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꺼내라는 시현의 말에, 최 회장의 두 눈에 두려움이 꿈틀거렸다.
시현의 두 눈이 자신의 주머니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
“그, 그러지 말고 일단 얘기를.....!”
“아니.”
무력 앞에선 장사 없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진리와도 같은 말이다.
권력? 부? 명예?
그 모든 것들도 결국 무력으로부터 나오는 힘!
그것의 중추에 서있는 것이 바로 시현이다.
“갖고 와.”
“······!!”
별 수 없이 최 회장의 야심은 무너져 내렸다.
손이 안주머니로 향했고, 황금빛의 열쇠를 꺼냈다.
그 순간.
“안 됩니다! 열쇠는 우리 아진물산의 토지에서 나온 소유물입니다!”
이번엔 함경만이었다.
겁 대가리를 상실했는지 열쇠를 향해 달려들었다.
“멍청한 것들. 한 번 말해선 말귀를 못 알아듣는구나.”
스컹!
찰나의 순간.
배리어를 두를 틈도 주지 않고 함경만의 양팔을 잘라버렸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양팔.
투둑!
주인 잃은 기다란 육신은 연거푸 처형을 당한다.
커흥!
좌라락!
허공에 나부끼는 살점들.
난자한 살점이 오소소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을 야만스러운 흉물로 만들었다.
좌륵-
그 마저도 짓뭉개버렸다.
살육에 혈안이 된 몬스터나 할법한 짓이었으나 시현은 여지없이 인간이었다.
몬스터 따위와는 견줄 필요도 없는 냉혹한 인간.
황금빛 열쇠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매혹하던 별사탕처럼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찬란한 밝히고 있었다.
‘타이밍 좋게 딱 왔어.’
그것을 향해,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자 작별의 선물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갔다.
저벅-
유품.
과연 자신의 아버지, 박종기는 열쇠를 가지고 무엇을 하였던 것일까.
저것을 손에 넣게 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오랜 시간 심해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보물 상자를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시현의 가슴에 변화가 생겼다.
쿵-
흥분. 환희. 감격.
따위의 비스무리한 감정들이 실린 결정체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열쇠를 가져오고자 최 회장에게로 손을 뻗은 시현.
“케흐.... 윽.. 그것만은.. 안 돼....!”
그만큼 했음에도 포기할 줄 모르는 최민호.
이미 만면에는 과격하리만치 도드라진 핏줄이,
목울대에서는 사자후를 방불케 하는 야인의 고성이,
오른팔이 잘려나간 육신에는 불굴의 의지가 담긴 몸부림이 일어나고 있었다.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열쇠 발굴에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기에.
이 모든 일을 주도하였기에.
마침내 안락 처를 찾은 새 한 마리가 다시금 정처 없이 떠돌게 된 것이다.
과연··· 그토록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좌즈즈즉-
바로 뒤에서 일어난 대 균열.
돔 형태의 결계가 한순간에 바스러지며 깨부숴졌다.
외부의 그 누구도 건들지 않았건만, 폭파 철거되는 건물마냥 소산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눈 뜨고 맞이하기에는 끔찍하고도 경멸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교오오오오오!
10성 던전의 몬스터들.
그러나 시현이 알고 있는 것들과는 한참이나 달랐다.
눈이고 입이고, 팔다리건 머리통이건.
달려야할 곳에 달리지 않았다.
정수리에 입이 달리거나, 사타구니에 발이 달려있거나.
불규칙적이며 무작위로 창조된 육신의 집합체.
시현이 알던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러한, 생물체라 부르기도 모호한 것들이 최 회장을 덮쳐 가렸다.
“크하하하하!”
자신의 아버지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최민호는 환희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아진이 9년 간 맺은 결실이다!”
“결실? 세계정복이라도 하려고 했나?”
“흐흐··· 못할 거라도 있나?”
야망이 그득그득하면서도 진실 된 목소리.
그가 내뱉은 말대로, 최민호는 충분히 그럴 생각으로 불법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한국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술력이 진보한 곳이라면 더 하면 더했지, 이 정도는 약과였다.
즉 아진은 빙산의 일각, 그림자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무력이 세상을 지배할 때가 점점 도래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그러한 행동을 충분히 납득한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은 칭찬할 만하나 결과는 참담하군.”
“흐흐... 과연 그럴까?”
“응. 괜한 짓을 했어.”
꿈틀-
균열된 틈 사이로 모조리 기어 나온 몬스터들.
오직 기계류 몬스터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괴처럼 잔혹하며 괴수의 흉악함까지 갖추고 있는 개체들이었다.
숫자는 얼추 잡아도 수천.
5성에서 10성까지 고루 다양했으나, 10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현재 아진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아!
놈들이 썰물처럼 쏟아져 나온다.
최민호와 시현을 향해 몸뚱이를 들이밀었다.
파앗-
뒤로 도약해 한 차례 무더기의 공격을 회피한 시현.
그런 와중에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건물이며, 나무며, 최민호며.
주위에 보이는 것을 쫓으며 모조리 박살내고 있었다.
통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헌데 옆에서 조용히 엎드려있는 함경만에게는 일체 공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콰아아아-!
반면 최 회장은 이미 기절한 뒤였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빛나는 열쇠가 몬스터들의 그늘 아래 놓여 있었다.
시현이 한쪽 손을 들어 횡으로 갈랐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좌륵!
촤라라-
지면의 콘크리트를 깨부수며 쇄도하는 참격.
찰나 후, 열기가 피어오르는 지면 위로 몬스터들의 살점 따위가 나뒹굴었다.
뮤턴트 몬스터들의 육신이 무참히 찢겨버렸다.
지난 9년 아진의 결실이, 시계바늘 한 바퀴 채 돌아가기도 전에 소멸한 것이다.
그로인해 보물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욕망을 불어 일으키는 권능의 열쇠.
황금빛을 발산하는 열쇠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그런데.
스윽-
허공으로 붕 떠버린 열쇠.
‘설마.’
불길한 예감이 시현의 뇌리를 강타했다.
“보고자하면 볼 것이요.”
번뜩!
시현의 눈에 진실이 담겼다.
클로킹을 한 남자, 최민호가 열쇠를 들고서 주변의 컨테이너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암살자였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시현 역시 바로 움직였다.
“동에 번쩍.”
스슥-
순식간에 최민호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최민호는 이미 열쇠를 컨테이너 문고리에 꽂아넣은 뒤였다.
‘그걸 왜 저기에?’
시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민호는 알고 있었다.
열쇠가 반응할 것이라는 걸.
권능의 열쇠에 홈이 없는 것도 그 이유.
구슬과 함께 사용하면 완전한 힘을 낼 수 있으나.
열쇠만 사용한다면 반쪽짜리의 힘을 낼 수 있다.
별 수 없이 최민호가 꺼내든 마지막 카드였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좌아아아아아아-!
황금빛이 용솟음치듯 휘몰아쳐 고루 퍼진다.
광활한 창공 위로 비산하여 도처를 부유한 빛으로 비추었다.
최민호의 복부를 중심으로 막대한 크기의, 첩첩산중의 배리어가 생성되었다.
포켓이 있는 위치, 그곳이 황금빛으로 발산하였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시현이 서둘러 자세를 취하였고,
쿠직-!
다급히 진각과 함께 권격을 내질렀으나 통하지 않았다.
마치 심해 속에서 주먹을 내뻗는 느낌.
별 힘도 쓰지 못하고 배리어에 속절없이 막혀버렸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금역인 것이다.
“크... 크하하하하!”
양팔이 잘려나간 채 정신병자마냥 웃어대는 최민호.
이내 열쇠는 곧 황금빛을 잃어 식어버린 냄비마냥 쇳덩이가 되었고.
내부에서 위압적인 에너지가 열쇠에서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
-그어어어.......
대지를 뒤흔드는 격동과 함께 나타난 그것.
거인? 거수?
저것을 뭐라 명명할 수 있을까?
현실에 실재하는 존재라고 여기기에는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신?’
시현은 그 정도로 거대한 위압감에 직면했다.
황금색의 그것은 차라리 신적인 존재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가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무슨 권능을 얻고 싶은가?
권능의 열쇠.
그로부터 소환된 이질적이며 고차원적인 존재가 하는 말은 달랑 저것이었다.
권능의 요정? 권능의 신?
두 가지 단어가 시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천우현이 했던 말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정말로 권능을 부여해주는 존재였군.’
다만 열쇠만으로는 완전한 권능을 얻을 수 없다.
구슬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최민호는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사용하지 않으면 분명 죽을 테니까.
최민호는 바라는 권능을 말하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꿈꿔왔던 것을!
“뭐든 내가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권능을 얻고 싶다!”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권능.
이른바 언령의 권능.
무적의 권능? 불사신의 권능?
그런 것쯤은 별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권능이라는 것은 기력을 기반으로 한 스킬의 주체.
충분한 기력만 있다면 모든 스킬을 쓸 수 있다.
즉, 언령의 권능이 가히 최고인 것이다.
기력만 있다면 그 무엇도 이뤄낼 수 있으니까.
불사신이든, 무적이든.
다만 그게 반쪽짜리라는 게 문제일 테지만, 향후에 구슬을 얻는다면 완전체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허나 그 위압적인 존재는 긍정하지 않았다.
-중복은 아니 된다.
“······!”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실 하나.
중복은 되지 않는다는 것.
즉, 이미 누군가가 그 권능을 얻었다는 것.
“마, 말도 안 돼....”
그 대화를 옆에서 빤히 듣고 있던 시현은 깨달았다.
자신의 권능이 우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권능이 왜 반쪽짜리인지.
최민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약삭빠르게도, 전보다 더 고차원적인 권능을 바랐다.
“그래, 그럼 생각만해도 뭐든 이뤄지는 권능을 달라!”
언령보다 확실히 나은 권능이었다.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으며, 상대에게 들킬 염려도 없으니까.
이번엔 그 존재가 긍정했다.
-좋다. 권능의 대상은 누구인가?
“누구긴 누구겠어, 당연히···.”
슥.
자신을 가리키는 최민호.
“나지. 나한테 권능을 주란 말이다!”
-네는 암살의 권능을 가지고 있거늘. 혹 교체를 원하는 것인가?
“그래, 그렇지. 어서 교체해! 어서!”
-좋다. 너의 희망은 이뤄졌다.
그 말이 있은 후 최민호는 환희를 내질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반쪽짜리지만, 정도껏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에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손발을 재생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냉정하리만치 최민호를 외면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분명 희망이 이뤄졌다고 하였는데······!
다급해진 최민호가 물었다.
“···왜 아무 변화가 없는 거지?”
-너의 희망대로 권능은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부여받는 것은 자연의 섭리. 너의 차례를 기다리거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실 둘.
권능을 얻는 데엔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권능이 발현되고 있는 중.
즉, 권능의 부여에도 대기 순번이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이가 동시에 권능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 이유.
누구는 권능을 얻고, 누구는 못 얻고.
무작위로 갑작스레 권능을 받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그, 그래서 얼마나 걸리는 거지···?”
-현재 25,182,301가지의 권능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방금 희망한 권능은 25,182,302번째로군.
“.....그럼 그 많은 순서를 기다려야 된다고···? 25,182,302번째가 될 때까지?
-그렇다. 아니, 방금 하나 줄어서 25,182,301번째가 되었군. 껄! 껄!
아무리 그 존재라고 하여도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 법.
그 존재는 그저 없던 권능을 하나 만들어주는 것뿐.
나머지는 자연에 맡겨야하는 것이다.
“이런 시바아아아알-!”
최민호 당연하게도 뼛속이 시리도록 울부짖었다.
수많은 시간, 쓰디 쓴 각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그 존재의 할 일은 끝났다.
-그럼 나는 이만.......
위압적인 존재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눈부시던 황금빛은 모랫발에 잠식된 불씨처럼 가라앉았다.
열쇠는 빛을 잃어 식어갔다.
다시 힘을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일 것이라고 최민호는 직감했다.
동시에 배리어가 말끔히 사라졌다.
“자, 이제 너 차례다.”
끝을 본다.
그 전에 일단 열쇠부터 회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