱한 곳으로 데려간 뒤 말했다.

“구라치면 손모가지야.”

.

.

.

효과는 대단했다.

강보검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불었다.

과연 반쪽짜리가 아닌 완전한 언령.

SP가 800에 육박하는 보검에게도 깔끔히 통한 것이다.

진실만을 말하게 만드는 환술이!

시현은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간 뒤 소파 위에 앉아 강보검이 해준 말을 정리했다.

8년 전 강보검, 김은혜 단 둘이 특수 2성 던전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몬스터 한 마리가 나타났다고 한다.

도플갱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을 죽여 시체와 계약해 사람행세를 하고 다니는 몬스터 말이다.

아무튼, 강보검과 김은혜는 그놈에게서 권능의 열쇠에 대한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둘은 도플갱어를 놓쳤고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어딘가에서 인간들의 틈에 껴서 열쇠를 찾고 있겠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시현은 집안에 방음벽을 두르고 건물 전체에 배리어를 둘렀다.

그런 뒤 아공간에 집어넣었던 인간들을 모조리 꺼냈다.

“케헥!”

“허어······ 허어···.”

“여긴······.”

이렇게 보니 정말 움직이는 교도소나 진배없는 광경.

아공간 안에서 몸이 포박된 세 남녀가 끌려나왔다.

천우현. 김은혜. 함경만.

얼굴빛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어둑했지만 모두 목숨은 살아있었다.

천우현의 경우, 보통사람이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는 3일을 넘겼지만 보통 사람이 아닌 헌터였기에 일주일 정도로는 끄떡없었다.

“김은혜 이 미친년!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내가 왜 이 미친 새끼야! 다 네가 시킨 거잖아!”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인 천우현과 김은혜 사이에서 헬 파티가 일어났다.

둘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마치 원수지간처럼 광분했다.

그러다가 시현이 쉿,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자 말을 뚝 멈췄다.

천우현에게 먼저 발언권을 주었다.

“아, 아버지와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줘. 제발! 지금쯤 사무치게 날 걱정하고 계실 거라고!”

“그럴 리가. 자기 걱정하기도 바쁠 양반인데.”

“뭐···? 그게 뭔 소리지···?”

“한성그룹 총수 천진오. 깜빵 갔어.”

“뭐··· 뭐?”

“수백 건에 달하는 인위적 던전 발생. 무고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것에 대한 책임으로. 사형. 최 회장이랑 같이.”

“뭐··· 뭐···? 야 이 개새끼야!!”

순간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천우현.

“그러게 남의 아버지 귀한 것도 알았어야지.”

처억!

퍼어억!

천우현의 머리채를 잡아 날려 벽에 얼굴을 꽂아버렸다.

배리어가 건물을 보호하고 있어 벽에 훼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저 홍시 터지듯 벽에 시뻘건 액체가 주르륵 벽을 타고 흐를 뿐이었다.

시현은 천우현을 완치시켜준 뒤 온몸을 포박하여 아공간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답답할 때마다 꺼내면 스트레스 풀기에 딱일 것 같다.

“다음.”

김은혜의 차례.

마치 지방법원에서의 재판을 마치고 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을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하 피고 김은혜의 발언이 시작됐다.

“오빠, 오빠! 미안해. 내가 평생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러니까 제발! 제발 살려줘! 흐윽···.”

안 그래도 역겨운데 추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너한텐 볼 일 없다.”

시현은 그녀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경만.”

함경만, 그가 관건이었다.

시현이 아공간을 열어젖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함경만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도플갱어지? 8년 전에 던전에서 탈출했다던.”

“······.”

함경만은 시현을 슬쩍 흘겨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시현은 자신의 생각이 과연 맞을지 시험해보기 위해 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말했다.

“계약 해제.”

스으으으···.

그러자 그 순간.

함경만의 육체가 녹아내리더니 새로운 생명체로 재창조되었다.

도플갱어.

시현의 생각이 맞았다.

8년 전부터 함경만 인척 행세를 해온 것이다.

그때 최 회장의 별장에서 몬스터들이 함경만을 공격하지 않았던 것도 그 이유일 터.

콰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놈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투명한 뇌수가 주먹을 타고 흘러내려 카펫을 적셨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데.’

단순히 함경만을 죽였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분명 세계 곳곳에서 인간으로 변한 도플갱어들이 도사리고 있을 터.

지구는 생각보다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주위에도 또 다른 도플갱어들이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집부터 좀 옮기자.’

보다 안전한 집으로 옮길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시현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상대는 부동산이 아닌 그의 전속매니저.

아니, 이제는 비서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는 류건이었다.

“땅이 좀 필요한데요.”

-어··· 회사 옮기시는 것 때문에 그러시죠?

아진물산의 본사는 양재동 내 아진타운에 들어서있다.

해서 시현은 하루라도 빨리 새 터전에 자리를 잡고 싶었다.

“예. 부동산보단 류건 씨가 더 잘 해줄 것 같아서요.”

-하하. 물론이죠. 음···. 면적은 어느 정도 필요하십니까?

“최대한, 최대한 크게요.”

세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설을 만들 것이다.

노아의 방주!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 유토피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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