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53화 (53/100)

# 53

장막을 깨고나와 강남으로 텔레포트 한 시현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씨 좋네.”

모든 것이 최고다.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일들이 하나둘씩 해결되었다.

이제는 마음먹는 대로 원하는 것 전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힌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심지어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신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완벽해진 자신의 능력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최 씨 부자가 어째서 열쇠와 구슬에 목숨을 걸었던 건지 이해가 가네.’

그게 시현이었어도 혈안이 되어 구슬을 찾으러 다녔을 것이다.

‘근데 놈들은 열쇠와 구슬의 효과를 어떻게 알았을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중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단 밥부터 먹자.’

시현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동네 야간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물론 선글라스와 마스크, 모자는 필수였다.

“뚝배기해장국 하나요.”

시현은 음식을 주문한 뒤 류건에게 메시지 한 통을 남겼다.

그리고 잠시 후 해장국과 공깃밥이 나왔다.

시현은 밥그릇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시험해보자.’

이어 작게 혼잣말하듯 말했다.

“복사.”

팅!

주문한 밥그릇 옆에 밥그릇이 하나 더 생겨났다.

밥알의 위치와 개수까지 아예 판박이인.

‘사기네. 사기야···.’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시현은 누가 볼까 밥 두 공기를 뚝배기에 말아 넣은 뒤 큼지막하게 숟갈을 떴다.

후루룹!

호호 불어가며 해장국을 반쯤 비워갈 때였다.

드르륵-

자신과 비슷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반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동이라도 받았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류건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현은 웃으며 화답했다.

“고생하셨는데, 한 그릇 같이 하시죠.”

.

.

.

식사를 마친 후 둘은 인근 24시 룸 카페에 들어갔다.

남자 둘이 가기엔 뭐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엔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무엇보다 시현이 디저트를 먹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런데, 직장엔 안 가 봐도 괜찮으세요? 저야 휴가라지만 매니저님은 아니잖아요?”

“하하하···. 이미 엎질러진 물, 어떻게든 되겠죠. 안 그래도 일단 급한 불은 껐습니다. 세계본부에서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지만.”

“음, 저도 능력이 닿는 데까진 도울 테니 걱정 마세요. 해일군주, 융천군주 등등 사체는 종류 별로 많이 있으니까요.”

“아아······ 그, 그렇군요.”

실내가 더운 것도 아니건만 류건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홀로그램 식 메모 창을 허공에 띄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고 드리자면, 일단 최 회장부터 죗값을 치르게 할 예정입니다.”

“최 회장이요?”

“예.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어허. 죽은 줄 알았는데. 명이 길군요.”

“오히려 잘 됐죠. 저지른 죄는 싹 다 심판해야하니까. 그런데··· 김은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김은혜.

현재 시현의 아공간 안에 갇혀있는 중이다.

아무 것도 볼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아득한 공간에 말이다.

“그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가능하다면 행방불명으로 처리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예. 그러니까, 김은혜는 행방불명으로 처리···.”

류건은 메모창에 시현의 지시사항을 입력한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함경만이 남았죠?”

“아, 예. 그런데··· 땅으로 꺼진 것인지 산 중턱에서부터 흔적이 뚝 끊겼더군요. 혹시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글쎄요. 뭐,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수색 중단하라고 하세요.”

“예?”

스윽.

시현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룸(Room)에 장막이 펼쳐졌다.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별 난리를 쳐도 외부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그런 장막을.

그런 뒤 훈련조교에 빙의하듯 근엄하게 내뱉었다.

“함경만. 집합.”

소옥!

“······음?”

일순 시현 앞에 나타난 함경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해서는 눈을 껌뻑인다.

그러다가 상황파악이 됐는지,

“어, 어억!”

“또 보네.”

“왜, 왜 내가 여기에······.

“왜 있긴.”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시현이 집합하라고 했으니까 집합한 것뿐이다.

“아아.....”

시현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실성한 듯한 함경만.

“살려··· 살려줘···.”

“그게 살려달라는 사람 태돈가?”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를 판에.

함경만은 이를 꽉 악물고서는 고개를 들어 턱을 치세웠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죽음을 받아들인 것인가?

어서 자신의 목을 치라는 시늉을 했다.

“그럼 어서 죽이든가.....”

“우습네. 죗값을 그렇게 쉽게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나보지?”

“그럼···”

“사람이 빚을 졌으면 이자까지 갚아야하는 게 순리인데.”

“······!”

“편히 죽을 생각은 마라.”

섬뜩한 말 한 마디.

등골이 서늘해진 함경만은 오싹한 생각이 들었다.

평생 고문을 받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모두 털어놔야 할지도 모른다는!

그렇기에 그는 죽기 살기로 시현에게 덤벼들었다.

“죽이라고, 이 새끼야!”

“안 죽여. 그러니까 꿇어. 열심히.”

“어어어억!”

쾅!

무릎뼈에 금이 가도록 강하게 무릎을 꿇은 함경만을 향해, 시현이 다리를 간결하게 쭉 뻗었다.

퍽!

“커허···어억···!”

명치를 한 번 때려주니 함경만은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하지만 벌(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관절.”

우득.

“어억··· 잠, 잠깐······!”

“골절. 쇼크방지.”

빠드득-

까윽!

“케에에에에에에에!!”

함경만은 죽겠다는 듯 흰자위를 내보이며 비명을 내질렀지만 시현은 그래도 성에 안 찬다는 듯 덧붙였다.

“고통만 남겨놓고 치료해줄게.”

쏴아아아아-

함경만의 몸은 새사람의 그것처럼 완치되었으나 고통은 육신에 남아 지속되었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그는 시현의 발목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그마아아아아안!!”

“더러운 손 치워라.”

빠직!

함경만의 손등을 무참히 짓밟아준 뒤 마지막으로 두 마디 더 얹었다.

“들어가. 지옥으로.”

쏘옥.

시현은 그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곳이 어떠한 곳인지는 곧 알게 될 터.

단출한 복수극을 끝낸 시현이 도로 자리에 앉으니 류건이 파리해진 안색으로 땀을 흘렸다.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군요. 두려울 게 거의 없겠습니다....”

“‘거의’라면?”

“전에도 말씀드렸듯... 침묵 스킬만 조심하신다면 가히 최강일 겁니다.”

침묵의 스킬.

스킬금지나 포켓봉인 따위의 스킬에만 당하지 않는다면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늘 주의해야겠네요.”

“예···.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있는 놈이라면 시현 씨에게 덤벼들질 않겠죠.”

“그런가요.”

“그럼요..... 아참, 그리고 최 회장의 서재에 이런 게 있더군요.”

류건이 정장 안주머니에서 진공압축 팩을 꺼냈다.

그 안에는 오래 돼 보이는 태블릿PC가 들어있었다.

“이게 뭐죠?”

“아무래도 시현 씨의 부친께서 남기신 물품 같습니다. DNA보안이 걸려있더군요.”

“아,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그럼 이제 ‘매니저’가 아니라 소울 메이트라고 불러주심이. 하하하!”

“진심입니까? 어감이 영 아닌데.”

시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류건은 얼굴을 진지하게 고쳐먹었다.

“큼큼. 농담입니다···.”

“농담도 거참··· 매니저님답게 하시네요. 연배가 저랑 비슷한 것 같은데, 나이가 몇이라고 하셨죠?”

“밝힌 적 없습니다만··· 올해로 스물여덟입니다.”

“달랑 한 살 차이? 그럼 소울 메이트보다는 형 동생이 낫겠는데.”

시현이 은근슬쩍 말을 놓자 류건은 당황했는지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형 동생이라··· 회사에서 이런 경우는 보검 씨 외엔 처음인데. 시현 씨, 정이 그렇게 없는 사람은 아니었군요?”

“하하하! 지금 무슨 말씀을. 이제야 여유를 되찾은 것뿐이지 정이야 차고 넘쳤죠.”

몸과 마음은 늙었지만 이제는 10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냉혈한이 아닌 예전의 자신으로!

“하하···. 굴뚝같아선 저도 형님 동생하고 싶지만 회사방침에 위배되는 거라···.”

“하긴, 아직 헌터중앙기구 소속이니까.”

“‘아직’이요? 아, 그럼 그만두신다는···?”

그 질문에 시현은 온화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류건에게 받은 태블릿PC를 꺼내 열어보았다.

지문인식까지 끝마치니 일기형식의 글이 나타났다.

-우리 장남 시현에게.

일기라기보다는 편지에 가까웠다.

혹시라도 죽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의 비밀을 아들 시현에게 남기려던 것이다.

내용에는 시현이 예상한 대로, 언령의 권능을 얻게 된 배경이 나타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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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항상 우리 현자건설을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는 우리 장남.

회사에서 항상 농담조로 자랑하고 다녔는데.

하지만 아빠는 시현이가 정말 그렇게 해주리라고 믿는단다.

그렇다고 꼭 그래야한다는 건 아니야.

너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아빠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아리라 믿는다.

그리고 실은 어제 특별한 일이 있었단다.

언젠가는 말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구나.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끼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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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이어진 내용에 따르면, 시현의 부친 박종기는 권능의 열쇠를 우연찮게 발동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권능을 관장하는 ‘정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적혀있었다.

-궈, 권능이라···. 저는 괜찮으니, 우리 아들이 말하는 대로 다 이뤄지게 해주십쇼! 아니 글쎄, 우리 회사를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부모라면 누구나가 가장 바라는 것일 터.

박종기의 바람은 그렇게 이뤄졌고,

그로 인해 권능의 대기열이 끝난 직후, 갑작스레 시현이 반쪽짜리 언령의 권능을 얻게 된 것이다.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요.’

자식만을 위한 아버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크흠.”

편지를 다 읽고 나자 코끝이 붉어졌다.

뼛속까지 시리게 하는 거센 한파 때문이 아니었다.

친구처럼 다정하신 아버지의 말투가 편지에 그대로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편지 종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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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우리 아들이 잘해낼 거라 믿는다.

그래서 인지 오늘따라 시현이랑 밥 한 끼 하고 싶네...

이렇게 좋은 날에 자현이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허허. 왜 또 말이 일로 세는지 모르겠구나.

왜,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잖냐.

하지만 아빠는 우리 아들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단다.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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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시현은 아버지가, 그리고 가족이 그리웠다.

그들을 기억하고 또 추억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현자건설을 되찾고 재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마침 류건이 시현의 계획에 대해 물어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계획이요? 음···.”

현자건설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였고, 개인사 역시 모두 해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큰 고민 없이 마음 편히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거 다해야죠.”

시현은 일기장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최 회장은 아직 안 깨어났답니까?”

“예. 상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더군요. 자칫하면 당장에 죽을 수도···.”

“그럼 안 되는데.”

“예?”

“저, 어디 좀 가봐야겠습니다.”

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깔끔히 정돈했다.

.

.

.

S대 12층 VIP 2호 중환자실.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입원 중이었다.

최 회장.

정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몸 상태도 많이 손상된 상태였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코마상태.

쉽게 말하면 사경을 해매고 있는 상태.

자칫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병원 내 최고의 의료진이 총력을 기울여 그를 봐주고 있었다.

물론 외부와의 접촉은 일절 없었다.

심지어 회장의 집안사람까지도 면회를 올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찾아온 손님이 하나 있었다.

드르륵-

병실 문을 열고서 들어온 이 남자.

한쪽 손엔 빛바랜 하얀색 국화 다발이 들려있었다.

그는 병실침대 옆으로 다가가서는 국화 다발로 최 회장의 얼굴을 내리쳤다.

“일어나.”

“으읍!”

번쩍!

생사를 헤매던 최 회장은 기적처럼 눈을 떴다.

시현이 그의 산소호흡기를 떼어주자 그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이게 무슨....”

다 죽어가던 몰골에 혈색이 돌았다.

금방이라도 송장이 될 것 같던 사람이 깨어난 걸로도 모자라 기력을 차린 것이다.

최 회장으로서도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다시 보니 반갑네. 최 회장.”

“누, 누구신지... 그리고 여긴 어디인지...”

머리를 다친 것일까?

애석하게도 최 회장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탓에 시현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런, 불쌍하셔라.”

하지만 시현에게 불가능이란 없었다.

“기억복구.”

번뜩!

과연 기적의 치료사!

금세 기억을 회복했는지 최 회장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말을 얼버무렸다.

“누, 누구신지......”

그럼에도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 오리발을 내미는 최 회장.

갑자기 치매라도 걸린 것일까?

그런 그에게, 시현은 걱정 말라는 듯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몇 대 맞고 기억할래.”

“흐, 흐이익!”

침대가 샛노랗게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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