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천우현.
그 역시 한때는 유망한 헌터였다.
수습생 시절 대표를 맡았으며 그럭저럭 괜찮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실전경험은 거의 없지만 A급까지는 최단기간에 올라갈 수 있었다.
돈의 힘이었다.
비싼 교습에 각종 스킬 북까지.
터득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몰골을 보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를 부러워할 사람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쿠헉.....”
그의 복부엔 공허한 구멍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뚝뚝-.
시현의 손끝에서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미처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시현의 손이 천우현의 복부를 관통해버린 것이다.
대비를 하였어도 어차피 못 막았겠지만.
“왜... 왜....”
“도리어 내가 묻고 싶은데. 어째서 아진을 도와 부모님을 죽인 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여유는 없을 텐데, 천우현은 대놓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나?’
시현은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
푸욱-
댕강!
“케헤에······!”
잘려나간 손목.
일반인이라면 쇼크사 했을지도 모르지만 천우현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역시 헌터는 헌터.
정신력이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은 왼쪽 손목이다. 친구를 죽여야 하는 불상사는 안 일어났으면 좋겠군.”
“케.. 케케... 크헤에에! 내가 이런 걸로 겁먹을 줄 알아?”
“그래?”
좌윽-
입에 담기 힘들 수준의 고문이 시작되었다.
“그.... 그만....!”
지그윽-
“어어어억.....!”
그러나 시현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천우현이 죽지 않는 선에서 극한의 고통을 주었다.
부모님의 원수.
자신을 죽이려고 한 대가!
그것들을 다 갚으려면 사지를 절단하여도 모자를 판이다.
시현은 한이 담긴 몸짓으로 천우현을 지옥의 문턱 앞까지 이끌고 갔다.
철혈과도 같은 표정으로.
스컹!
“어억······!!”
유치하고 단순한 복수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이게 가장 통쾌하고 효과적이었다.
그 어떠한 법도 시현의 고통을 달래줄 수는 없을 테니.
“케헤........”
만신창이가 된 천우현.
마치 붉은색 페인트 통을 뒤집어 쓴듯.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되어서야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진이....... 큭....”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니 이제야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말할 힘이 없는 것인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시현이 뭐라 중얼거리며 손을 올렸다.
병주고 약 준다는 말처럼.
사아아아-
기적을 방불케 하는 광경.
자신의 몸이 치유되는 기이한 현상에 천우현은 침을 꼴깍 삼켰다.
심장마비가 올 정도로 경악스러웠다.
‘히... 힐러?’
SSS급 힐러가 있다면 이러한 회복스킬을 쓸 수 있을까?
천우현의 온몸이 감쪽같이 회복된 것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시현이 선의의 마음으로 치유해줬을 리 없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
끝나지 않는 무한의 굴레.
고문은 끊임없이 시작된다.
다만 시현이 묻는 말에 바른대로 답한다면 그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자, 마, 말할게! 말한다고!”
천우현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건 다 아진에서 시켜서 한 일이야. 너를 죽이라고 지시한 것도 아진이라고!”
“아진 누구?”
“아진물산··· 아진몬스터연구소의 최민호! 얼마 전에도 날 찾아와서 시켰어. 널 죽이라고!”
‘최민호라면 김은혜와 열애중이라던 그 남자친구···.’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죽인 거고?”
“···하, 하지만 우리는 크게 관련이 없어. 우리가 한 거라고는....”
무슨 속셈인지 말을 머뭇거리는 천우현.
꽈득-
시현이 주먹을 말아 쥐자 다시 말한다.
“현자건설이 싼 값에 넘어가도록 동종업계로서 거든 것뿐이라고...”
“그래서 무슨 일을 했지?”
“···우리는 그저 그들의 심부름을 했을 뿐이야.”
“심부름?”
“던전과 기계형 몬스터를 개발한 것... 그리고 무언가를 찾는 것밖에는...”
“아- 권능의 열쇠를?”
“······!!”
시현의 말에 안색이 파리해진 천우현.
“그걸 네가 어떻게...”
“묻는 말에나 답해라. 권능의 열쇠가 뭔지.”
“그, 그걸 발설했다가는....”
“안 되겠군.”
지걱-
“끄아아아아아!”
뭉툭한 주먹에 관통당한 천우현의 두 허벅지.
방금 재생된 뜨뜻한 선혈이 물감 번지듯 흘러나온다.
“...나, 나는 그저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고!”
“그럼 나도 뇌가 시킨 대로 해보지. 이렇게.”
지걱- 콰득!
상체를 비틀어버리자 천우현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결국 쇼크로 기절하기에 이르렀다.
“커허어.....”
그럼에도 시현의 얼굴엔 변함이 없었다.
지독하리만치 탁한 어둠이 만면에 실려 있었다.
“아픈가?”
“헤에.. 아파.. 아파... 제, 제발 좀 살려줘... 부탁할게.. 제발..”
손이 발이 되도록 애원하는 천우현에게, 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도 친구인데··· 죽일 순 없지.”
“고.. 고맙다! 내가 앞으로 잘···”
“말 아직 안 끝났다.”
“······?”
“살려주긴 살려줄 텐데... 고통도 함께 줘야지. 내가 받은 것보다 백배는 더 많이.”
“······!”
콰직!
“크아아아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시현에게선 악의를 뛰어넘어 냉랭한 살의까지 일렁거렸다.
살려준다곤 말했지만 살려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탁- 화르르!
시현의 손에서 푸른 화염이 일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천우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아- 아아- 아아아아!”
시작된 것이다.
심신을 태우는 작열통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통증 중 가장 강력한 게 작열통이라더군.”
시현의 심판 아래 거행되는 화형식.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우현의 몸뚱이를 야금야금 태운다.
처음에야 따끔한 고통이지만, 고통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극심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푸른 화염이 진짜 무서운 점은 마음과 정신까지 태워버리는 것.
“케에에에에에! 그마아아아아안!”
애원해 봐도 소용없다.
화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천우현이 죽을 때까지.
“죽여줘! 제발, 그냥 죽이라고오오!”
하지만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시현의 손길이 그의 화상을 시시각각 치료 중이었으니까.
이른바, 병주고 약주고.
천우현은 정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죽여어어어! 죽이라고!! 시바아아아알!”
탁-
그제야 사라진 화염.
동시에 시현은 천우현의 몸을 깔끔히 치료해주었다.
“하아··· 하아악······.”
고문.
시현에게 있어서 천우현을 그저 장난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과 자신의 부모에게 했던 것처럼···.
잔인하고 사악하게 복수를 가할 뿐이었다.
“사, 살려줘! 살려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제발... 흐윽...”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천우현.
“이제 좀 살만한가보네. 그럼 다시.”
“아, 안 돼에에에에!!”
화르르르르!
“크아아아아악-!”
다시 화염이 거칠게 일었고,
이윽고 죽여 달라는 천우현의 목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그럼에도 시현은 멈추지 않았다.
정말로 장난감 대하듯 천우현을 몇 번이나 더 괴롭혔다.
정신이 나갈 때까지.
“너는 평생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쥐뿔도 없는 몸뚱이로 시작해서 평생을 참회하며 살아가야 할 거야.”
“제발... 용서를.....”
터억-
시현의 바짓단을 잡는 천우현.
시현은 천우현의 손을 지긋이 짓밟으며 말했다.
“자비는 없다. 관용 또한 없고.”
단호한 한 마디.
시현은 천우현이 자살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한데 묶어놓았다.
“자, 다시 질문한다. 권능의 열쇠가 뭐지?”
“케에... 헤에... 구슬을 열 수 있는 열쇠....”
천우현은 묻지도 않은 부분까지 순순히 털어놓았다.
“구슬에는 열쇠구멍이 있는데... 거기에 권능의 열쇠를 끼워 맞추면 권능을 얻을 수 있어....”
권능의 열쇠.
말 그대로 권능을 얻을 수 있는 열쇠인 것이다.
“그래서 그 열쇠를 빼앗으려고 던전을 발생시켜서 우리 아버지를 죽였던 거군. 그 과정에서 김은혜를 이용했고?”
“맞아...”
시현이 예상했던 그대로 족족히 들어맞았다.
모든 것이 당초에 계획된 것이었다.
한성은 그저 아진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는 행동대장.
진짜는 아진그룹인 것이다.
“그럼 어째서 그 열쇠를 내 아버지가 가지고 계셨던 거지?”
“그건....”
내막은 이러했다.
어느 날 현자건설의 부지에 던전이 발생했는데, 그곳에서 우연찮게 열쇠가 발견된 것이다.
결국 열쇠는 박종기의 손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소문이 퍼지고 퍼져나가 그 사실이 아진과 한성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구슬은 어디 있는데?”
“그건 나도 몰라...”
“그럼 네놈들은 구슬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아는 거지? 그게 권능의 열쇠라는 사실은? 혹시 몬스터 놈들과 작당을 하고 있는 거냐?”
“그.. 그건...”
다시 말을 얼버무리는 천우현.
“안되겠군.”
시현이 다시금 고문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위이이-
바닥에서 소환된 마법진.
단순한 이동기가 아닌 텔레포트 술이었다.
“크흑.. 멍청한 놈들이 뭣들 하느라 이제야 나타난 거야!”
천우현이 마법진으로 기어간다.
지원 병력이 오기로 돼있었던 모양.
하지만 그걸 눈뜨고 가만히 지켜볼 시현이 아니었다.
“취소.”
“······?!”
언령 진(眞).
시현의 말에 마법진은 감쪽같이 사라져 종적을 감췄다.
천우현은 망연자실해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기어서 도망이라도 쳐보지만,
“어딜.”
터억-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시현에게 잡히고 말았고.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 자주 보자.”
“히, 히이익!”
그 말을 뒤로 천우현을 아공간에 쏙 집어넣었다.
.
.
.
소란이 있은 후.
시현은 연구단지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난데.”
-오랜만에 웬일이냐? 뭐 부탁할 거라도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한성그룹 곧 휘청휘청할 거야. 미리 알아두라고.”
-뭐? 그게 갑자기 웬 생뚱맞은 소리?
“일단 그렇게 알고 있어. 그리고 양재 한성연구단지, 너희 회사가 인수하는 게 좋겠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거긴 천우현이 그 자식 거잖아.
“지금까진 그랬지. 하여튼, 미리 주는 생일 선물이니까 그런 줄 알아.”
통화의 상대는 이용수였다.
조만간 생일인 그에게 무엇을 주면 좋을까 고민이었는데.
이 정도면 재벌에게도 값진 생일선물일 것이다.
-그, 그래.. 고맙다 야...
“고맙긴. 조만간 한 번 보자. 부탁할 것도 있고. 내가 전화할게.”
뚝-
전화를 끊은 시현은 생각에 빠졌다.
앞으로 남은 적은 아진그룹.
김은혜, 함경만, 최민호 등.
‘김은혜부터 처리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던 중.
빵-
“타시죠.”
차를 가져온 류건이었다.
시현은 조수석에 오르자 류건이 입을 뗐다.
“아까 전화가 한 통 왔는데 누가 시현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누가요? 지금은 피곤한데. 꼭 만나야하는 사람입니까?”
스읍-
류건이 이마에 줄을 긋더니 입을 열었다.
“꼭 만날 필요는 없는데···. 대통령이라서요.”
“대통령이라··· 직접 오라고 하면 안 됩니까? 내가 공무원도 아니고. 왜 오라 가라 하는지.”
“음···. 하하!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그럼 그렇게 전할까요?”
“아뇨, 일단 오늘은 좀 쉴게요. 너무 피곤해서.”
시현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힘들다고 하지만 입가엔 미소가 감돌고 있는 것이다.
“일단 제 오피스텔로 좀 가주실래요?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
.
.
딩동-
“누구세요?”
시현의 오피스텔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철컥-
문이 열리자 김지원이 큰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은 채 서있었다.
“어? 오빠.. 괜찮은 거예요? 다친데 없고요?”
“응. 그런데 넌 왜 내 셔츠를···.”
“아까 인질로 잡혔을 때 옷이 다 찢어져서··· 장롱에 있는 거 하나 꺼내 입었어요···.”
보고만 있어도 피로가 녹아드는 광경.
기력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그것!
시현의 입가에 해맑은 미소가 피어났다.
“일단 안에 가서 좀 쉬자. 아까 못 다한 거 다 해야지.”
“아! 마사지요!”
잠시 후.
시현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을 만끽했다.
조물딱조물딱.
지원의 따뜻한 손길이...
온몸 구석구석 뭉친 근육을 사정없이 풀어주었다.
아무리 뛰어난 마사지사라도 따라갈 수 없는 손길이었다.
더구나 언제 준비한 것인지 지원의 손에는 매끈거리는 아로마 향의 오일이 듬뿍 발라져있었다.
사르륵-
부드럽고도 아찔한 기분.
그녀의 손짓이 온몸의 피로를 녹아들게 만들었다.
스륵- 스르륵.
“읍···.”
간질거림과 시원함 사이를 오가던 그때.
“헉!”
시현은 지원의 손을 낚아챈 뒤 침대에 눕혔다.
뜨겁게 달아오른 지원의 두 볼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던 것이다.
더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지원의 순수한 얼굴이 시현의 흥분을 극대화시켰다.
이제는···.
“내가 해줄게. 너도 집 청소하느라 고생했잖아.”
꾹꾹-
손에 아로마 오일을 듬뿍 바른 뒤 지원의 허리를 지압하기 시작한 시현.
골반을 타고 계곡으로 내려가자···.
“끄응..”
“······?!”
뭔지 모를 이물감에 시현은 마사지를 멈추고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농밀한 액체가 자신의 검지를 타고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땀······?’
시현은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는 지원에게 물었다.
“땀을 흘린 건 난데, 젖은 건 너네.”
장난기 어린 시현의 말에 지원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시현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