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57화 (57/100)

# 57

총장과 부총장은 깜짝 놀라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스미스는 두 볼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산업스파이라는 것과 자신의 성적취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스미스는 떨리는 눈동자로 시현을 힐끗 쳐다봤다.

‘그걸 어떻게······ 도대체 뭐야, 이 새끼···.’

시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던 스미스였지만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쇼파에 앉았다.

자신의 권능, ‘화술’만 잘 사용한다면 상대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인지···. 허허. 초면에 당황스럽기만 하군요.”

스미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한 차례 발뺌을 해보았다.

그러나 시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화술에 넘어가기는커녕 되레 강하게 나섰다.

“연기는 그만합시다.”

“뭐, 뭐요?”

이만큼 말했으면 됐지.

그럼에도 스미스가 끝까지 모른 척 하자 시현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더 망신당하기 전에 돌아가세요. 괜한 헛고생하지 말고.”

“······!!”

스윽-

스미스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 갑자기 어딜 말입니까?”

“급한 약속이 있는 걸 깜빡해서···.”

“예? 그게 무슨······”

난데없는 약속타령에 화들짝 놀란 총장과 부총장.

그리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스미스.

그 가운데 시현이 정점을 찍었다.

“그럼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없겠죠? 사표는 잘 수리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저, 전달하겠습니다... 세계본부에... 그럼 이만....”

스미스는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에 떨면서 후다닥 나가버렸다.

그리고 시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

.

.

높으신 분들과의 미팅을 끝낸 시현은 09별관 특수본부 매니저실로 들어갔다.

알이 두툼한 안경을 쓴 채 서류작업에 열중하고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휴가실텐데 여긴 어쩐 일로.”

류건이었다.

“아님 1분1초도 쉬지 않고 고생하는 저를 위해 간식거리라도 사 오신 겁니까?”

“그보다 더 좋은 걸 들고 왔으니 기대하세요.”

“오우. 시현 씨가 기대하라니 기대해야죠, 그럼.”

시현의 장난을 농담으로 받아친 류건은 안경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긴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직접 방문하신 거 보면 가벼운 얘기 같지는 않은데.”

역시 눈치가 남다르긴 남다른 류건이다.

헌데 아직까지도 시현의 퇴사에 대해 모르는 눈치였다.

그의 위치, 정보력을 감안하자면 이미 알고도 남았어야 할 텐데 말이다.

“어제 사표를 냈습니다.”

“···사표요?”

역시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눈치.

시현의 퇴사는 세계본부에서 직접 관리 중인 ‘극비’인 모양이었다.

“음. 혼란스럽네요. 이렇게 빨리 관두실진 몰랐는데. 그리고 사실··· 저한테 가장 먼저 언질해주실 줄 알았거든요.”

“그 부분은 저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요.”

“이유라뇨?”

“매니저님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이요.”

서로 알고지낸지 고작 몇 주.

채 한 달도 되지 않았건만 둘의 관계는 생각보다 두터웠다.

물론 깊다고는 말 못하지만,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가장 친밀한 사이임에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관계정리에 있어서도, 류건의 경우는 특히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매니저님과 저와의 관계. 제가 회사를 관두게 되면 관계는 당연히 끊어지겠죠.”

“예··· 어쩔 수 없이 그렇겠죠. 저는 회사에 남아 업무를 봐야하는 입장이니···.”

류건은 맥이 풀린 듯 느른해진 몸을 소파에 기댔다.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하기사, 평생 시현을 보필하리라 결심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으니까.

“앉으시죠. 아니면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아뇨. 금방 나가봐야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이젠 저보다 더 바쁘신 것 같군요. 뭘 하고 계시는 진 모르겠지만···.”

“하하, 뭐. 당분간은 좀 바쁠 것 같네요. 근데 매니저님 정도면 제가 뭘 하는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잖아요?”

시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말에 악의나 위협 따위는 전혀 없었다.

순전히 류건의 정보력을 칭찬하는 의도였을 뿐.

반면 류건은 진지했다.

“시현 씨. 전 제 일에 관련 없는 사람 뒷조사나 하고 다니는 스토커가 아닙니다. 물론 미련은 남겠지만요···.”

류건이 말꼬리를 살짝 흐렸다.

아쉬움과 슬픔이 목소리에 깃들어있었다.

감정이라곤 하나도 읽히지 않던 류건의 얼굴이 흙색으로 변했다.

“크흠. 그래서···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저한테 이 말을 전하시려고요?”

“아, 사실은 총장님이 호출해서요. 퇴사를 만류하시더군요.”

“어허- 그건 저도 몰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끄덕-

시현이 고개를 숙이자, 류건은 오늘 들어온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오늘 스미스가 방한했다는데, 그것 때문이었나.’

때마침 시현이 그 얘기를 꺼냈다.

“스미스라고, 아십니까?”

“하하. 만나고 오시는 길인가보군요. 그럼 혹시··· 그 자에게 설득당하셨습니까?”

“아뇨. 말 한 마디도 못 하게 만들고 돌려보냈는데요.”

“······정말요?”

이미 언령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 류건이었지만···.

스미스의 화술까지 무용지물로 만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 사람 의장단이라면서요? 류건 씨와 같은.”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도 한 정보력 하거든요.”

“허.”

거듭 놀라는 류건.

하지만 다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리고 그 남자, 마틴 사에서 보낸 산업스파이인 건 알고 계셨나요?”

“···예? 마틴··· 산업··· 뭐요?”

“하하. 많이 놀라셨죠?”

“이건 놀란 정도가 아니라······ 하아···.”

“아무튼 뭐, 사실이니까 참고하세요. 그 동안 매니저님한테 받은 도움, 이걸로나마 갚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 물론입니다···.”

팀장 임장호에 이어 매니저 류건까지.

개인적으로 고마웠던 이들에겐 모두 감사인사에 대한 성의표시를 했다.

이로써 회사와의 연은 완전히 끊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연을 만들어야 할 때!

“하지만 저는 매니저님이 필요합니다.”

“예?”

“어떠세요? 전 앞으로도 류건 씨와 일하고 싶은데.”

“하, 하하··· 하하하!”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기분이 좋은 것인지, 류건은 대소를 터트렸다.

혼란스러울 법도 했으나 그는 침착했다.

일생일대의 갈림길 앞에 선 순간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이 평생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먼 옛날, 자신을 영입했던 세계본부에 충성을 다할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 시현을 따라갈지.

“그때 말씀하셨던 회사를 설립하시려는 겁니까?”

“네. 거기에 류건 씨를 영입하고 싶네요.”

“하하···. 어떤 회사를 설립하시려는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인물만 보고 사람을 섬기는 것은 눈먼 신하가 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적어도 회사가 추구하는 바는 알아야할 것이 아닌가?

아무리 계획이 완벽하더라도 일단 손발이 맞아야하는 거니까.

그에, 시현이 자신의 회사를 PR하듯 자신있게 말했다.

“일단 첫째, 위대하고 안전한 세계를 건설할 겁니다. 그리고 둘째, 놈들에게 한 방 먹여야죠.”

“···놈들이라면?”

“몬스터 말고 또 있겠어요?”

“아아··· 하, 하하. 생각보다 거창하군요. 놀랐습니다. 사실 부와 명예를 위한 헌터기업을 설립하실 줄 알았는데.”

“그건 뭐, 자연스레 딸려오게 돼있죠.”

시현이 시종일관 자신있는 얼굴을 내비쳤다.

그 모습에 류건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연봉은 얼맙니까?”

.

.

.

사실 시현은 류건이 그렇게 쉽게 수락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헌터중앙기구는 류건이 몇 년을 몸 바쳐 일한 직장이기도하며, 밑바닥부터 시작해 능력하나만으로 의장단이라는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으니까.

그 이유에 대해 류건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싫증이 났습니다.”

한때, 세계본부에서 뛰어난 헌터들과 일하면서 흥미를 느꼈던 류건이다.

세계최고라 불리는 헌터들을 관리하고, 그들을 더욱 더 강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그의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에겐 한계가 있었다.

매니저인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더 강해질 수 없는 헌터들.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의장단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하는 일에 회의감을 느꼈고,

그러다가 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라고 류건이 말했다.

“그러다가 저를 만나신거군요.”

“예. 뜻밖의 행운이었죠. 다시금 열의를 불태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그 정도였나요?”

“그럼요. 제 눈에 시현 씨는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었거든요. 그것도 ‘한계’가 거의 보이지 않는.”

류건이 회사를 포기하고 시현을 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더 이상 헌터중앙기구에 몸담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전 헌터가 아니라 의장단이다 보니··· 당장 그만두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양해를 해주심이···”

“그런 것쯤이야 뭐, 걱정 마세요. 당장 회사를 차리는 것도 아니고, 절차가 끝나려면 저도 시간이 좀 걸리니까요.”

“잘 됐네요. 그럼 혹시 한 자리 더 비워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자리요? 누구 또 부를 사람이라도?”

“러시아에 아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세계본부에서부터 같이 일하던 친군데, 정보력이 끝내줘요. 세계최고 정보요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오호라.”

도랑 치고 가재 잡기!

한정품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알고 보니 1+1상품이었던 것이다.

“그럼 초기창단멤버는 이걸로 된 겁니까?”

“아뇨, 아직 한 사람 더 남았는데. 말콤 어딨는지 아세요?”

“마, 말콤 씨요? 아까 I팀이랑 점심 먹으러 삼겹살 집 간다던데요···.”

.

.

.

영입의 대상은 류건뿐만이 아니었다.

“어때요, 말콤?”

퇴근 후 저녁.

말콤과 약속을 잡은 시현은 어김없이 그를 조용한 삼겹살집으로 데려갔다.

“Uh... 제의는 고맙지만 세계본부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말콤이 거절할 수 없는 연봉과 조건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말콤은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직장을 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리 없는 시현.

그의 계획엔 말콤이 반드시 필요했다.

스캐닝 능력뿐 아니라 각종 옵저빙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말콤이었기 때문에.

물론 시현도 말콤 못지않게 뛰어난 스캐닝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니, 말콤의 능력보다 훨씬 뛰어났다.

하지만 시현에겐 말콤이 필요한 이유가 자명했기에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시현이 매혹적인 딜을 걸었다.

“삼겹살 매일 먹게 해줄게요.”

“······후. 미스터 팍. 나도 돈 많아요. 아침 점심 저녁 야식 삼겹살 사먹을 수 있어요.”

말콤은 그 말에 현혹될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 이건 어때요?”

“오옷!”

시현이 보여준 마술 같은 현상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탁!

“일해라.”

“!”

휘잉-

서걱서걱!

집게와 가위가 저절로 움직이더니 삼겹살을 자르는 것이다.

“어때요. 신기하죠?”

“그건··· 생명술사의 스킬!”

무생물에 일시적으로 생명을 깃들게 하는 능력.

시현이 보여주고 있었다.

“삼겹살은 남이 구워줘야 제 맛 아니겠어요?”

“그.. 그렇긴 한데 이건 갑자기 왜...?”

“회사에 들어오시면 말콤 씨에게 이걸 드리겠습니다. 6개월짜리입니다.”

“······.”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고기를 구워주고 잘라주는 집게가위 세트.

파격적이면서도 황당한 제안!

말콤에겐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그럼 6개월이 지나면 어떡하죠?”

“그땐 연봉협상과 함께 더 뛰어난 세트를 드리죠. 전용불판도 함께요.”

“!!”

“고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구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고기는 물론 회사 식당에 항상 준비해둘 거고요.”

“하하하! Oh my god.”

말콤으로서도 참으로 유치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말콤은 굳게 닫아놓았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일단 근무환경이나 근무요건 등 자세한 얘기부터 들어보고 싶군요.”

결코 삼겹살 때문이 아니었다.

말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고용인을 대하는 시현의 태도.

그리고 고용인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

.

.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되짚어봤다.

‘거의 다 끝났네.’

류건, 말콤 영입제안 건은 긍정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부지를 구하는 것.

회사를 세울 부지만 얻으면 될 것이다.

“어디가 좋으려나.”

이것저것 실험해볼 게 많았기에 되도록 큰 땅이 필요했다.

하지만 산을 깎는 게 아니라면 서울 도심엔 더 이상 땅이 없었다.

‘경기 권으로 알아봐야하나? 수원이라든가, 용인이라든가··· 음···.’

세상물정에 대해 잘 모르는 시현이었기에 조언이 필요했다.

일단 류건에게 물어보고자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이잉-

텔레파시가 통한 것인지 때마침 류건에게 전화가 왔다.

-시현 씨, 어디십니까?

받자마자 위치부터 물어오는 류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상당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방금 러시아 친구한테 정보를 받았는데, 지금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소환되고 있다고 합니다.

“던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그냥 지구 곳곳에 게이트가 소환됐다고 합니다...

그때였다.

쿵-

시현이 서있던 지면이 느닷없이 살짝 흔들렸다.

작은 소음과 함께 미세한 진동이 서울 시내를 강타한 것이다.

-방금 느끼셨습니까?

“네···. 대체 뭐죠?”

-아직 자세한 영문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한국도 이미 시작된 것 같군요.

“게이트 소환이요?”

-예. 지금 막 정보가 들어왔는데, 약 5분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공격을 해오겠다는 건가.’

“발생지가 어딥니까?”

-경기도 용인이랑 동해바다입니다.

“용인이요? 젠장할. 땅이고 뭐고 다 부서지겠네.”

시현은 그 즉시 용인으로 텔레포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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