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36화 (36/100)

# 36

타닷-

거대한 레오닉 디아블의 사체는 이미 쓰러지고 난 뒤,

펠릭스가 나이지리아 소속 헌터들을 이끌고 현장의 중심으로 달려들었다.

그 앞에 우뚝 서있는 시현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어...?”

시현의 옆에 도착한 펠릭스는 깨달았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방금까지 처절한 전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현은 다친 곳 없이 멀쩡했다.

‘어떻게 된 거지...?’

경악 그 자체.

놀랍게도 자그마한 상처 하나 없었다.

이토록 거대한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니.

저걸 단번에 쓰러트린 것도 엄청난데···.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사람인가?’

아프리카의 떠오르는 별, 펠릭스.

그로써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저런 괴물을 헌팅하는 영상을 전문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은 있지만.

솔로잉으로 저렇게 쉽게 때려잡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52배나 강력해진 7성 엘리트 몬스터가 아니던가?

52배 강력해진 7성 엘리트라면 족히 9성 에픽 몬스터와 맞먹을 정도였으니···.

쉽게 말해서, 시현은 자체만으로도 신비로운 존재였다.

치직-.

펠릭스가 상부에 무전을 요청했다.

“중심부는 이상 없습니다... 부상자도 없고요. 다른 부상자들을 중심으로 돌보겠습니다.”

-알겠다. 다만, 레오닉 디아블의 사체를 수거해오도록.

헌터중앙기구와 정부.

서로 협력관계다보니 얻는 이익은 나누는 게 맞다.

하지만 펠릭스는 그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시현과 헌터중앙기구는 조국의 은인이 아니던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불상사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

그나마 소환석을 설치하기 전에 시민들을 대피시켜서 다행이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수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으리라.

만약 시현이 없었더라도,

헌터중앙기구의 지원으로 내일쯤에는 막기는 막았겠지만 수많은 헌터가 희생되었을 것이다.

도시도 쑥대밭이 되었을 테고.

감사패를 만들어 줘도 모자란 상황인 것이다.

헌데 그런 판국에 부산물부터 챙긴다고?

‘양심 없는 생각이지..’

펠릭스는 사체를 일단 한국 팀에 넘기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팀장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그들에게 넘기고, 협상은 나중에 하는 걸로 하죠. 그렇게 상부에 전달해주십쇼.”

-크흠···. 그래, 그렇게 하지.

펠릭스.

모르긴 몰라도 국내에서는 상상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상부에서도 그의 의견에 존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권력 위의 무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처 보고를 받지 못한 다른 헌터들이 레오닉 디아블의 사체를 향해 나아갔다.

“자, 잠깐! 멈춰!”

펠릭스가 그들을 저지하려는데,

스윽-.

뒤에서 튀어나온 류건이 그들을 저지했다.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체에 손대는 불상사는 없길 바랍니다.”

그런 뒤 시현에게 등을 돌렸다.

“고생하셨습니다.”

“매니저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아, 지원이 너도.”

“아....”

김지원이 얼굴을 붉힌다.

한 일이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누가 봐도 그러긴 했다.

그녀는 그저 버프 몇 개 달아준 것뿐.

무릇 서포터라는 위치는 팀원의 곁에서 케어해주는 것인데···.

그녀는 시현을 따라다니지 조차 못했다.

그만큼 시현과의 기량차이가 극명히 난다는 의미였다.

그런 그녀를, 류건이 격려해줬다.

“그래요, 지원 씨. 수고했어요. 지원 씨의 버프가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감사한데.. 전 괜찮아요. 일부러 거짓말 하지 않으셔도....”

“아뇨.”

딱 잘라 말하는 류건.

“거짓말이든 아니든, 팀이란 원래 이런 겁니다.”

잘하든 못하든 그 존재만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현은 확실히 느꼈다.

버프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버프스킬은 본디 기력의 소모가 커서,

시현은 웬만해서 자가 버프를 잘 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김지원의 버프로 인해 오늘새벽 기력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제··· 처리했던 사체들을 모두 수거하러 가야겠군요.”

시현이 처리한 몬스터만 수천 마리다.

그것들을 다 수거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할 것이다.

나중엔 사체수거반이라도 고용해야할 성싶다.

저벅.

시현이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온화하게 웃으며 말하는 류건.

“제가 오면서 이미 다 수거했거든요.”

찡긋.

얼음장 같던 류건이 볼을 찡긋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가시죠. 아침은 제가 쏘겠습니다.”

.

.

.

라고스와 인접한 도시의 새벽식당.

류건이 지갑을 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공짜예요, 공짜! 영웅한테 어떻게 돈을 받습니까. 절을 해도 모자를 판에!”

고작 몇 시간 전이었지만,

최대 도시가 위험에 빠진 사건인 만큼 시민들의 관심이 컸던 것이다.

시현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오빠 이러다가 나이지리아 대통령한테 상이라도 받는 거 아닌 가 몰라요.”

“받을 겁니다.”

“네?”

농담조로 던진 지원의 말에 확신하는 류건.

아니나 다를까, 밥을 다 먹고 나가니 밖에 수많은 시민들이 식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개중엔 펠릭스도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현 앞으로 다가서서 고개를 숙였다.

“아깐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된 감사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용서하십쇼.”

시현은 펠릭스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외국에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현은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펴주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

“그럼 감사의 인사라도...”

스윽.

시현의 양 볼에다 자신의 양 볼을 비비는 펠릭스.

“그대는 우리 조국의 영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현의 주위를 빙 둘러싼 시민들이 일제히 감사를 표했다.

전혀 이상할 거 없는 반응이었다.

아무렴 민간인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도시 하나가 붕괴될 뻔한 상황을 시현이 막아주었으니.

그야말로 나라의 영웅인 것이다.

감사인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띠리-.

고요함 속에서 울리는 류건의 업무용 전화기.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리죠.”

뚝.

전화를 끊은 류건은 곧장 시현에게 말했다.

“대통령이 상 주고 싶다는데, 응하실 겁니까?”

“상 준다는데 안 갈 놈 있나요?”

첫 해외파견 치고는 상당히 좋은 성과였다.

.

.

.

그날 아침, 시현이 호텔에서 잠든 사이.

외부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새벽에 라이브로 방영된 시현의 활약영상이 나이지리아 전역으로 뻗어나가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비단 나이지리아뿐만이 아니었다.

세계가 열광했다.

헌터선진국 영국 팀이 처리하지 못한 극한의 상황을 한국 팀이 해결했다는 것이 반응을 달구는데 일조했다.

한 유명 동영상 매체에서는 ‘금일 실시간 조회 수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시각.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각국의 헌터수뇌부에서 첩보활동을 시작했다.

혜성같이 나타난 헌터 박시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존재만으로도 ‘국력’이었기 때문에.

당장 대한민국의 국력이 그렇게나 치솟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시현은 단순한 전력이 아닌 ‘국가적 수준의 전력’이었다.

세계 도처에 설치돼있는 헌터중앙기구에서도 시현에 대한 정보를 파악 중에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현에 관한 진짜 비밀은 찾지 못했다.

M던전에서 살다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쾅!

영국 런던 헌터중앙기구.

아침부터 책상을 내리칠 정도로 유난히 화가 난 남자가 있었다.

“이런 천하의 빌어먹을 놈들!”

헌터중앙기구 영국지사 헌터특수본부팀 관리관.

화가 날만도 했다.

방송에 방영된 것은 비단 시현의 활약뿐만이 아니라,

영국 팀 브라이언이 저지른 악행과 비매너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으니까.

영국 헌터중앙기구를 욕 먹인 것으로도 모자라서 영국의 위상까지 깎아먹은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상부의 압박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동시에 ‘박시현’에 관한 정보를 당장 캐오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알아보란 건 어떻게 됐어?”

“···그게, 그에 대해선 더 이상 캐낼 게 없습니다.”

“맞습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세계본부 측에서 제제를 받을 것이고요.”

“차라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시면서 득을 보시는 게···. 모든 작전은 이미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더 이상 정보를 캐내기란 힘들 것으로 파악됩니다.”

오늘 아침, 나이지리아로 파견나간 팀장 존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자신의 판단 하에 김지원에게 걸었던 저주스킬을 풀었다고 했다.

인간적으로 차마 그럴 수 없던 것이다.

시현의 무력을 느꼈기에···.

섣부른 짓을 했다가 걸리기라도 한다면 사지가 멀쩡하지 않을 것이리라.

.

.

.

그날 아침, 시현은 좀처럼 잠에 들 수 없었다.

몬스터의 언어가 새겨진 돌멩이 때문이었다.

“þɞʞøɞɭŊɞ...”

번역하자면 ‘번개’라는 단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물건인가?

딱 보아도 이계의 물건임은 확실했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어야겠군. 누구한테도 섣불리 묻기에는 좀 그러니까.’

고민하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수도 아부자로 떠날 시간이었다.

시현은 준비를 끝마친 뒤 1층 로비로 내려갔다.

그곳엔 이미 김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오빠.”

“어. 매니저님은?”

“저기 입구에서 걸어오고 계세요.”

목을 풀면서 다가오는 류건.

미소를 머금으며 시현에게 물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예. 그런데 매니저님은···.”

시현이 류건을 바라보자 그는 다급히 선글라스를 꼈다.

하지만 시현은 이미 류건의 눈 밑이 퀭한 것을 보았다.

매니저로서 아침 내내 처리할 게 많았기에 한시도 쉬지 못했던 것이다.

매니저가 없었다면 모두 시현의 몫이 되었으리라.

그걸 모를 리 없는 시현은 류건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럼 어서 가시죠.”

“예.”

“아참. 시현 씨, 혹시 주목받는 거 좋아하십니까?”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만··· 지금은 조용한 게 좋겠군요. 그런데 그건 왜 그러시죠?”

류건이 로비 입구를 가리킨다.

“눈뽕이라고 하나요? 출입문을 열고 나가면 실명이 되실 수도···.”

“기자들이 몰려왔나 보네요.”

“나이지리아에 있는 기자들은 죄다 몰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룻밤 만에 D급 헌터에서 대스타가 된 시현이었다.

“스타 헌터로서 겪어야하는 고충 중 하나죠.”

“음. 그 정도는 너무 귀찮을 것 같은데.”

주목받는 것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러면 골치 아프다.

“그 문으로는 안 나가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어차피 수여식 이후 공식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거든요. 괜히 여기서 힘 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럼 어디로 나가죠?”

그러자 검지를 일자로 세워 위를 가리키는 류건.

“옥상으로 가시죠.”

호텔옥상 헬리포트.

오늘 아침, 류건이 미리 요청한 헬기가 준비돼있었다.

“가시죠.”

.

.

.

헬기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수도 아부자.

대통령궁에서 감사패 공식수여식이 열렸다.

지상파의 정규방송은 모두 중단되었고 수여식을 방송했다.

시현 외 45명은 시상식에서 나이지리아 총리의 영접을 받으며 의장대를 사열했다.

먼저 헌터중앙기구의 각 팀에게 상패가 수여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가온 시현의 차례.

모하메드 대통령이 시현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감사패가 아니었다.

“나이지리아를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대통령 평화훈장을 수여합니다. 귀인은 조국의 영웅으로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대통령 평화훈장.

외국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

.

.

.

수여식이 끝난 후 수여자 시가행진이 이어졌고,

시현은 귀빈 급 대우를 받으며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 일정은 끝난 겁니까?”

“일단 공식 상 일정은 끝났습니다.”

류건이 김지원을 흘겨보면서 말을 잇는다.

“오늘 반나절은 휴가입니다. 지원 씨는 개인적으로 움직이셔도 됩니다. 여행을 하셔도 좋고.”

“그럼 매니저님이랑 시현 오빠는요?”

“우리는 할 일이 있어서요.”

류건이 시현을 바라본다.

“만날 사람이 있는데, 같이 가시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