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언령술사-35화 (35/100)

# 35

-크어어어어어!

도시전역에 울려 퍼지는 괴성이 라고스의 밤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총성으로 가득하던 도시가 이제는 다른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

그럼에도 나이지리아의 국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의 영웅 ‘펠릭스’가 평화를 지켜줄 거라 믿었으니까.

펠릭스(Felix).

28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나이지리아의 그 누구보다도 강한 남자였다.

선진국에서는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귀화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자국의 평화를 위해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

사기업도 공기업도 아닌 순수 국가의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평화를 지켰다.

대 헌터 시대에 그만한 능력이 있음에도 공직을 택한 것은 확실히 드문 짓이지만.

그는 비이상적으로 애국심이 강한 남자였다.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말은 결코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연합 주관 평화의 상을 받았을 정도.

전쟁을 종식시킨 사나이.

아프리카의 떠오르는 별.

검은 수사자.

등 수많은 이명(異名)을 달고 다니는 남자.

괜히 나이지리아의 영웅이라 칭송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 남자가, 수도 아부자(Abuja)에서 다급히 날아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두구두구두구-

라고스 특수던전 1구역 상공에 도착한 헬기.

-크어어어어어어!

흉포한 울음소리가 광활한 던전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외부 또한 마찬가지.

펠릭스는 지긋이 눈을 감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레오닉 디아블이라···. 긴장되는군.’

뛰어난 활약으로 3년 만에 S급 헌터까지 오른 펠릭스였지만 진짜 실력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럼에도 긴장되는 이유는 ‘증폭’ 때문.

‘52배라고 했던가.... 전체 증폭량의 5%에 달하는 군.’

1097배 중 52배를 레오닉 디아블이 독식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

소환석의 작용으로 어쩔 수 없이 증폭이 시작되면,

증폭이 모든 몬스터에게 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다.

우두머리가 가장 많이 증폭을 받는다.

보통 증폭량의 2-3%, 많으면 5%를 넘기기도 한다.

평소 솔로잉을 주로 할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펠릭스였지만.

이번만큼은 28명으로 구성된 대 학살 팀을 꾸려왔다.

서포터의 숫자만 12명이었다.

펠릭스가 매니저에게 물었다.

“조무래기들은 모두 처리됐다고요?”

“그래, 6천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은 헌터중앙기구 측에서 다 막았어.”

“...괜히 헌터중앙기구가 아니군요.”

“영국 팀에서 지원이 왔다더라고.”

“역시 영국인 건가요···. 우리조국도 어서 힘을 키워야할 텐데...”

펠릭스의 탄식이 있은 뒤, 시커먼 구덩이 속에서 거대한 응어리가 일렁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막을 꿰뚫어버릴 정도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크오오오오오!

레오닉 디아블.

학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체고는 약 8미터.

백수의 왕이라는 이명답게 은빛으로 뒤덮인 갈기가 특징이다.

그러나.

쿵!

쿵-.

증폭에 의한 변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증폭수치가 자그마치 52배였으니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레오닉 디아블이 맞는 건가···?”

“맙소사···.”

체고만 해도 족히 25미터, 아파트 10층 높이.

앞발만 해도 판자 집 몇 채는 씹어 먹을 크기였으니 보고만 있어도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전에 봐온 레오닉 디아블이 유년기였다면 저건 성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

“겁먹지 말자. 우리에겐 펠릭스가 있으니까.”

“그래, 그가 이번에도 기적을 보여줄 거야.”

팀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펠릭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눈앞에 놓인 레오닉 디아블은 그조차도 감히 도전하기가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그래도 내가 나서야해.’

푸슛!

마침내 지상으로 로프가 던져졌다.

그 아래로 팀원들이 일사천리로 내려가 레오닉 디아블의 주위를 빙 둘렀다.

허나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에 팀원들의 몸이 바짝 굳어버렸다.

스오오-

“크윽···. 플랜A부터 실행한다!”

탱커들과 서포터들이 합심해 앱솔루트 월(Absolute wall)을 생성했다.

디아블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강도뿐만 아니라 두께 또한 두터운 벽.

가히 앱솔루트라 불릴만한 협공스킬이었다.

그 두께가 3미터에 달할 정도였으니 웬만해서는 허물 수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바람이었을 뿐.

-으르르르······ 크어!

쿠구궁!

녀석의 표효 한 번에 모든 벽이 붕괴되었다.

“미.. 미친!”

계획이 시작하자마자 무산된 것이다.

남은 희망은 펠릭스의 활약뿐.

파앗-!

‘조국을 위하여.’

펠릭스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쌍수를 뽑아들었다.

스응-

쌍수의 귀재(鬼才).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제작한 9성 에픽 아티팩트 ‘침묵 속의 선혈(Blood in Silence)’.

이름만큼이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무기였다.

남기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선혈뿐.

휘리릭-!

12명의 서포터의 스킬이 펠릭스에게로 향한다.

짜잘한 명중버프부터 뛰어난 체력회복버프까지 총 스물여섯가지의 버프가,

스아아아아-

형형색색의 빛이 펠릭스의 전신을 감쌌다.

12명의 서포터가 약 9000SP에 달하는 기력을 펠릭스에게 쏟아 부은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끝났다.

남은 것은 펠릭스의 몫.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에 앞서 포켓의 기(氣)를 정제해야했다.

그 사이 시간을 벌기 위해 탱커들이 몸을 날렸다.

척척척척!

한 곳으로 모이는 B급의 풀 메탈 쉴드.

거대한 방패와 함께 탱커들이 전진한다.

“우오오오오오!”

용맹스러운 기세로 레오닉 디아블에게 짓쳐들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

그 기세가, 레오닉 디아블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크오오오오오!

거세게 앞발을 휘두르는 레오닉 디아블.

쿠궁!

탱커들의 방패는 모조리 산산조각 났고,

전방에서 돌격하던 탱커들은 몸이 도륙 났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발톱이 공중에서 춤을 추는 모양새.

52배 증폭된 S급 고유스킬 ‘디아블 류 댄싱크로우’였다.

“쿨럭....!”

“히, 힐러들 어서 치료해!”

“패싱 큐어(Passing cure)!”

솨아아아-

한 목숨 받쳐 발 벗고 나선 힐러들.

동료들 치료에 전념을 다했으나 레오닉 디아블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좌악!

녀석의 눈에 밟히는 모든 것은 찢겨 나갈 뿐이었다.

힘도, 스피드도, 체력도.

그 무엇 하나 따라잡을 수 없는 괴물이 대지를 뒤흔들고 다녔다.

결국 레오닉 디아블은 인근 도시에 진입하기에 이르렀고,

나이지리아의 최대도시 라고스의 건물들은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미리 대피했던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기도했다.

제발 누가 좀 도와달라고.

그때,

스스슥-.

마지막 한 줄기의 희망이 움직였다.

마침내 기력을 최고 농도로 끌어올린 펠릭스였다.

팀원들의 희생 덕분에 10초라는 귀중한 시간을 번 것이다.

희생된 이는 벌써 수십 명에 다다랐지만 이제는 이 악몽을 끝낼 수 있으리라.

다만, 정제된 마나는 자연적으로 소진되기 때문에 어서 스킬을 시전 해야 한다.

피융!

펠릭스가 도약했다.

그림자보다도 더 짙은 움직임으로 놈의 허벅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휘이이-

스킬을 시전하는 펠릭스.

쌍수에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이 일렁인다.

음지의 왕, 암살자의 S급 스킬.

단일기로는 상급에 속하는 일격필살기!

‘기회는 단 한 번.’

놈의 명치를 단칼에 배어버릴 기세로써,

좌아아아악!

마침내 내질렀다. 놈의 명치를 향해서.

일격이 날아가 ‘무언가’에 명중했다.

사아악!

그런데,

-까아아아악!

필살기가 적중한 것은 레오닉 디아블이 아닌 그를 따르는 추종자.

하늘의 왕자 7성 정예 아스트랄 그리피노(Astral Griffino).

녀석이 레오닉 디아블의 명치 아래 숨어있던 것이다.

‘젠장할....’

미처 레오닉 디아블의 호위병을 생각지도 못했다.

5성 엘리트 급 이상의 몬스터들은 늘 호위병을 거닐고 다니는 법이거늘.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어쩐지 안 보인다 했더라니···.’

그리피노는 죽었지만 레오닉 디아블은 멀쩡했다.

회심의 일격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다 끝났군...’

암살자에게 있어 기회는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다.

기회를 한 번 잃으면 그걸로 끝.

펠릭스는 이미 죽음을 직감했다.

레오닉 디아블의 꼬리가 펠릭스의 몸을 감쌌기 때문.

휘리릭!

“크헉······!”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

그는 조국의 안녕을 빌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놈의 꼬리가 지면을 향해 거세게 내려칠 때 즈음.

터억!

어딘가에서 번쩍하고 나타난 남자가 레오닉 디아블의 꼬리 위에 올라타 펠릭스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러고는,

“꼬리가 길면 밟히거늘.”

찰나,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하강한다.

언뜻 보기엔 비석과도 같은 그것이,

레오닉 디아블의 뭉툭한 꼬리를 내리찍었다.

좌아아악-

-크어어어어어!

거구의 레오닉 디아블이 요동치며 비명을 지른다.

녀석의 꼬리가 비석에 깔려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이, 그 남자는 펠릭스를 데리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지면에 착지했다.

“하아···. 누, 누구······.”

펠릭스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자신을 살려준 것보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레오닉 디아블을 그렇게 만든 것이 더 경악스러웠다.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필히 알고 있을 터인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남자가 대답하지 않자 펠릭스는 재차 물었다.

“가, 감사해서 그러니 부디 이름만이라도... 혹시 영국 팀의 신입 헌터이신지···?”

절래절래.

시현은 고개를 저으며 명함을 꺼냈다.

“한국 헌터중앙기구 던전관리국 수색부 헌터 박시현이라고 합니다.”

타앗-

곳곳에서 플래쉬가 터져나와 시현을 비쳤다.

쓰러진 헌터들.

실시간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방송까지.

수많은 인구가 시현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앗!

힘껏 도약한 시현.

암살자 펠릭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스피드로,

정면의 레오닉 디아블을 향해 뛰어올랐다.

-크어어어어!

녀석은 상당히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당장 꼬리가 밟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녀석에게 중요치 않았다.

원거리 스킬이 녀석의 필살기였기에.

스아아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한 기운이 레오닉 디아블의 양 발톱에서 흘러나온다.

디아블 류 댄싱크로우의 상위 버전.

댄싱크로우가 광범위한 적을 타깃으로 하는 스킬이라면,

이것은 오로지 하나만을 노리는 단일기.

S급 단일기 중 최정상에 달하는,

격의 극점(Pole of Strike).

레오닉 디아블의 양발이 한 곳으로 모인다.

좌아아아아-

1초.

2초...

3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녀석의 기력이 극점에 다다른다.

그리고 마침내,

스오옹······

콰아아아아아아-!

쏟아져나간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잔혹한 소리를 자아내면서.

무엇이든 도륙 내버릴 정도의 기상으로, 시현의 몸통을 향해서.

그런데 그 순간.

“워워.”

드응-.

“!”

모두가 경악했다.

엄청난 농도의 기 덩어리가 시현의 앞에서 꼼짝없이 멈췄기 때문에.

마치 순한 양처럼.

스오오오옹······.

잠잠해지더니 결국 무(無)로 돌아갔다.

시현의 말 한 마디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바로 언령 진.

이 순간만을 위해 쓰지 않고 아껴뒀던 것이다.

-크오오오오오!

이에, 더더욱 분노하여 길길이 날뛰는 레오닉 디아블.

시현은 방심하지 않고 공중에서 한 차례 더 도약했다.

퓽!

그 광경에 지상에 있던 펠릭스가 고개를 저었다.

‘정면으로 가는 건 절대 무리야······!’

디아블 류를 상대할 때는 정면을 피해야하는 것이 상책이다.

놈의 음성엔 저주가 깃들어있으니까.

-크르르르르!

오장육부를 터트려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포효.

지상의 헌터들은 귀를 막고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허나 레오닉 바로 정면에 떠있는 시현은 더할 나위 없이 멀쩡했다.

‘레오닉 디아블의 포효. M던전에서 이골이 날 정도로 들었지.’

즉, 시현의 몸은 녀석의 포효에 이미 적응된 상태.

시현은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레오닉의 콧등 위에 착지했다.

그런 뒤,

스오오오오오···

기력을 끌어 모았다.

어차피 마지막.

남은 기력을 거진 사용해도 상관없었으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우지끈.

“벌처럼 쏜다.”

피융-

콰아아아아아!

골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한 차례 격동이 일어나더니 모래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그 직후.

-그오오오오오......

레오닉 디아블의 사체가 생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한여름 밤의 악몽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음?”

레오닉 디아블이 쓰러진 그 자리에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이 놓여있었다.

“스킬북?”

그렇다.

보통 정예 이상 급을 잡으면 가끔씩 스킬 북이 드랍되곤 한다.

몬스터든 인간이든 죽으면 아공간에 품고 있던 것들을 모두 뱉어내기 때문이다.

즉, 그 스킬북은 레오닉 디아블의 소지품이었던 것.

‘운이 좋네.’

여지껏 수많은 몬스터를 헌팅해온 시현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M던전에는 거지 몬스터만 있던 것인지 얻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저건···.”

스킬북 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돌멩이가 나타났다.

바람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있는 자그마한 돌멩이.

시현이 그것을 줍자 문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글씨가 새겨졌다.

“þɞʞøɞɭŊɞ....?”

몬스터들의 언어.

시현은 재빨리 그것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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