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50화 (50/100)

# 50

구슬은 다 타버린 심지처럼 모든 에너지를 소산하고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열쇠 또한 마찬가지.

그것에 담겨있던 기력은 시현에게 흡수되어 권능의 빈자리를 가득 채워주었다.

딱 반절.

반절이 가져다준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먼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전신에서 흘렀다.

단순 육체적 능력이 상향된 것이 아니었다.

권능이라는 보석이 일류 세공사의 손길에 거쳐 완성품으로 다듬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권능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당장 시험해보고 싶었다.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완벽한 힘을 세상에 떨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기력을 다 썼다는 것.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비기를 가졌는데,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기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던 것이다.

하기사, 지금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주히 움직여왔으니까.

레비아탄을 상대하는 것부터 장거리 텔레포트까지, 너무 많은 힘을 썼다.

그렇다고 중간에 기력을 채울 틈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단 기력부터 채우고 간다.’

시현은 기력발전기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기계 곳곳에 감돌던 붉은빛은 물대포에 진압된 불길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

제어권을 쥐고 있는 세계본부에서 작동을 중단시켰거나.

혹은 발전기에 더 이상의 기가 남아있질 않다거나.

발전기 근처로 다가가 기계를 더듬은 시현은 그 이유가 후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다 썼군.’

이렇게 된 이상 스스로 기력을 채우는 법 밖에는 없다.

“마음을 열고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명상이 필요하다.”

솨아아-

두 팔을 벌려 명상을 시전하자 빠른 속도로 기가 차올랐다.

다만, 전보다 포켓의 사이즈가 훨씬 늘어났다보니 가득 채우는데 시간이 꽤 소요될 듯싶었다.

‘아니지, 잠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시현은 하던 짓을 멈추고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흠.”

문득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심오한 표정을 짓더니 나지막이 내뱉었다.

“기력회복.”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포켓 깊숙한 곳에서 극소량의 기가 꿈틀거리더니 자가 복제를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부터 복제에 복제를 거듭하였고, 찰나 포켓이 싱싱한 기(氣)로 가득 찼다.

그 시간이 채 3초도 되지 않았다.

거의 말을 뱉자마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권능.

“아!”

대단하다!

언령 진(眞)을 발동한 게 아니었다.

단지, 평범한 스킬을 발동하듯 툭 내뱉었을 뿐인데 그게 언령이 되었다.

‘호오. 기력을 소모해서 기력을 채운다? 획기적인데.’

스킬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무한복제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언령인 셈.

다만 무한정으로 반복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언령은 권능, 즉 스킬이다.

모든 스킬마다 발동될 수 있는 명백한 인과가 존재하며 각기 다른 메커니즘이 가지고 있다.

즉, 아무리 수준이 낮은 스킬이라도 쿨타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무튼, 언령이라는 완전한 권능이 생겼는데 망설일 게 뭐 있는가?

시험해본다.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지.

“포켓확장.”

좌윽!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포켓자극캡슐 안에 있는 것도 아니건만, 포켓이 감전되듯 자극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파르르르릇!

마치 전기의자에 앉아있는 듯한 격렬한 고통.

최근 B타입 캡슐에서 훈련할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극심한 고통이었다.

포켓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 여느 때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수십, 수백 억짜리 캡슐에서 훈련을 받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후우-.”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심신이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상관없다.

“원기회복.”

촤아!

“미친···.”

이것이 진짜 언령.

축 늘어졌던 몸에 활력이 솟구쳤다.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올 정도로 팔팔해졌다.

“오빠··· 괜찮아요?”

시현이 황당한 얼굴로 서있자 저편에서 김지원이 조심스레 물으면서 다가왔다.

손에는 밀봉된 캡슐이 하나 들려있었다.

“이거라도··· 좀 드세요.”

생김새는 SLP1 각성제 같지만 용도는 전혀 달랐다.

“소량이나마 기력과 원기를 회복시켜줄 거예요.”

보통 서포터들이 비상용으로 챙겨두는 고급캡슐이었다.

값도 값이지만 비상용을 시현에게 준다는 건 그만큼 그를 믿는다는 뜻.

이미 기력을 가득채운 시현에게는 필요 없었지만 성의를 봐서라도 꿀꺽 삼켰다.

“힘이 솟구치네.”

“정말요?! 다행이다···. 전 또 무슨 일 일어나는 줄 알고···.”

시현이 힘을 얻는 내내 마음을 졸였던 지원이다.

착하디착한 마음씨는 어디 안가는 듯, 시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 마. 이제 다 끝났어.”

“아아···. 다행이에요!”

지원의 얼굴이 밝아지자 이번엔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먼저 말을 붙인 건 강보검이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그래, 오랜만이다.”

“어어··· 어째선지 전보다 더 살벌해지신 것 같네···.”

보검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몸을 움츠리며 걸음을 뒤로 뺐다.

그에 이어, 마치 병문안 오는 것처럼 여타 사람들도 차례차례 다가와 시현의 안부를 물었다.

끝까지 반대하던 백민식 관리관도 포기했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아, 몰라. 우리 잘나신 류건 씨가 알아서 해주겠지. 그치?”

백민식이 임장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임장호는 시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한 마디 거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잘 된 거 같아 다행이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대충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 언뜻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현 씨?”

류건이 시현을 구석 한편으로 데리고 가 물었다.

“좀 어떠십니까?”

“날아다닐 정도로 좋은데요.”

“후우··· 잘 됐습니다.”

류건은 진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감정이 얼굴에 오롯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마치 자신이 힘을 얻은 것 마냥 누구보다 더 기뻐하고 있었다.

“이게 다 매니저님 덕분입니다.”

“하하.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또 그 소리.”

시현은 류건의 말을 뚝 잘랐다.

“보세요.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드릴 테니.”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닌 충만한 의지가 담겨있는 각오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류건은 기대하는 표정을 내보였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염려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구를 박살내면 안 됩니다. 이제 말 조심하셔야겠어요.”

“말조심이요?”

“아, 재미없으셨나요···. 농담인데.”

실없는 농담이었지만 시현은 그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캐치해냈다.

“제 권능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보군요.”

“뭐,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도 희귀한 권능이 많다보니···.”

‘언령’이라는 것.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애당초 류건은 시현의 매니저였으니까.

시현의 헌팅 캠만 분석해도 대강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눈치 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섭섭하신 건 아니죠?”

“크흠. 괜찮습니다. 언젠간 저한테 말해주시리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었군요.”

류건은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좋았다.

어쩌다 맺은 시현과의 인연이 여기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 그런지 기쁨이 두 배였다.

권능의 비밀을 밝혔다는 건, 시현이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아무튼 다 잘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만담은 여기서 그만.

딱!

류건은 경쾌하게 핑거스냅을 치며 말을 이었다.

“이제 움직여야죠.”

끄덕.

무슨 뜻인지 이해한 시현이 고개를 주억거렸을 때였다.

치지직-

팀 무전이 울렸다.

옆에 있던 류건이 곧바로 무전을 수신했다.

이후 발신자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어두워진 안색으로 입을 뗐다.

“I팀으로부터 무전이 왔습니다. 방금 전 놈들의 족적이 확인됐다는데···”

“위치는요?”

“하와이에서 일본상공을 지나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헌데 무슨 술수를 쓴 것인지, 거기서부터 자취가 끊겼다고 하네요.”

레비아탄이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는 뜻.

이상했다.

구슬과 열쇠에 혈안이었던 놈에게 물욕이 사라진 것도 아닐 텐데 갑자기 어째서?

시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머리를 굴렸다.

저 먼 곳 어딘가에 있을 레비아탄과 눈치싸움이라도 하는 것인지, 가늘게 뜬 눈을 휘저었다.

그러더니, 눈을 번쩍 뜨고는 외쳤다.

“찾아라!”

믿음을 가진 말은 언령이 되었고,

언령은 믿음이라는 기력을 싣고 온 세상에 고루 퍼졌다.

놈이 무슨 수를 쓰든, 어디에 숨어있든.

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

.

레비아탄의 무리는 투명한 막을 두른 채 동해 상공에서 부유한 상태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낌새를 느낀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넘실거리던 구슬과 열쇠의 기운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레비아탄의 수족 금강군주가 물었다.

-어째서 돌격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때를 놓치고 말았어.

레비아탄이 만약 일개 몬스터처럼 멍청했다면 그대로 안산의 특수던전을 향해 돌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비아탄은 수십 개의 몬스터 군단을 지휘하는 몬스터.

구슬의 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금강군주가 다시금 물어왔다.

-때를 놓쳤다니요?

-구슬과 열쇠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뜻.

-예? 그 말은 즉···

-위험하다.

이유는 그뿐이었다.

이미 빈껍데기가 되어버린 구슬과 열쇠를 찾겠다고 무리하게 나섰다가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르르.... 일단 고향으로 귀환한다....

-하지만 구슬과 열쇠는······

-때를 기다린다. 지금은 본대에 합류해 엔델 족과의 전쟁에 합류하는 수밖에.

어쩔 수 없는 결정.

-귀환한다!

-그르르르르르르!

그렇게 명령을 내린 레비아탄이 먼저 고향으로 귀환하려던 순간이었다.

- ······?!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

자욱한 안개 틈에서 섬뜩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외부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특수 장막’을 그들을 두르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소오오오······

어딘가에서 불어 닥치는 기운에 압도되어 몸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이 몸이··· 설마···.’

아니, 불가능하다.

최상위 등급의 버프를 둘러도 접근할 수 없는 장막이다.

더욱이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절대 감지할 수 없는 공간이거늘.

가령 강력한 권능을 얻었다고 해서 이걸 무력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닥쳐왔다.

스윽.

시야 끝에서 흐릿한 형체가 아지랑이 피어나듯 일렁거렸다.

-누구냐!

레비아탄을 보좌하는 수족 금강군주가 보기 좋게 외쳤다.

그 섣부른 행동에 아차 싶었는지 레비아탄이 뒤따라 괴성을 지르며 멈추라고 지시했다.

일단 상황파악이 우선이니까.

하지만 금강군주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촤르르륵!

남은 것은 공중에서 춤을 추듯 휘날리는 살점과 진득한 선혈이 전부였다.

분쇄기에 갈린 듯 입자처럼 쪼개진 살점들이 공중에 나부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도 아니거늘.

금강군주는 눈 깜짝할 사이 완전분해 되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저 저 먼 어딘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인간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밖에는.

그리고,

희끄무레하던 형상이 점점 선명해지더니,

그 목소리의 주인이 하늘을 걷듯 전방에 나타났다.

박시현.

그는 싸늘한 낯빛을 띠며 말했다.

“폭풍전야라는 말, 알고 있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이라 부르는 그 한 순간.

“네놈들은 그 적기를 놓쳐버렸다.”

그 말에 지레 겁을 먹은 레비아탄은 사고를 멈췄다.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시현의 말 한 마디에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너희가 돌아갈 길 따위는 없다.”

희망 따윈 없다는 듯 강하게 못을 박아버리며 시현이 말하자, 일순 레비아탄의 머리에 극한의 공포가 뿌리박혔다.

대양을 거느려야할 용이 겁을 먹어 일개 바다뱀마냥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현이 명령했다.

“와라, 한꺼번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