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양재동의 흑돼지삼겹살집.
던전에서 돌아오니 식당 안은 고기 탄내로 가득했다.
“미스터 팍. 사막장군을 생포했으니 다음에 또 삼겹살 쏘실 건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막장군을 잡은 후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
던전은 균열과 함께 말끔히 사라졌고,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현과 말콤 역시 아까 있던 삼겹살집 방안으로 돌아왔다.
밖에서 구조대의 사이렌소리가 연신 울려댔지만.
밖으로 나가기에 앞서 시현은 물어봐야할 게 있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는데, 사막장군의 약점이 불이란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본디 독(毒)의 약점은 불이 맞다.
허나 사막장군의 유형은 독이 아닌 모래.
불을 질렀다가는 도리어 모래에 삼켜질 수가 있는 것인데, 말콤은 불을 약점이라고 말했었다.
말콤이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사막장군이 차고 있던 견갑, ‘게르팅스’거든요.”
사막장군이 입고 있던 견갑의 소재는 게르팅스(Gertings).
A급 이상의 방어도를 자랑하지만,
2000도 이상의 온도에 노출되면 독(毒)으로 변형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해서 자멸을 우려했던 사막장군이 불길을 피해 대피하였던 것이다.
즉, 게르팅스 소재는 양날의 검인 셈.
하지만 2000도 이상의 화력을 낼 수 있는 헌터는 드물뿐더러,
게르팅스 소재를 육안으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모래형 몬스터에게 불을 가하려는 이는 상식상 존재하지 않기에.
사막장군에게 있어서 게르팅스 견갑은 가히 완벽한 방어구라고 볼 수 있었다.
말콤만 아니었다면···.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그게 게르팅스 소재라는 걸 알아차리신 걸 보면 말이죠. 혹시 권능입니까?”
“No, no! 부모님에게서 꿰뚫어보는 눈을 물려받았거든요. 흔히들 ‘통찰력’이라고 하죠? 킥킥!”
농담조로 말하는 말콤.
하지만 시현은 진지했다.
자신에게도 그러한 종류의 ‘스캐닝’ 스킬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시현은 ‘게르팅스’ 견갑에 대해 무지했기에 그러한 발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현이 올라운더(All-Rounder)라면,
말콤은 스캐닝에 특화된 포지셔너(Positioner)인 셈.
말콤이 웃음기를 쫙 빼며 말을 이었다.
“아,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꼭 그래야할 필요는 없으시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바랍니다! 특히 제 행동!”
말콤이 양손을 맞대며 꾸벅 고개를 숙인다.
자신의 활약을 숨기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다.
‘권능이 확실하군.’
예컨대 희귀능력인 감시자(Observer)라든가.
그런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요!”
“저야말로.”
친해두면 나쁠 거 하나 없는 친구였다.
.
.
.
그날 밤.
한성그룹 미래전략본부 기획실장실.
천우현은 중역의자에 앉아서 어라운딩 헌팅 캠 영상을 감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 허상던전에 갇혔던 수도권 1팀이 찍은 영상.
마치 한 폭의 액션영화장면을 보는 듯했다.
주연은 무덤에서 돌아온 박시현과 사막장군.
-그오오오오오....!
시현의 원맨쇼로 사막장군은 비명을 흘리며 쓰러졌고,
놈의 육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현의 아공간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삑-
스윽.
영상이 끝나자 천우현은 데스크에서 일어나 구두를 바로 신었다.
천편일률적으로 식상한 재벌의 모습이었지만.
퍽!
구둣발로 정강이를 까는 것만큼 편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흑···. 죄, 죄송합니다.”
수도권지부 팀장 허영무는 고통을 참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턱-.
천우현은 구석에 놓인 골프채를 하나 집어 허영무의 턱 끝에 갖다댔다.
“상대는 8성 에픽 몬스터를 생포해갔는데, 너희들은 뭐했지? 가서 놀았어?”
툭툭.
허영무의 뺨을 기분 나쁘게 건드리는 천우현 전무.
비인간적인 대우였지만 허영무는 참았다.
상대는 기업총수의 아들이었으니···.
그래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잘 들어. 지금 내가 내리는 벌은 본부 실장이 아니라, E&M의 고문이사로서 가하는 거야. 알았어?”
천우현은 셔츠 소매를 걷고 골프채를 쥐었다.
재벌이라 하기에는 참으로 유치한 언행이었지만.
천우현은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닌, 그저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뿐이었다.
“뭐해? 안 엎드리고.”
“아··· 예!”
재벌이라고 모두 다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천우현은 유독 심성이 고약했다.
회사직원들은 그저 노예라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퍼억!
사정없이 허영무의 엉덩이를 내려친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매가 아닌 단지 원초적인 화풀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 시현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분했던 것이다.
시현이 17기 헌터 수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강한 헌터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태앵-
매타작을 끝낸 천우현은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허영무의 얼굴 위에 뿌렸다.
약값이 아닌 매값이었다.
“이제 꺼져.”
이에 허영무는 고개를 푹 숙인 뒤 수표를 챙겨 밖으로 후다닥 나갔다.
이제야 좀 속이 풀린 천우현은 소파 위에 벌러덩 앉아 턱을 괬다.
‘박시현 그놈... 빚도 원래 없던 것처럼 깔끔히 청산됐던데···. 용수 그놈이 도와준 건 아니고, 대체 뭐를 꽁꽁 숨기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
띠이이-
비서로부터 걸려온 내선전화.
-손님 오셨습니다, 실장님.
이윽고 문이 열렸고, 실장실 안으로 비율 좋게 잘 빠진 남성이 들어왔다.
천우현이 벌떡 일어나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앉으시죠.”
그는 낮고 묵직한 저음으로 말하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박시현이 나타났다고요?”
“그렇습니다···.”
“언제 알았습니까?”
“그게··· 실은 올해 7월경에 알았습니다.”
천우현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제때 보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이제 와서 보고를 하시겠다? 친구간의 최소한의 우정, 뭐 그런 건가요?”
“죄송합니다... 걱정 끼쳐드리지 않게 제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습니다...”
“그래요.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지난 8년간의 행방은 밝혀냈나요?”
“그것도 아직···.”
스윽-.
남자가 턱을 어루만진다.
“알겠습니다. 그럼 손 떼십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아··· 그게···. 저, 이것좀 보시겠습니까?”
“헌팅 캠?”
“예. 여기 보시면 박시현이······.”
“!”
시현의 활약이 담긴 영상을 재생하자 남자는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딜 갔나 했더니. 어디 폐관수련이라도 하고 왔나보군요. 이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권능인데...”
남자의 눈이 빛난다.
시현의 실력이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 놈에게 이런 힘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휙!
“커억...!”
남자가 손을 뻗어 천우현의 목을 움켜쥐었다.
“모르셨다고요? 한 기업의 전무라는 분이 일처리를 너무 안일하게 하시는군요.”
“크윽.. 죄,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책임지고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
스윽-
남자는 천우현의 목을 풀어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거죠? 한성E&M에 그를 잡을만한 인재가 있던가요?”
“에... 에스 급 헌터가 두 명 있습니다만···.”
“간판헌터 최필연과 그 파트너를 말하는 거군요. 하지만 그들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저... 그래도 S급은 S급입니다···.”
“S급이라··· 하하!”
천우현의 대답에 실소하는 남자.
“눈이 있으면 헌팅캠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시죠. 그게 어디 S급 한둘로 해결될 문제인지.”
“아···. 그럼 해외암살단을 고용해서라도 잡아올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십쇼.”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돈 아끼지 마시고 완벽한 기물로 준비해놓으세요. 체스 판은 내가 짜놓을 테니. 3일 뒤에 결판 짓는 걸로 하겠습니다.”
“정확히 3일 뒤 말입니까?”
이틀도 나흘도 아닌 사흘이라니.
천우현이 고개를 갸웃하자 남자가 말을 덧붙인다.
“헌팅은 타깃의 진을 빼놓고 하는 겁니다. 그 적기가 바로 3일 뒤라는 말이지요.”
“아··· 혹시 3일 뒤에 놈이 힘을 쓸 만한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있을 테지요. 오늘 아프리카에 일이 터졌으니. 내가 그를 반드시 그쪽으로 보낼 겁니다.”
.
.
.
다음날.
“하하하!”
용산 헌터중앙기구 본청 부총장실에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현의 활약 때문이었다.
“정말 복덩이를 물고 왔어. 8성 에픽 몬스터를 단신으로 생포해오다니! 그것도 우리기관에 팔아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당연한 거죠.”
“허허허! 자, 여기. 판매영수증일세. 판매금액은 국제거래소의 평균값보다 살짝 더 받아냈어. 내가 세계본부에 특별히 요청했거든.”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현은 판매영수증에 정산된 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정확히 662억.
제너럴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사막장군인만큼 값이 상당히 높았다.
더군다나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던가?
업무 시간 외에 개인적으로 잡은 것이니 회사와 국가와 나눌 필요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헌터가 오일부자들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말을 절감할 수 있었다.
‘머지않았어.’
이제야 여유가 좀 생긴 것일까?
시현은 곧 다가올 용수의 생일선물로 근사한 것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시현은 곧바로 단련실로 향했다.
최고의 위치에 있더라도, 정진하지 않으면 따라잡히는 것 세상의 이치.
하루도 배짱이 마냥 놀 수는 없었다.
평생 약한 몬스터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한다.
드르륵-
“오셨습니까.”
단련실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류건이 인사를 건네 온다.
“절 기다리신 겁니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일단 제 6단련실로 가시죠.”
“예.”
제 6단련실은 처음 와본 시현.
이렇게 큼지막한 공간에 아무것도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유훈련장 같은 느낌이랄까.
“오늘부터 시현 씨가 꾸준히 하게 될 훈련은 중력훈련입니다. S팀의 필수훈련이기도 하지요.”
중력훈련.
대개 조종사들이 하는 훈련이지만,
요즘은 수준 높은 헌터들도 시설 좋은 곳에서 받는 훈련이기도하다.
“조종사들이 받는 중력가속도훈련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비슷합니다. 다만, 가속기계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이곳에는 아무런 기계장치도 없었으니까.
삐빅-.
류건이 자그마한 리모컨을 꺼내 누르더니 실내에 미세한 변화가 일어났다.
두웅-
“이건···.”
“맞습니다. 방금 중력이 인위적으로 상승한 겁니다. 아주 조금이요.”
“···신기하군요. 벌써 과학이 이렇게나 발전했다니.”
냉동인간이 후세에 깨어나면 이런 느낌이려나?
고작 8년의 공백이었지만 시현은 자신이 시대에 많이 뒤쳐져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럼 이 상태로 훈련을 하는 겁니까?”
“그렇죠. 앞으로의 체력훈련은 모두 가중(加重) 상태에서 시행될 겁니다. 중력의 수치 역시 차차 늘릴 거고요.”
흡사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
이곳에서 훈련한다면, 외부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 전에 앞서 호흡법부터 배워야합니다.”
“예. 그런데 아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건···”
“아, 그건 금일 훈련이 모두 끝난 뒤 편안한 상태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날 오전은 호흡법을 배우고, 오후엔 실전훈련에 나섰다.
단련실 외부, 통제실에서 마이크를 잡은 류건이 말했다.
-준비 되셨습니까?
“예.”
순간.
두웅-
제 6단련실 실내의 중력이 증가했다.
-3G입니다. 호흡하세요.
“흡- 퍼허···.”
3배의 중력.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지만 전혀 무리가 없었다.
굳이 호흡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
이미 시현의 육체는 그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현은 배운 대로 착실하게 호흡을 했고.
중력은 어느덧 4G를 넘었다.
몸무게가 80kg이라면 320kg의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견딜 만 하십니까?
“문제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하죠. 시간은 1세트에 30분. 갑니다. 주의하세요.
태앵!
그때였다.
아무 것도 없던 단련실 내부에 고무타격대가 사방에 생겨났다.
바닥에서 튀어 오른 것이다.
특수고무소재의 탄소나노튜브 타격대였기에 파손될 가능성은 거의 적었다.
더욱이 이곳은 현재 중력이 가해진 상태.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후우-.”
파앙!
시현은 사방에 놓인 타격대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뻗었다.
‘이대로라면 단시간 내에 큰 효과를 볼 수 있겠군.’
시현으로서도 만족도가 높은 훈련이었다.
.
.
.
오후 2시 경.
격한 훈련을 끝마친 시현이 류건에게 물었다.
“어땠습니까?”
“완벽합니다. 훈련성과도 좋고 부작용도 거의 없습니다. 바디밸런스도 점점 맞춰지고 있고요.”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덕분입니다.”
시현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류건 역시 고개를 숙였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리고 아까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한 건··· 일단 앉으시죠.”
자리에 앉자 류건이 이온음료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이요?”
“예. 혹시 아프리카에 가보신 적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