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시민들과 한성E&M의 헌터들은 사막장군을 피해 도망치는 사이.
시현과 사막장군 단 둘만이 남았다.
여태껏 조우했던 몬스터들이 오합지졸이었다면 녀석은 ‘제대로 된 놈’이었다.
사막장군.
겉보기엔 설인처럼 거인(巨人)의 외양을 지녔지만,
스르르르-
거대한 발 아래로 무수한 모래알이 흘러내린다.
저 발에 짓밟힌다면 뼈도 못 추리리라.
거기다가 견갑에 뿔 투구까지 껴입고 있다.
시현이 알던 보통의 사막장군과는 수준이 다른 개체였다.
푸욱-
놈이 시현에게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탐스러운 녀석이구나··· 흔치않은 기력을 지녔어.
어서 시현을 먹고 싶은 것인지 입맛을 다시는 사막장군.
그리고 감탄하는 시현.
“네 놈도 흔치않은 힘을 가졌구나.”
-인간 주제에 어떻게 우리의 말을······!
시현이 자신들의 언어를 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네 이놈. 우리의 땅을 침입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침입? 그런 거였나.”
즉, 허상던전이란 지구의 인간들이 이계의 땅으로 소환되는 것이다.
이는 말콤도 모르는 고급정보.
사내의 보안철칙 상 던전에서 얻는 정보는 팀장에게 보고해야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상관이 없었다.
근무시간이 아니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얻은 게 많은 주말이군.’
그럼 답례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의 시현이니까.
사막장군에게 답례를,
파앙-!
권격이 용솟음치듯 타원형을 그리며 뻗어간다.
지(地)속성의 역속성인 풍(風)속성의 묘리를 실은 것이 그 원인.
솨아아아!
세차게 뻗어간다.
무엇이듯 빨아들일 기세로,
-그오오오오!
사막장군 역시 이에 질세라 모래장벽을 정면에 소환하였다.
언브로큰 샌드월(Unbroken sandwall).
실로 단순해보이지만 이래봬도 무려 A급 스킬의 모래장벽이다.
게다가 말이 모래지, 실제로는 암벽처럼 두텁다.
그것도 한 방향이 아닌 오방(五方)의 벽.
스오오오오-
단숨에 모래장벽이 세워졌고, 그 앞으로 시현의 일격이 쏟아져나갔다.
콰으으으으응!
샌드월과 풍격권이 격렬한 움직임을 자아낸다.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
막으려는 사막장군은 장벽이 뚫릴세라 겹겹이 층을 쌓았다.
하지만 뚫으려는 자, 시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하늘 위로 도약해 뛰어오른 뒤였기에.
빙그르르-
하늘을 자유비행 하듯 날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최고높이에 도달하자,
“쓰러지지 않는 팽이처럼.”
위이이이이잉!
무한회전.
태양을 등진 상태로 빠르게 하강한다.
그 아무리 두터운 모래장벽마저 부숴버릴 기세로.
-아, 아니?!
그제야 사막장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시현의 날카로운 손끝이 장벽에 닿았으니.
콰지지지직!
금이 가는 것은 예사였고,
사막장군이 수를 쓰기도 전에 철옹성과도 같단 모래장벽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나타난 시현.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야.”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번 사용된 스킬이 재활용되었다.
위이이이이잉!
사막장군의 견갑을 사정없이 뚫어버린다.
마치 날계란 부수는 것처럼, 아주 쉽게.
콰지지지직-.
시현은 이미 육체강화 2단계에 있었기에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미지의 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육체강화 2단계가 사막장군의 수준에 딱 맞는 것이다.
‘이 녀석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아무렴 어떠한가.
적을 괴멸하면 그만이었다.
시현은 그 와중에 놈을 생포할 생각으로 심장을 피해 팔을 공격했다.
도검과도 같은 날카롭고도 묵직한 손날로,
회전력까지 머금었기에 그것의 파괴력은 상상이상.
더군다나 재빨리 기력을 수(水)속성으로 변환시켜 팔에 감았다.
사막장군의 육체에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할 땐 필수적인 작업이었기에.
스컹!
사막장군의 오른팔이 거침없이 잘려나갔다.
-으오오오오오오!
팔이 잘리자 울부짖는 사막장군.
고통스러운 것보다도 분노한 것처럼 보인다.
고작 인간 따위한테 팔을 내준 것이 분한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울부짖는 것은, 놈이 ‘봉인’을 해제하기 위함이었다.
좌즈즉-
차아앙!
번데기가 껍데기를 탈피해 나비로 변태하듯.
육중한 거구의 사막장군이 2미터 크기의 홀쭉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흡사 날개달린 스콜피언 킹과 같았다.
그것이 사막장군의 참모습이었다.
시현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
.
.
“꺄아악!”
“모두 좌로 피하세요!”
사막 한 가운데에 울려 퍼지는 외침.
데저트 인페르노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과 그것들을 헌팅하는 한성E&M의 헌터들이었다.
수으으응!
곳곳에서 데저트 인페르노들이 대거 튀어나왔다.
이것이 그 놈들의 사냥방식.
군집생활을 하는 놈들은 땅 속에서 숨어 진동을 감지하다가, 목표물이 다가온 순간에 확 덮쳐버리는 것이다.
-키요요오오!
평소에는 개불처럼 생겼지만 입을 벌릴 때엔 불가사리 같기도 한 그것들이,
좌아아악!
사방으로 입을 벌려 사람들을 산 채로 씹어 먹기 시작한다.
8성 레어 몬스터였기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었다.
하물며 그 수가 무려 열이 넘었기에, 허영무가 이끄는 팀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뛰어난 전략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러한 악조건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시민들이 있어 더 이상은 무리야. 희생을 감수하는 수밖에.’
허영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잘들 들어. 일반인들이 미끼가 돼주는 사이, 우린 뒤에서 놈들을 칠거야. 한 번에.”
“예? 그, 그 말은··· 범위공격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끄덕.
그것이 바로 허영무의 생각이었다.
광범위공격.
시민이든 몬스터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
이대로 어영부영 있다가 모두 몰살당하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커.”
“예, 팀장님.”
“모든 것이 너한테 달렸어. 놈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번에 끝내야 돼. 윈드커터로 갈기갈기 찢어버려.”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각자 위치로!”
“예!”
한성의 헌터들이 바삐 움직이던 그때.
“No, no. 그건 좋지 않은 생각 같군요.”
저편에서 가만히 그들의 말을 엿듣고 있던 사내가 끼어들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I'm Malcom. 내게 5초만 내주면, 당신들이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어요. 시민들 피해 없이 깔끔히 놈들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뜻이죠.”
“깔끔히 놈들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술에 깬 말콤이 고개를 끄덕이자, 누커 김종현이 팀장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팀장님. 저 백인,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그만 무시하시죠. 한 시가 시급합니다.”
“···그래도 들어보기나 하자고.”
밑져야 본전.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5초쯤이야 내줄 수 있다.
성공만 한다면 정부로부터 더 많은 포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
“Okay. 잘 들어봐요. 저 놈들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놈 보이죠? 덩치 작은.”
“보입니다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그 놈만 잡으세요.”
“뭐요? 그러면 나머지 아홉 마리가 다시 땅굴을 파고 안으로 들어간 뒤 기습을 해올 텐데.”
“No. 놈들은 반드시 저 놈의 사체로 모여들 겁니다. 그럼 그때 광역기를 쏴서 한 번에 제거하면 되죠.”
“허···.”
허영무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허나 말콤은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No way. 틀림없어요. 저 놈이 여왕이에요.”
“······!”
“그게 정말입니까? 덩치도 저렇게 작은 놈이 여왕이라고요?”
“물론.”
군집생활을 하는 개체에는 대개 ‘대장’이 있기 마련.
겉보기엔 모두 비슷해보였지만 말콤의 눈엔 아니었다.
그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기에.
“나는 몬스터연구개발원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그럼 믿을 수 있겠죠?”
“음···.”
“좋아, 까짓것 해보지. 정 안 되면 산개섬멸작전으로 넘어간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바로 실행에 나섰다.
모든 팀원들이 말콤이 가리킨 데저트 인페르노에게 집중공격을 퍼부었다.
콰지지직!
녀석이 참혹하게 죽자,
나머지 아홉 마리가 말콤의 말대로 사체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왕의 사체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흡수하는 데저트 인페르노가 ‘차기 여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 지금이야. 김종현, 윈드커터 갈겨!”
휘이이-
허공에서 바람의 칼이 춤을 춘다.
사사사삭!
아홉 마리의 인페르노를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즉, 데저트 인페르노들의 권력욕을 이용한 말콤의 뛰어난 전략이었던 것이다.
헌팅을 끝내고 돌아온 팀장 허영무가 말콤에게 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그걸 어떻게 아셨죠?”
하지만 말콤은···
툭툭.
자신의 왼쪽가슴을 두 번 두드릴 뿐.
그 질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얼른 가죠. 제 술친구가 지금 외롭게 싸우고 있어서.”
.
.
.
참모습의 사막장군은 상당히 강력했다.
시현이 바깥 세상에 나온 뒤로,
처음으로 겨뤄볼만한 상대가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지고 놀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버거운 상대도 아니었다.
단지 상대하기에 살짝 까다로울 정도.
-어서 오거라.
녀석의 독이 문제였다.
시현에게 독을 무효화시키는 스킬과 해독하는 스킬은 있었지만.
쿨타임이 있었기에 신중하게 움직여야했다.
사막장군이 독을 품고 있는 꼬리는 두 개.
그리고 집게발에도 독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독종(毒種).
이미 사막장군의 주변에는 고농도의 A급 거대 포이즌 배리어와 두터운 모래장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도 겹겹으로 4중으로 생성해놓았다.
거진 대부분의 기력을 방어에만 투자한 것이다.
시현을 도발해 독지대로 유인하기 위해서.
하지만 시현은 넘어가지 않았다.
‘배리어가 4중이라···.’
이렇게 된 이상 시현 역시 꽤 많은 기력을 소모해야 했다.
육체를 3단계까지 강화하거나,
혹은 A급의 배리어를 뛰어넘는 S급의 스킬을 날리거나.
‘후자가 낫겠군. 어차피 놈만 잡으면 던전은 클리어니까.’
꽈득-
주먹을 말아 쥐고 S급 스킬을 날리려던 그때.
“미스터 팍! 녀석의 약점을 알고 있어요!”
어느새 돌아온 말콤이 외쳤다.
“약점이요?”
“Yes! 저기 저놈 발 밑 보이시죠? 저기에 불을 지펴서 놈을 움직이게 만들 거예요. 여기 한성E&M의 김종현 씨가 파이어파운틴(Fire fountain)을 쓸 수 있다고 하니 부탁해보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사막장군은 모래형 몬스터이잖습니까.”
불이 먹힐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말콤은 확신했다.
“나를 믿으세요. 나만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녀석은 2천도 이상의 고온에 취약해요.”
“2천도라···”
시현은 말콤을 믿기로 했다.
괜히 I팀이 아닐 테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한성 팀의 도움은 됐으니 내가 하겠습니다.”
사체의 소유권에 괜한 분쟁이 오갈 수도 있다.
딜량으로 소유권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 이러한 상황처럼, ‘힐러’나 ‘서포터’가 딜을 넣지 않고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경우에는 다르다.
타앗!
시현이 정면으로 도약했다.
포이즌 배리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상대를 안심시키려는 것이다.
그런 뒤,
스윽.
시현이 손짓하자 사막장군의 발밑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르르!
-그어어어어어!
사막장군은 채 5초도 버티지 못하고 배리어 밖으로 나왔고,
그곳엔 이미 시현의 주먹이 기다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수 속성을 동반한 돌풍(突風)에 휩쓸려 온몸이 도륙 나는 사막장군.
바람은 사막장군이 죽기 직전에 멈췄고,
-그어어어어.......
털썩.
쓰러진 사막장군의 몸은 순전히 시현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