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탁탁탁탁-
균일한 소리가 시현의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내리찍는 듯한 소리.
“아직 멀었어?”
“거의 다 됐어요!”
탁탁탁탁탁!
그 정체는 주방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소리였다.
방 안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시현은 옷을 걸쳐 입은 뒤 주방으로 향했다.
지원이 앞치마를 두른 채 야채를 어슷 썰고 있었는데, 앞치마 안으로 보이는 하얀 살결이 시현을 다시금 더 흥분시켰다.
매끄러운 곡선은 보고만 있어도 아찔했다.
“꺅!”
그때, 물속에 갇혀있던 장어가 펄떡펄떡 헤엄치자 지원이 소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저녁 여덟시에 사온 장어였는데, 열시가 넘은 지금까지도 팔팔했다.
파바바바박!
“튼실하네. 뭐해 근데? 손질 안 해?”
“하하... 이제 하려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요.”
시현은 장어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원이 귀여웠다.
던전 안에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몬스터사냥에 일조하던 그녀가 고작 이것가지고 머뭇거리니 귀여울 수밖에.
“왜, 못하겠어? 몬스터는 잘만 죽이면서.”
“그건....”
시현이 놀리듯 말하자 지원이 칼을 든 손에 힘을 가득 싣는다.
“몬스터들은 반드시 죽여야 하니까요.”
몬스터한테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원한이라도 있는 것인지.
지원은 유별나게 흥분해서는 장어의 목을 내리쳤다.
댕강!
“윽! 불쌍해요.”
“잘라놓고 불쌍하긴. 맛있기만 하겠구만.”
“아직 목이 다 안 잘렸잖아요..”
“너 헌터 맞아? 아무리 서포터라지만···. 자, 저리 비켜봐.”
시현은 장어에 대고 말했다.
“가만있어.”
그러자 팔팔했던 장어는 수면제라도 먹은 듯,
스르륵.
편안히 잠들어버렸다.
근육하나조차 꿈틀거리지 않았다.
“······뭐지? 뭐예요?”
불가사의한 광경에 지원이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시현은 그녀가 들고 있던 칼을 가져간 뒤 도마 옆에 다소곳이 내려놓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뒤 장어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뼈와 살 분리.”
순간,
사사사사삭-
언령이 발동되어 장어의 뼈와 살이 깔끔히 분리되었다.
세상 어떠한 장어장인이 와도 이보다 더 훌륭하게 할 순 없을 것이다.
“헉....”
그런 시현을 바라보던 지원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방금 무슨 일이······.”
“자, 이정도면 됐지? 이제 네가 해. 참고로 난 꼬리 좋아한다.”
.
.
.
둘은 오붓한 저녁 식사를 가졌다.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경을 바라보며 와인까지 곁들이니 분위기도 좋았다.
옷이 날개라면, 음식과 장소는 환각제다.
없던 감정도 솟구치게 만드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 말이다.
와인 잔을 홀짝 들이켜던 시현은 새삼 느꼈다.
이제야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지원도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좋아요.”
“뭐가?”
“분위기도 좋고 야경도 좋고. 오빠도 좋고. 하하하!”
지원은 민망한 듯 수줍게 웃으면서도 시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사랑에 빠지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인 것이다.
특히 나이가 어린 지원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 맞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오빠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알아둬서 나쁠 거 없으니까?”
별 이유가 없어보이긴 했다.
단지 좋아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것들을 궁금해 하는 것 밖에는.
시현이 술잔을 기울이며 묵묵히 대답했다.
“부모님은 9년 전에 돌아가셨어.”
“아···.”
“여동생은 11년 전에 죽었고.”
“아아······”
“집은 8년 전에 망했고.”
“죄송해요···. 괜히 물어봐서...”
시현은 손을 내저었다.
“네가 미안할 필요가 뭐 있어. 그냥 술이나 마셔.”
짠.
벌컥벌컥!
떫고 씁쓸한 와인을 맥주마냥 들이켠 시현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다 좋아졌어. 집안도 일으켜 세웠고, 가정사도 해결했고. 이 정도면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그럼요! 부모님도 이 자리에 같이 계셨다면 분명 좋아하셨을 거예요!”
안 그래도 시현 역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한다.
부모님이, 여동생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아?”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느닷없이 흠칫 놀란 시현.
평온했던 표정이 심각하게 변모했다.
“왜, 왜요? 목에 가시 걸렸어요? 자, 잠깐만, 휴지 가져올게요!”
“아냐. 괜찮아.”
그런 게 아니라, 문득 뇌리에 스친 생각에 몸에 전율이 돋았을 뿐이다.
‘살아 돌아온다···.’
그 생각이 시현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것이다.
‘가능하다면야···.’
시현은 무거우면서도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을 돌렸다.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야.”
“뭐든 물어보세요!”
“권능의 열쇠.”
“네···?”
가족관계를 물어올 줄 알았던 지원이다.
아니면 뭐, 여태까지 남자친구가 몇 명이었는지는 물어올 줄 알았는데.
시현의 질문은 예상범주를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났다.
“저번에 S급 본부에서 보검이가 흘렸던 말, 권능의 열쇠. 너도 알고 있지?”
“네···? 갑자기 그건 왜······.”
마음만 먹으면 지원의 뇌를 조종해 모든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그녀에게까지 능력을 쓰긴 싫었다.
더구나 그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게···”
지원은 시현의 눈치를 쓱 살피더니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
“회사의 방침이라···.”
지원을 입을 꾹 닫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현에 대해 깊숙이 아는 것도 아니었고 이제 겨우 만나기 시작한 단계였으니까.
시현을 100% 신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시현은 그런 지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만약 나중에 같이 일하게 된다면, 충분히 신뢰할만한 여자인 건 확실했다.
‘믿을 만하네. 입도 무겁고.’
시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원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걱정스런 눈초리로 시현을 올려다보았다.
“죄송해요···.”
비밀을 말해주지 않아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시현은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고 일러주었다.
“신경 쓰지 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분위기를 확 깨는 대화였다.
달달하게 농익어가던 차에, 찬물을 끼얹듯 이상한 질문을 던졌으니까.
하지만 시현은 꺼졌던 분위기를 활활 태우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자.”
“네? 어딜···.”
“밥 다 먹었잖아.”
번쩍!
아까처럼 지원을 번쩍 들어 올린 시현.
그녀를 거실 좌측의 방으로 데려갔다.
“여, 여긴···”
“처음 와보지?”
침실이 아닌 휴식하는 공간으로, 마사지 기계부터 푹신푹신한 물침대까지 별의 별 게 다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와··· 예쁘다···.”
침대에 누워 한강둔치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
그 야경을 만끽하며 사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보다 좋은 건 없을 것이다.
.
.
.
다음날 용산구 헌터중앙기구 헌터특수본부 팀장실.
시현은 미리 준비한 하얀색봉투를 꺼냈다.
그러자 임장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게 뭔가···?”
봉투에 대놓고 ‘사직서’라고 적혀있었지만 임장호는 확인 차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이지리아 출장에서 ‘영웅’의 타이틀까지 달고 온 이가 휴가를 다녀와서는 느닷없이 퇴사를 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혹시 발전기 사건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걱정 마, 이 친구야. 자네가 어떤 인력인데. 설마 그런 것 때문에 해고를 하겠나?”
“아뇨.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허··· 진심인가? 회사를 관두겠다고?”
“죄송합니다. 느닷없지만 신중하게 결정한 사안이니 수리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허허···. 나참. 갑자기 이러니 당황스럽네. 사실 축하파티를 어디서 열어야하나 고민 중이었거든···.”
시현이 돌아오는 대로 성대한 복귀식을 열어주리라 생각했던 임장호였다.
“그런데 갑자기 퇴사라니.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나? 있다면 나한테 말해봐. 내가 세계본부에 올라가서라도 바꿔줄 테니까. 연봉이라면 얼마든지···”
“아뇨.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정중히 거절하는 시현.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헌터중앙기구의 대우는 상당히 흡족했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이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요.”
“하고 싶은 거···. 좋지.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하하. 생각도 해봤는데, 오후까지 여기서 근무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요.”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임장호는 적극적으로 시현의 퇴사를 만류하고 싶었지만 결국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시현의 의지가 저렇게나 확고한데 말려봤자 소용이 없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신경 써서 SSS팀까지 만들어주셨는데.”
“아니,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했지.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못해주는 것 같아서.”
시현은 어렴풋이 미소 지었다.
헌터중앙기구, 다시 봐도 잘 들어간 회사였다.
이러기 쉽지 않은데, 같이 일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개념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직장이었다.
“그런데 있잖나···.”
임장호가 사직서를 받아들며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사실 헌터생활 하기에 헌터중앙기구만한 곳이 없어. 자네 실력이면 웬만한 곳을 들어가도 시시할 텐데. 혹시 세계 10대 미궁이라도 탐험하려는 건가? 아니면 다른 회사에서 뛰어난 대우를 해준다던가···.”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그래···? 그래, 그럼. 더 이상 묻지 않겠네. 그리고 사표는 최대한 빨리 수리될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감사합니다.”
시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급스런 포장상자를 꺼냈다.
그 동안 고마웠던 것에 대한 감사인사였다.
그 안에는 다이아몬드와 각종 이계의 보석으로 장식된 유리병과 유리잔이 들어있었다.
“···이건 또 뭔가?”
“데킬라입니다.”
“보통 술이 아닌 것 같은데···.”
“생긴 건 그래도 얼마 안 합니다. 그냥 성의의 표시로 생각해주세요.”
“허허. 사직서 받으면서 선물 받는 건 또 처음이네.”
“신경써주신 만큼 보답해드린 것뿐이에요.”
“그럼.. 잘 마시겠네.”
감사의 인사이자 미안함에 대한 성의표시였다.
더구나 술에 환장하는 임장호에겐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러지. 사표는 수리 되는대로 연락이 갈 거야.”
“예.”
스윽.
시현이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가자 임장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끼이익-
“후-.”
시현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임장호는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심경이 얽혀있었다.
일단 마음이 한결 홀가분했다.
사실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당장 세계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괴물 같은 신입이 바로 자신의 밑에 있다는 것은.
‘암만 생각해봐도 도저히 내가 품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땐, 확실히 속이 시원하긴 했다.
하지만 동시에 섭섭하기도 했다.
“언제 또 그런 괴물이랑 같이 일 해보겠어.”
임장호는 못내 아쉽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시현이 남기고 간 술병을 들어 살폈다.
‘근데 이건 얼마나 하려나. 한두 푼 할 사이즈가 아닌데.’
무릇 애주가라면 모를 수없는 ‘귀한 술’의 기운이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딸칵.
인터넷에 바로 찾아보았다.
“허···.”
같은 제품의 가격을 보자마자 입이 저억 벌어졌다.
예상은 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비쌀 줄은 몰랐다.
“술 한 병에 40억이라니···. 허허. 한 방울에 300만 원? 스케일 자체가 다르네···.”
다시금 생각해봐도 시현은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런데··· 회사는 모르겠네.”
사직서가 상부에 올라가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현을 잡아두려 할 텐데.
그 과정에서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 임장호는 불안했다.
‘세계본부 이놈들···. 또 와서 난장판을 벌이겠구만. 시끄러워지겠어.’
생각만 했는데 벌써부터 피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놈들이 그런 짓을 벌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세계본부.
말로만 ‘수뇌부’다 ‘컨트롤타워’다 번지르르한 단어로 불리지, 실은 엘리트 깡패집단이나 다름없었다.
“함경만 본부장도 사라지고···. 나 참, 총체적난국이구만. 근데 저 친구는 대체 뭘 하려고 헌터중앙기구를 관두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만은 예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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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중앙기구 밖으로 나선 시현은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을 들었다.
최 회장의 직통전화였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도 이젠 끝이구나.”
드디어 끝을 볼 때가 왔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도약을 할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