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그런데 여긴 어찌 알고 오셨는지.”
“시현 씨의 오피스텔에 괴한들이 침입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괴한들은 한성그룹에서 고용됐다고 하더군요.”
류건은 불과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을 직접 겪은 것 마냥 꿰뚫고 있었다.
시현은 그의 정보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제 오피스텔로 안 오시고 여기로 오신 겁니까?”
“걱정하지 않았거든요. 시현 씨라면 그 정도는 무리 없이 해결할 테니까요.”
상대는 무려 S급의 암살조직 차야.
그럼에도 류건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그 정보는 어디서 아신 거죠?”
“세계최고의 분을 매니지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 정보력은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누가 보면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 남자에겐 이게 당연한 것이었다.
류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일을 자로 잰 듯 기계처럼 처리한다.
직장상사로서는 부하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타입.
하지만 그런 사람이 매니저로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해진다.
비교하자면 잔소리 없는 엄마와 같은 존재!
“저는 인복이 좋나봅니다.”
“하하하! 시현 씨는 자꾸 제가 하려는 말을 먼저 하시는군요. 그저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세요. 그럴만한 사람이 마땅한 대우를 받는 거니까.”
“음. 그러다가 평생 저만 관리하시게 되는 거 아닙니까?”
“영광이죠. 아, 그렇다고 평생 외롭게 살겠다는 건 아닙니다.”
살벌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훈훈한 대화.
겉치장 하나 없이 수수하고 진솔한 대화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훈훈한 분위기를 깨버리는 신음소리.
“키힉···.”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바닥을 기어가는 한성H&M 팀장 허영무.
시현과 류건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걱-
“으어어어...!”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류건이 허영무의 발목을 지르밟았다.
“너, 너희들 여기가 어디라고······.”
으득!
“끄어어어!”
“관절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질문 하나당 관절 하나입니다. 아시겠죠?”
육체적 고통.
유치하지만 상대를 고문하기에 가장 확실하고 단조로운 방법이었다.
류건이 말을 이었다.
“하나 묻겠습니다. 천우현이 이곳에 들어왔다고 해서 와봤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군요. 그는 어디 있죠?”
“뭐하는 양반인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멍청한 것 같군... 그걸 내가 미쳤다고 말하겠어?”
보기보다 강한 정신력과 충성심.
관절 몇 마디 부러트리는 고문으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듯하다.
류건은 말을 돌렸다.
“그럼 살인청부, 살인교사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으시겠습니까?”
“크큭... 이봐.. 우리는 한성그룹이라고... 고작 그런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받을 거 같나?”
“후후훗.”
그러자 보조개를 피우면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 류건.
“하지만 살인청부의 대상이 박시현 씨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박시현.
나이지리아의 영웅. 초신성. 대한민국의 귀재. 헬조선의 기적 등.
나이지리아에서의 사건 이후 명성은 이미 고루 날린바.
수많은 미사여구가 그를 따라다녔지만,
사실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영향력이 있었다.
더구나 그 파장력은 매 시간 커지고 있는 추세.
헌데 모 기업에서 인도의 헌터들에게 살인청부를 의뢰했다?
천하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사건에 연루된 자들은 법이라는 이름 앞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 거기까진 인정해주지. 하지만 당신이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럴 힘이 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건데요?”
“허풍이 심하군.. 보아하니 헌터나 매니저인 모양인데,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헌터는 헌터. 재벌에 비빌 레벨이 아니다..”
“하하하.”
허영무의 말에 조소하는 류건.
“A급이라더니, 정말 수준에 딱 맞는 생각을 하시는군요.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시간도 없는데 어서 처리하죠. 어떡하시겠습니까, 시현 씨?”
“반쯤 죽인다음 제 아공간에 넣겠습니다. 거기에 고문실을 만들어놔서.”
“훌륭한 판단입니다. 직접 하시죠. 그게 통쾌하실 테니.”
스아-
시현의 손에서 일렁이는 흑색의 기.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극한의 공포가 허영무에게 불어 닥쳤다.
“자, 잠깐···! 마, 말할게. 그러니 살려만... 줘...”
“이제야 주제파악을 하는군. 진즉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자, 어서 말합시다. 천우현이 어디 있는지.”
“시, 십층에...”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안 보이던데요?”
스윽-
손가락을 뻗어 반대편 벽을 가리키는 허영무.
“숨겨진 통로가 있는 거군요.”
똑똑.
그 벽을 두드리자 안이 텅 빈 소리가 났다.
“이 안으로 안에 길이 있군요. 어서 가시죠, 시현 씨.”
.
.
.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한 구조였다.
내부자 중에서도 간부급이 아니라면 알기 힘들 정도.
둘은 보이는 CCTV를 족족 파괴하며 걸어갔고, 허영무가 개 마냥 앞장섰다.
“개미 새끼 하나 안 보이는 군요.”
“모두들 숨었을 겁니다. 놈들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이윽고 복도 끄트머리에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여기군요. 아마 밑에 층에서 놈들이 성대한 환영식을 열어줄 겁니다.”
적들이 도처에서 잠복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이럴 땐 상대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해 역기습을 가는 것이 상책이지만···
“정면으로 갑니다. 매니저님은 여기 계세요.”
“음···. 알겠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보고 오시죠. 뒤처리는 차후에 문제 안 생기도록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매니저의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시현의 본 무대.
스윽.
시현은 허영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길 몇 초.
상대는 이미 움직였다.
위융-
엘리베이터 천장, 바닥, 벽에서 첨단식의 포(砲)가 살짝 튀어나왔다.
언뜻 보기엔 레일건과도 같은 그것은,
“이, 이··· 인페르노 플레어 건이야!”
허영무의 외침대로 화염방사기였다.
하지만 고작 화염방사기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은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화염방사기가 아닌 무려 7성레어급의 살상무기였다.
인페르노 플레어 건(Inferno flare gun).
얼마나 잔혹한 무기인지 알 수 있는 이름.
지옥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 시현의 눈앞에서 그대로 펼쳐졌다.
화르르르-!
허영무는 이미 잿빛의 재가 되어 엘리베이터 바닥에 나부낀 뒤였다.
그러나 초인적인 반응속도 덕에 시현은 지옥의 불길 속에서도 건재했다.
수 속성의 배리어를 몸에 둘렀기 때문.
두툼한 물방울의 배리어가 불지옥으로부터 시현을 완전히 격리시켜주었다.
‘부수고 직접 내려가야 하나.’
엘리베이터는 이미 작동을 멈췄다.
나가는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부수는 것뿐.
하는 수없이 바닥을 부서트려 내려가려던 찰나.
쿠궁-
작동을 멈췄던 엘리베이터가 다시금 밑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와르르르!
인위적인 압력에 의하여 맹렬한 속도로 추락한다.
상대는 고작 화염방사기 따위로 시현을 끝장내겠다는 심산이 아니었던 것이다.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지존 급의 헌터 시현이 그런 술수에 당하지는 않을 테니까.
최소한의 충격이라도 먹이고 싸우겠다는 작전이었다.
우루루루!
굉음을 자아내며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건물의 최하단인 지하 10층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쿠우웅!
약간의 어지러움을 유발할 정도의 진동.
그 이후 단숨에 도착한 이곳.
시커먼 어둠 사이로 스파크가 튄다.
지직- 지지직!
엘리베이터 전원이 나간 것이다.
문을 직접 열고나가는 수밖에 없다.
스윽-
문을 열기 위해 시현이 손을 뻗으려던 그 순간.
피융!
타타타탕!
문을 관통하고 들어오는 기탄.
무수한 총알세례가 시현을 향해 퍼부어진다.
그러나,
두웅-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급작스레 속도를 잃고 무용지물이 되는 탄환들.
방어는 끝났으니 이제는 반격할 차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카피(Copy)류 또는 리플렉션(Reflection) 스킬이라 불리는 그것.
상대를 엿 먹이고 싶을 때 이만한 스킬이 또 없다.
더군다나 시현의 스킬은 완벽 그 자체!
SS급으로서의 역할을 누락 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
본래 기존의 카피 류 스킬이나 리플렉션 스킬은 당한 것의 일부분만 되돌려준다.
허나 SS급은 괜히 SS급이 아니다.
받은 만큼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 모토인 스킬.
“받은 만큼 돌려줄게.”
정확히 100%로 돌려준다.
받은 그대로!
위이이이이-
공중에서 부유하는 수천 발의 기탄.
받은 만큼의 기력을 그대로 머금은 채 시현의 주위로 떠올랐다.
이미 발사준비를 끝마친 것.
하지만 이대로 끝낼 시현이 아니다.
받은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스킬에 스킬을 덧입힌다면 위력자체가 달라진다.
그만큼 고도의 정신력을 요하는 그것.
수준급 중에서도 수준급의 헌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듀얼캐스팅(Duel-Casting).
허나 시현에게는 누워서 떡 먹는 수준.
입만 열면 되니까.
“돌리고 돌리고-”
위이이이이-
드럼세탁기마냥 제자리에서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기탄.
무한의 회전력까지 먹여 그 위력을 배가시켰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
두웅-
말 한 마디에 두 배로 늘어나는 기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오오오······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허.....”
“도.. 도망쳐!”
그 아찔한 기운에 적들이 헐레벌떡 도망치려 했지만.
“헛고생 마라. 너넨 뛰어봤자 벼룩이니까.”
기탄에 추적 기능까지 탑재한 시현.
듀얼, 트리플을 넘어 펜타캐스팅(Penta-casting)을 실현시킨 것이다.
그야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궁극의 집합체!
거기에 적을 섬멸하기에 완벽한 시스템까지 실었다.
“시스템 가동. 준비 Complete- To Ready.”
츠크덩!
격동치는 전장의 지휘자 마에스트로처럼.
“Go!”
시현의 손짓에 따라 기탄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피유유유융!
세상 그 누가 와서 보아도 믿을 수 없는 광경.
그의 손짓 한 번에, 수백 명의 적들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다.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주인을 잘못 만난 죄.
잘못된 주인을 따른 죄.
그뿐이었다.
아랫것들을 배려할 만큼 여유로운 시현이 아니었다.
정작 9년이란 세월.
이제야 복수에 눈을 떴으니 더더욱 혈안이 돼있었다.
그에게 있어 적은 적일뿐이었다.
저벅.
피로 흥건한 바닥을 지나 중간지점에 다다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
여러 개의 광활한 구역마다 수십 개의 길쭉한 시험관이 놓여있었기 때문.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실제로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이다.
구룩구룩-
큼지막한 기포가 연거푸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시험관.
여기저기 시험관에 갇힌 사람들은 신체 곳곳에 금속을 박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계류 몬스터를 개발하고 있는 건가?’
마치 미국의 51구역처럼,
한성그룹에서도 나름 고심해서 세운 것이 바로 이 연구 단지였던 것이다.
비단 헌터의 무기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헌터들을 생체실험하여 더욱 더 강력한 생물체를 만드는 비밀연구단지.
토악질이 나는 대 참경.
팔뚝에 금속이 박혀있는 모습은 그나마 애교였다.
허나 신체 곳곳에 몬스터의 전유물로 보이는 흉측한 조직들이 자리하고 있는 건 예측 범주를 벗어난 것이었다.
“토악질이 나는군.”
그 거대한 연구시설을 지나치자 막다른 복도 중앙에 첨단식의 문이 위치하고 있었다.
딱 봐도 우두머리가 있을만한 곳.
웬만한 폭탄조차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두터운 문이었다.
하지만,
“내 앞길을 막- 지마.”
콰으응!
말 한 마디로 문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풍비박산 나버렸다.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이 이륙해낸 문명을 무색케 하는 설격舌擊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하게 된 남자.
중역의자에 앉은 채 입술을 물어뜯고 있는 천우현!
“어..... 어어.....”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입을 억지로 열었다.
“어··· 어어, 내 친구 시현이 왔구나.”
“그래. 네 친구 왔다.”
저벅-
그에게 다가가는 시현.
전에 동창회에서 만났을 때는 알지 못했다.
설마 천우현이 부모님의 죽음에 연관돼있을 줄은.
자신의 집안을 그렇게 만든 주요 인물이었을 줄은.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아버렸다.
그를 숙청해야할 명분이 있었다.
시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적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나?”
“자.. 잠깐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자, 잠깐 앉아서 얘기를 좀...”
하지만 시현은 귀담아 듣지도 않은 채.
푸욱-
“커허.... 허어....”
일단 복부부터 시작.
거침없이 관통해버렸다.
그것은 지난 9년, 한 맺힌 복수를 알리는 경종이었다.
“반갑다, 개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