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헌터중앙기구 세계본부 대책회의실.
본부에 대기 중이던 의장단이 긴급소집 되었다.
당장 모일 수 있는 인원은 모두 모인 셈이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비상시도 아닌데 기력발전기를 마음대로 사용하다니요.”
“일단 통제하라고 연락은 해놨습니다만,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강제로 작동을 중지시켜야죠.”
소집의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류건의 단독행동 때문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근거 없는 추측만이 난무할 뿐.
“설마 그거 아닙니까?”
“그거라면······”
“열쇠 말입니다.”
“······!”
“갑자기 류건 씨가 열쇠를 손에 넣었다는 겁니까? 너무 터무니없는 추측 같군요.”
“아뇨,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 좀 보시죠. 방금 가져온 뜨끈뜨끈한 사진입니다.”
의장단 중 한 남자가 방금 수집해온 위성사진을 모두에게 돌렸다.
“여긴···”
“한국입니다. 이것들은 보시는 바와 같이 기록에 전혀 없는 몬스터이고요.”
사진에 찍힌 몬스터는 레비아탄과 그것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를 보시죠. 여기, 이 남자가 보이시죠?”
“오오, 이 자는 그 자가 아닙니까? 얼마 전 나이지리아에 파견을 다녀온.”
“맞습니다. 한국지사 특수본부 SSS팀의 박시현 씨죠. 파견 이후 2일간 휴가를 냈다고 합니다.”
“흠. 그건 알겠는데, 이건 도대체 뭡니까?”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같은 지점에 꽂혔다.
시현의 손에 들린 무언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것이었다.
“······설마 열쇠!”
“맞습니다. 바로 열쇠입니다.”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이것도 한 번 보시죠.”
부의장이 묻자 남자가 바로 대답하며 다른 사진을 돌렸다.
최민호의 행적이 담긴 사진이었다.
“이건 도대체···”
“아마 권능의 열쇠를 사용하다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박시현 씨에게요.”
“······!”
방금 한국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확실하구만. 기력발전기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도 그 이유겠어. 열쇠의 기력을 모두 채우고 사용하려는··· 그럼 설마 구슬까지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죠.”
“어허···.”
좌중은 냉수라도 끼얹은 듯 급격히 조용해졌다.
“크흠. 그럼 이제 어떡할 겐가?”
“음···.”
의장단은 저마다 심각한 얼굴을 내비칠 뿐 그렇다할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
스윽-
그런 와중에 스미스라는 남자가 손을 들어 말했다.
“일단 징계는 둘째 치고, 호의적으로 대하는 게 우선입니다. 박시현 그 자를 무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어찌하는 게 좋겠나? 권능의 열쇠에 구슬까지 사용한다면 그건 정말 대재앙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잘못 다뤘다가는 끝장이라고, 끝장.”
부의장은 구슬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자신만만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언제 실패하는 것 보셨습니까? 제가 사람다루는 기술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입니다.”
존 스미스.
협상의 대가라 불리는 그는 자신이 흘러넘쳤다.
“제가 한 번 가보죠. 가서, 그를 꼭 세계본부로 데려오겠습니다!”
.
.
.
안산의 특수던전.
드디어 완전체로 거듭나는 것일까?
딸칵-
시현이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넣고 돌리자 주문제작된 것처럼 딱 맞는 소리가 났다.
오색찬란한 극광의 빛이 쏟아져 나와 사방을 눈부시게 밝혔다.
‘진짜··· 진짜인가.’
과거 해저던전이 발생했다던 남해(南海).
동중국해로 항하는 해저 벽 깊숙한 곳에서 김은혜가 발견했다는 이 구슬!
발견된 위치로 보나, 지금 벌어지는 상황으로 보나 이 구슬은 ‘진품’임에 틀림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색의 광채가 발산할리는 없으니까.
일단 빛이 발산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후우···.”
시현은 심장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듯 가슴이 덜렁대기 시작했다.
마치 잠잠한 바다 한 가운데, 고요한 파괴력을 지닌 너울처럼 긴장감이 서서히 일렁이는 것이다.
두구두구-
구슬에선 뜨거운 기운이 쏟아져 나와 시현의 손바닥을 타고 공중에 휘몰아쳤다.
조명과도 같은 그것은 점점 밝아졌고 색조는 더 뚜렷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발산되는 기력의 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렇다할 변화는 없었다.
‘······설마 가짜?’
세상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더없이 긴장돼 입이 바싹 말라버렸다.
매 1초가 유난히도 느리게 느껴졌다.
일전에 최민호가 열쇠를 사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겉보기엔 휘황찬란하지만 상황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허무하게 열쇠의 힘만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까지 되었다.
안 그래도 하와이로 떠났을 레비아탄은 다시 방향을 틀어 한반도로 날아오고 있을 텐데.
아니, 지금쯤이면 이미 서울 한복판의 상공을 누비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발. 좀 더 빨리···.’
그로부터 10초가 더 흘렀다.
구슬과 열쇠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시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뿐.
“시현 씨···.”
“오빠···.”
류건과 김지원 등 다른 이들도 그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볼 뿐이었다.
시현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벽처럼.
시현으로부터 방출되는 기운이 마치 환각작용을 불러일으키듯 오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힘내요!”
힘찬 응원의 목소리가 지원에게서 터져 나왔다.
시현의 상황을 내리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있는 듯한 저 느낌을.
그녀의 생각대로, 시현은 심장이 터질 듯 그 초조한 상황을 매 순간 견뎌내고 있었다.
‘후···. 여기서 멈출 순 없잖아.’
M던전에서 갑자기 얻은 반쪽짜리 언령의 권능.
만일 그것이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이었다면, 나머지 반쪽짜리는 자신이 찾으리라!
그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찰나의 순간이었다.
커다란 변화가 나타난 것은.
솨아아아아-
일순, 열쇠 끝자락에서 뾰족하고 날카로운 빛줄기가 불규칙적으로 방출되었다.
감당할 수 있는 기력이 아니었다.
그 어떤 우주의 존재도 이 정도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제야 시현은 확신했다.
‘이거, 진짜다.’
계속해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가 방출되었다.
장기가 터질듯 압박되고 온몸은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됐다.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
포켓의 기력이 무한대에 이른다면 이 상태를 제어할 수 있을까?
우주의 묘리마저도 통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오하고도 깊은 기운이 구슬 표면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이것에 억겁의 시간이 담겨있다는 것이 가슴으로 느껴졌다.
구슬은 그 정도로 신비하고 성스러운 보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두두두두두두-!
지면이 진동하고 던전이 무너져 내릴 듯 한차례 격동했다.
마치 누군가 지구를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드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
사람들은 기류에 휩쓸린 비행기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저마다 토악질을 해댔다.
하지만 시현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거대한 기운에 지면이 이렇게까지 요동치는데 사람이 어찌 저렇게까지 조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자 그 순간, 광채가 시현을 뒤덮더니 모든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시간이 멈춘 듯.
모종의 기운이 시현의 손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가 전신을 덮쳤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잠식되는 것처럼······.
그 순간, 시현의 앞에 어떠한 존재가 나타났다.
뭐라고 형언할 수 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없는 존재가 떡하니 정면에 놓여있다는 것을.
눈부신 광채가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그 존재의 음성이 귓전에 내려앉았다.
-안녕하세요.
“아······.”
따뜻하고 신성했다.
무교(無敎)인 시현이었지만 신성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긴장하지 말고 마음 편히 있어요. 당신이 날 부른 이상, 시공간은 멈췄으니까요. 누구도 그대를 헤치지 않습니다.
“아··· 예.”
시현의 머릿속에 언뜻 천사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만약 형체가 존재한다면 분명 등에는 천사의 하얀 날개가 달려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래서, 전 이제 반쪽짜리 힘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그래요. 나를 불렀으니 힘을 나눠줄게요.
“‘나’라면···?
-그대는 아무 것도 모르시는군요.
그는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고 돌아가는 존재가 아닌 듯했다.
일단 자아가 있고, 보통사람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 따위도 없었고, 시현이 하는 모든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신의 대행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엔델 족이라는 종족이에요. 인간처럼 우리만의 삶을 가지고 있죠.
“아··· 엔델 족··· 다른 삶. 다른 차원에서 살아간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아···.”
시현은 대강 이해했다.
아마 몬스터들도 다른 차원에서 살아가는 종족일 터.
“그럼 권능의 열쇠랑 구슬은 몬스터의 것이 아니었군요?”
-네. 그 모든 것들은 우리 엔델 족의 보물이에요. 그대가 말하는 ‘몬스터’들이 항상 탐내는 것일 뿐.
‘그러니까··· 몬스터들이랑 엔델 족이랑 적대관계라 이건가.’
얻은 정보는 많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어째서 인간이 그들의 싸움에 끼게 된 것인지.
갑자기 권능을 얻은 이유는 무엇이고, 몬스터들이 지구를 습격한 목적은 무엇인지 등등.
시현은 지금 이 순간을 천재일우의 기회라 여기고 서둘러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그럼 힘을 얻기 전에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요. 물어보세요.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냥한 존재였다.
천사의 이미지가 시현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음. 일단··· 몬스터들이 지구를 습격한 목적이 뭔지 궁금하네요.”
-글쎄요. 저도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알겠네요. 그들은 우리 엔델 족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인간’이란 자원을 노렸다는 것을요.
“아, 그럼 혹시, 우리 인간들이 권능을 얻게 된 것도···?”
-네. 우리 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우리가 권능의 정령에게 시켜 인간들에게 권능을 내려준 거예요. 지금도 진행 중이고요.
즉, 몬스터들에게서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엔델 족이 내려준 것이다.
-그나저나, 누군가 구슬을 사용한 건 오랜만이네요.
“그 전에도 누가 사용했었나보죠?”
-그럼요. 우리 엔델 족은 항상 보물을 사용해왔어요. 단, 신념과 통제 하에서요.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하지만 이 종족 중에서는 그대가 처음이네요.
“그런가요.”
시현은 괜히 어깨가 절로 으쓱거리면서도 짐이 얹힌 듯 무겁게 느껴졌다.
-아, 시간이 다 되었네요. 이제 그만 구슬의 힘을 전해드려야겠어요.
“저기 잠시.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구슬의 정령, 라파엘. 라파엘이에요.
“라파엘······.”
-그대는요?
“박시현이요.”
보이지 않는 엔델 족과의 첫 만남.
통성명을 나누자마자 그 존재는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근-
신비한 기운이 찾아와 심신에 감돌았다.
“여긴···.”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력발전기 옆에 서있는 자신을 자각할 수 있었다.
또한, 이질적인 힘이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