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54화 (54/100)

# 54

극한의 공포를 느낀 최 회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상체를 부등켜세웠다.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요!”

“할 얘기나 남았을 텐데. 진정하고 얘기나 좀 하지.”

딱!

시현이 경쾌하게 핑거스냅을 치자 최 회장이 품고 있던 공포가 눈 녹듯 사라졌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대면하는 것처럼 심경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진정된 최 회장은 얼굴에 화색이 돌고 더 이상 말도 더듬지 않았다.

“하아.... 할 얘기가 남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한테 보상받을 게 좀 있어서.”

“보상?”

“살려줬으니 은혜는 갚아야지.”

“살려주다니 무슨! 나를 죽이려고 했잖소?”

“방금 살려줬잖아. 코마 상태에 빠져있던 당신을.”

코마 및 뇌사 상태에 빠진 이를 단숨에 치료하고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

SSS급 힐러가 와도 이렇게 쉽게는 불가능하다.

단순 치유가 아닌 리커버리 스킬을 병행해야하기 때문.

스킬에 소모되는 기력의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린다.

해서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고.

헌데 그런 과정을 시현은 단 1초 만에 뚝딱 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

시현은 한 마디로 ‘걸어 다니는 기적’이었다.

“그럼... 일단 물 한모금만 좀 마시겠습니다... 목이 타서....”

스윽.

침대에서 일어나고자 두 다리를 바닥으로 내리는 최 회장.

추위에 몸부림치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모습에 시현은 그를 침대에 도로 눕혔다.

“물은 무슨. 먼저 듣기나 해.”

“으읍···!”

스르르.

겨우 진정되었던 마음이 다시금 두려움으로 뒤덮였다.

풀려버린 긴장은 다시금 고조되었다.

당해본 사람만 안다는 진정한 두려움!

마치 눈앞에 호랑이를 두고 있는 아이처럼 두려움이 최 회장의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른바, 불가항력이라는 것이었다.

“후, 후우! 후우!”

최 회장은 심호흡을 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음, 으음. 은혜, 꼭 갚겠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당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

“······!!”

삐- 삐- 삐- 삐 -!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에서 소리가 울린다.

혈관이 터질 것 마냥 혈압수치가 높아져간다.

한 평생을 바쳐 이뤄낸 것들을 빼앗길 생각에 혈압이 오른 것이다.

최 회장에게 있어 부와 명예는 생명줄과도 같았기에.

“목숨보다 돈이 더 아까운가?”

“그건 아니지만... 예... 그렇다면 선생님, 설마 아진그룹을 원하는 겝니까?”

“그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그건 깡패가 아닙니까!”

“깡패?”

“으읍!!”

시현의 위압적인 말이 최 회장의 몸을 짓눌러버렸다.

위협을 느낀 최 회장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 아시다시피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아진그룹 역시 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하지만 지분율이 70%가 넘는 계열사가 있던데.”

“···아, 아진물산?!”

지분율이 70% 이상이라는 건 회사의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뜻.

아진물산이 그러한 경우였다.

“왜 하필 아진물산을 원하시는지······.”

“거기에 현자건설이 잠들어있더라고.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것도 있고.”

시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진물산에는 건설업뿐만 아니라 몬스터연구소 등의 부문이 포함돼있었다.

시현으로서는 가장 가지고 싶은 회사이기도 했다.

국내 최대 몬스터연구소의 권한을 얻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아진물산은 너무······!”

“크다고? 목숨 값치곤 저렴하다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군.”

“아아.... 알겠습니다만... 허나 생판 모르는 남한테 느닷없이 무상증여라니요.”

“안 될 게 있나?”

“가, 가능이야 하지만 아진물산은 억대의 수준이 아니란 말입니다... 세금이며 한도며, 제가 드린다고 해도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긴 왜 안 돼. 법으로 안 되면 편법으로 가능할 텐데. 당신들 주특기 아냐?”

“끄응...”

“당신은 그저 의사만 밝히면 돼. 나머진 내가 알아서할 테니까.”

시현은 확신했다.

지금 이 시대에 불가능한 건 없다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리고 지난날에 빼앗겼던 현자건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수할 생각이었다.

“아직도 고민되나보군. 그럴 필요 없을 텐데.”

“그게 무슨···?”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당신을 조종할 수 있거든.”

말 그대로, 말 한 마디면 최 회장의 정신을 조종해 평화적으로 도장을 받아낼 수 있는 시현이었다.

“그럼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그럼 내가 약탈한 게 돼버리잖아.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네놈들하고 똑같은 놈이 되긴 싫거든.”

“하지만··· 이것도 약탈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약탈이 아니라 회수. 회수 몰라?”

“······.”

“그러니까 당신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에서 주면 되는 거야. 지금 나도 최대한 화를 누르면서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는 거니까. 다행으로 생각해.”

당장 육체적으로 복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인공경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양친의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최 회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하지만,

좌윽-

말 떨어지기 무섭게 시현의 이마에 핏줄이 터질듯이 발딱 섰다.

차라리 말을 말았어야지.

괜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다.

시현은 독기 어린 눈으로 최 회장에게 똑똑히 말했다.

“사과는 받아줄 준비가 된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

최 회장은 앞으로 죗값을 치르며 살아가야할 것이다.

남은 평생 똥줄 타면서.

.

.

.

한강 둔치.

“그러니까, 이번엔 아진이라고?”

경탄과 흥분이 담긴 이용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시현에게서 기막힌 사실을 들었으니까.

“그렇대도.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춰라. 어느 기업인이 그런 고급정보를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냐.”

“흐흐. 이게 고급정보냐? 이 정도면 백만 불로도 못 구할 정보지. 내일 아침부터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겠구나.”

아직 언론에 공개는 안됐지만 내일 아침이면 충분히 찌라시가 돌고도 남을 터.

처절한 사투가 일어날 것이다.

“고맙다. 나 챙겨주는 건 너밖에 없네.”

“고마워? 설마 그 말 한마디로 퉁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 믿는다.”

“아니지 그럼···. 이번엔 뭔데?”

사람 찾는 것부터 각종 부탁까지.

이용수는 자신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가 됐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만 하나 품지 않았다.

둘은 진정한 친구 사이였으니까.

“내가 저번에 말한 거. 어떻게 됐어?”

“뭐? 아, 한성연구소? 인수 중에 있는데, 왜?”

“그거 내가 좀 쓰고 싶은데. 되냐?”

“연구소를? 안될 건 없는데··· 대체 뭘 하려고?”

“뭘 하냐니, 당한만큼 되갚아줘야지. 몬스터 놈들한테.”

시현은 이죽거릴 뿐이었다.

.

.

.

집에 돌아오니 밤 열시가 넘었다.

어제오늘 이틀간 쌓여온 고된 피로가 밀려왔다.

“후우-”

그래도 집만큼 좋은 게 없나보다.

오자마자 피로가 풀리는 걸 보면.

‘얼른 집도 새로 장만해야지.’

여긴 정부에서 지원해준 오피스텔이다.

앞으로 계속 여기서 살기엔 좀 그러니 옮기긴 할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저번에 주민들에게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어젯밤 소음으로 통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좀 심하긴 했지.’

지원과의 뜨거웠던 하룻밤.

신음소리가 클수록 사람의 만족도가 높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 정도면 뭐.’

나쁘지 않다고는 자부할 수 있었다.

지원에게 먼저 까톡이 오는 걸 보면.

-오빠, 뭐해요?

-방금 집에 들어왔는데. 넌?

-팀원들이랑 회식하다가 먼저 나왔어요.

-왜.

-오빠 없으니까 재미가 없어서...

아무래도 그날 이후 시현에게 푹 빠진 듯하다.

‘귀엽네.’

시현의 머릿속에 지원의 풋풋한 얼굴을 떠올랐다.

두 볼이 빨개진 채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선히 보였다.

-그럼 일로 와.

답장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왔다.

-네!! 혹시 배고파요?

-응 많이.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

.

.

시현은 지원이 오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 궁리를 했다.

어떻게 하면 언령을 보다 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지.

어차피 한계는 존재한다.

되는 건 되는 것이고, 안 되는 건 무슨 짓을 해도 발동되지 않는다.

물론 기력이 무한대라면, 시간 역행 같은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즉, 기존의 범주를 벗어나기 위해선 신의 영역에 도달해야하는 것.

본디 스킬이라는 게 그런 거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자신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한계를 만들어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신은 기력도 무제한이겠네.’

기력이 무제한이면 못 쓸 스킬도 없을 터.

즉, 언령에도 제한이 없다는 뜻.

거대한 기를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도 있는 ‘신’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당초 언령이라는 건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 1000SP의 기력으로 홍콩까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2000SP로는 미국까지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달리 말해, 기력이 믿음이라는 뜻!

‘하지만 기력을 무한대로 만들 수는 없고.’

기력이 무한이려면 애초에 포켓의 사이즈가 무한대여야 하니까 그건 불가능하다.

최소한 ‘인간’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은 그저 되는대로 최대한 늘리는 것뿐이다.

시현은 일전에 류건에게서 받은 헬퍼를 착용해 기력을 확인했다.

[SP : 1815]

이 정도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아직 멀었다.

최고의 수준임에도 시현은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궁극의 권능을 얻어버렸으니까.

“포켓 확장.”

그 즉시 몸의 변화가 느껴진다.

주르륵-

포켓에서 기력이 주르륵 새어나가는 게 느껴진다.

‘기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계속 확장되겠지.’

그의 생각대로 포켓이 확장되는 폭이 점점 넓어져갔다.

[SP : 1815 -> 1878]

[SP : 1878 -> 1955]

[SP : 1955 -> 2042]

.

.

.

멈출 기세를 모르고 끊임없이 올라간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메커니즘부터,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메커니즘까지 모조리 활용하는 것이다.

헌터중앙기구조차도 알지 못하는 천고의 기법까지도!

다만 그 고통 또한 다양하고 끔찍했다.

‘흐읍···.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겠는데.’

그렇다면,

“고통 완화.”

스르르르······

기력을 소모하여 고통을 완화시켰다.

‘이제야 좀 살만하네.’

이후 고통이 늘어나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더니 어느덧 기력이 모두 소진되었다.

동시에 포켓확장도 멈췄다.

‘이런, 믿음이 부족하군.’

지속성이 문제지, 어쨌거나 발동은 되었다.

반쪽짜리 권능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

효과 또한 상상이상으로 뛰어났다.

[SP : 2205]

단 10분 만에 약 400이나 늘었다.

1시간해서 50씩 늘던 걸 생각하면 가슴 벅찰 정도로 월등했다.

비루했던 삶과는 이제 영영히 안녕인 것이다.

“힘들다...”

그래도 힘든 건 매한가지.

다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지금은 그 피로를 풀어줄 것들이 생겼다.

이를 테면,

딩동.

“오빠, 저 왔어요!”

지원이라든가.

“왔어?”

“네··· 하아··· 하아···.”

“근데 왜 이렇게 헐떡거려. 뛰어왔어?”

“네....”

지원의 입에서 뜨뜻한 입김이 불어나온다.

이렇게 헐떡이는 걸 보면 꽤나 먼 거리에서부터 뛰어온 것 같다.

“어디서부터?”

“하아... 노량진수산시장이요....”

노량진수산시장이면 1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

그 거리를 뛰어서 왔다고?

아무리 A급 헌터라지만 지원은 서포터다.

물론 일반인보다는 체력이 훨씬 뛰어나지만 그래도 10킬로를 전력질주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차타고 오지. 왜?”

“아직 제가 면허를 안 따서...”

“헌터가 면허를 안 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하... 사정이 있어서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오빠.”

팔랑팔랑.

지원이 양손 가득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흔든다.

“그건 다 뭐고?”

“오빠 배고프다 해서 먹을 것 좀 사왔어요. 이거... 아직 살아있는 거라 빨리 요리해야 돼서.”

“아, 그래서 뛰어온 거야? 뭘 사왔는데?”

펄떡펄떡.

비닐봉지가 지 혼자 난리를 치고 있다.

안에서 무언가가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장어요!”

“장어?”

“네. 싱싱해서 샀어요. 몸보신으로도 좋다고 해서...”

“누가 그래?”

“보검이가 그러던데요?”

“자식. 잘 아네.”

“맞죠? 좋은 거 맞죠?”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원이 보조개를 띠며 방긋 웃는다.

“어떻게 드실래요?”

“음. 덮밥?”

“덮밥이요...? 네, 그럼 지금 바로···”

“아니, 그 덮밥 말고.”

번쩍!

“꺄악!”

시현은 지원을 번쩍 들어 침대로 데려갔다.

참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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