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뜬금없는 제안.
내용 또한 뜬금없었다.
“갑자기 아프리카는 왜···?”
“파견 업무입니다.”
“업무라면 던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지원요청이 왔는데, 함경만 본부장님으로부터 지원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시현에게 있어서 그곳은 더없이 낯선 땅이었다.
“아프리카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나이지리아입니다.”
“특수던전이 발생한 겁니까?”
“맞습니다. 함경만 본부장님한테서 보고 받은 바로는, 약 4시간 전 나이지리아 헌터중앙기구에서 세계본부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나이지리아의 수준으로 어떻게 해볼 만한 규모가 아니라더군요.”
국가별 헌터의 수준은 대개 그 나라의 교육에 영향을 받는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일단 교육이 받쳐줘야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
다시 말해, 살기 좋은 국가일수록 강한 헌터가 많다는 얘기다.
머릿수만 많다고 해서 강한 헌터가 많은 것이 아니라.
“수준이 그렇게 높은 던전이랍니까?”
“추측 상 7성 특수던전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자세한 건 가봐야 알겠죠?”
지난 번 창동 5동에서 발생했던 특수던전이 5성.
그것을 감안하자면 꽤 높은 난이도였다.
“게다가 게이트의 규모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측된다고 하네요.”
물량이 압도적일 거라는 뜻.
“아마 한국의 S팀이 가더라도 쉽게 막지 못할 것입니다.”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긴 하네요.”
“안 그래도 최소 두 팀 이상 지원을 받는다는 공문이 떨어졌습니다. 뭐, 지원하는 팀의 규모에 따라서 두 팀으로 마감될 수도, 열 팀으로 마감될 수도 있겠지만요.”
“음.”
고민에 빠진 시현.
구태여 아프리카까지 가서 그들을 도와야하나 고민이 되는 것이다.
“제가 한국에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하하. 겨우 2박 3일짜리 일정이라 걱정하실 것 하나 없습니다. 안 그래도 이미 S팀의 새 누커를 영입 중에 있고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같이 가시죠.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음···. 그런데 매니저님도 저랑 같이 가시는 겁니까?”
“그럼요. 전 이미 SSS팀 매니저로 이직했거든요. 시현 씨 담당으로요.”
.
.
.
당일 오후.
헌터특수본부 소속 세 사람은 해외출장 승인요청을 받은 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시현과 류건 그리고···
“어서 오세요, 지원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빠.”
S팀의 김지원이었다.
“지원이 네가 올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명색에 해외출장인데, 서포터 한 분은 동행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류건이 씩 웃었다.
“그럼 S팀은 어떡합니까? 서포터가 없잖아요?”
“그건 걱정 마세요, 오빠. 임장호 팀장님이 원래 서포터이시거든요. SSS팀의 정식 서포터가 들어올 때까지 제가 병행할 예정이에요.”
“그렇구나. 나 때문에 고생하네.”
“아뇨. 저야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해외수당도 받고.”
“그럼 나도?”
“물론입니다.”
류건의 대답을 끝으로 셋은 비행기에 올랐다.
당일 날 한국에서 출발하는 직항편이 없었기에,
한국항공에서 빌린 VVIP전용기였다.
어차피 그 금액은 세계본부에 청구할 예정.
“비행시간은 14시간입니다. 도착하면 현지 시각으로 새벽 12시쯤 될 테니 충분히 자두세요. 지원 씨도요.”
“네, 매니저님.”
비행기가 안정권에 들어간 뒤.
셋은 각각 침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시현은 침대에 드러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처음 타보는 전용기인 만큼 기분이 오묘했다.
현자건설이 커지면 언젠간 우리도 전용기를 만들겠지, 싶었던 고등학생 시절이 벌써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이렇게나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더 빨리 흘러가겠지.’
원래 시간이란 것은 상대적이다.
힘들었던 시간은 느리게 가고 바쁜 시간은 빠르게 간다.
올해만 해도 수없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또 나이지리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못 궁금했다.
‘타국의 헌터들이라···.’
과연 그들은 또 얼마나 강할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스윽-.
그래서인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잠을 청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현이 한참을 뒤척이고 있자,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원이었다.
“안 주무세요?”
“피곤한데 잠이 안 와서. 너는?”
“저도 이제 자려고요. 그럼 저 잠시만 들어가도 될까요?”
“응?”
시현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누워 계세요! 제가 해드릴 테니까.”
김지원이 소매를 걷고 두 손을 시현의 머리 위에 얹는다.
솨아아아-.
푸른빛이 쏟아져 나오고, 시현은 심정안정을 되찾아간다.
신기하게도 스르르 잠이 오기 시작했다.
모든 긴장이 싹 풀리고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만 같았다.
과연, 천직 서포터 김지원이었다.
.
.
.
“잘 주무셨어요?”
“덕분에 푹 잤어.”
저녁 11시 40분경.
나이지리아의 최대도시 라고스 공항에 도착한 세 남녀.
빽빽한 일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인 중년 남성의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나이지리아 헌터중앙기구 특수본부 S팀 팀장 자코입니다. 그런데··· 세 분이 끝입니까?”
“그런데 문제라도 있나요?”
“음...”
무언가 못마땅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자코.
“···아닙니다. 일단 가시죠.”
특수던전은 시한폭탄과도 같다.
지금 당장 게이트가 소환될 수도 있고,
1년 후에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던전을 클리어 해야 했다.
셋은 자코가 준비한 차를 타고 서둘러 이동했다.
목적지는 공항에서 20km 떨어진 외곽.
던전발생구역은 옥수수농장지대였다.
“많이도 꺼졌군요.”
초거대 싱크홀.
대지 아래에 진한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베이스캠프로 가시죠! 다른 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코를 따라 도착한 인근의 베이스캠프.
간이로 설치된 막사에는 백인들이 바글바글했다.
그중 느끼하게 잘생긴 백인 남성이 악수를 건네 왔다.
“반가워요. 나는 영국 S팀 2군 누커 브라이언. 팀장님은 잠시 밖에 나가계시고요.”
“아까 소개했듯 저는 나이지리아 S팀 팀장 자코라고 합니다.”
헌터 선진국 영국과, 평균은 가는 나이지리아 팀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한국 헌터특수본부 SSS팀 매니저 류건입니다.”
팀장이 아닌 매니저.
더군다나 S팀이 아닌 SSS팀이란 말에 브라이언과 자코는 미간을 좁혔다.
“음?”
“SSS팀? 하하하! 독자적으로 팀을 만들었나보죠? 인원이 셋인 것도 그 이유인가요?”
“그렇습니다. Team Special Secret Scenic이죠.”
“팀 스페셜 시크릿··· 뭐요? 하하하!”
영국 S팀 누커 브라이언이 대소한다.
그러자 그의 팀원들 역시 어깨를 들썩이며 저들끼리 속삭이기 시작했다.
“SSS팀이라니. SSSS팀은 없나? 큭큭.”
“한국의 헌터수준이 그렇게나 높았던가? 와우.”
“그래서 3명밖에 안 왔나보지.”
하나같이 다 악동이었다.
그들에게서 책임감 있는 헌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고참으로 보이는 남자가 뒤에서 나타나 그들을 만류했다.
“무례하게 굴지 마.”
건장한 체격에 각진 턱.
남자답게 생긴 그는,
“소개가 늦었습니다. 영국 S팀 2군 팀장 존입니다.”
3국 임시합동본부의 지휘를 맡은 총 팀장이기도 했다.
가장 경험이 많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영국’ 팀이었기 때문이다.
“내일 새벽, 아니 어쩌면 내일 이 시간이 될 때까지 협동해야하는 입장이니, 여러분 모두 제 지휘에 따라주시길.”
“예.”
연이어 존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탐사는 이미 끝내놓았습니다. 던전의 규모는 7성. 유형은 퓨에르타 티게르와 같은 맹수형, 에이글 페르콘과 같은 조류형으로 추정. 엘리트 몬스터는 아직 미확인 상태입니다. 증폭은 도합 100배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정보는 소환석의 증폭이 있고나서야 알 수 있을 터.
척후병 처리가 우선적으로 행해져야 했다.
“또한 구역을 나눌 겁니다. 세 팀이 한곳에서 광역헌팅을 할 만한 장소가 없더군요.”
“그럼 부산물 취득은 어떡합니까?”
“부산물의 소유권은 세계표준법을 기준으로 해야죠.”
삼등분이 아닌, 잡는 대로 소유권이 인정된다는 뜻.
“먼저 끝내는 팀이 있으면 다른 팀을 도와도 됩니다.”
빨리 잡으면 남의 구역에서 몬스터를 쓸어가도 된다는 뜻이다.
어차피 헌팅 캠에 기록되기 때문에 분쟁이 오갈 일은 없을 것이다.
“오케이. 문제없군요.”
나이지리아 팀장 자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류건도 마찬가지.
“우리 측도 문제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구역을 정해야하는데, 각자 팀의 전력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중앙 2구역에 가장 뛰어난 팀을 배치할 겁니다. 참고로 우리 영국 팀의 경우, 2군입니다만 유럽기준 S급 헌터가 다섯이나 있죠.”
“우리 나이지리아는 S급 둘입니다.”
“그럼 일단 중앙은 우리가 맡죠. 위험상황 시 분대를 나누어 좌우측에 지원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영국 S팀 팀장 존이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 팀은 애당초 배제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 3구역은··· 나이지리아 팀이 가시겠습니까? 그쪽이 가장 좁거든요.”
“한국 팀이 그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훽-
모두의 시선이 한국 팀에게로 돌아간다.
“음···.”
류건이 입을 뗐다.
“A급 한 명에, SSS급 같은 D급 한 명입니다. 중앙 2구역에 배치해주시죠.”
“SSS급 같은 D급이요? 허, 허허···. 허허허!”
“풉- 푸훕, 푸하하하하!”
류건의 요구에 되돌아온 것은 비웃음뿐.
거기에 브라이언이 가세한다.
“오우. SSS급 같은 ‘D급’이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D급을 데려오셨나? 도움도 안 될 것 같은데. D급을 승인해준 세계본부는 또 무슨 생각인지...”
“킥킥. 그러게. 이 정도 규모면 우리만 왔어도 됐을 텐데. 끼어팔기 하는 것도 아니고.”
단체로 비웃기 시작하는 영국 팀.
영국 팀장 존이 그들을 제지하고 나서야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런데,
“큭. 푸흡-. 훕.”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몰래 조소하는 영국 팀 팀원들.
그들과는 달리, 나이지리아 팀원들은 단 한 명도 비웃거나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힘이 없어서 타국에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었으니까.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팀장 자코는 내심 걱정이었다.
“도와주시는 마당에 송구스런 말씀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래도 2구역은 영국 팀이 맡는 것이 나아 보입니다...”
“내 생각엔 그냥 빠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괜히 우리한테 피해주지 말고.”
그새를 못 참고 재차 끼어든 브라이언.
마치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막무가내 식으로 비아냥댔다.
안 그래도 백인우월주의의 성향이 있는 브라이언인데,
시현의 실력이 SSS급이라고 말하니 가소로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던 것이다.
“흐음. 거 적당히들 해라.”
이제는 팀장 존마저도 강하게 통제하지 않는다.
시가를 뻑뻑 피워대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에 인도, 중국, 일본 빼고 뭐 있나?”
“이봐요, 당신!”
브라이언의 말에 울컥한 김지원.
이성적인 시현과 류건과는 달리 꽤나 감정적이었다.
“지금 말 다했어요? 한국에서 나온 ‘기력의 기재’도 모르시나 봐요?”
“아, 그 여자? 그래봤자 서포터 아닌가? 날고 기어봐야 딜러 없으면 몬스터도 못 잡는 ‘서포터’.”
지원에게 보란 듯이 대놓고 서포터를 비하하는 브라이언.
서포터가 팀에 중요한 포지션이긴 하지만 헌터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서포터를 하등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딜러보다는 확실히 인지도나 명성이 낮긴 했다.
그러나 영국 팀의 서포터는 화를 내기는커녕 낄낄대며 브라이언과 함께 수군거렸다.
“A급이라고 했던가? A급은 서포터가 아니라 그냥 버프머신이지, 뭐.”
“낄낄낄.”
누가 봐도 과한 행동들.
이러는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과하고 적나라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인종차별적이고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해도,
던전 앞에서 이런 행동을 보일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마치 일부러 그러는 듯 참으로 이상한 상황.
시현은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담배를 마저 피운 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자, 그만들 합시다. 우리끼리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몬스터 헌팅하러 온 거 아닙니까. 백지장도 만들면 낫다고, 한국 팀도 도움이야 되긴 하겠죠. 그러니 3구역으로 빠져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괜히 지원허가를 받은 건 아닐 테니까요.”
.
.
.
던전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은 한국의 SSS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지원에게,
류건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분 푸세요. 헌터는 실력으로 보여줘야지요.”
“그래도 D급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그 외에도 우리를 무시하는 발언을 수도 없이 했다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현 오빠 실력이라면 충분히 2구역을 맡고도 남을 텐데.... 어디, 등급 낮은 신입헌터들은 서러워서 살겠어요?”
능력이 있어도 마음대로 등급을 올릴 수 없다.
등급제도라는 시스템 때문.
불시로 승급시험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선 특진이 불가능했다.
“나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군.”
하지만 시현은 흥분하지 않았다.
어차피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시작은 언제입니까?”
“곧 무전이 오겠죠.”
치직-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곧바로 류건의 무전기가 울렸다.
-존입니다. 예정대로 1시 5분에 소환석을 설치합니다.
“카피.”
5분 뒤, 몬스터가 소환될 예정.
류건이 무전을 끄고 시현과 지원에게 말했다.
“퓨에르타 티게르는 7성 노멀. 약점은 목울대이며, 특히 스피드가 빠르고 ‘윈디 크로우’ 스킬을 쓰니 주의하세요.”
그것은 시현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
시현이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사체 가격은 얼마 정도 합니까?”
“평균적으로 두당 4500만원이 넘습니다.”
“에이글 페르콘은요?”
“5500은 나올 겁니다. 7성 레어니까요.”
100마리씩만 처치해도 100억이다.
물론 김지원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을 때어줘야겠지만.
‘이왕이면 수천마리씩 나왔으면 좋겠군.’
훈련도 했겠다, 효과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중력훈련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하루였지만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
깃털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컨디션도 좋고.’
시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힘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띠딕-.
새벽 1시 5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고.
휙!
류건이 소환석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