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삐삐삐삐-
딸칵.
최민호와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온 김은혜.
띵-
현관 등이 켜지자 김은혜는 미간을 좁혔다.
“······음?”
현관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육안으로 봤을 땐 외출하기 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김은혜 본인은 알 수 있었다.
바로 침입의 흔적을···.
‘강도···?’
그녀의 집은 아파트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다.
삼엄한 경비는 물론 각종보안장치까지 갖춰져 있다.
뜨내기 강도가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뜻이다.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최민호 그 자식 밖에 없는데···.’
스윽.
손에 짤막한 완드를 소환한 김은혜.
여차하면 상대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비록 서포터였지만 영술靈術의 권능을 가진 공격형 서포터였기에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그러던 그때.
“내려놔.”
“······!”
거실 안쪽 소파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설마···.’
띵-
김은혜가 거실 쪽으로 움직이자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
불빛 아래, 소파에 시현이 앉아있었다.
“너···. 아니, 오빠······?”
“이렇게 또 보네.”
무언가 결심하고 온 듯한 표정과 말투.
시현의 표정에서 비장한 각오를 읽어낸 김은혜는 황급히 말했다.
“오.. 오빠....”
“편하게 해. 너 따위한테 오빠 소리 들으려고 온 거 아니니까.”
부모를 죽이는데 작당한 김은혜다.
시현에게 있어서는 원수나 다름없는 존재.
그런 그녀가 눈앞에 서있는데도 시현은 침착했다.
“앉아.”
“으.. 응...”
꿀꺽.
김은혜는 마른 침을 삼키며 소파 반대편에 떨어져 앉았다.
살면서 이렇게 긴장되었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당장 오줌이라도 지려버릴 것 같았다.
이미 한성의 천우현까지 당한 마당에,
시현이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즉 모든 사실을 알았다는 거니까.
“묻는 말에만 답해. 거짓말 하면 그걸로 끝이니 주의하고.”
“응....”
협박하지 않아도 김은혜는 모든 것을 밝히려고 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시현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아진에게도 버림을 받았으니 구해주러 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죗값을 치룰 시간이라는 것을.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게 궁금한 거지? 부모님에 관한거···. 그때 왜 내가 아줌마, 아저씨를 몬스터의 미끼로 썼는지...”
김은혜의 목소리에 애절함이 담겼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만 같은 얼굴을 짓고 있었다.
매우 영악하고 약아빠진 것······.
시현은 치가 떨리도록 분할만도 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말할 필요 없어. 그건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가 안 되니까.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라···”
시현의 질문은 예상외였다.
“어떻게 던전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지. 그것부터 말해.”
“아······.”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전 여자 친구라고 봐줄 시현이 아니니까.
그걸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김은혜는 사실대로 다 불었다.
최민호의 곁에서 지내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
아진H&M과 아진몬스터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경험했던 것을 차례대로 털어놓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던전은... 이계석에서 추출한 특수에너지를 활용해서···.”
요약하자면 이랬다.
미국에서 이계석을 훔쳐 한국으로 달아난 최민호.
그는 몬스터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연구팀을 짜 이계소환의 원리를 풀었다.
그 결과 이계석에서 추출된 특수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수에너지는 몬스터의 사체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우리는 특수에너지를 계속해서 모았어. 그리고 그 에너지를 조종할 수 있는 컨트롤러까지 개발했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이계를 소환할 수 있는······. 그리고 그 던전 내부에 기계형 몬스터도 배치시킬 수 있는 기술을···.”
‘내 생각이 맞았군.’
“그래서 그 리모컨이라는 건, 몇 명이나 가지고 있지?”
“일단 연구소 임원들은 호신용으로 전부 하나씩···.”
“호신용?”
“던전이 발생할 때, 우리가 개발한 프로텍터를 지닌 사람들은 던전에 갇히지 않아.”
“아, 그래서 그때 치과에서 네가 던전에 갇히지 않았던 거고?”
끄덕.
김은혜가 고개를 숙이자 시현은 질문을 바꿨다.
“던전의 난이도는 임의대로 조절이 가능한가?”
“아니, 컨트롤러마다 달라. 보통 임원들은 2성이 최대, 그 이상은... 아마 최대 10성까지...”
“그래? 그런데 참 신기하네.”
“뭐가...?”
“너 같은 애한테 그런 중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
따지고 보면 별 볼일도 없는 김은혜에게 그런 중요한 자리를 내준 것부터가 아이러니했다.
아무리 시현의 부모를 죽이는데 일조했다고는 하지만.
아진 놈들이라면 그녀를 이용한 뒤 버렸을 만도 한데.
“나한테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특별한 능력?”
“특수에너지 추출.”
몬스터의 사체로부터 특수에너지를 추출하는 것.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영술사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흥미롭네. 흥미로워.”
다 끝났다.
모든 비밀은 밝혀졌고 이제 부모님의 원수를 처리할 때다.
함경만, 최민호, 최 회장.
그들에게서 열쇠의 행방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은혜는···
‘이대로 죽일 순 없지.’
평생을 처절하게 굴려도 시원찮을 여자다.
헌데 특수에너지 추출을 할 수 있다고?
앞으로 쓸데가 많을 것이다.
평생 노예로서!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구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구슬? 그건....”
전과 다르게 흔들리는 김은혜의 동공.
지금까지 술술 말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머뭇거리는 걸 보면 뭔가 있는 모양이다.
시현이 재차 물으려는데,
딩동-
아닌 밤중에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퀵입니다!”
“퀵? 뭐 받을 거라도 있나?”
“아니, 없는데....”
문득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시현.
현관으로 가 직접 문을 열었다.
철컥-
문이 열리던 그 순간,
휙!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현의 복부를 향해 뻗어오는 암살용 너클.
하지만 당한 것은 시현이 아닌 상대방이었다.
퍽!
퍼억!
간단한 동작 몇 번 만에 고꾸라진 검은 양복의 세 남자.
훽!
그들의 복면을 벗기자 김은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아진H&M 소속의 누커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바로 직감했다.
최민호가 자신을 죽이라고 시킨 것을.
“시.. 시현 오빠...”
김은혜는 바들바들 눈꺼풀을 떨면서 시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제발 나.. 나 좀 살려줘... 사, 살려주면 구슬에 대해서도 다 말할게.”
“말은 똑바로 해야지. 딜은 네가 하는 게 아니야.”
퍽!
시현은 질척거리는 김은혜를 구둣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덧붙였다.
“너는 구슬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죽을 뿐이야.”
.
.
.
알아낼 건 다 알아낸 시현은 류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십니까?”
-예. 무슨 일이시죠?
“혹시 함경만 본부장 회사에 있나요?”
-아뇨. 항상 칼퇴근 하시는 분이라서요. 무슨 일···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아, 그리고 다음 연봉협상은 준비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내일 만나서 자세히 말씀드리죠.”
뚝-
시현은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어서 그 역겨운 것들을 처리하고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일단 아진부터.’
속전속결.
시현은 김은혜를 데리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하아··· 오··· 오빠?”
“넌 평생 죗값을 치르며 살아갈 거다.”
훽.
김은혜를 아공간에 집어넣은 뒤 이용수한테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최 회장이랑 최민호는 어디 있다냐?”
.
.
.
아진그룹 최 회장의 별장 서재.
“오오···. 이게 바로 권능의 열쇠라는 것이로군....”
최만희 회장의 손바닥에 황금빛의 열쇠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최민호가 위풍당당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장하다, 내 아들.”
그 한 마디.
아진그룹의 사생아 최민호로서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마침내 아버지 최만희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께서 늘 바라고 바래왔던 권능의 열쇠를!
최민호가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이 조그마한 열쇠가 대체 어디에 있던 게냐?”
“반포 리엔아파트 단지 지하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뭐야? 박종기 그놈이 아파트 올리기 전에 그만치에 숨겨놨던 거였구먼. 껄껄. ”
반포지구 리엔아파트.
9년 전 현자건설이 건설한 아파트로, 지금은 아진물산의 재산이었다.
“그래, 수고 많았다. 조만간 니 형들이랑 저녁식사 한 번 하자고.”
“예, 회장님.”
“회장은 무슨. 아버지라 불러라, 인석아. 으허허!”
최 회장은 어찌나 행복한지 연신 대소를 터트렸다.
그 무렵,
똑똑-
누군가가 최 회장을 찾아왔다.
“함경만입니다, 회장님.”
“들어오게나.”
끼익-
“열쇠를 찾으셨다고요?”
“그래. 이렇게 좋은 날에 자네를 부르지 않을 수가 없지. 그 동안 수고 많았네.”
“아닙니다, 회장님.”
“아니긴, 자네덕분에 헌터중앙기구의 정보력을 얼마나 유용하게 써먹었는가?”
최 회장이 열쇠를 응시하며 말한다.
그러자 그곳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참 신기하게 생겼군요.”
권능의 열쇠.
열쇠라면 자고로 홈이 파여져 있어야하는데 손잡이에 그냥 기다란 막대기만 달려있을 뿐이다.
“민호 네 말이 사실인가보다. 홈이 없는 걸 보니.”
“제가 만능열쇠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열쇠를 꽂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사용이 가능할 겁니다.”
만능열쇠.
말 그대로 어느 문, 어느 궤짝에나 사용할 수 있다.
집어넣기만 하면 홈이 열쇠구멍에 맞게 변하는 것이다.
“그럼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예. 무엇을 열든, 일단 열쇠가 돌아가기만 하면 작동될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최민호의 의견이 있자마자 함경만이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구슬을 찾을 때까지 보류하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구슬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반쪽짜리 힘 아닙니까?”
“흠···. 그건 정확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것이 권능의 열쇠라는 것도 믿을 수 없지. 이 열쇠 따위로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미국의 정보망으로부터 들은 것이지 않나?”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사용한 적도, 누군가 써봤다는 전례도 없었으니까.
“회장님. 신중하게 선택하셔야합니다. 권능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열쇠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으흠···.”
고민하는 최 회장.
“일단 보류하지. 내가 내일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함경만의 설득으로 최 회장은 당장 열쇠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구슬이 있어야 완벽한 권능을 얻을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건 그렇고, 열쇠 외에도 발견된 게 있다면서?”
“예. 전자다이어리가 하나 발견됐는데, 아들에게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DNA보안장치가 걸려있지만 곧 풀 수 있을 겁니다.”
“아들이라···. 껄껄. 조만간 날 찾아올지도 모르겠구먼. 잠잠해질 때까지 미국에라도 가있어야겠어.”
“그러시죠, 회장님. 당장 전용기를 준비 해놓겠습니다.”
함경만이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콰광-!
“음?”
“웬 소란이야?”
띠리리링-
근원을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내선전화가 울렸다.
전화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회장님! 피하십쇼! 치, 침입자가··· 크아악!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경호원은 말도 채 잇지 못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흘렸다.
누군가 별장에 찾아온 것이다.
악연의 끝을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