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새해가 밝았다.
해외로 출장을 갔던 함경만 본부장이 귀국한 날이기도 했다.
그가 본청으로 돌아가자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이들이 그를 찾았다.
똑똑.
“관리관이랑 S팀 팀장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끼익-.
백민식 관리관과 임장호 팀장은 정중히 인사부터 했다.
“영국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말도 마. 날씨가 어떻게 그렇게나 변덕스러운지. 뭘 보고 배우려 해도 정신만 사납더라고.”
헌터중앙기구는 각국마다 특색이 있다.
기본적인 운영 시스템은 같으나, 조직체계나 팀 별 운용법 등에는 차이점이 있었다.
즉, 고유의 스타일이 존재한다는 뜻.
개중에서도 영국 헌터중앙기구의 경우,
특수본부의 명령 및 전투체계가 여타 국가보다도 뛰어났다.
그러한 이유로 함경만 본부장이 영국으로 출장을 갔던 것인데···.
“난 잘 모르겠더군. 개별능력은 한참 뒤떨어져도 우리 S팀이 최고인 것 같단 말이야.”
한국 헌터중앙기구의 S팀.
외국헌터들보다는 개인능력이 많이 뒤처지지만.
모르긴 몰라도, 특수던전의 클리어율은 100%였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자네들은 무슨 용건으로 온 건가? 나 복귀식이라도 열어주려고?”
“하하,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S팀 말입니다.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돼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백민식 관리관.
함경만이 묻기도 전에 임장호 팀장이 돌직구를 날렸다.
“SSS팀을 개설하고 싶습니다.”
잠깐의 정적.
이내 함경만이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 SSS팀? 그건 또 뭔가?”
“Special Secret Scenic. 한 사람을 위해 운영되는 팀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우리가 고스 헌트(Goth hunt)도 아니고.”
헌팅은 팀 단위로 행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령 미국의 헌터집단 ‘고스 헌트’처럼 솔로잉을 추구하는 집단도 있었다.
“아뇨. 그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뭐가 어떻게 다른데?”
“고스 헌트는 솔로잉을 추구하는 헌터 개개인이 모여 팀을 이루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원하는 SSS팀의 경우, 솔로잉을 하는 헌터는 단 한 명뿐입니다.”
“한 명? 우리 팀에 그럴만한 사람이 있다고?”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 본부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신입이라면··· 설마 박시현?”
그로부터 약 1분.
쾅!
본부장실에서 쫓겨나듯 나온 두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함경만이 보수적이고 깐깐한 양반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SSS팀은 포기해야할 듯한데?”
“형님, 딱히 경로가 없는 건 아니오.”
임장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예, 팀장님. 알겠습니다. 아닙니다, 민폐는요. 제가 직접 물어보도록 하죠.”
시크릿 에이전시 단련실.
시현의 훈련일정을 조율 중이던 류건은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몸을 풀고 있던 시현이 물었다.
“임장호 팀장님인가요?”
“예. SSS팀에 관해 상의할 게 있어서요. 잘 해결됐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서 훈련일정을 알려주시죠.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하하. 좋습니다. 너무 타이트하다고 앓는 소리 내시면 안 됩니다.”
“그 정도나 됩니까?”
“여길 보시죠.”
류건이 훈련일정표를 건네주었다.
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껏 해봤자 웨이트 트레이닝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는데.
훈련과정이 이렇게까지 체계적일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포켓자극훈련
포켓강화훈련
기력조절훈련
기력자가생성훈련
기력농도조절훈련
웨이트훈련
바디밸런싱훈련 외 8종.
그야말로 인간병기를 만들려고 작정한 듯한 훈련일정이었다.
“보시다시피 스킬 훈련은 일제히 배제했습니다. 시현 씨의 헌팅 캠을 분석한 결과,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쓰는 스킬이 완벽하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스킬에 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스킬훈련을 제외하고도 열다섯 가지나 되었다.
미지의 던전에서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체계적인 훈련이 시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것들이 자신을 얼마나 더 강하게 만들어줄지 기대가 되었다.
“근무 후 시간까지 참견하진 않습니다. 그건 시현 씨의 자유입니다.”
“예, 열심히 따르겠습니다.”
류건이 시현을 스윽 보더니 어렴풋이 미소 짓는다.
“전 최선을 다해 지도해보겠습니다.”
그 시간부로 류건의 제일헌터양성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이미 세계에서 제일가는 헌터일지도 모르지만···.
“먼저, 헌터를 이루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먼저 첫 번째는 육체.”
스킬의 완성도가 아무리 견고하다고 해도.
스킬을 시전 할 육체가 밑바탕 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더불어 스킬의 위력을 더더욱 높일 수 있는 것이 바로 ‘근력’.
육체는 헌터의 기본이자,
스킬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시현 씨의 신체능력은 뛰어납니다. 하지만 너무 야만적이고, 격렬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뜻이죠.”
시현의 몸은 말 그대로 야인(野人)의 육체였다.
절제된 헌터의 근간이 되기 위한 육체는 가공될 필요성이 있었다.
“사냥밖에 모르는 무구한 사냥꾼이 아닌, 완벽한 헌터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육성시스템을 가할 겁니다.”
“믿음직스럽군요. 그럼 나머지 두 개는 무엇이죠?”
“두 번째는 기력입니다. 헌터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기력에 관해선 다뤄야 할 게 많으므로 트레이닝 순서에 맞춰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권능.
“세 번째는 권능, 즉 스킬입니다만, 이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유의하십쇼. 스킬과 권능에만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 말이죠.”
시현은 그 말뜻을 이해할 듯 말듯 했다.
하루사이에 권능이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했던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길까?
시현이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까 제 스킬의 완성도가 높다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럼 제가 스킬에 더더욱 의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현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것만큼 유리한 게 없으니까.
하지만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그것에 대해 류건이 말했다.
“만약 스킬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가령, 침묵의 디버프라든지.”
“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시현의 머릿속에 기억 한 조각이 어렴풋이 스쳤다.
몇 년 전, 미지의 던전에서 스킬을 쓸 수 없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상대의 스킬을 제어하는 디버프 ‘침묵’.
그런 상황에 대비해 육체를 단련해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육체와 기력 그리고 스킬.
삼박자가 맞아야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열심히 해야겠군.’
이미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그 위로 올라가는 길이 또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굳게 마음먹은 시현은 웃통을 벗고 훈련용 슈트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문득 궁금했는지 류건에게 물었다.
“아, 그런데 SSS팀은 언제쯤 창설되는 겁니까?”
“금방 됩니다.”
류건은 웃어 보일 뿐이었다.
.
.
.
바로 다음날.
류건의 말대로 SSS팀은 금방 창설되었다.
그것도 본관에서 총장이 직접 내려와 창단식을 축하해주었다.
“자네가 그 유명한 박시현이구먼. 한 번 찾아봤어야했는데, 이해해주게. 내 자리가 워낙에 바쁜 자리라서.”
“아닙니다.”
“껄껄.”
총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 주에 있는 총장모임에서 간만에 어깨 펼 수 있겠어. 내 앞으로도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겠네. 그만큼 돌아가는 게 분명 있을 테니 더 분발해주게.”
“감사합니다.”
비밀스러운 창단식이 끝난 후.
S팀 팀원들이 몰려왔다.
먼저 강보검이 말문을 열었다.
“형, 대박. 다른 팀에서도 난리 났어요! 있다가 다 같이 축하식 열어주기로 했다는데!”
“다른 팀이?”
“네! 그렇다니까요? A팀, I팀 여자들이 죄다 형 보려고 라운지에 다 나와 있다고요! 와, 진짜 개 부럽다! SSS팀이라니.”
강보검의 요지는 부럽다는 것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부러워하는 듯했다.
그러자 방어진이 보검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쥐어박았다.
“그럼 너도 얼른 강해져서 SSSS팀 만들어달라고 해, 임마.”
“형, 진심이야? 인생 백번 살아도 저 형처럼은 안 될걸? 권능의 열쇠라도 있으면 모를까.”
“권능의 열쇠? 그게 뭔데?”
“어? 어어···? 그냥, 하하! 권능이 더 강화되면 좋겠다는 얘기지 뭐.”
사수영이 묻자, 신나게 얘기하던 강보검이 황급히 입을 닫았다.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뒷머리 긁으며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아우, 뻐근해라. 좀 쉬었다가 트레이닝이나 좀 해야겠다.”
어색한 말투와 몸짓.
강보검 뿐만이 아니었다.
사수영 옆에 서있던 김지원 역시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다.
‘방금 분명 권능의 열쇠라고···.’
시현은 똑똑히 들었다.
강보검이 ‘권능의 열쇠’라고 말한 것을.
더군다나 말을 돌리는 것까지.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뭔가 알고 있구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단서를 얻은 것이다.
그러던 중, 김지원이 스윽 끼어들어 화제를 전환했다.
“아, 시현 오빠. I팀의 말콤 아시죠?”
“말콤? 잘 알지. 왜?”
“말콤이랑 무슨 일 일었어요? 아까 오빠 얘기 나오니까 식은땀을 흘리던데.”
“그래?”
말콤에게 두려운 존재로 각인된 시현.
토요일에 만날 때 선입견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금주 토요일.
서울 양재동의 제주 흑돼지삼겹살집.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리가 콜라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조용한 방에서 오붓하게 고기를 굽고 있는 남자 둘이 있었다.
시현과 말콤.
영화배우 짐캐리를 닮은 말콤은 시현을 무서워했다.
거미 던전을 노늬었던 시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나마 오늘, 대화와 삼겹살을 통해 시현에 대한 공포가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미스터 팍. 당신은 대체 무엇입니까...”
“좀 특별한 헌터일 뿐이죠.”
“투 머치 스페셜!”
“말콤.”
“네?”
고기를 다 구운 시현은 집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열쇠가 뭔지 알죠?”
“열쇠? Key? 당연히 알죠!”
“권능의 열쇠도 알고?”
“권능의 열쇠?”
말콤은 동공이 확대된다.
궁금하다는 듯 도리어 시현에게 묻는다.
“그게 뭐죠?”
그러고는 고기를 가져다 쌈을 싸먹는다.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진짜 모르는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연기라면 당장 충무로로 가도 될 정도.
“아닙니다. 많이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아, 소주 좋아하신다고요?”
“시간이 없어 못 먹죠. 흐흐흐!”
“그럼 휴일이니 간단하게 술이나 한 잔 적시죠.”
한 잔 하던 게 한 병이 되고.
한 병 하던 게 열 병이 되었다.
분명 똑같이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말콤만 잔뜩 취했다.
반면 더없이 멀쩡한 시현은 말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으음? 갑자기 왜······.”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하는 법입니다. 알겠습니까?”
스응-.
시현의 손에서 기가 쏟아져나가 말콤의 두뇌를 지배했다.
언령 스킬인 것이다.
이른바, 거짓을 말할 수 없게 하는 D급 스킬.
마치 진실게임과도 같았다.
‘역시 통하는 군.’
일전에 훈련소에서 수습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본 결과.
SP가 400이상인 사람들에겐 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바 있었다.
하지만 말콤은 그 이하.
그렇기에 말콤에게 스킬이 먹혀든 것이다.
“자, 이제 다시 묻겠습니다. 권능의 열쇠가 무엇이죠?”
시현이 묻자 말콤이 고개를 내젓는다.
“권능의 열쇠.... 모르겠습니다...”
‘아까 그건 연기가 아니었군.’
시현은 질문을 바꿔보았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던전 외에, 인위적으로 던전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네...”
‘이 정도면 됐어.’
그것만 알아도 충분했다.
시현은 다시 입을 뗐다.
“인간에 의해서 개발된 겁니까?”
“네.. 9년 전.. 미국에 이계석이라는 돌멩이들이 나타났는데... 당시 해외로 빼돌린 사람이 많아서 파문이 일었죠...”
“아진그룹과도 관련이 있습니까?”
“아진그룹... 당시 미국에서 근무 중이던 아진의 최민호 전 이사도 그중 하나에요...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최민호라면······.’
김은혜의 남자친구이자 아진몬스터연구개발소 소속.
실마리를 얻었다.
“그럼 이계석은 뭡니까?”
“이계를 지구로 소환하는 것... 그게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던전입니다... 직접 몬스터를 던전 안에 배치시킬 수도 있고요..”
‘몬스터 배치라면··· 기계류 몬스터. 아진몬스터연구소가 일조했겠군.’
모든 것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지금껏 시현을 위협한 것도 다 아진이었던 것이다.
“맞아요.. 던전은 크게 네 종류.. 몬스터들이 연결하는 던전, 인간이 연결하는 던전, 세계7대 M던전, 그리고 허상던전...”
“허상던전이요?”
“네.. 허상던전이라는 것은... 하루에 800건이나 생성될 정도로 흔한 던전으로.... 지구에 나타나는 던전 중 대부분이 허상던전일 정도로...”
쿠웅!
찰나, 시야가 뒤틀렸다.
흡사 가상공간에 온 것처럼 공간이 왜곡되고 사방이 변화되었다.
삼겹살집은 어디가고 눈을 몇 번 깜빡이니 황금빛의 사막이 펼쳐져있었다.
시현이 어리둥절해하던 무렵.
말콤이 입을 열었다.
“여기에요... 허상던전....”